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宗無門關 제13칙 덕산탁발德山托鉢
덕산탁발德山托鉢
덕산일일탁발하당德山一日托鉢下堂 덕산이 어느 날 발우鉢盂를 들고 방에서 나오다가
견설봉문見雪峯問 설봉을 만났는데 설봉이 물었다.
자로한者老漢 이 노인네가
종미명고미향鐘未鳴鼓未響 종도 아직 울리지 않고 북도 치지 않았는데
탁발향심처거托鉢向甚處去 발우를 가지고 어디로 가시는지요?
산편회방장山便回方丈 덕산이 곧 방장方丈으로 되돌아갔다.
봉거사암두峯擧似巖頭 설봉이 암두巖頭에게 말하자
두운頭云 암두가 말했다.
대소덕산미회말후구大小德山未會末後句 그렇게 대단한 덕산도 末後句를 모르는구나.
산문山聞 령시자환암두래令侍者喚巖頭來 문왈問曰
덕산이 듣고서 시자를 시켜 암두를 불러오게 해서 물었다
여불긍로승나汝不肯老僧那 네가 노승老僧을 긍정하지 않느냐?
암두밀계기의巖頭密啓其意 암두가 몰래 그 뜻을 알렸다.
산내휴거山乃休去 덕산이 곧 쉬었다.
명일승좌明日陞座 과여심상부동果與尋常不同
명일明日 승좌陞座하였는데 과연 심상尋常과 같지 않았다.
암두지승당전巖頭至僧堂前 부장대소운拊掌大笑云
암두가 승당僧堂 앞에 이르러 부장拊掌하며 크게 웃고 이르되
차희득로한회말후구且喜得老漢會末後句 다만 노한老漢이 말후구를 아셨음을 기뻐하노라.
타후천하인불내이하他後天下人不奈伊何 타후他後에 천하인이 그를 어찌하지 못함을 어찌하랴.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16권 악주암두전활선사鄂州巖頭全豁禪師
무문왈無門曰 무문無門이 가로되
약시말후구若是末後句 만약 이 말후구末後句라면
암두덕산구미몽견재巖頭德山俱未夢見在 암두와 덕산이 모두 꿈에도 보지 못하였다(在).
검점장래撿點將來 검점撿點하여 가져오매
호사일붕괴뢰好似一棚傀儡 좋이 일붕一棚의 괴뢰傀儡와 흡사하다 하노라.
송왈頌曰
식득최초구識得最初句 최초구最初句를 알면
편회말후구便會末後句 곧 말후구를 아나니
말후여최초末後與最初 말후와 최초여,
불시자일구不是者一句 이는 이 一句가 아니로다.
►덕산德山 덕산선감德山宣鑑(782~865) 당대唐代의 승려.
검남劍南(四川)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주周며 법명法名은 선감宣鑑.
어린 나이에 출가했고 20살에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대소승大小乘의 여러 경에 지취旨趣를 관통貫通했는데 늘 金剛般若經을
강설했으므로 인해 당시에 주금강周金剛이라 일컬었다.
후에 예양澧陽에 이르러 용담숭신龍潭崇信을 참알參謁했는데 야심夜深에
용담이 지촉紙燭을 불어 끄는 사이에 휑하게(豁然) 돈오頓悟했다.
늘 몽둥이로 때림으로써 가르침을 삼은지라 덕산방德山棒의 칭호가 있다.
스님이 예양澧陽에 머문 30년에 당무종唐武宗(在位 841-846)의 폐교廢敎를 만나 독부산獨浮山의
석실石室로 피난하였다가 대중大中(847-859) 초에 무릉武陵(湖南) 태수太守 설정망薛廷望의
견고堅固한 청에 응해 비로소 덕산에 거주하며 종풍宗風을 크게 떨쳤다.
