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寒山詩

寒山詩 40

空空 2024. 7. 11. 06:04

寒山詩 40

생전태우치生前太愚癡 나기 전에는 크게 어리석어

불위금일오不爲今日悟 오늘의 깨달음도 행하지 못했다

금일여허빈今日如許貧 오늘날 이렇게 빈천한 것은

총시전생작總是前生作 그 모두가 전생에 내가 저지른 일

 

금생우불수今生又不修 이 세상에서도 닦지 못하면

래생환여고來生還如故 내세도 도리어 지나온 것과 같으리라

량안각무선兩岸各無船 양 언덕에 각각에 아무런 건널 배가 없다면

묘묘난제도渺渺難濟渡 아득한 저 강을 건너기 어려우리라

 

 

전생에 너무 어리석어

오늘 깨치지 못했네.

오늘 가난한 것은

모두 전생에 지은 것이네.

 

오늘 또한 닦지 않으면

다음 생에도 옛날처럼 돌아가리.

두 해안에 각각 배가 없으면

끝없이 넓은 바다 건너기 어려우리.

 

►묘묘渺渺 아득하다.

(물이) 끝없이 넓다. 멀다. 물이 끝없이 이어진 모양.

 

 

이 시의 제1-6행은 인과因果를 노래한 것이다.

‘전생에 너무 어리석어’는 인因이요, ‘오늘 깨치지 못했네’는 과果이다.

‘오늘 가난한 것은’은 과果를 말한 것이며 ‘모두 전생에 지은 것이네’는 그 인因을 말한 것이다.

따라서 ‘오늘 또한 닦지 않으면’은 인을 말하며 ‘다음 생에도 옛날처럼 돌아가리’는 과를 말한다.

 

<인과경因果經>에 이런 말이 있다.

“전세前世에 지은 인因을 알고자 하는가?

금세今世에서 받고 있는 과果가 그것이다.

 

후세後世에 받을 과果를 알고자 하는가?

금생今生에서 만드는 인因이 이것이다.”

 

또 <화엄경華嚴經>에

“온갖 중생은 제 번뇌로 지어진 업業에 의해 그 몸과 사는 세계를 스스로 만들어간다.

하나하나 제 몸과 사는 세계와 수용受用해 지니는 것을 스스로 이루는 것이 업을 젖혀놓고

다른 무엇이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중생이 번뇌 때문에 업을 지으며 다시 업은 인因을 만들고 그 인은 또 과果를 만든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번뇌를 일으키지 않으면 업이 생기지 않고 업이 없으면 인이 발생하지 않고

인이 발생하지 않으면 그 과도 없는 것이다.

업에는 선업善業도 있고 악업惡業도 있다.

 

<기신론起信>에

“과거 무량세無量世의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을 멈추어 간직해서 산실散失시키지 않는 까닭에

그 업에서 오는 현재와 미래의 고락苦樂과 과보果報를 성숙시켜 어긋남이 없게 한다.”고 하였다.

이는 과거 무량세의 선업과 악업을 소멸시켜야 삼사라에서 니르바나로 갈 수 있다는 말이다.

 

한산은 먼저 인과의 법칙을 묘사하고 마지막 두 시구에서 삼사라(사바세계)에서

니르바나(열반) 사이에 놓여 있는 끝없이 넓고 먼 바다를 건널 ‘배’를 마련할 것을 권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두 해안에 각각 배가 없으면

끝없이 넓은 바다 건너기 어려우리.”라고 노래한다.

 

‘두 해안’은 바다의 이쪽 해안[此岸]과 저쪽 해안[彼岸]을 가리킨다.

바다를 건너갈 ‘배’는 삼사라에서 니르바나로 건너가게 해줄 스승 곧 깨달은 자,

그의 가르침, 수행방법 등을 상징한다.

 

‘끝없이 넓은 바다’는 해탈하지 못한 중생이 끝없이 생사生死 윤회하는 고통의 바다를 말한다.

이를 고해苦海라고 한다.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 이런 말이 있다.

“큰 바다에 비유하면 이쪽 해안에서 바다를 건너 저쪽 해안에 도달하고

다시 저쪽 해안에서 바다를 건너 이쪽 해안에 도달하는 것이 如來의 바른 깨달음과 같다.

 

대열반大涅槃을 이루었음은 대승大乘의 보선寶船을 탄 것과 같다.

두루 돌고 왕복하며 중생을 제도함이 곳곳마다 이루어지니

이에 응하여 제도 받는 자는 여래의 몸을 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래를 위없는 최고의 선사船師라고 한다.”

/innerlight34님의 블로그

 

 

자기정화는 禪定의 기본이다.

스스로 다짐하고 스스로 행해야 한다.

내부를 청소하는 것은 因果를 밝히는 것이다.

宿命通을 아는 것은 修行의 밑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