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조론肇論

조론肇論 부진공론不眞空論 ⓵

空空 2024. 8. 7. 13:41

조론肇論 부진공론不眞空論 ⓵

부지허무생자夫至虛無生者 지극히 텅 비어 생멸함이 없는 것

개시반야현감지묘취蓋是般若玄鑒之妙趣 그것이 반야가 현묘하게 관조하는 신비요

유물지종극자야有物之宗極者也 사물의 궁극이다.

 

​자비성명특달自非聖明特達 스스로 매우 지혜롭고 탁월하지 않다면

하능계신어유무지간재何能契神於有無之間哉

어떻게 "있다"와 "없다"의 양 극단을 떠난 새로운 길(중도)에 정신을 맞출 수 있겠는가?

 

시이지인통신심어무궁是以至人通神心於無窮

그러므로 지인은 막힘이 없는 새로운 길에 마음을 통하여

 

궁소불능체窮所不能滯 일반인들이 막히는 곳에서 결코 막히지 않고

극이목어시청極耳目於視聽 보고 듣는 데에 눈과 귀를 극한으로 사용하더라도

성색소불능제자聲色所不能制者 소리와 색깔이 제약할 수 없으니

기불이기즉만물지자허豈不以其即萬物之自虛 이는 만물이 스스로 비어있음을 깨달아

 

고물불능루기신명자야故物不能累其神明者也

사물이 그 정신을 어지럽힐 수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시이성인是以聖人 승진심이리순乘真心而理順 그러므로 성인은 진심으로 진리를 따르면

즉무체이불통則無滯而不通 통하지 않음이 없다.

 

​심일기이관화審一氣以觀化 천지만물의 근원을 자세히 살피고 변화를 관찰하므로

고소우이순적故所遇而順適 만나는 대상마다 조화롭게 어울린다.

 

​무체이불통無滯而不通 통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고능혼잡치순故能混雜致淳 혼잡한 것들이 순일해 질 수 있다.

 

​소우이순적所遇而順適 만나는 대상마다 조화롭게 어울리니

고즉촉물이일故則觸物而一 사물을 접촉할 때마다 하나가 된다.

 

​여차如此 그러한즉

즉만상수수則萬象雖殊 삼라만상이 서로 달라도

이불능자이而不能自異 스스로 다를 수 없다.

 

​불능자이不能自異 스스로 다를 수 없기에

고지상비진상故知象非真象 형상이 진짜 형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상비진상象非真象 형상이 진짜 형상이 아니므로

고즉수상이비상故則雖象而非象 형상이지만 형상이 아니다.

 

연즉물아동근然則物我同根 그러한즉 사물과 나는 뿌리가 같으며

시비일기是非一氣 옳고 그름도 둘이 아니나

잠미유은潛微幽隱 지극히 은미하여

태비군정지소진殆非群情之所盡 일반인의 마음으로는 다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고경이담론故頃爾談論 그러므로 짧은 담론으로

지어허종至於虛宗 비어있음에 대해

매유부동每有不同 매번 다른 사상들이 생겨났다.

 

부이부동이적동夫以不同而適同 다름으로 같음을 추구하니

유하물이가동재有何物而可同哉 어떤 것이 같아질 수 있겠는가?

고중론경작故眾論競作 그러므로 여러 이론이 앞 다투어 생겨났으나

이성막동언而性莫同焉 본성에 대한 사상은 달랐다.

 

​하즉何則 왜인가?

심무자心無者 <심무론>은

무심어만물無心於萬物 만물에 대해 주관적인 마음은 가지지 않으나

만물미상무萬物未嘗無 만물은 없었던 적이 없다.

 

​차득재어신정​此得在於神靜 이 사상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실재어물허失在於物虛 사물의 비어 있음을 밝히는 데는 실패하였다.

 

​즉색자即色者 <즉색론>은

명색부자색明色不自色 색이 스스로 색이라 하지 않기에

고수색이비색야故雖色而非色也 색이지만 색이 아님을 밝혔다.