함통咸通 6年 12월 3일에
홀고제문도왈忽告諸門徒曰 홀연히 여러 門徒에게 고해 가로되
문공추향捫空追響 허공을 어루만지고 메아리를 쫓음은
로여심신勞汝心神 너희의 심신心神을 노고롭게 하나니
몽각각비夢覺覺非 꿈과 깸이 그른 줄 깨친다면
경유하사竟有何事 필경에 무슨 일이 있겠는가.
언흘안좌이화言訖安坐而化 말을 마치자 편안히 앉아 化去했으니
나이는 84이며 승랍僧臘은 65. 칙시敕諡가 見性大師며
法嗣로는 암두전활巖頭全豁ㆍ설봉의존雪峰義存
/宋高僧傳12 傳燈錄15 祖堂集5 五燈會元7
►탁발托鉢
‘탁托’은 손바닥을 써서 혹은 반자盤子를 받듦이니 손으로 발우鉢盂를 받듦.
►하당下堂=하법당下法堂·과당過堂·지법당至法堂
방에서 나오다. 집에서 나오다.
►설봉雪峯 설봉의존雪峯義存(822-908)
당대唐代의 승려며 천주泉州(福建) 남안南安 사람. 속성俗姓은 증曾이며 호가 설봉.
12살에 아버지를 따라 포전蒲田 옥윤사玉潤寺에 놀러갔다가 경현율사慶玄律師를 배알拜謁하고
스승으로 삼았으며 머물며 동시童侍가 되었는데 17살에 낙발落髮하였고
부용산芙蓉山의 항조대사恆照大師를 알현謁見했다.
당唐 선종宣宗이 불교를 중흥한 후 吳·楚·梁·宋·燕·秦을 지나며 노닐다가
유주幽州 보찰사寶刹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후에 武陵 德山(湖南 常德)에 이르러 선감宣鑒을 參謁하고 그 法系를 이었음.
당唐 의종懿宗 함통咸通 6年(865) 부용산芙蓉山에 돌아왔고
11年에 복주福州 상골산象骨山에 올라 암자庵子를 세우고 흥법興法했다.
그 산이 민월閩越의 勝景이 되며 겨울 전에 먼저 눈 오고 盛夏에도 오히려 서늘한지라
고로 설봉雪峰의 명칭이 있으며 스님도 또한 이로써 호를 삼았다.
절이 처음 이루어지자 치소緇素(僧俗)가 운집하여 대중이 매양每樣 천오백 인을 넘었다.
희종僖宗이 진각대사眞覺大師란 호와 아울러 자가사紫袈裟 한 벌을 주었다.
大順(890-891)년 중에 丹丘·四明의 땅에 노닐었으며 아울러 軍旅(軍隊)의 가운데서
선법宣法했고 후에 민閩으로 돌아와 민왕閩王의 예우禮遇를 갖춰 받았다.
개평開平 2年 5월에 입적入寂했으니 나이는 87.
그의 법사法嗣에 운문문언雲門文偃·현사사비玄沙師備 등이 있다.
문언文偃은 곧 운문종雲門宗의 개조開祖며 사비하師備下에 계침桂琛이 있으며
침하琛下에 법안문익法眼文益이 있으니 곧 법안종法眼宗의 개조開祖이다.
/宋高僧傳12 傳燈錄16 五燈會元7
►자者=차此, 저這, 이, 이것, 이 사람.
►노한老漢 선사禪師에 대한 칭호稱呼. 혹은 선사禪師의 자칭自稱.
►종鐘
사원寺院에서 시각時刻을 알리거나 대중을 집합集合하기 위해 치고 때리는 바의 법기法器.
印度에 있어선 곧 木製의 건추揵椎며 中國에 있어선 곧 동종銅鐘으로 대체代替함.
종에는 범종梵鐘과 환종喚鐘의 두 종류가 있다.
(一) 범종梵鐘 명칭이 대종大鐘ㆍ당종撞鐘ㆍ홍종洪鐘ㆍ경종鯨鐘 등.
