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寒山詩

寒山詩 99

空空 2024. 7. 15. 09:33

寒山詩 99

언식심림하偃息深林下 깊은 숲 속에 편안하게 누워서 쉬자니

종생시농부從生是農夫 날 때부터 농부였네.

립신기질직立身旣質直 출세出世하기 전부터 꾸밈이 없이 정직해서

출어무첨유出語無諂諛 말을 해도 아첨하지 않았네.

 

보아불감벽保我不鑒璧 보물寶物을 멀리하여 나를 지켰고

신군방득주信君方得珠 성실한 임금처럼 바야흐로 구슬을 얻었네.

언능동범염焉能同汎灩 어찌 출렁이는 물과 함께 떠다니며

극목파상부極目波上鳧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물결 위의 오리를 바라볼 수 있겠는가.

 

 

깊은 숲에 편히 누워 쉬고 있자니

이 몸 천상 날 때부터 농부인지라

세상살이 그 바탕이 처음부터 곧았고

말하면서 지금까지 아첨한 적 없었네

 

보물을 멀리하여 몸을 지키고

성실하게 살아서 보배를 얻네

세속의 부침 따라 함께 살고서야

어떻게 파도 타는 오리를 볼 수 있겠나

 

 

깊은 숲속에 누워 쉬고 있는 난

날 때부터 농부였네.

입신했지만 소박하고 정직함 타고나

말을 해도 아첨함이 없었네.

 

나를 지키려 돌 속의 옥은 보지 않았고

임을 믿어 비로소 현주玄珠를 얻었네.

내 어찌 출렁이는 물과 함께 떠다니며

물결 위 오리를 뚫어지라 바라보겠는가?

 

►언식偃息 걱정 없이 편안하게 누워서 쉼. ‘언偃’ 눕다. 쉬다. 편안하다.

►질직質直 소박하고 순직함. 질박하고 정직함. 참되고 속임이 없음.

‘유화질직자柔和質直者’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도에 순응하고, 마음이 정직하여 거짓이 없는 사람.

 

제유수공덕諸有修功德 모든 공덕을 닦아

유화질직자柔和質直者 부드럽고 화하여 질직한 자는

칙개견아신則皆見我身 다 나의 몸이 곧 여기에 있어

재차이설법在此而說法 설법함을 봄이니라.

/묘법연화경 여래수량품 자아게

 

►입신立身 사회에 나아가서 자기의 기반을 확립하여 출세함.

입신양명立身揚名이란 말이 있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사회에서 떳떳한 자리를 차지해 자신을 세우고 이름을 날리는 것,

곧 유명해지는 것을 말한다.

세속적 차원의 예를 들자면 행정고시나 사법시험에 합격해 고위 관료가 되는 것,

판사·검사가 되는 것, 명문대학을 졸업해 유명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되는 것이 그것이다.

아, 이름난 연예인이 되는 것도 입신양명의 하나일 것이다.

 

조선시대의 입신양명은 단 하나다.

과거에 합격해 관료가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과거 합격에 대한 열망은 현대인이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예컨대 1800년 3월21일 경과慶科 정시庭試의 1차 시험에 응시한 사람은 11만1838명,

답안지를 제출한 사람은 3만8614명이었다.

 

이때 서울 인구 20만명 남짓이었다.

다음날 춘당대 인일제人日製의 1차 시험에 응시한 사람은 10만3579명,

답안지를 제출한 사람은 3만2884명이었다.

 

답안지 제출자를 지역별로 보면,

서울 2211명, 경기도 3586명, 황해도 3111명, 평안도 3173명, 충청도 6096명,

강원도 1025명, 전라도 4700명, 경상도 5231명, 함경도 1025명, 수원 368명,

광주廣州 356명, 개성 210명, 강화도 90명, 제주 3명,

거주지 불명이 766명이다. 응시자는 전국적이다.

 

이중 2차 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얻은 사람은 단 2명이었다.

이 2명이 관직을 얻기 위해서는 다시 2차 시험을 치고 최종 합격자가 되어야 하였다.

이처럼 과거에 합격해 관직을 얻고 입신양명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과 진배없었다.

 

경상도 지방에서 널리 읽던 ‘복선화음가福善禍淫歌’라는 가사가 있다.

현명한 여성이 가난한 집에 시집가서 집안을

경제적으로 일으키고 남편 뒷바라지를 한다는 내용이다.

 

이 가사에 조선시대 사람들의 세속적 욕망이 잘 나타나 있다.

아내의 희생과 지원으로 남편은 과연 바늘구멍을 통과해

기름진 안변부사·동래부사 등의 수령직을 거치고,

승지를 지낸 뒤 그 좋다는 평안감사가 된다.

 

당연히 한몫 단단히 잡아 재산도 늘렸다.

쌍교雙轎 독교獨轎를 타고 따라다니며

아내가 남편의 입신양명을 함께 누렸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다.