 

​부언색자​夫言色者 색이라 하는 것이

단당색즉색但當色即色 색이니까 색이어야 하는 것이지

 

기대색색이후위색재豈待色色而後為色哉

어찌 색을 색이라고 명명한 후에야 색이 될 수 있겠는가?

 

​차직어색부자색此直語色不自色 이는 색이 스스로 색이라 하지 않음을 직접적으로 말했으나

미령색지비색야未領色之非色也 색 자체가 본래 색이 아님은 깨닫지 못하였다.

 

본무자本無者 <본무론>은

정상어무다情尚於無多 감정적으로 "없음"을 많이 숭상하여

촉언이빈무觸言以賓無 말이 부딪칠 때마다 "없음"을 내세운다.

 

고비유故非有 그리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면

유즉무有即無 "있음"이 곧 "없음"이다라고 한다.

 

​비무非無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면

무역무無亦無 "없음"이 곧 "없음"이다라고 한다.

 

​심부립문지본지자​尋夫立文之本旨者 이론을 세운 본뜻을 연구해 보면

직이비유直以非有 비진유非真有 "있지 않다"로는 "진짜로 있는 것이 아님"을

 

비무非無 비진무이非真無耳

"없지 않다"로는 "진짜로 없는 것이 아님"을 직설적으로 말한 것일 따름이다.

 

​하필비유무차유​何必非有無此有 어찌하여 "있지 않다"고 해서 "연기로써의 있음"도 없겠으며

비무무피무非無無彼無 "없지 않다"고 해서 "연기로써의 없음"도 없겠는가?

 

차직호무지담此直好無之談 이는 바로 "없음"을 좋아하는 사상이니

기위순통사실豈謂順通事實 어찌 사실에 부합하고

즉물지정재即物之情哉 사물의 실정에 맞다고 할 수 있겠는가?

 

​부이물물어물​夫以物物於物 어떤 사물에 대해 어떤 사물이라는 이름으로 이름을 붙인다면

즉소물이가물則所物而可物 이름 붙여진 사물은 어떤 사물이라고 불릴 수 있다.

 

이물물비물以物物非物

어떤 사물을 어떤 사물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이 어떤 사물이 아니기 때문이니

 

고수물이비물故雖物而非物 따라서 어떤 사물이라 칭하더라도 어떤 사물이 아니다.

시이물부즉명이취실是以物不即名而就實

그러므로 사물은 명칭에 상즉하여 실체를 갖추지 못하고

(토끼 뿔이라는 명칭은 있을 수 있으나 세상에 토끼 뿔은 없다)

 

명부즉물이리진名不即物而履真 명칭은 사물에 상즉하여 실재를 실증하지 못한다.

(안경은 안경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종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 무엇도 진짜 이름이 아니다)

 

연즉진제독정어명교지외然則真諦獨靜於名教之外 그런즉 진리는 명칭 밖에서 홀로 고요하니

기왈문언지능변재豈曰文言之能辯哉 어찌 글과 말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연불능두묵​然不能杜默 그렇다고 입을 닫고 침묵할 수 없으니

료부조언이의지聊復厝言以擬之 부족하나마 논리를 펼쳐 헤아려 보고자 한다.

 

​시론지왈試論之曰 다음과 같이 시험 삼아 논해 본다.

마하연론운摩訶衍論云 <마하연론>에 말하였다.

 

제법역비유상諸法亦非有相 역비무상亦非無相

"제법은 형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형상이 없는 것도 아니다"

 

​중론운​中論云 <중론>에서 말하였다.

​제법불유불무자諸法不有不無者 "제법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제일진제야第一真諦也 이것이 제일가는 진리이다.