선림禪林 중에서 그것으로 초야初夜의 좌선坐禪하는 시간時間을 고지告知하는지라
고로 명칭이 정종定鐘이며 다시 그것으로 대중에게 고해 승당僧堂에 들어가는지라
고로 또 명칭이 입당종入堂鐘이다.
또 범종의 소리를 혹 일컬어 경음鯨音이라 한다.
(二) 환종喚鐘 명칭이 반종半鐘ㆍ소종小鐘.
용도用途가 법회 등 行事의 開始 등을 통고通告하기 때문에
고로 또 명칭이 행사종行事鐘이다/行事鈔下 百丈淸規八法器章 象器箋唄器類
►고鼓 치고 때리는 악기樂器의 하나임.
金玉木石 등으로 제작製作하는 바로 말미암아 각종 形狀 및 大小가 있다.
寺院 중에서 상용하는 法器가 되며 그 종류에
갈고羯鼓·어고魚鼓·운고雲鼓·요고搖鼓·금고金鼓·석고石鼓·현고懸鼓 등이 있다.
그 용도用途에 따라 가히 재고齋鼓·욕고浴鼓·송경誦經·범패梵唄 등으로 나눔.
/百丈淸規下法器章 象器箋唄器類
►방장方丈
사방四方이 一丈인 室이니 방장실方丈室·장실丈室이라 한다.
선사禪寺 중 주지住持의 거실居室이며 혹은 객전客殿.
명칭은 함장函丈ㆍ정당正堂ㆍ당두堂頭.
인도印度의 승방僧房은 다분히 方一丈(四方一丈)으로써 제정制定되었으며
維摩의 禪室도 또한 이 제정에 의거하였으므로 드디어 方一丈의 설이 있다.
전轉하여 住持의 居室을 가리키며 여금은 轉하여 禪林의 住持나
혹은 師에 대한 존칭이 되나니 通稱이 方丈이며 혹은 方丈和尙이다
/維摩經文疏22 法苑珠林29 大唐西域求高僧傳上慧輪傳
<조정사원祖庭事苑>6 방장方丈.
如今에 禪林(禪寺. 禪院)의 정침正寢(住持의 居室)을 方丈으로 삼음은
大蓋 비야리성毗耶離城의 유마維摩의 실室에서 궤칙軌則을 취했음.
一丈(四方一丈)의 室內에 능히 3萬2千의 師子의 座를 容受했음은
不可思議의 묘사妙事가 있는 연고이다.
唐의 왕현책王玄策이 서역西域에 사신使臣이 되어 그 居處(유마힐의 거실)를 지나다가
수판手版으로 종횡縱橫을 재었는데 십홀十笏을 얻었으므로 인하여 이름으로 삼았다.
►거사擧似=설사說似, 거향擧向, 거념擧拈
‘似’=여與(~주다)ㆍ향向. 동사의 접미사로서 뜻을 더해주는 어조사.
들어 보임(擧示)이니 언구를 거설擧說하여 모인某人에게 알림.
있었던 일을 그대로 이야기 해주다.
►암두巖頭 암두전활巖頭全豁(전활全奯 828-887)
당대唐代의 승려며 천주泉州(지福建에 속함)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가柯.
영천사靈泉寺에서 출가하였고 長安의 西明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설봉의존雪峰義存(德山宣鑑의 法嗣)ㆍ흠산문수欽山文邃(洞山良价의 法嗣)와
함께 수행하고 서로 권면勸勉했다.
함께 앙산혜적仰山慧寂(潙山靈祐의 法嗣)을 참방參訪했고
또 덕산선감德山宣鑑에게 참학參學해 그 법사法嗣를 이었다.
출세하여 악주鄂州(湖北 武昌)의 암두원巖頭院에 거주하면서
宗風을 크게 떨친지라 고로 또 칭호가 암두전활巖頭全豁이다.
