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풍國風 진풍陳風 136. 완구宛丘
국풍國風 진풍陳風
136. 완구宛丘 완구 언덕
자지탕혜子之湯兮 완구지상혜宛丘之上兮 그대가 방탕하게 완구의 위에서 노는데
순유정혜洵有情兮 이무망혜而無望兮 참으로 마음에 있어도 바라는 건 없다네.
감기격고坎其擊鼓 완구지하宛丘之下 둥둥 북을 치면서 완구 아래에서 노는데
무동무하無冬無夏 치기로우值其鷺羽 겨울 여름 없이 백로 깃 부채 들고 춤추네.
감기격부坎其擊缶 완구지도宛丘之道 둥둥 질장구 치면서 완구 길에서 노는데
무동무하無冬無夏 치기로도值其鷺翿 겨울 여름 없이 백로 깃 일산 들고 춤추네.
그 사람 방탕하여 완구 위에서 노네.
참으로 정이 있으나 우러러 보지는 않는다네.
북을 치며 완구 아래에서 노네.
겨울도 여름도 없이 해오라기 깃 꽂았네.
질장구 치며 완구의 길에서 노네.
겨울도 여름도 없이 해오라기 깃 꽂았네.
●<모시전毛詩傳><모시전毛詩箋><모시정의毛詩正義>
<모전毛傳>은 한漢나라의 모형毛亨(?-?)이 자하子夏에게서 순황荀況을 거쳐 그에게 전해진 <시경詩經>을 대상으로 전傳을 붙여 <모시고훈전毛詩詁訓傳>을 지었는데 後漢에 와서 정현鄭玄이 전箋을 붙였으며 당唐나라 공영달孔穎達 등이 당시까지 전래한 여러 자료를 중심으로 자세한 소疏를 덧붙여 총정리 하여 <모시정의毛詩正義>를 완성하여 오늘날의 <시경>이 되었다.
【毛詩 序】
완구宛丘 자유공야刺幽公也 <완구>는 유공幽公을 풍자한 詩이다.
음황혼란淫荒昏亂 유탕무도언遊蕩無度焉 음란하고 거칠며 혼란하여 방탕하게 놀며 법도가 없었다.
►자지탕혜子之湯兮 완구지상혜宛丘之上兮 그대가 방탕하게 완구의 위에서 노는데
【毛亨 傳】
자子 대부야大夫也 자子는 대부이다.
탕湯 탕야蕩也 (끓일 탕)湯은 방탕함이다.
사방고四方高 중앙하中央下 왈완구曰宛丘 사방이 높고 중앙이 낮음을 宛丘라고 말한다.
【鄭玄 箋】
전운箋云 자자子者 척유공야斥幽公也 유탕무소불위遊蕩無所不為
전箋에 이르기를 자子라는 것은 幽公을 배척함인데 방탕하게 놀며 하지 못하는 바가 없음이다.
►순유정혜洵有情兮 이무망혜而無望兮 참으로 마음에 있어도 바라는 건 없다네.
【毛亨 傳】 순洵 신야信也 (참으로 순)洵은 믿음이다.
【鄭玄 箋】 전운箋云 전箋에 이르기를
차군신유음황지정此君信有淫荒之情 이는 군주가 진실로 음란하고 거칠게 하는 마음[情]이 있어서
기위의무가관망이즉효其威儀無可觀望而則傚 그 위엄 있는 거동이 바라볼 수 있는 본받을 법칙이 없음이다.
►감기격고坎其擊鼓 완구지하宛丘之下 둥둥 북을 치면서 완구 아래에서 노는데
【毛亨 傳】 감감坎坎 격고성擊鼓聲 감감(구덩이 감坎)은 북을 두드리는 소리이다.
►무동무하無冬無夏 치기로우值其鷺羽 겨울 여름 없이 백로 깃 부채 들고 춤추네.
【毛亨 傳】
치值 지야持也 (,값 치)值는 잡음이다.
로조지우鷺鳥之羽 가이위예可以為翳 백로의 새의 깃은 깃 일산으로 할 수가 있다.
【鄭玄 箋】
전운箋云 예翳 무자소지이지휘舞者所持以指麾
전箋에 이르기를 (깃 일산 예)翳는 춤추는 자가 일산을 잡은 바로써 指揮를 함이다.
►감기격부坎其擊缶 완구지도宛丘之道 둥둥 질장구 치면서 완구 길에서 노는데
【毛亨 傳】 앙위지부盎謂之缶 (동이 앙)盎을 말하기를 질장구라고 한다.
►무동무하無冬無夏 치기로도值其鷺翿 겨울 여름 없이 백로 깃 일산 들고 춤추네.
【毛亨 傳】 도翿 예야翳也 (깃 일산 도)翿는 깃 일산(깃 일산 예翳)이다.
●시경집전詩經集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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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지탕혜子之湯兮 완구지상혜宛丘之上兮 그대의 방탕함이여! 완구의 위로다.
순유정혜洵有情兮 이무망혜而無望兮 진실로 정이 있으나 우러러볼 수 없도다.
부야賦也 부이다.
자子 지유탕지인야指遊蕩之人也 자는 방탕한 사람을 가리킴이다.
탕湯 탕야蕩也 탕은 방탕함이다.