 

심부불유불무자尋夫不有不無者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고 한 것을 연구해 보면

기위척제만물豈謂滌除萬物 어찌 만물을 깨끗이 씻어 없애고

두색시청杜塞視聽 눈과 귀를 막아

 

적료허활寂廖虛豁 연후위진제자호然後為真諦者乎

주관과 객관을 텅 비게 만든 후에 진제가 되었겠는가?

 

​성이즉물순통​誠以即物順通 진실로 사물과 상즉하여 조화롭게 통하므로

고물막지역故物莫之逆 사물을 거스르지 않고

즉위즉진即偽即真 가유假有이면서 진공真空이니

고성막지역故性莫之易 본성이 바뀌지 아니 한다.

 

​성막지역性莫之易 본성이 바뀌지 아니 하니

고수무이유故雖無而有 (실체는) 없으면서도 (연기로는) 존재한다.

 

​물막지역​物莫之逆 사물을 거스르지 않기에

고수유이무故雖有而無 (연기로는)있으면서도 (실체는)없다.

 

수유이무雖有而無 있으면서도 없기 때문에

소위비유所謂非有 "비유非有(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한다.

 

​수무이유​雖無而有 없으면서 있기에

소위비무所謂非無 "비무非無(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여차​如此 이와 같으면

즉비무물야則非無物也 사물이 없는 것이 아니라

물비진물物非真物 사물이 진짜가 아닌 것이다.

 

​물비진물​物非真物 사물이 진짜가 아니므로

고어하이가물故於何而可物 무엇에 대해서 사물이라 이름 할 수 있겠는가?

 

​고경운​故經云 그러므로 경전에 말하였다.

색지성공色之性空 "색의 본성은 비어 있으며

비색패공非色敗空 색을 부셔서 비게 만든 것이 아니다"

 

이명부성인지어물야以明夫聖人之於物也 즉만물지자허即萬物之自虛

이로써 깨달은 사람이 만물의 스스로 비어있음에 상즉한 것임을 밝혔다.

 

​기대재할이구통재豈待宰割以求通哉 어찌 억지로 쪼개고 분석하여 통하기를 구했겠는가?

시이침질유부진지담是以寢疾有不真之談 그러므로 <유마경>에 진짜가 아니라는 말이 있고

초일유즉허지칭超日有即虛之稱 <초일명삼매경>에는 "존재 자체가 비었다"라는 말이 있다.

 

연즉삼장수문然則三藏殊文 그런즉 삼장에 있는 표현이 각기 다르더라도

통지자일야統之者一也 이를 통괄하는 것은 하나이다.

 

고방광운故放光云 그러므로 <방광반야경>에 일렀다.

제일진제第一真諦 무성무득無成無得 제일진제는 성취도 없고 얻음도 없다.

세속제고世俗諦故 편유성유득便有成有得 세속제이기 때문에 성취도 얻음도 있다.

 

부유득즉시무득지위호夫有得即是無得之偽號

얻음이 있다는 것은 얻음이 없다는 것의 거짓 호칭이요

 

무득즉시유득지진명無得即是有得之真名

얻음이 없다는 것은 얻음이 있다는 것의 진짜 이름이다.

 

진명고真名故 수진이비유雖真而非有 진짜 이름이기에 진실이기는 하나 있는 것도 아니며

위호고偽號故 수위이비무雖偽而非無 거짓 호칭이기에 거짓이나 없는 것도 아니다

 

시이언진미상유是以言真未嘗有 그러므로 진실이라고 말하지만 있은 적이 없고

언위미상무言偽未嘗無 거짓이라고 말하지만 없은 적도 없다.

 

​이언미시일​二言未始一 이리미시수二理未始殊

두 말은 처음부터 같지 않았으나 두 이치가 처음부터 다르지는 않았다.

 

고경운故經云 그러므로 경에 말하였다.

진제속제真諦俗諦 위유이야謂有異耶 진제와 속제가 다르다고 하였던가?

답왈答曰 무이야無異也 다르지 않다고 답한다.