唐 광계光啓 3年 4월 8일에 도적이 亂入하자 칼날에 임해 그대로 泰然自若했으며
大喝一聲하고 마쳤으니 나이는 60이며 시호諡號는 청엄대사淸儼大師이다
/宋高僧傳23 祖堂集7 景德傳燈錄16
►대소大小
여기에선 이러히 크다(偌大)·이렇게 크다(這麽大)·저렇게 크다(那麽大)를 가리킴.
㊀大와 소小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34 용문불안龍門佛眼.
문問 허공환유변이야무虗空還有變異也無
묻되 허공이 도리어 변이變異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대운代云 청황적백靑黃赤白 장단대소長短大小
대운代云 청황적백靑黃赤白이며 장단대소長短大小이다.
㊁大小大와 같음.
곧 이러히 크다(偌大)·이렇게 크다(這麽大)·저렇게 크다(那麽大).
<벽암록碧巖錄> 不二鈔2
릉가(축선)운楞伽(竺仙)云 북방인욕의인지장단北方人欲議人之長短
릉가楞伽(竺仙)가 이르되 북방인이 사람의 長短을 의논하려 하면
사단선언대소이자詞端先言大小二字 사단詞端에 먼저 大小 2자를 말한다.
어하필유기과지어야於下必有譏誇之語也 그 아래엔 반드시 기과譏誇의 말이 있다.
혹언대소대저인或言大小大底人 혹 말하되 大小大의 사람이라 하면
의위여시대대저인意謂汝是大大底人 뜻에 이르기를 너는 이 大大한 사람이거늘
각작저반쇄세소소저무기량사야卻作這般瑣細小小底無伎倆事也
도리어 이러한 쇄세소소瑣細小小하여 기량伎倆이 없는 일을 짓는가 함이다.
<벽암록碧巖錄> 제1칙
종전초운種電鈔云 대소자大小者 종전초種電鈔에 이르되 大小란 것은
북방매인기두지어北方罵人起頭之語 북방에서 사람을 욕하는 기두起頭의 말이다.
억시현성명료적이무초절기抑示現成明了的而無勦絶機
또한 現成하여 明了하면서도 초절기勦絶機가 없음을 보임이다.
<원오어록圓悟語錄>11
대소세존룡두사미大小世尊龍頭蛇尾
대소 세존世尊이 용두사미龍頭蛇尾로다.
㊂구말句末에 두면서 의문을 표시함. 다多·대大에 상당相當.
<오등회원五燈會元>7 현사사비玄沙師備.
문問 여하시무봉탑如何是無縫塔 묻되 무엇이 이 무봉탑無縫塔입니까?
사왈師曰 저일봉대소這一縫大小 스님이 가로되 이 일봉一縫은 얼마(大小)인가.
►말후구末後句=末後一句
철저徹底히 대오大悟한 극처極處라서 말할 바의 지극한 말에
달도到達하여 다시는 능히 초월할 기타의 어구語句가 없는 것.
‘末後’ 최후, 마지막. 마지막에 하는 한마디 말.
①마지막 결론의 한마디 ②죽음에 이르러 남기는 말.
►밀계密啓 가만히 알려주다. 남몰래 일깨워주다. 조용히 가르쳐주다.
►휴거休去 쉬다. 그만두다.
‘去’ 구절의 끝에 붙어서 진술한 사건, 사태의 실현이나 완료를 나타내는 어기조사.
►승좌陞座=승좌昇座ㆍ승좌升座.
고좌高座에 오름의 뜻. 사가師家가 고좌에 올라 설법함을 가리킴.
고제古制에 의거하자면 승좌陞座와 상당上堂이 같은 뜻이었으나
후세에 이르러 이에 구별하는 바가 있음/상기전수설류象器箋垂說類
►심상尋常 평시平時. 平常. 日常
‘尋’ 상常. 아俄(잠깐)니 불구不久에 상당相當함.
►승당僧堂
선림禪林 중에 僧衆이 日常에 修禪하고 기와起臥하는 堂舍를 가리킴.
