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조론肇論

열반무명론·구절십연자九折十演者 초경超境 제5

空空 2024. 8. 8. 08:00

초경超境 제5

경境은 위에서 질문했던 유명가의 유·무의 경境이다

이는 즉 6근, 6진을 有라 하고

소승은 灰身滅智를 취하여 열반이라 하면서 이를 無라 호칭함을 말한다.

지금은 대열반은 유·무를 초월하고 홀로 우뚝 섰음을 부연敷衍하여 이로써 그의 집착을 타파하였다

 

 

무명왈無名曰 무명은 말한다.

유무지수有無之數 성이법무불해誠以法無不該 리무불통理無不統

유·무의 名數는 실로 모든 법을 해괄하지 않음이 없고 이치마다 통괄하지 않음이 없다.

[여기서는 유명의 견해를 인정해 주었다]

 

연기소통然其所統 속제이이俗諦而已 그러나 유·무의 명수가 통괄하는 것은 속제일 뿐이다.

 

<註解>

<대품반야경>에서는 말하기를

'보살이 세속제 때문에 중생에게 유·무의 경우를 보여 주긴 하나 이는 제일의제는 아니다.' 하였다.

그 때문에 속제라고 말한 것이다.

유식론에서는 五位百法으로써 세간과 출세간법을 해괄하였다.

그러나 세간이든 출세간이든 我가 있기 때문에 속제라고 지칭하였다

 

 

경왈經曰 경에서 말하였다.

진제하야真諦何耶 열반도시涅槃道是 진제란 무엇인가? 열반의 도이다.

속제하야俗諦何耶 유무법시有無法是 속제란 무엇인가? 유·무의 법이다.

 

<註解>

여기서는 有인 세간법과 無인 출세간법을

통체적으로 속제라고 부른다는 것을 경에서 인용하여 증명하였다

 

 

하즉何則 무엇 때문에 유·무법 모두가 속제의 의미이겠는가.

유자유어무有者有於無 유는 무를 상대하여 나타난 유이고

무자무어유無者無於有 무는 유를 상대하여 나타난 무이기 때문이다.

 

유무소이칭유有無所以稱有 무를 상대하여 나타난 유이기 때문에 유라 지칭하고

무유소이칭무無有所以稱無 유를 상대하여 나타난 무이기 때문에 무라고 호칭한다.

 

<註解>

여기서는 유·무의 개념이 상대적으로 의지하여 나타났다 하였다.

생사가 본래 없는 무였는데 지금은 유로 존재해 있고

몸과 마음은 본래 없는 무였는데 지금은 유로 존재해 있다.

이 유는 무를 상대하여 나타난 有일뿐이다.

 

二乘人은 몸과 마음을 불 꺼진 재처럼 소멸하고 생사를 초탈하여 무유법을 증득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의 무는 유를 없앤 무이다.

이는 없던 것을 있게 했기 때문에 유라 호칭하고 있던 것을 없앴기 때문에 무라고 지칭한 것이다.

이는 유·무가 상대적으로 해서 나타난 것이다.

그 때문에 속제이다.

 

 

연즉유생어무然則有生於無 무생어유無生於有 그렇다면 유는 무에서 나오고 무는 유에서 나와

리유무무離有無無 리무무유離無無有 유를 떠나서 무가 없고 무를 떠나선 유가 없다.

 

유무상생有無相生 상대적으로 나오는 유·무는

기유고하상경其猶高下相傾 마치 高下가 상대적으로 기운 것과 같다.

유고필유하有高必有下 즉 높은 곳이 있으면 반드시 낮은 곳이 있고

유하필유고의有下必有高矣 낮은 곳이 있으면 반드시 높은 곳이 있는 것과 같다.

 

연즉유무수수然則有無雖殊 구미면어유야俱未免於有也

이와 같다면 유·무의 명칭이 다르다고는 하나 모두 함께 유를 면하진 못한다.

 

<註解>

유·무가 상대적으로 나옴이 고하가 상대적으로 기우는 것과 같다고 풀이하고 그 논지를 성립시켰다

그렇다면 유·무의 명칭이 다르다고는 하나 모두 함께 유의 경지를 면치 못한다.

그 때문에 유·무는 속제일 뿐이다.

 

 

차내언상지소이형此乃言象之所以形 시비지소이생是非之所以生

이는 언상이 나타나는 까닭이며 시비가 나오는 원인이다.

 

기시이통부유극豈是以統夫幽極 어떻게 이로써 열반의 그윽한 이치의 극치를 통괄할 수 있겠는가.

의부신도자호擬夫神道者乎 그런데도 이로써 신령한 열반의 도를 헤아리려고 하는가.

 

<註解>

여기서는 유·무가 언상으로 나타났다면

반드시 그에 대한 시비가 나옴으로 일정한 이치라 하지 못한다.

