寒山詩 203
寒山詩 203
아재촌중주我在村中住 내가 마을에서 살고 있을 때
중추무비방衆推無比方 사람들이 감히 견줄 수도 없다고 나를 치켜세웠네.
작일도성하昨日到城下 어제 성 밑에 이르렀는데
잉피구형상仍被狗形相 도리어 차림새 때문에 욕을 먹었네.(인할 잉仍↔물리칠 각卻)
혹혐고태착或嫌袴太窄 어떤 이는 바지통이 너무 좁다고 하고
혹설삼소장或說衫少長 어떤 이는 적삼이 조금 길다고 하네.
련각요자안攣卻鷂子眼 새매의 두 눈이 오그라지니
작아무당당雀兒舞堂堂 참새들이 당당하게 춤을 추는 꼴이네.
我在村中住 내가 마을에서 살고 있을 때
衆推無比方 사람들 모두 나를 바로 보지 않았네.
昨日到城下 어제는 모처럼 城안에 들렀는데
卻被狗形相 개들도 나를 보고 미친 듯이 짖어댔네.
或嫌袴太窄 누구는 내 바지가 통이 좁아서 싫다하고
或說衫少長 또 누구는 윗도리가 길지 않다고 탓하네.
攣卻鷂子眼 매의 두 눈이 성하지 못하다고
雀兒舞堂堂 참새들이 堂堂하게 춤을 추는 꼴이네.
내가 마을에 살 때는
제일 멋지다며 사람들이 치켜세웠네.
어제 성城으로 내려갔을 땐
모습 때문에 오히려 욕을 먹었네.
어떤 이는 바지가 너무 좁다고 싫어하고
어떤 이는 적삼이 좀 길다고 했네.
새매의 눈을 꿰매면
참새들 당당히 춤을 추리라.
►‘밀 추, 밀 퇴推’ 받들다. 공경하여 높이 받들다. 추천하다.
►무비방無比方 견주어 볼 수가 없다. 극히 아름답다.
‘비방比方’ 서로 견주어 보다. ‘方’ 견주다. 비교하다.
►‘개 구, 새끼 후狗’ 욕설.
►‘바지 고, 사타구니 과袴’ 바지.
►‘좁을 착窄’ 좁다. 비좁다.
►‘적삼 삼衫’ 적삼(윗도리에 입는 홑옷).
►‘쌍둥이 산, 쌍둥이 련(연)孿’ 봉합縫合하다. 매이다. 오그라들다.
►요자鷂子 새매(수릿과의 새). 매의 암컷. 익더귀.
►당당堂堂 위엄威嚴이 있고 떳떳한 모양. 조금도 거리낌 없이.
►아兒 명사에 덧붙이는 조사助詞.
●한산자寒山子. 한산寒山. 자子는 남자의 통칭通稱.
천태산 한암寒巖의 유굴幽窟 속에 거주했다.
그 성씨가 불상不詳이고 명칭이 한산이다.
용모가 고췌枯悴하고 포유布襦(저고리)는 영락零落; 떨어져 너덜거림)했고
화피樺皮(자작나무 껍질)로 갓을 만들고 큰 나막신을 끌었으며
때로 국청사國淸寺에 와서 습득拾得에게 나아가 중승의
잔식殘食이나 채재菜滓(찌꺼기 재滓)를 취해 그것을 먹었다.
한산의 행적은 전광顚狂(미치광이)에 가까웠다.
국청사 속에 내지來至하여
혹은 낭하廊下에서 서행徐行하고
혹은 때로 규조叫躁(부르짖으며 떠듦)하며 타인을 능멸하고
혹은 허공을 바라보며 만매漫罵(함부로 꾸짖음)했다.
사승寺僧이 참지 못해 지팡이로 핍박하여 쫓아내면
번번이 몸을 뒤집어 손뼉을 치면서 하하 대소하며 물러났다.
음시창게吟詩唱偈를 좋아했는데 항상 불리佛理에 계합했다.
대주자사臺州刺史 여구윤閭丘胤이 일찍이 모명慕名하여 상방相訪했는데
한산이 태수가 옴을 보고는 습득과 연비連臂하여
소오笑傲(웃으며 날뜀)하고는 사원에서 나가 그를 피했다.
여구윤이 다시 한암으로 가서 알문謁問하고
아울러 의상과 약물 등을 송부했는데 2士가 고성으로 그를 꾸짖으며 가로되
도적아, 도적아,
하고는 곧 몸을 옴츠려 암석의 틈 속으로 들어갔는데
다시 말하되 너희 제인에게 알리나니 각각 노력하라.
그 돌의 틈이 홀연히 봉합되었다.
여구윤이 애모哀慕하여 승 도교道翹를 시켜 그의 유물을 찾게 했는데
임간林間에서 잎 위에 서사한 바의 사송辭頌 및 촌서村墅(농막)와
인가의 가옥의 벽에 제題한 것을 얻었으니 공히 300여 수가 인간에 전포傳布되었다.
조산본적曹山本寂이 주석하여 이를 일러 대한산자시對寒山子詩라 했다.
위산潙山이 일찍이 천태산에서 한산을 회견會見했고 조주도 또한 일찍이 한산과 상호 문답했다.
그 족성族姓은 불상不詳이며 연대도 또한 이설異說이 있다.
혹 이르기를 이는 당 현종 선천 년 중의 사람이라 하고
혹은 태종 정관년 중의 사람이라 하고
혹은 헌종 원화년 중의 사람이라 한다.
근인近人의 고증에 의거하면 예종 경운(710-711) 초년에 출생했고
대종 대력(766-779)년 간 천태산에 은거했다.
전설에 그는 문수보살의 화신이라 하며 풍간(미타 화신) 습득(보현 화신)과
더불어 호칭이 3聖이며 혹은 호칭이 3隱이다.
또 3자가 모두 천태산 국청사에 은서隱棲한지라
고로 또한 명칭이 국청삼은國淸三隱이다.
청 옹정 11년(1733) 한산을 화성和聖에 봉하고 습득을 합성合聖이라 했으니
병칭이 和合二聖 혹 和合二仙이라 했다.
/宋高僧傳19 傳燈錄27 佛祖統紀39 佛祖歷代通載20 釋氏稽古略3 天台山國淸禪寺三隱集記
한산도 먹고 살아야 했으니 城 안으로 들어 온 시가 몇 편 된다.
고향에 간 건지 자기가 한때 살았던 곳에 간건지 저자로 갔다.
처자식이 있는 곳도 갔었다.
이 시의 성과 처자식이 있는 곳과는 같은지 다른지
다르면 얼마나 떨어졌는지는 전혀 알 수 없는 내용이다.
60이 넘어 늙은이로 간 것이다.
자신은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다.
한산의 형색은 거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