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강스님 화두 드는 법
전강스님 화두 드는 법
►화두 드는 법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 진로를 멀리 벗어나는 것이 예사 일이 아니니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 승두를 꽉 잡고 한바탕 지을지어다.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 한 차례 추위가 뼈 속에 사무치지 않으면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 어찌 매화가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으리오.
어떤 스님이 조주趙州에게 묻되 “개가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조주 스님이 답하시되 “무無” 하셨으니 이것이 ‘무자無字’ 화두의 시초인 것이다.
종문중宗門中에서 이 ‘무자’를 제일 많이 칭찬을 해놓았으니 ‘무자’ 화두에 대해서 말씀해보면
부처님께서는 일체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하셨는데 조주 스님만은 왜 無라고 하셨겠는가?
이 ‘무자’에 대해서 있다 없다,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참으로 없다,
허무虛無다,
이와 같이 이리저리 두 갈래로 분별하지 말고 능소能所 끊어지고 상대도 없이
다만 홑으로 “어째서 ‘무無’ 라고 했는고?” 하고만 생각해라.
여기에는 공空도 또한 거둘 수 없으며 유상有相·무상無相) 붙일 것도 없다.
필경 알 수 없는 의심 하나만이 남으니 이것만 추켜들어라.
“조주 스님은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만약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도리를 입 껍데기로만 따져서 알았다고 하면
他日에 염라대왕의 철방을 맞을 것이다.
한번 조주 스님의 “무無” 라고 하신 뜻을 바로 보아야 생사해탈을 하는 법이다.
삼세제불의 골수요, 역대조사의 안목이다.
“무無” 라고 말할 때 이미 그 의지가 확 드러나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영특한 사람이면 당장 언하에 대오할 것이다.
이 ‘무자’ 화두에 대해서 별별 해석이 다 나와 있다.
혹자는 일체 명근을 끊어버리는 칼이다,
또는 일체를 열어주는 자물쇠통이다,
일체를 쓸어버리는 쇠 빗자루다,
나귀를 매어두는 말뚝이다 등등의 한량없는 말들이 나와 있다.
그렇다.
나는 여기에 삼십 방을 주리라.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 자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 지니라.
또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如何是祖師西來意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 입니까?”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 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화두를 지어감에 망념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중생살이 전체가 망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화두가 잘 된다, 잘 안 된다, 망상이 생긴다,
마음이 산란하다 등의 생각이 있으면 화두의 순일지묘純一之妙가 없게 되는 것이니
일어나는 망념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상관도 말며 두려워도 말 것이다.
그대로 내버려두어라.
그리고는 그저 알 수 없는 의심 하나만 간절히 간절히 일으킬 것이며 없어지거든
또 일으키고 부지런히 거각하여 끊어지지 않게만 자꾸 이어주어라.
이렇게 오래오래 물러나지만 않고 해나간다면 견성 못할까 걱정할 것도 없는 것이다.
고인의 말씀에
약능신심불퇴若能信心不退 “만약 능히 신심만 물러나지 않는다면
수불견성성불誰不見性成佛 누가 견성성불을 못하리오.”라고 하셨느니라.
또한 공부를 지어감에 속효심速效心을 내기가 쉬우나 이는 절대 금물禁物이다.
이것으로 인해 마음이 급해지고 생각이 쉬어지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되고 보면 화두는 점점 멀어지고 자리가 잡혀지지 않게 된다.
또 공부 지음에 깨닫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두지 말아야 한다.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망념은 할 수 없거니와
‘크게 깨달아야겠다.’라는 망념을 고의로 일으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
‘좌선함에 눈을 감고하는 수가 많은데 눈을 감고할진댄
혼침昏沈과 무기無記에 떨어지기가 일쑤며
또한 흑산하귀굴黑山下鬼窟에 떨어진다.’고 고인이 밝게 말씀하셨으니
두 눈을 평상으로 뜨고 허리는 쭉 펴고 맹렬하면서도 간절한 마음으로
알 수 없는 의심 하나만 깨끗 깨끗이 자꾸 일으켜 매하지 않게 할 따름이다.
흔히들 화두를 머리에 두고 참구하기가 쉽다.
여기에 속효심이 가해지게 되면 상기上氣가 일어나게 된다.
모든 열기가 전부 머리로 치밀게 되어 머리 아픈 병이 생기게 된다.
이 상기병이 생기면 공부하기가 지극히 힘이 든다.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은 걷잡을 수 없이 쇠약해진다.