 

입신양명은 <효경孝經>의

립신행도立身行道 “입신해 도道를 실천하여

양명어후세揚名於後世 후세에 이름을 드날리고

이현부모以顯父母 그럼으로써 부모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효지종야孝之終也 효도의 끝이다”라는 문장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런데 ‘道를 실천한다(行道)’란 부분을 빼고 ‘입신양명’이 되었다는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도의 실천’은 곧 선량한 가치의 실현이다.

과거에 합격해 관료가 되었다면 백성을 위한 행정을 해서 이름을 날려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양반들의 ‘입신양명’에 ‘행도’가 삭제되어 있었던 것은 역사가 입증한다.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과거에 합격해 고위관료가 되었던 것과 같다.

그런데 이 당黨, 저 당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단 국회의원으로 ‘입신’하면

‘행도’를 팽개치고 제 한 몸의 이익에 골몰하는 자들이 허다하다.

 

다음 달이 총선이다.

입신파立身派를 떨어트리고 행도파行道派를 골라내어야 한다.

이 불의不義와 퇴행, 무능의 정치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은 야멸 찰 정도로 냉정해야 할 것이다.

/한겨레 2024-03-15 강명관/인문학 연구자

 

►첨유諂諛 알랑거리며 아첨하는 것.

‘첨諂’ 아첨하다. 비위를 맞추다. 알랑거리다.

‘유諛’ 아첨하다. 비위를 맞추다.

 

면찬아선面讚我善 면전面前에서 나를 착하다고 칭찬稱讚하는 사람이라면

첨유지인諂諛之人 아첨阿諂하는 사람/소학小學

 

►보아불감벽保我不鑒璧 나를 보호하기 위해 해害를 입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해害를 멀리함으로써 나를 보전시켜주는 완전한 옥 곧 본성本性을 지키다.

 

‘감벽鑒璧’ 값비싼 보배. 돌과 옥이 서로 뒤섞여 있으나 그 속에 옥이 들어있음을 알다.

곧 해(해감害鑒)를 입는 행위를 하다. ‘감鑒’ 보다. 살피다. 생각하다. ‘벽璧’ 구슬. 옥.

 

<장자莊子 산목山木>편에 나오는 ‘임회기벽林回棄璧’에 관한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신군信君 <좌전左傳 소공이십년昭公二十年>에 나오는 성실한 군주에 관한 이야기를 인용.

‘군君’ 어진이. 현자.

 

►범염汎灩 널리 떠다님.

‘범汎’ 뜨다. 떠돌다. 가볍다. 넓다.

‘염灩’ 물결이 출렁거리다. 물이 가득 찬 모양.

 

►극목極目 시력을 먼 데까지 다함. 눈으로 볼 수 있는 한계까지 끝없이 봄

►부鳧 오리. 물오리. 들오리.

 

 

<한비자韓非子 화씨和氏>편에 옥玉에 관한 이야기다.

초楚나라 사람 화和씨가 초산楚山에서 옥돌을 주워 여왕厲王에게 갖다 바쳤다.

옥 장인한테 그것을 보게 했다. 그가 말했다. “돌입니다.”

왕은 화和가 속인 것으로 여겨 그의 왼쪽 발꿈치를 베게 했다.

 

여왕厲王이 죽고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화和는 또 그 옥돌을 그에게 바쳤다.

무왕은 옥 장인한테 그것을 보게 했다. 그는 또 “돌입니다.” 하고 말했다.

무왕 역시 화和가 속인 것으로 여겨 그의 오른쪽 발꿈치를 베게 했다.

 

무왕이 죽고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화和는 그 옥돌을 끌어안고 초산楚山 아래에서

3일 밤낮 통곡을 했는데 눈물이 다 마르자 눈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왕이 이 소식을 듣고 사람을 시켜 그 까닭을 묻게 했다.

 

“세상에는 월형刖刑(발꿈치를 베는 형벌)을 받은 자가 많습니다.

헌데 당신은 어찌하여 그 때문에 이토록 통곡하며 슬퍼합니까?”

 

화和가 말했다

“나는 월형을 받아 슬퍼하는 게 아니오.

대저 보옥寶玉을 돌이라 하니 슬퍼하는 것이며

지조志操가 굳은 선비를 사기꾼이라 하니 이것이 내가 슬퍼하는 까닭이오.”

 

이에 왕은 옥 장인에게 그 옥돌을 처리하여 보옥을 얻었으며

마침내 ‘화씨의 옥[和氏之璧]’이라 하도록 명命했다.

/<한산시주寒山詩注> 항초項楚 저, 중화서국, 2000, pp.276-277

 

이 이야기로 미루어 보면 ‘감벽鑒璧’은

‘돌과 옥이 서로 섞여 있으나 그 속에 옥이 들어있음을 알다.’의 뜻이 된다.

 

화和씨는 가공하지 않은 옥돌을 옥이라 해서 2번이나 큰 화禍를 당했으니

‘감벽鑒璧’은 결국 ‘해害를 입는 행위를 하다.’의 의미가 된다.