 

​차경직변此經直辯 진제이명비유真諦以明非有 이 경은 진제로써 있는 것도 아니고

속제이명비무俗諦以明非無 속제로써 없는 것도 아님을 분명히 하였음을 직접 설명하였다.

 

기이제이이이어물재豈以諦二而二於物哉

어찌 진리가 진제와 속제 둘이라고 사물에 대해서도 둘이겠는가?

 

연즉만물과유기소이불유然則萬物果有其所以不有 그런즉 만물에는 있지도 않은 이유가 있고

유기소이불무有其所以不無 없지도 않은 이유가 있다.

 

​유기소이불유​有其所以不有 고수유이비유故雖有而非有

있지도 않은 이유가 있기에 있으나 있지 않고

 

유기소이불무有其所以不無 고수무이비무故雖無而非無

없지도 않은 이유가 있기에 없지만 없지도 않다

 

​수무이비무​雖無而非無 무자부절허無者不絕虛

없지만 없지 않기에 없음은 단절된 텅 비어있음이 아니다

 

수유이비유雖有而非有 유자비진유有者非真有

있지만 있지 않으므로 있음은 진짜로 있는 것이 아니다.

 

약유부즉진若有不即真 무불이적無不夷跡

만약 있음이 진짜가 아니면 없음은 흔적을 없애지 아니 한다.

 

연즉유무칭이然則有無稱異 기치일야其致一也

그런즉 있음과 없음은 명칭이 다르나 그것들은 하나로 귀결된다.

 

고동자탄왈故童子嘆曰 그러므로 동자는 찬탄하여 말했다.

설법불유역불무說法不有亦不無 이인연고제법생以因緣故諸法生

법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고 말하는 것은 인연으로 모든 법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영락경운瓔珞經云 <영락경>에서 말하였다.

전법륜자轉法輪者 ‘법의 바퀴를 굴린다는 것은

역비유전亦非有轉 역비무전亦非無轉 구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구름이 없는 것도 아니다.

시위전무소전是謂轉無所轉 이를 구르되 구르는 것이 없다.’

차내중경지미언야此乃眾經之微言也 이것이 바로 모든 경전의 은미한 말이다.

 

​하자何者 왜인가?

위물무야謂物無耶 즉사견비혹則邪見非惑

사물이 없다라고 말하면 잘못된 견해가 미혹이 아닌 게 되고

 

위물유야謂物有耶 즉상견위득則常見為得

사물이 있다고 말하면 상견이 옳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물비무以物非無 고사견위혹故邪見為惑

사물은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함으로써 그릇된 견해가 미혹이 되며

 

이물비유以物非有 고상견부득故常見不得

사물은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함으로써 상견이 틀리게 된다.

 

​연즉비유비무자然則非有非無者 그런즉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이

신진제지담야信真諦之談也 진실로 진제를 설명하는 표현이다.

 

고도행운故道行云 그러므로 <도행반야경>에 말했다.

심역불유역불무心亦不有亦不無 마음은 있지도 없지도 않다.

 

중관운中觀云 <중론>에 말했다.

물종인연고불유物從因緣故不有 연기고불무緣起故不無

사물은 인연을 따르므로 있지도 않고 연기이므로 없지도 않다.

 

심리즉기연의尋理即其然矣 진리를 연구해 보면 바로 그러하다.

​소이연자所以然者 부유약진유夫有若真有 왜 그런가 하면 있는 것이 만약 진짜로 있는 것이라면

유자상유有自常有 있는 것은 스스로 항상 있는 것이니

기대연이후유재豈待緣而後有哉 어찌 인연이 생긴 후에야 있게 되겠는가?

 

​비피진무譬彼真無 비유하건데 그것이 진짜로 없는 것이라면

무자상무無自常無 없는 것은 스스로 항상 없는 것이어야 할 것이니

기대연이후무야豈待緣而後無也 어찌 인연이 생긴 후에야 없어지겠는가?

