매월당 시집 제3권 5-36
매월당 시집 제3권 5-36
5 시절節序
36 화석춘시和惜春詩 봄 아끼는 시에 화답하다 3首
1
가석광풍특지사可惜狂風特地斜 아까울사 미친 바람이 유별나게 불어와서
일원춘색퇴편다一園春色褪偏多 온 동산의 봄빛이 퇴색된 게 너무 많네.
동군가시무정물東君可是無情物 동군東君은 참말로 무정한 물건이런가
유아우혜가내가遺我虞兮可奈歌 우리 우虞를 버리고서 노래는 해서 무엇 하리.
►‘바랠 퇴褪’ (빛이)바래다, 엷어지다. 퇴색退色하다. (옷을)벗다
►‘치우칠 편偏’ 치우치다, 쏠리다, 기울다. 편향偏向(편중偏重)되다. 먼저 실례하다.
►동군東君 봄의 神. 해. 태양太陽. 청제靑帝.
►무정물無情物의 설법
남쪽에서 온 한 선객이 혜충국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옛 부처의 마음입니까?"
"담‧벽‧기왓장 등 무정 물건 모두가 옛 부처의 마음이니라."
"경전의 말씀과는 매우 다르군요.
열반경에 이르기를 ‘無情物을 여의었으므로 佛性이다’ 했는데
‘온갖 무정물이 불심’이라고 하시니 마음과 성품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미혹한 사람에게는 다르지만 깨달은 사람에게는 다르지 않느니라."
"경에 말씀 하시기를
‘마음은 불성이 아니다.
불성은 항상 함이요, 마음은 무상 하다‘ 했는데
불성과 마음이 같다고 하시니 그 이치가 어떠 하온지요?"
"그대는 말에만 의지하고 뜻에는 의지 하지 않는구나.
마치 겨울에 물이 얼어서 얼음이 되었다가 봄이 되면 풀리어 물이 되는 것 같이
중생이 미혹할 때엔 성품을 묶어 마음을 이루고 깨달으면 마음이 풀려 성품이 되느니라.
그래서 화엄경에 이르기를 ‘삼계의 모든 법이 마음으로 지어진 것’이라 했느니라.
무정물은 삼계 안에 있지 않느냐."
"무정물에도 마음이 있다면 설법도 할 줄 알겠습니다."
"쉴새없이 항상 설하고 있느니라."
"저는 어째서 듣지 못합니까?"
"그대가 듣지 못할 뿐이다."
"그럼 어떤 사람이 듣습니까?"
"성인들이 듣느니라."
"그렇다면 중생들은 들을 자격이 없겠습니다."
"나는 중생을 위해 말했지 성인들을 위해 말한 것이 아니니라."
"저는 어리석고 둔해서 무정물의 실법을 듣지 못하지만
스님께서는人天의 스승이시니 무정물의 설법을 들으셨습니까?"
"나도 듣지 못했느니라."
"어째서 듣지 못하셨습니까?
"내가 만일 무정의 설법을 듣는다면 성인들과 같아질 것이다.
그럼 그대가 어떻게 나를 보거나 나의 설법을 들을 수 있겠는가."
잠시 침묵하다가 선객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경전에서 무정물이 수기를 받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무정물로서 성불하신 분이 계시면 보여주십시오."
"내가 그대에게 도리어 묻겠노라.
황태자가 왕위를 물려받을 때 태자 한 몸만 왕위를 받는가,
국토안의 전체가 왕위를 받는가?"
"태자가 왕위를 받으면 국토안의 모든 것은 저절로 왕에게 속합니다."
"지금의 이 경우도 그러하니라.
유정들이 수기를 받아 부처가 되면
삼천대천세계의 온갖 국토 모두가 비로자나 부처님의 몸에 속한다."
"부처와 중생이 같다면 한 부처님만 수행하여도
온갖 중생이 동시에 해탈을 얻어야 하지 않습니까?"
"화엄경에 보면
‘같은 가운데 다름이 있다.