명칭이 운당雲堂·좌당坐堂·선불당選佛堂·성승당聖僧堂·고목당枯木堂이며 선종 七堂伽藍의 하나.
곧 무릇 선찰禪刹에서 괘탑掛搭하는 자는 모두 계랍戒臘에 의해 위차位次를 안배安排하며
무릇 좌선坐禪·기와起臥·음식飮食을 다 이 승당僧堂에서 행함.
이것은 고대의 승방僧房과 식당食堂의 공용功用을 겸해 있다.
<대지도론大智度論>2를 안험按驗컨대 원시불교原始佛敎의 승단僧團 중에서 승당僧堂은
승방僧房과 정사精舍를 가리키는지라 고로 성질이 현금現今의 승당과 상이相異함.
지나支那는 唐宋 이강以降(以下)으로부터 승당의 중앙에 성승상聖僧像을 안치하고
중승衆僧이 이를 위요圍繞하며 주위周圍에 좌상坐床을 설치하여
기와起臥 및 일야日夜의 좌선변도坐禪辨道의 도량道場으로 삼았다.
►부장拊掌 ‘부拊’ 두드림(拍). 가볍게 침(輕擊).
<옥편玉篇> ‘부拊’ 두드림(拍)이다.
►차희且喜 무엇보다 기쁜 일은. 매우 다행스럽게도. (부정문)전혀 ~아니다
►몽견夢見 꿈에 보다. 꿈꾸다.
►재在 구미조사句尾助詞. 실의實義가 없음.
►검점撿點 점검하다. 자세히 살펴보다.
►일붕一棚 ‘붕棚’ 양사量詞.
예컨대(如) 몇 붕棚을 경과하며 생각했다. 몇 붕棚의 오리를 길렀다.
►괴뢰傀儡 굴차뢰窟此磊. 꼭두각시. 허수아비. 인형극의 인형
<조정사원祖庭事苑>6 괴뢰傀儡
우인偶人(허수아비 우偶)을 만들어 희희戲喜하며 춤을 추려하는 것이며
본래 상가喪家의 오락娛樂이다.
한말漢末에 비로소 희회喜會에 이를 썼으며 제齊(北齊)의 후주後主인
고위高緯(在位 565-576)가 더욱 좋아했던 것이며 高麗國에도 또한 이것이 있었다.
►최초구最初句 당하當下에 계입契入해 철저히 성오省悟한 第一句話임.
안험按驗하니 선가禪家에 말후구末後句란 말이 많이 있다.
최초구最初句와 말후구末後句는 설법이 같지 않으나 실로는 곧 한 이치理致라서
고르게 성오省悟에 달도達到한 관건關鍵의 一句가 된다.
때문에 이 一句는 본래 통상通常의 언설이 아님이 되어
이것은 언어를 초월하고 분별을 초월한 진여실상眞如實相임.
또 최초일구最初一句ㆍ말상일구末上一句 등으로 쓴다.
●말후구末後句
<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
회득여시불회금會得如屎不會金 알아 얻음은 똥과 같고 알지 못함은 금이건만
시인도자비상량時人徒自費商量 시인時人이 한갓 스스로 상량商量을 허비하는구나.
몽교각비각역비夢覺覺非覺亦非 꿈과 깸(覺)이 그른 줄 깨닫더라도 깨달은 것 역시 그른지라
종불교인회통방終不敎人會通方 마침내 사람으로 하여금 통방通方을 알게 하지 못하는 것인가.
어느 날 밥이 늦자 덕산德山(龍潭崇信의 法嗣 慧能下五世)이 발우를 받들고 법당에 내려갔다.
설봉雪峯(德山의 法嗣)이 반건飯巾을 말리던 차에 덕산을 보고는 이에 가로되
종도 울리지 않았고 북도 치지 않았거늘 노화상老和尙이 어느 곳으로 향해 가십니까?