 

​약유불능자유若有不能自有 만약 있는 것이 스스로 있을 수 없고

대연이후유자待緣而後有者 인연이 생긴 후에야 있게 되는 것이라면

고지유비진유故知有非真有 있는 것이 진짜로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유비진유有非真有 있는 것이 진짜로 있는 곳이 아니라면

수유불가위지유의雖有不可謂之有矣 있어도 있다라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불무자不無者 없지 않다라는 것은

부무즉담연부동夫無則湛然不動 없으면 담연하여 움직이지 않아야

가위지무可謂之無 없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물약무萬物若無 즉불응기則不應起 만물이 진짜로 없다면 발생해서는 안 되며

기즉비무起則非無 발생하면 없는 것이 아닌데

 

이명연기以明緣起 고불무야故不無也

연하여 발생하는 이치를 밝혔기 때문에 사물은 진짜로 없는 것이 아니다.

 

고마하연론운故摩訶衍論云 그러므로 <마하연론>에 말했다.

일체제법一切諸法 일체인연고응유一切因緣故應有

일체 제법은 일체의 인연 때문에 있어야 한다.

 

일체제법一切諸法 일체인연고불응유一切因緣故不應有

일체 제법은 일체 인연 때문에 있어서는 안 된다.

 

일체무법一切無法 일체인연고응유一切因緣故應有

일체의 없음은 일체의 인연 때문에 있어야 하며

 

일체유법一切有法 일체인연고불응유一切因緣故不應有

일체의 있음은 일체의 인연 때문에 있어서는 안 된다.

 

심차유무지언尋此有無之言 기직반론이이재豈直反論而已哉

이 있음과 없음의 말을 연구해 보면 어찌 직설적으로 상반되는 논리를 말한 것일 뿐이겠는가?

 

​약응유즉시유若應有即是有 불응언무不應言無

만약 있어야 한다면 바로 있어야 하는 것이지 없음을 말해서는 안 된다.

 

약응무즉시무若應無即是無 불응언유不應言有

만약 없어야 한다면 바로 없어야 하며 있음을 말해서는 안 된다.

 

​언유言有 시위가유이명비무是為假有以明非無

있는 것이 가짜로 있는 것임을 말하여 없는 것이 아님을 밝혔고

 

차무이변비유借無以辯非有

없음을 빌려 진짜로 있는 것이 아님을 밝혔다.

 

​차사일칭이​此事一稱二 기문유사부동其文有似不同

이 일은 하나이나 칭호는 두 가지이며 표현은 유사하나 다르다.

 

구령기소동茍領其所同 즉무이이부동則無異而不同

만약 같은 것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같지 않은 것이 없다.

 

연즉만법然則萬法 그런즉 만법은

과유기소이불유果有其所以不有 불가득이유不可得而有

있지 않은 이유가 있으며 진짜로 있다고 해서는 안 된다.

 

유기소이불무有其所以不無 불가득이무不可得而無

없지 않는 이유가 있으므로 진짜로 없어서는 안 된다.

 

​하즉​何則 왜인가?

욕언기유欲言其有 그것이 있다고 말하려 해도

유비진생有非真生 있는 것이 진짜로 생긴 것이 아니고

욕언기무欲言其無 그것이 없다고 말하려 해도

사상기형事象既形 사상이 이미 형성되어 있다.

 

형상불즉무形象不即無 비진비실유非真非實有

형상은 없는 것이 아니나 진짜가 아니고 실재로 있는 것이 아니다.

 

연즉부진공의然則不真空義 현어자의顯於茲矣

그런즉 진짜로 없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가 여기에서 드러났다.

 

고방광운故放光云 그러므로 <방광반야경>에 말했다.

제법가호부진諸法假號不真 제법은 가명이며 진짜가 아니다.

 

​비여환화인​譬如幻化人 예를 들면 허깨비와 같다.