 

따라서 “보아불감벽保我不鑒璧”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 해害를 입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옥돌을 가공 처리하여 완전한 옥으로 만들기 전에는

옥돌을 가지고 옥이라고 하면 크게 화禍를 입듯이

중생이 도를 닦아 완전한 부처가 되기 전에 부처라고 하면 역시 화를 입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는 그런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중생은 화和가 산에서 주운 옥돌과 같다.

가공하지 않은 옥돌과 같은 중생 안에 불성佛性이 들어있으니 불성은 가공 처리한 옥과 같다.

그러므로 “보아불감벽保我不鑒璧”은 “害를 입는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나를 지킨다.”는 뜻이다

 

한편 ‘나’는 내 안에 들어있는 완전한 옥玉 곧 불성·본래 자성自性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해害를 입는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나의 본래 자성自性인 불성을 지킨다.”는 말이다.

 

또 ‘불감벽不鑒璧’은 <장자莊子 산목편山木篇>에 나오는

‘임회기천금지벽林回棄千金之璧(임회는 천금이 나가는 옥을 버렸다)’에서

유래한 말로 볼 수도 있다.

 

이때는 ‘재물을 멀리했다’는 의미가 된다.

그 이야기를 다음과 같다.

 

●임회기벽林回棄璧(임회부자林回負子)의 고사

공자가 자상호子桑雽에게 물었다.

 

“나는 노魯나라에서 쫓겨났고 송宋나라에서는 나무처럼 베임을 당했으며

위나라에서도 쫓겨났고 상나라와 주周나라에서는 곤궁했고

진陳나라와 채蔡나라 사이에서는 포위되었소.

내가 이처럼 환란을 당하자 친교가 차츰 소원해지고

벗들이 뿔뿔이 흩어져버렸는데 이는 왜 그런 것이오?

 

자상호가 대답했다.

“그대는 망한 가假나라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소?

난민 중에 임회라는 사람이 천금의 가치가 있는 보물을 버려두고

어린 아기를 업고 난을 피해 도망쳤소.

 

그러자 어떤 이가 그에게 돈의 가치로 따지면 아이가 보배만 못하고

짐 되기로는 아이가 보배보다 더할 텐데

어째서 천금의 보배를 버리고 아이를 업고 가느냐고 물었소.

 

임회가 그 물음에 대해 보배는 이익으로 만난 것이고

아이는 천륜으로 만난 것이라고 하면서

이익으로 합해진 것은 환난을 만나면 서로 버려지는 것이지만

천륜으로 만난 것은 곤궁한 때를 만나도 서로 살펴주는 것이기 때문에

버릴 것은 살필 것의 가치를 따를 수 없다고 답했다 하오.

 

군자는 그 사귐이 맑아서 더욱 친해지지만

소인의 사귐은 그 단맛 때문에 끊어지는 것이니

말하자면 이유 없이 합해진 것은 이유 없이 멀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오.”

 

공자가 말했다.

“가르침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공자는 편한 마음으로 돌아와 책을 던져버리고 배움을 끊었다.

제자들이 그 앞에서 읍을 하지 않고 지나가도 그 사랑이 더욱 커졌다.

 

이런 장자의 이야기에 비추어보면 ‘불감벽不鑒璧’은 ‘재물을 멀리했다’는 의미가 된다.

또 ‘보아불감벽保我不鑒璧’은 ‘나를 지키기 위해 재물을 멀리했다.’는 뜻이 된다.

 

‘신군방득주信君方得珠’에서 ‘주珠’는 <장자莊子 천지天地> 편에 나오는

‘현주玄珠(신묘한 구슬)’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 ‘현주’는 도道를 상징하므로 ‘득주得珠’는 ‘득도得道’를 뜻한다.

그런데 도를 얻으려면 부처를 믿어야 한다.

따라서 ‘신군방득주信君方得珠’는 ‘부처를 믿어 비로소 도를 얻었네.’의 의미가 된다.

 

그런 한산이 어찌 세태의 흐름에 민첩하게 움직이면서 이익을 추구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그는

“내 어찌 출렁이는 물과 함께 떠다니며

물결 위 오리를 뚫어지라 바라볼 수 있겠는가?” 하고 강한 어조로 노래한다.

 

‘파상부波上鳧(물결 따라 떠다니는 오리)’는

<초사楚辭 복거편卜居篇>에서 유래한 말로

‘세상에서 자기 이익을 좇아 임기응변을 잘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천리마를 열망하는 것이 났겠소,

아니면 물결 따라 부침浮沈해서 자신을 구하는 물결 위의 오리처럼

이리 저리 떠다니기를 갈망하는 것이 났겠소?”

 

한산은 이 구절을 인용함으로써 자신이 세상이라는 ‘파도’에 부침하면서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이 아닌 재물에 초연한 사람임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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