 

어떻게 이로써 그윽하고 오묘함의 극치를 통괄해서 포섭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열반의 신령한 도를 이로써 헤아리려고 하는가라고 결론짓고 책망하였다.

 

 

시이론칭출유무자是以論稱出有無者 그 때문에 본문에서 유·무를 벗어났다고 호칭한 것은

량이유무지수良以有無之數 지호륙경지내止乎六境之內 실로 유·무의 名數는 6경의 안에 그치고

륙경지내六境之內 비열반지댁非涅槃之宅 6경의 안은 열반의 집은 아니기 때문이다.

 

고차출이거지故借出以祛之

그 때문에 유·무를 벗어난다는 출出 자字를 빌려

미혹으로 집착한 허망한 마음을 버리게 하였던 것이다.

 

<註解>

여기서는 出字의 의도를 정면으로 밝혔다

열반의 도가 유·무를 초월해서 벗어났다 말했던 것은

실로 유·무의 명칭은 육경, 육근, 육진의 내부에 머물기 때문이다.

 

육근, 육진은 생멸의 법이며 불생불멸하는 열반의 이치는 아니다.

그 때문에 하나의 出字를 임시로 빌려 미혹에 집착한 허망한 마음을 버리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유·무의 밖을 벗어나 따로 하나의 거처할 만한 열반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서희도지류庶悕道之流 바라노니 열반의 도를 희구하는 부류들이여

방불유도彷彿幽途 열반으로 가는 그윽한 길을 방불하게나마 헤아리고

탁정절역託情絕域 허망한 마음을 잊고 증오마저 단절된 세계에 마음을 의탁하라.

 

득의망언得意忘言 체기비유비무體其非有非無

그리고 그 의도를 얻었으면 비유비무의 도리를 체득하라.

 

기왈유무지외豈曰有無之外 별유일유이가칭재別有一有而可稱哉

어찌 유·무의 밖에 따로 하나의 유 즉 열반이 있어 이를 명칭으로 지적할 만하다고 말했겠는가.

 

<註解>

여기서는 열반의 도리를 현묘하게 깨닫고 허망한 마음을 잊으라고 권하였다.

열반은 유·무를 초월하여 벗어났다고 말했던 것은 도를 배우는 부류들이

유·무를 초월했다한 말을 의지하여 열반의 오묘함을 비량比量해 보고

허망한 마음을 잊고 증오했다는 의식마저 단절된 세계에 마음을 의탁하여

그 의도를 얻었으면 말을 잊고 비유비무의 도리를 깨닫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어찌 유·무의 밖에 따로 하나의 유를 지칭하여 말할 만하다고 하였겠는가.

말에 집착하여 근본의 종지마저 어두웠으니 매우 잘못하였다 하리라.

 

 

경왈삼무위자經曰三無為者 경에서는 '三無爲'를 말하였다.

개시군생분요蓋是群生紛繞

이는 모든 중생들이 어지럽게 생사에 얽혀 왕래하면서 정지하지 못하는 까닭은

 

생호독환生乎篤患 독환지우篤患之尤

육근, 육진에서 나오며 이것이 두터운 근심거리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막선어유莫先於有 절유지칭絕有之稱 막선어무莫先於無

두터운 근심거리 가운데 더욱 심한 것은 유보다 우선함이 없으며

유가 단절된 호칭은 무보다도 앞선 것이 없다.

 

고차무이명기비유故借無以明其非有

그 때문에 무를 임시로 빌려 이로써 생사법 가운데는 있지 않음(非有)을 밝혔던 것이다.

 

명기비유明其非有 비위무야非謂無也

이는 육근, 육진이 허망하여 실유가 아님을 밝힌 것이지

단절된 무를 무라고 말하진 않았던 것이다.

 

<註解>

여기서는 미혹함을 배척하였다.

경전에서 三無爲를 말했던 것은 이렇다,

 

즉 중생들이 생사를 왕래하면서 분분요요紛紛繞繞하게 정지하지 못하는 까닭은

육근, 육진에서 나오며 이것이 두터운 근심의 근본이 된다.

 

두터운 생사의 근심 가운데서 가장 심한 것은

유를 탐하고 집착하는 변계소집의 허망한 마음보다 우선하는 것은 없다.

 

만일 참착하는 허망한 마음을 단절하고 싶다면

열반의 무로써 안락한 집을 삼는 것보다 우선함은 없다.

이 때문에 하나의 無字를 빌려 생사법 가운데는 열반이 비유임을 밝혔을 뿐이다.

 

여기에서 의도한 것은 육근, 육진의 생사법이 허망하여

본래 실유가 아님을 밝혔을 뿐 단절된 무를 무라 함은 아니었다.

 

여기에서 말한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열반은 유·무에 포섭되지 없음을 간별 하였고

두번째는 무라 한 無는 2家 즉 유학과 노장학에서 허망하게 헤아리는 무가 아님을 간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