덕산이 방장으로 돌아갔는데
스님(巖頭 德山의 法嗣)이 당중堂中에서 듣고는 손뼉을 치며 가로되
大小 덕산이 오히려 말후구末後句를 알지 못했도다.
덕산이 거화擧話를 듣고는 시자를 시켜 스님을 부르러 가게 하였다.
묻되 네가 노승을 긍정치 않느냐?
스님이 그 뜻을 몰래 알렸는데 덕산이
다음 날 상당하여 설화說話함이 심상尋常과 달랐다.
스님이 승당僧堂에 이르러 손뼉을 치며 크게 웃고 이르되
당두노한堂頭老漢(堂頭는 方丈의 異名. 주지의 居室. 주지를 가리킴)이
말후구를 알았음을 기뻐하노라.
他後론 천하인이 어찌하지 못하리라.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기는 하지만 또한 단지 3년을 얻을 것이다.
3년 후에 과연 천화遷化(교화를 옮김. 죽음)했다
/傳燈錄 卷17 巖頭全豁章
(1~2행)
‘회會’=해解. ‘도徒’=空. 공연. ‘허비할 비費’
(3행)
스님(德山)이 다시 대중에게 고하여 가로되
문공추향捫空追響 허공을 더듬고 메아리를 쫓아감은
로여심신勞汝心神 너희의 心神을 노고롭게 하나니
몽각각비夢覺覺非 꿈과 깸이 그른 줄 깨달으면
경유하사竟有何事 필경에 무슨 일이 있으랴
/五燈全書 卷13 德山章
<암두전활선사岩頭全奯禪師>
호불무광시양개好佛無光是良价 호불好佛이면서 빛이 없음이 이 양개良价라 하고
불긍덕산사덕산不肯德山嗣德山 덕산德山을 긍정치 않으면서도 덕산을 이었도다
이말후구의살인以末後句疑殺人 말후구末後句로써 사람을 너무 의심케 했나니
임행일성우금재臨行一聲于今在 임행臨行의 한 소리가 우금于今에 있도다.
암두岩頭는 덕산선감德山宣鑑의 법사法嗣. 활奯을 활豁로 표기하기도 한다.
(1~2행)
나산羅山(道閑이니 岩頭의 法嗣)이 예배하고 물어 가로되
화상께서 어찌 이 30년 전에 동산洞山(良价)에 계시면서 동산을 긍정치 않았음이 아니겠습니까?
스님(岩頭)이 이르되 그러하니라.
또 가로되 화상께서 어찌 이 덕산德山을 이었지만(嗣)
또 덕산을 긍정치 않았음이 아니겠습니까?
스님이 가로되 그러하니라.
나산이 가로되 덕산을 긍정치 않음은 곧 묻지 않습니다.
지여祇如 동산이 무슨 휴궐虧闕이 있습니까?
스님이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동산은 호불好佛이지만 단지 이 무광無光이니라
/五燈會元 卷7 岩頭全奯章
무진상좌無軫上座가 묻되
지여祇如 암두가 말하되
동산이 호불好佛이지만 단지 이 무광無光이라 하셨거니와 미심未審하외다
동산이 무슨 휴궐虧闕이 있어 곧 무광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스님(羅山)이 무진을 불렀다.
무진이 응낙應諾하자
스님이 가로되 작연灼然히 호개불好箇佛(箇는 助字)이지만
단지 이 무광無光이로구나/五燈會元 卷7 羅山道閑章.
(3행)
어느 날 두 중이 있어 왔다.
스님(雪峯義存)이 손으로써 암자의 문을 밀치고 몸을 놓아 내면서(放身出) 가로되
이 뭣고(是甚麽).
중도 또한 가로되 이 뭣고.
스님이 머리를 숙이고 암자로 돌아갔다.
중이 고별하고 떠나려 하자 스님이 묻되 어느 곳으로 가려는가?
가로되 호남湖南입니다.
