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寒山詩

寒山詩 117

空空 2024. 7. 16. 04:55

寒山詩 117

개시하조대個是何措大 가난한 저 선비 누구이기에

시래작남원時來雀南院 이따금 남원南院에서 방문榜文을 살펴보는가.(작雀↔성省)

년가삼십여年可三十餘 나이는 서른 남짓

증경사오선曾經四五選 일찍이 네댓 차례 과거科擧에도 뽑혔었네.

 

낭리무청부囊里無靑蚨 주머니 속에는 땡전 한 푼 없지만

협중유황견篋中有黃絹 상자 속에는 언제나 책이 들어 있네.

행도식점전行到食店前 길을 가다 음식점 앞에 이르면

불감잠회면不敢暫回面 감히 잠시라도 얼굴을 돌리지 못하네.

 

 

행색 초라한 저 선비가 누구이길래

때때로 남원에 와 인사방을 보는가.

나이는 삼십을 훌쩍 넘겼고

시험에 합격한 것도 벌써 네댓 차례

 

주머니 속에는 땡전 한 푼 없지만

상자 속엔 언제나 책이 들어있네

길을 가다 음식점 앞을 지날 때면

잠시도 얼굴 돌려 다른 데를 못 보나니

 

 

저 사람 어떤 궁핍한 선비이기에

가끔 남원南院에 와 살펴보는가?

나이는 서른 남짓,

과거 본지 벌써 너댓 번

 

주머니에 동전 한 푼 없고

상자에 책만 들어 있네.

다니다 식당 앞 이르러도

잠시 고개 돌릴 엄두를 못 내네.

 

►개箇 차此 이. 저.

►조대措大

가난뱅이 서생(=초대醋大)을 가리키며 독서인이나 관원을 경멸하는 투로 일컫는 말로

나중에는 과거에는 합격했지만 벼슬을 얻지 못한 가난한 선비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명明의 사조절謝肇浙은 <오잡조五雜俎>에서

“금인이수재위조대今人以秀才爲措大 오늘날 사람들이 수재를 조대라고 부르는데

조초야措醋也 ‘조措’는 ‘초醋’를 말하는 것이니

개취한산지미蓋取寒酸之味 궁색한 형편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조措’ 가난한 선비(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

‘궁조대窮措大’ 곤궁困窮하고 청빈淸貧한 선비.

 

►남원南院 예부남원禮部南院.

당 나라 때 과거시험에 관한 방문榜文(게시문)을 붙여 놓던 곳.

 

►증경사오선曾經四五選 이미 과거시험에 네댓 차례 참가했었다.

►청부靑蚨 돈의 별칭別稱. ‘부蚨’ 파랑강충이.

물벌레의 일종으로 그 피를 돈에 발라두면 그 돈이 도로 돌아온다는 데서

구리로 만든 돈을 이렇게 부르기도 했다.

 

►황견黃絹 누런 비단. 서적書籍.

책(옛날 사람들이 책을 만들 때 누런 종이를 사용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식점食店 반포飯鋪 음식점飮食店. 식당.

►회면廻面 전검轉臉 얼굴을 돌리다. ‘검臉’ 뺨.

 

 

서른이 넘도록 아직 벼슬을 못해

가난하기 이를 데 없는 어느 서생書生에 관해 읊은 시이다.

 

과거시험을 이미 네댓 번 치렀지만 급제及第(과거에 합격함)하지 못하고

또 시험 공고가 나붙었나 하고 살펴보려고 방榜(게시문)을 보러

남원南院(과거에 관한 게시문을 붙여 놓던 곳)에 이따금 들르는 선비

 

무일푼이라 식당 앞을 지나도 밥을 사

허기진 배를 채우러 들어갈 엄두를 못 내고 굶주림에 지친 선비,

 

그래도 책이 든 상자를 들고 다니는 선비

그런 서생의 모습이 사극의 한 장면처럼 눈에 선하게 들어온다.

 

과거시험은 오늘날로 치면 국가 공무원 시험에 해당한다.

회사가 많이 생겨 상대적으로 일자리가 많이 늘어난 오늘날에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당나라 시절에 선비가 사회에 진출하여 신분 상승과 더불어

경제적 안정을 확보하는 길이란 오직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벼슬자리를 얻는 것밖에 없었을 것이니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겠는가?

이 시에 등장하는 선비도 아직 뜻을 이루지 못하고 참담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 선비의 삶 역시 수도자였던 한산의 눈에는

고통스럽기 한이 없는 중생들의 삶의 한 단면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그의 자비심과 연민의 정이 물씬물씬 풍겨 나오는 시이다.

/innerlight34님의 블로그

 

 

한산 자신의 옛 모습이다.

唐 현종 시절에 두보도 실력이 없어서 과거시험에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관료제의 곳곳에 폐해가 숨어 있다.

 

선비의 유일한 생활의 출구가 과거급제였으니

금수저가 아닌 다음에야 과거시험에 목을 맨다.

 

나라가 태평하다면야 순리대로 흐르지만

나라가 어지러워 간신들이 들끓으면 가난한 선비들은 갈 곳을 잃는다.

 

한산은 과거시험에 네댓번 떨어져 방황 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처자식 다 버리고 이름도 성도 버리고 숨었다.

 

막장까지 가고 싶어 간 것이 아니라

사회가 끌어 내리고 시대가 밀어 내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울분과 연민과 자괴감,

처자식에 대한 斷腸의 애달픔을 삭이고 삭였으리라.

 

가장이 되어 가장 노릇 팽개쳤으니 남자의 비참함을 어찌하랴. 어찌하랴.

죽지 못해 숨어 사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