또 전체 가운데 부분이 있고 부분 가운데 전체가 있다‘고 했다.
중생과 부처가 같기는 하나 남이 밥 먹는 것을 구경해도 자신은 끝내 배부르지 않느니라."
"제가 만일 스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일생을 헛되이 보낼 뻔 하였습니다."
►우虞 초왕楚王 항우項羽의 총희寵姬인 우미인虞美人(?-BC202)
우미인은 속칭이고 우는 성姓이면서 이름이라고도 한다.
항우는 진秦을 타도하고 西楚의 패왕霸王이라고 칭하여
漢의 유방劉邦(高祖)과 패권을 다투었으나 패배하여 포위되었다.
항우는 밤에 사방을 포위한 漢軍이 초나라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고
유방이 이미 초를 점령하고 초나라 백성이 모두 적이 되었다고 생각하여
진중에서 주연을 베풀고 노래했다.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건만 시세가 불리함이여,
추騅가 나가지 않네. 추騅가 나가지 않으니 어찌할 것인가?
우虞여! 우虞여! 그대를 어찌 할 것인가!”
항왕이 여러 차례 노래를 마치고 우미인에게 석별의 노래를 부르게 하자
우미인이 이에 노래로 대답하고 자살하였다.
우虞는 우희虞姬를 뜻하며 우미인虞美人이라고도 불립니다.
항우 진중의 장수 우자기虞子期의 누이로 아름답고 무예를 좋아해서 항우의 부인이 되었다.
사후에 해하에 매장되었는데 현재의 안휘安徽성 영벽현靈璧縣 성城 동쪽 15리에
무덤이 있는데 묘에 돋아난 풀이 우미인곡虞美人曲을 들으면 춤을 추어 움직이므로
이 풀을 우미인초草라고 한다는 전설이 있다.
항우와 우희의 이야기는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북송 시인 소식蘇軾은 ‘우희묘虞姬墓’란 시를 지었다.
특히 그를 묘사한 경극京劇 ‘패왕별희霸王別姬’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2
청행여당유연사靑杏如鐺乳燕斜 푸른 살구 단추 같고 어미 제빈 나는데
뇌인호사석무다惱人好事惜無多 사람 성가시게 할 좋은 일은 아깝게도 많지 않네.
춘풍린각유인흥春風悋却幽人興 인색한 봄바람 그윽한 이의 흥을 빼앗아서
수각양관일곡가輸却陽關一曲歌 양관곡陽關曲 한가락 노래마저 저버리게 하누나.
►‘쇠사슬 당, 솥 쟁鐺’ 쇠사슬. 종고 소리(종과 북의 소리)
►유연乳燕 제비 새끼. 새끼를 갓 낳은 어미 제비.
►수각輸却 승부에서 지는 것을 ‘輸’라고 한다. ‘却’은 강조어.
►양관곡陽關曲 곡조曲調 이름.
위성곡渭城曲의 별명別名인데 작별할 때 부르는 노래.
위성조우읍경진渭城朝雨浥輕塵 위성의 아침 비 먼지를 가벼이 적시어
객사청청류색신客舍靑靑柳色新 객사의 푸른 버들 그 빛 더욱 새로워라.
권군갱진일배주勸君更進一杯酒 그대에게 한 잔 술을 다시 권하나니
서출양관무고인西出陽關無故人 서쪽 양관으로 나가면 친한 벗 없으리라.
/왕유王維의 〈송원이사안서送元二使安西 위성곡渭城曲>
3
소원풍우란저사小園風雨亂低斜 작은 동산의 바람 비 어지러이 낮게 흩어지는데
록엽성음자이다綠葉成陰子已多 푸른 잎새 그늘 이뤄 열매 벌써 주렁주렁하네.
불인별춘춘거료不忍別春春去了 차마 봄과 이별 못하는데 봄은 벌써 가 버려서
석춘가의별인가惜春歌擬別人歌 봄 아끼는 노래를 사람과 이별하는 노래에 비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