내가 소시에 이 상기병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헤아릴 수 없는 해를 받아 왔으나
결국은 자치지방自治之方으로 완치시켰다.
그 자치지방이란 다른 것이 아니고 호흡법이다.
이 호흡법은 참선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여기에 간곡히 말을 하는 바이다.
정좌正坐하여 숨을 천천히 내어 쉬되 단전 부위를 허리 쪽으로 살며시 당기면서 천천히 내쉰다.
그 다음 들어오는 숨은 팔부쯤 들어 마신다.
그때 자기 신체기량身體氣量에 따라 잠깐 멈추되 고통스럽지 않을 만큼 하면 족하다.
이때 화두는 단전(배꼽 밑 일촌 삼푼)에 두고 의심을 잘 관觀해야 한다.
그리고 이 호흡법은 숨을 내쉴 때 묘가 있는 것이니 코에 부드러운 털을 대어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쉬되 이때도 역시 화두를 잘 관해야 한다.
들어가고 나오는 숨에는 상관 말고 오직 단전에 둔 의심만을 묘하게 관해야 한다.
처음에는 잘 되질 않으나 언제든지 생각이 나거든 서너 번씩 하다가 차츰 길들여 가면
머리가 청쾌해지고 정신이 맑아지며 눈이 깨끗해짐을 느낄 것이다.
나중에 화두가 순일해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호흡이 자연히 잘 되는 것이다.
일파유조수부득一把柳條收不得 한웅큼 버들가지를 거두어 잡지 못하여
화풍탑재옥난간和風搭在玉欄干 바람과 함께 옥난간에 걸어 두노라.
불소不少한 허물을 옥난간에 걸어 둡니다.
►이러한 때는 어떻습니까?
참선수투조사관參禪須透祖師關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관을 뚫어야 하고
묘오요궁심로절妙悟要窮心路絶 묘오는 반드시 마음길이 끊어져야 하느니라.
조사관이란 필경 뚫어야만 하는 것이다.
깨달아 놓고 보면 없다면 없는 그놈이 그대로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대로 없어지고 말면 될 것인가.
없는 것에 갖추었으면 있는 것에도 그대로 갖추어 버리는 것이다.
말로 표현하자니 이렇게 밖에는 할 수가 없다.
만공 스님 당시 각 회상에서 논란된 바 있는 ‘소당파燒堂婆’라고 하는 공안이 있는데
어떤 암주가 공부를 하는데 시주 노파 한 분이 그 스님을 20년간 양식을 정성껏 대어드렸다.
20년이 다된 어느 날 그 노파는 암주 스님의 공부가 얼마나 되었는지
시험해 보려고 자기의 예쁜 딸을 보내면서 말하기를
“네가 가서 그 스님을 꼭 껴안고
<스님! 이러한 때 어떻습니까?>라고 물어보아라.” 하였다.
딸은 어머니가 시킨 대로 하였더니 그 암주가 답하기를
고목의한암枯木倚寒岩 삼동무난기三冬無暖氣
“고목이 찬 바위에 의지하니 삼동에 따뜻한 기운이 없다.”라고 하였다.
딸은 그대로 어머니께 전했다.
노파는 그 말을 듣고는 바로 암주의 패궐敗闕을 알아차리고 토굴로 가서
“내가 저런 속한 이한테 20년간 양식을 대었구나!”
하고는 암주를 쫓아내고 암자를 태워버렸다.
어째서 그 노파는 그렇게 청정하게 지내온 암주를 속한이라고 했을까?
암주는 어째서 속한 이를 면치 못하고 쫓겨나야만 했겠는가,
이 무슨 연고인가?
이것이 공안인 것이다.
여기에 대한 답을 그 당시 큰스님들께서 모두 한마디씩 하셨지만
일일이 다 적을 수는 없고 몇 개만 적어보면
“원앙이 녹수綠水를 만났다.”
“직접 경계를 쓰겠다.”
“배필이 되어 살겠다.”
“할을 하겠다.”
“방을 쓰겠다.”
등의 답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 공안에는 ‘할’도 ‘방’도 소용없는 것이다.
‘방’ 내릴 때 벌써 속인이 되어버린 것이고 ‘할喝’ 할 때 계행은 파한 것이다.
위에 적은 어떤 답도 속한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대승계는 부처님께서도 범하지 않고서는 설하지 못하는 법이다.