비무환화인非無幻化人 허깨비는 없지 않으나

환화인비진인야幻化人非真人也 허깨비가 진짜는 아니다.

 

부이명구물夫以名求物 물무당명지실物無當名之實

이름으로 사물을 찾아보면 사물은 이름에 맞는 실체가 없다.

 

이물구명以物求名 명무득물지공名無得物之功

사물로써 이름을 찾아보면 이름에는 사물의 실재를 획득할 수 있는 기능이 없다.

 

물무당명지실物無當名之實 빗물야非物也

사물은 이름에 맞는 실재가 없으니 진짜 사물이 아니다.

 

명무득물지공名無得物之功 비명야非名也

이름은 사물의 실재를 획득하는 기능이 없으니 진짜 이름이 아니다.

 

​시이명부당실是以名不當實 실부당명實不當名

그러므로 이름은 실재와 맞지 않고 실재는 이름과 맞지 않으며

 

명실무당名實無當 만물안재萬物安在

이름과 실제가 맞는 것이 없으니 만물은 어디에 있는가?

 

​고중관운​故中觀云 그러므로 <중론>에서 말했다.

물무피차物無彼此 사물에는 이쪽과 저쪽이 없으나

 

이인이차위차而人以此為此 이피위피以彼為彼

사람들이 이쪽을 이쪽이라 하고 저쪽을 저쪽이라 한다.

 

피역이차위피彼亦以此為彼 이피위차以彼為此

저 사람도 이쪽을 저쪽이라 하고 저쪽을 이쪽이라 한다.

 

차피막정호일명此彼莫定乎一名 이쪽과 저쪽은 하나의 명칭으로 정할 수 없는데

이혹자회필연지지而惑者懷必然之志 미혹된 사람은 반드시 그러하다는 생각을 품는다.

 

연즉피차초비유然則彼此初非有 그런즉 이쪽과 저쪽은 처음에는 있지 않았으나

혹자초비무惑者初非無 미혹된 사람들은 처음부터 없지 않았다고 한다.

 

​기오피차지비유既悟彼此之非有 유하물이가유재有何物而可有哉

이쪽과 저쪽이 있지 않음을 이미 깨달았거늘 어떤 물건이 있을 수 있겠는가?

 

고지만물비진故知萬物非真 가호구의假號久矣

그러므로 만물이 진짜가 아니며 거짓 호칭이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시이성구립강명지문是以成具立強名之文

그러므로 <성구경>에는 억지로 이름을 붙였다는 문장이 있고

 

원림탁지마지황園林托指馬之況 장자는 손가락과 쌍 육마를 비유를 들었다.

 

​여차​如此 즉심원지언則深遠之言 어하이부재於何而不在

이와 같이 심오한 말이 어디인들 없겠는가?

 

시이성인是以聖人 승천화이불변乘千化而不變

그러므로 깨달은 사람이 온갖 변화에도 변하지 않으며

 

리만혹이상통자履萬惑而常通者 온갖 미혹을 겪으면서도 늘 막힘이 없는 것은

이기즉만물지자허以其即萬物之自虛 만물의 비어 있음과 하나 되었기 때문이지

불가허이허물야不假虛而虛物也 비어 있음을 빌려 사물을 비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경운​故經云 그러므로 경전에 일렀다.

심기세존甚奇世尊 매우 기이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부동진제不動真際 위제법립처為諸法立處

세계의 본질을 그대로 두고 제법에 있을 자리를 세우시고

 

비리진이립처非離真而立處 립처즉진야立處即真也

진리를 떠나지 않고 제법에 있을 자리에 세우시니 세우는 곳마다 참됩니다.

 

​연즉도원호재​然則道遠乎哉 그런즉 깨달음의 길이 멀리 있는가?

촉사이진觸事而真 부딪치는 일마다 참되도다.

 

성원호재聖遠乎哉 성스러움이 멀리 있는가?

체지즉신體之即神 체득하면 바로 신성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