스님이 가로되 나에게 저 同行(同參)이 있는데 암두岩頭에 거처하느니라.
너에게 一書를 부쳐 떠나게 하리라.
글에 가로되 모某(雪峯)가 글을 師兄에게 올립니다.
모某가 한 번 오산鼇山에서 成道한 후로부터 卽今에 이르도록 배불러 주리지 않았습니다.
동참모同參某가 글을 올립니다.
중이 암두에 이르자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설봉에서 왔는데 글이 있어 화상에게 전달합니다.
암두가 접수하고는 이에 중에게 묻되 달리 무슨 언구가 있었는가?
중이 앞의 화두를 들었다.
암두가 가로되 그가 무엇이라고 말하던가?
가로되 그는 말이 없이 머리를 숙이고 암자로 돌아갔습니다.
암두가 가로되 희噫. 한숨 쉴 희. 슬플 희)라,
내가 당초에 그를 향해 말후구를 말하지 않은 게 후회스럽구나.
만약 그를 향해 말했더라면 천하인이 설로雪老(雪峯老人)를 어찌하지 못함을 어찌하리오.
중이 하말夏末에 이르러 전의 화두를 청익請益했다.
암두가 가로되 왜 일찍 묻지 않았는가?
가로되 감히 용이容易치 않았습니다.
암두가 가로되
수여아동조생雖與我同條生 설봉이 비록 나와 더불어 同條生이지만
불여아동조사不與我同條死 나와 더불어 同條死가 아니니라.
말후구를 알고자 한다면 단지 이것이 이것이니라.
/五燈會元 卷7 雪峯章
(4행)
어느 날 도적이 많이 이르러 공궤供饋(먹일 궤饋)가
없음을 책망責望하고는 드디어 칼을 꽂았다.
스님(岩頭)이 신색神色이 자약自若했으며 크게 한 소리 부르짖으며 마쳤는데
소리가 수십리數十里에 들렸다/五燈會元 卷7 岩頭章
‘末後句’
①<無門關>第13則
식득최초구識得最初句 최초구를 알아 얻으면
편회말후구便會末後句 곧 말후구末後句를 아나니
말후여최초末後與最初 말후와 최초여
불시자일구不是者一句 이는 이 1구가 아니다.
②제종濟宗 13種 句의 하나.
<오가종지찬요五家宗旨纂要>上 제종濟宗 13種句 5. 말후구末後句
파단요진把斷要津 불통범성不通凡聖 요진要津을 잡아끊어 범성이 통하지 않는다.
‘末後一句’
위도달철저대오지극처소언지지극어謂到達徹底大悟之極處所言之至極語
이르자면 철저히 대오한 극처(極處)에 이르러 말하는 바의 지극한 말이니
갱무기타어구능초월자更無其他語句能超越者
다시 기타의 어구가 능히 초월함이 없는 것.
<祖堂集>7 암두巖頭
아당초회불향이도말후일구我當初悔不向伊道末後一句
내가 당초에 그를 향해 末後一句를 말하지 않은 게 후회된다.
아약향타도말후일구我若向他道末後一句 내가 만약 그를 향해 말후일구를 말했다면
천하인불내하설봉天下人不奈何雪峰 천하인이 설봉을 어찌하지 못했으리라.
<五燈會元>20 황룡법충黃龍法忠
아유말후일구我有末後一句 대분부여待分付汝
나에게 말후일구가 있으니 너에게 분부함을 기다려라.
①<祖堂集>7권 岩頭和尙
②<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16권 악주암두전활선사鄂州岩頭全奯禪師
③<건중정국속등록/속등록><연등회요聯燈會要>의 내용은 <경덕전등록/전등록>과 거의 같다.
<가태보등록嘉泰普燈錄>에는 <祖堂集><전등록>의 이야기가 인용되어 있다.
④<벽암록> 10칙 頌과 着語에 '덕산탁발德山托鉢'에 관한 논점을 서술했으니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