이 공안이 대승계를 판단하는 공안인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답을 조금이라도 지체하며 찾다가는 벌써 파계승이 되어 버리는 것이니
함부로 여기에 대해서 입을 열 수가 있을까?
이러한 공안에 눈이 어두워 가지고서야
어찌 중생에게 대승계를 함부로 설하겠는가?
큰 스님네께서 이르신 답이 많이 있었지만 나로서는 “아닙니다.”라고만 하여 왔다.
여러 번 답을 이르라는 요청도 받았지만 답할 것이 따로 있지
이와 같은 공안에 함부로 답을 할 것인가.
미래 학자들을 살리기 위해서 오늘날까지도 끝내 답을 이르지 않았다.
금봉 스님께서는 돌아가실 때까지 한번 일러 달라고 말씀하셨지만 일러 드리지 않았다.
지금은 금봉 스님마저 돌아가셨으니 누구에게 일러 볼 것인가,
죽어 황천에 가서 염라대왕에게나 일러볼까?
공부하는 학자들이여! 확연廓然한 뒤에 한 번 찾아오면 그때는 산승이 더불어 탁마하리라.
만공 스님 회상에 있다가 혜월 스님 회상으로 간 정운암鄭雲庵 스님으로부터
삼세심三世心 도불가득都不可得 점하심點何心
삼세 심을 다 얻을 수가 없는데 어느 마음에다 점치겠습니까?
라는 공안을 만공 스님 회상으로 물어왔던 것이다.
이 공안은 금강경 대강사로 큰소리치던 주금강(덕산스님)이
<경에는 삼아승지겁三阿僧祗劫을 닦아서 성불한다고 하였는데
남방에서 ‘바로 사람 마음을 가리켜 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하게 한다’하니
이런 외도놈들을 혼내주리라.>하고 남방으로 가다가
마침 시장기가 들어 점심을 먹으러 어떤 주막에 들어갔다.
주인 노파에게 점심을 부탁하니 노파가 주금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스님, 짊어진 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니
주금강은 대답하기를 “금강경소초金剛經疏抄입니다.” 하니
“아! 그렇습니까? 그러면 금강경에
<과거심도 얻을 수 없고 현재심도 얻을 수 없고 미래심도 얻을 수가 없다>고 했는데
점심을 달라 하시니 스님은 어느 마음에 점을 치실려고 합니까?
이것을 바로 일러야 점심을 드리겠습니다.” 하니
꽉 막혀 한마디 말도 못하고 점심도 못 얻어먹고 그냥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노파의 지시로 용담 스님을 친견하고 방장에 밤늦도록 있다가 나오는데 밖이 깜깜하였다.
용담 스님이 촛불을 켜서 주금강에게 주자 주금강이 받으려고 할 때 훅 꺼버렸다.
순간 주금강은 활연대오 하였다.
그런데 이 공안에 대해서 만공 큰스님께서 답을 하시되
“과거 위음왕불威音王佛 이전에 점심을 먹어 마쳤느니라.”
하시고는 엽서에 써서 보낼려고 하셨다.
그때 보월 스님께서 그 답을 보시고는
“큰스님 죄송합니다만……”
하며 성냥불로 태워버리고 그냥 나가버리셨다.
만공 스님께서는 그 자리에 정좌하신 채 꼼짝도 하시지 않고 일주일 간 용맹정진 하셨다.
칠일 만에 큰 소리로 “보월아! 내가 자네한테 십년 양식을 받았네.”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두 스님간에 밀계密契가 있은 후 보월 스님께서 이 답을 쓰시되
배호서향영남背湖西向嶺南 호서를 등지고 영남으로 향하는 것은
심중부절여의心中不絶餘疑 심중에 남은 의심을 끊지 못하더니
여금부절여의如今不絶餘疑 여금에도 남은 의심을 끊지 못하였구나.
견후소각見後燒却 본 뒤에 소각하고 다시
갱절여의更絶餘疑 남은 의심을 끊을 지어다.
이렇게 쓰셨는데 만공 스님께서 이 답을 보시고는 점두하시었다.
►바른 스승을 찾아라.
인성견오因星見悟 별을 인해서 깨달음을 얻음이라
오파비성悟罷非星 깨달아 마침에 별이 아니로다.
불축어물不逐於物 물건을 쫓지 아니함이요
불시무정不是無情 이 무정이 아니니라.
