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조론肇論

열반무명론·구절십연자九折十演者 기동譏動 제14

空空 2024. 8. 8. 14:05

기동譏動 제14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미 무위를 취하고 유위를 버리는 것으로써 마음을 삼고 무위를 닦으면

날로 덜어 내고 유위의 학문을 하면 날로 더하는 것으로써 수행한다면

그는 무위를 숭상하면서 구하는 마음이 시끄럽게 요동하면서 쉬지 않게 된다.

 

어떻게 동요하는 마음으로써 동요하지 않는 무위의 이치를 증득하겠는가.

그 때문에 유명이 이 문제를 나무라면서 따졌던 것이다.

 

 

유명왈有名曰 유명은 말한다.

경칭법신이상經稱法身已上 경전에서는 말하기를 '법신보살 이상의 경지는

 

입무위경入無為境 심불가이지지心不可以智知

무위의 세계로 들어가 그 마음을 지혜로썬 알지 못하고

 

형불가이상측形不可以象測 형체는 형상으로썬 헤아리지 못한다.

체절음입體絕陰入 심지적멸心智寂滅

그 자체인 五陰六入이 단절되어 心智가 寂滅하다’[무위의 이치를 밝혔다]

 

이부운진수삼위而復云進修三位 적덕미광積德彌廣

다시 말하기를 '十地 가운데 七地이상 十地까지의 三位에 進修하여야만

쌓인 공덕이 더욱 광대해진다'라고 하였다[좋아하고 숭상하는 마음을 밝혔다]

 

부진수본어호상夫進修本於好尚 적덕생어섭구積德生於涉求

진수進修하는 것은 좋아하며 숭상함을 근본 했기 때문이며

공덕을 쌓음은 거닐면서 찾는데서 일어난다.

 

호상즉취사정현好尚則取捨情現

좋아하며 숭상했다면 좋은 것은 취하고 싫은 것은 버리는

허망한 상대적인 시비의 마음이 나타나고

 

섭구즉손익교진涉求則損益交陳

거닐면서 구했다면 손과 익이 교대로 목전에 진열하게 된다.

 

기이취사위심既以取捨為心 법신보살은 이처럼 이미 취하고 버리는 것으로써 마음을 삼고

손익위체損益為體 손익으로써 무위법을 참구하는 수행을 했다.

 

이왈체절음입而曰體絕陰入 심지적멸心智寂滅

그런데도 '자체에는 五陰과 六入이 단절하여 심지가 적멸하다'고 말하였다.

 

차문괴치수此文乖致殊 이회지일인而會之一人

이는 문장이 어긋나고 이치마저 다른데도 이것을 한사람 법신보살에게 회통시켰다.

 

무이지남위북無異指南為北 이효미부以曉迷夫

이는 마치 남쪽을 가리켜 북쪽이라 하면서

방향에 미혹한 사람을 깨우치려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하리라.

 

<註解>

여기에서는 앞에서의 진수와 損益의 자취를 이어 이로써 질문을 일으켰다.

경전에서 지칭한 법신보살 이상이란 최초로 보살지에 올라

법신에 계합하고 나서 진여의 이치를 증득했음을 말한다.

 

그 때문에 '진여무위의 세계로 들어갔다'라고 말하였으며

無分別根本智로써 몸을 나타내고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기 때문에

'마음은 지혜로써 알지 못하고 형체는 형상으로써 헤아리지 못한다.'라고 말하였으며

7地에 이르러서 根本藏識을 단박에 버린다.

 

그 때문에 '자체엔 오음과 육입이 단절하였다'라고 말하였으며

여기에서 평등한 진여의 이치를 증득했기 때문에 '심지가 적멸하다'라고 말하였다.

 

여기서부터 다시 나머지 삼위에 進修해야만 佛果를 성취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경전에서 인용하여 이 문제를 조사하고 단정하였으며 다음에서는 질문한 의도를 폈다

 

유명이 말한 의도는 이렇다

진수進修와 積德을 좋아하고 숭상하고 거닐며 찾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좋아하며 숭상한다면 取捨의 虛妄한 마음을 잊지 못하게 되고

거닐면서 德을 구한다면 덕에 대한 損益이 교대로 목전에 진열하게 된다.

이미 취사와 손익에 대한 마음이 있고 나면 요동하는 시끄러움이 쉬지 않게 된다.

그런데도 다시 말하길 '자체에 오음과 육입이 단절하고 심지가 적멸하다'라고 하였다.

 

이는 문장이 이치와 어긋난다.

어떻게 이를 한 사람에게 회통하여 요동하는 유위의 마음으로써 고요한 무위의 이치를 이하겠는가

이는 남쪽을 가리키며 북쪽이라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