사방四方 고高 중앙中央 하왈완구下曰宛丘 사방이 높고 가운데가 낮은 것을 완구라 한다.
순洵 신야信也 망望 인소첨망야人所瞻望也 순은 진실로. 망은 사람이 우러러보는 바이다.
국인國人 견차인見此人 상유탕어완구지상常遊蕩於宛丘之上
국인이 이 사람이 항상 완구위에서 놀고 방탕 하는 것을 보았다.
고서기사이자지故叙其事以刺之 그러므로 그 일을 서술하여서 써 비난함이다.
언수신유정사이가락의言雖信有情思而可樂矣 연然 무위의가첨망야無威儀可瞻望也
비록 진실로 정과 생각이 있어 가히 즐거워하나 그러나 위의를 가히 우러러볼 것이 없음이다.
■진일지십이陳一之十二
진陳 국명國名 대호복희씨지허大皥伏羲氏之墟 재우공예주지동在禹貢豫州之東
진은 나라 이름이니 태호 복희씨의 유허이니 <서경> 우공편에 예주의 동쪽에 있다.
기지광평其地廣平 무명산대천無明山大川 서망외방西望外方 동불급맹제東不及孟諸
기 땅이 넓고 평평하여 명산대천이 없어 서쪽으로는 먼 지방을 바라보고 동쪽으로는 맹제까지는 이르지 않는다.
주무왕시周武王時 제순지주帝舜之冑 유우알보위주도정有虞閼父爲周陶正
주 무왕의 때에 순임금의 종손인 우알보가 있어서 주나라의 도정이 되더니
무왕뢰기이기용武王賴其利器用 여기신명지후與其神明之後
무왕이 그 이기(이로운 그릇, 쓰기 좋게 만든 그릇) 쓰는 것에 힘입고 더불어 그 신명의 후손이라 하면서
이원여대희以元女大姬 처기자만이봉지우진妻其子滿而封之于陳
큰 딸인 대희로써 그 아들 만에게 시집보내고 진나라에 봉하고
도어완구지측都於宛丘之側 여황제제요지후與黃帝帝堯之後 공위삼각共爲三恪 시위호공是爲胡公
완구의 곁에 도읍하게 하여 황제씨와 요임금 후손들과 더불어 한가지로 삼각으로 삼았으니 이것이 호공이다.
대희부인존귀大姬婦人尊貴 호요무격가무지사好樂巫覡歌舞之事
대희부인이 존귀하면서도 음악과 무격과 가무의 일을 좋아하니까
기민화지其民化之 금지진주즉기지야今之陳州卽其地也
그 백성들도 동화되니 지금의 진주가 곧 그 땅이다.
■삼각三恪
<禮記> 樂記편에서 말했다.
무왕武王 극은반상克殷反商 무왕이 은나라를 이기고 도읍지인 상 땅에 이르러(反商=及商)
미급하차이봉황제지후어계未及下車而封黃帝之後於薊 마차에서 내리기 전에 황제의 후손을 계 땅에 봉하고
봉제요지후어축封帝堯之後於祝 봉제순지후어진封帝舜之後於陳
요임금의 후손을 축 땅에 봉하고 순임금의 후손을 진땅에 봉하고 나서야
하거이봉하후씨지후어기下車而封夏后氏之後於杞 마차에서 내려 하후씨의 후손을 기 땅에 봉하고
투은지후어송投殷之後於宋 은나라의 후손(微子)을 송 땅으로 이주시키고
봉왕자비간지묘封王子比干之墓 왕자 비간의 무덤을 봉분하고
석기자지수釋箕子之囚 갇혔던 기자를 풀어주고
사지행상용이부기위使之行商容而復其位 상용에게 가서 그 지위를 회복시켰다.
곧 위에서 말하는 삼각三恪의 나라는 계薊와 축祝과 진陳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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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격고坎其擊鼓 완구지하宛丘之下 둥둥 그 북을 침이여! 완구의 아래로다.
무동무하無冬無夏 치기로우值其鷺羽 겨울도 없고 여름도 없이 해오라기 깃을 꽂았도다.
부야賦也 부이다.
감坎 격고성擊鼓聲 치値 식야植也 감은 북치는 소리. 치는 꽂음.
노鷺 용서舂鉏 금노사今鷺鷥 호이결백好而潔白 두상頭上 유장모십수매有長毛十數枚
노는 용저니 지금은 노사니 좋게 생겼고 하얘며 머리 위에 긴 털 열 두어 개가 있다.
우羽 이기우以其羽 위예爲翳 무자舞者 지이지휘야持以指麾也
우는 그 깃으로써 일산을 삼았으니 춤추는 자가 손에 쥐고서 써 흔드는 것이다.
언무시言無時 불출유이고무어시야不出遊而鼓舞於是也
때로 나가 놀지 않음이 없고 이에 북치며 춤춤을 말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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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격부坎其擊缶 완구지도宛丘之道 둥둥 그 북을 침이여! 완구의 길이로다.
무동무하無冬無夏 치기로도值其鷺翿 겨울도 없고 여름도 없이 그 해오라기 깃을 꽂았도다.
부야賦也 부이다.
부缶 와기瓦器 가이절악可以節樂 부는 질그릇이니 가히 써 음악의 가락을 맞추는 것이다.
도翿 예야翳也 도는 일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