지금 내가 이렇게 주장자를 들어 보였는데
대중은 주장자를 들기 이전 산승의 마음을 취하였다면 도인일 것이요,
만약 이 주장자를 보고만 있었다면 경계를 취하는 범부일 것이다.
그러나 누가 이 주장자 든 도리를 똑바로 보겠는가?
(주장자로 법상을 한 번 치시다.)
삼년 전 내가 범어사에 조실로 있을 때였다.
그때 일본 고베(神戶市 長田區 蓮官通六丁目三)에 있는 평화사
주지 성지신成智信 스님으로부터 상량기념으로 범어사에 불법대의를 물어왔다.
내가 답하여 보냈는데 이 법어가 고베의 평화사 법당에 족자로 걸려 있다고 한다.
참선 대중들에게 참고가 될까하여 한번 소개한다.
<기평화사상량법어寄平和寺上樑法語>
황화취죽선명묘법黃花翠竹宣明妙法 노랑꽃 푸른 대도 묘법을 밝히고
풍가월저현로진심風柯月渚顯露眞心 바람가지 물 달도 진심을 나타냄이로다.
앵음연어상담실상鶯吟燕語常談實相 꾀꼬리와 제비도 항상 실상을 말하고
두두비로물물화장頭頭毘盧物物華藏 낱낱이 법신이요 물물이 화장세계로다.
돌咄 회마會魔 애달프다. 알겠는가?
회수간산취류하回首看山醉流霞 머리를 돌이켜 산을 바라보며 흐르는 안개에 취하고
의수침면일이사倚樹沈眠日已斜 나무를 의지하여 졸고 나니 날은 이미 저물었도다.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법인 부처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등등상속燈燈相續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만일 부처님의 정법을 조금이라도 잘못 전한다면 후세에 끼치는 허물이 많을 것이다.
깨닫지 못한 분상에는 영산회상靈山會上의 拈花示衆과 가섭미소迦葉微笑도 다 망설이다.
대중들이여!
위음왕불威音王佛 이후에는 스승 없이 스스로 깨친 자는 모두 천연외도天然外道라 했으니
법을 받은 명안종사明眼宗師에게 인가도 받지 않고 자기가 제일이라 하며
묘한 언구문자선言句文字禪을 활구活句라 하고 학자들을 속이고 있다면
이러한 외도들은 부처님도 구하지 못하리라.
금일 최상승 활구참선법을 닦는 대중들은 명심할지어다.
그러면 어떤 것이 활구참선법인가?
모름지기 조사관祖師關을 뚫어야 하나니 오직 화두만 잡드리 하되
이치 길도 없고 말길도 없고 마음 길도 없나니
이렇게 용맹정진 해나가다가 직하에 대오하는 것이다.
즉 한번 듣고 언하에 문득 깨달아야 곧 너의 본성을 보느니라.
“일러라.
너의 본래면목을 일러라.
왜 너의 본래면목을 모르는가.
어서 일러라.”
이렇게 다그치고 입만 열면 “어느 곳을 향하여 입을 여는가?” 삼십 방을 막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그 주장자를 척 빼앗아 들고 “이 방을 한번 이르시오.”
“오냐, 그 방을 맞고 나갈 테니 너도 또 일러라.”
법이란 이런 것이니 여기서 똑바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즉 격외장부格外丈夫인데 무슨 걸림이 있겠는가?
내가 나를 깨닫는 누진통漏盡通은 본각을 매하는 법이 없느니라.
오직 내가 나를 자각하는 것이 부처님의 정법인 것이다.
이렇게 대평등大平等 대원융大圓融 이사무애 理事無碍
사사무애事事無碍의 원각대지를 증득하고 이 삼계화택에서
색상경계에 집착하는 중생들을 모두 제도하여야 하느니라.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 마음은 일만 경계를 따라 구르고
전처실능유轉處實能幽 구르는 곳마다 실로 능히 그윽하다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 흐름을 따라 성품을 인득하면
무희역무우無喜亦無憂 기쁨도 없고 또한 근심도 없느니라.
이 게송은 22조 마나라 존자가
23조 학륵나 존자에게 설하여 5백 마리의 학을 제도케 하신 게송이다.
삼라만상이 있는 그대로 법신이요 화장찰해華藏刹海다.
깨친 분상에는 무슨 걸림이 있으리요,
오직 인연 있는 중생을 위하여 생사해탈의 정법을 전할뿐이로다.
/임기영불교연구소/2020-08-25 07:45: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