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린다왕문경 서장序章
미린다왕문경彌蘭陀王問經
서장序章
귀경게歸敬偈
그 행위가 모든 세간에
이익을 주는 위대한 성자,
부사의不思議한 힘을 지닌
최상의 도사導師에게 귀의합니다.
그 행이 구족하면서도
출가하여 무상의 깨달음을
얻은 성자가 공경하는
최상의 법에 귀의합니다.
서문序文
-종교적 주제가 아닌 세속적 설화-
옛날,
유명한 수도首都 사아가라(捨竭)의 미린다 왕은
세계에서 저명한 현인賢人 나아가세나에게로 갔다.
마치 간지스강이 보다 깊은 바다로 흘러들어 가듯이.
담론談論에 솜씨 있는 왕은 진리의 횃불을 들고
마음의 어두움을 쫓아버린 나아가세나에게
참과 거짓을 가려내는-
여러 가지 점에 대하여 미묘하고 어려운 질문을 했다.
이 질문에 주어진 해답은
듣는 이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귀를 즐겁게 하며 신기하고 오묘함을 느끼게 했다.
나아가세나의 담론은 수트라(經)의 모든 그물코(網絲)를 이루고
비유와 논증論證으로 강하게 반짝이며,
비나야(律)와 아비달마(論)의 신비한 심연에까지 스며들었다.
오라, 그대들이여,
와서, 그대의 머리를 빛나게 하고 그대의 마음을 기쁘게 하라.
그리고 모든 의심의 실마리를 풀어주는 이들 미묘한 질문과 해답에 귀를 기울이라.
1. 그리스인의 도시
전설에 의하면 요나카인(그리스인) 나라에 여러 가지 물건을 교역하는 중심지 사아가라(捨竭)도시가 있었다.
산수가 수려한 아름다운 지방이었다.
도시에는 공원과 정원과 작은 숲과 호수와 연못이 갖추어 있었고 산수와 숲이 아름다운 낙원을 이루었다.
솜씨 있는 기술자가 설계한 도시라 한다.
그리고 모든 적과 반역자들이 추방되었기 때문에 그곳 사람들은 위험이라곤 전혀 모르고 살았다.
여러 모양의 튼튼한 망탑望塔과 성벽城壁이 있고 우뚝 솟은 성문과 탑문이 있었다.
한가운데에 흰 성벽과 깊은 참호로 둘러싸인 국왕의 성채가 보였다.
거리와 광장과 십자로와 장터가 잘 나뉘어져 있고 상점에는 값비싼 많은 상품이 수북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또 수백 개의 보시당布施堂도 화사하게 꾸며져 있고 수많은 커다란 저택이 히말라야 산봉우리처럼 늘어서 있었다.
거리는 코끼리와 말과 마차와 보행자들로 붐볐으며 상냥한 남녀들이 짝을 지어 빈번히 출입하곤 했다.
온갖 신분의 사람들 즉 크샤트리야(刹帝利ㆍ王族)와
바라문婆羅門(司祭者)과 바이샤(吠捨ㆍ平民)와 수우드라(首陀羅ㆍ奴隸)들로 붐볐다.
사람들은 모든 종족의 스승-수행자와 바라문-을 환대했다.
그리고 도시에는 여러 학파의 지도자들이 많이 왕래했다.
상점에는 카아시이와 코톰바라에서 짜낸 옷감과 갖가지 의류로 가득했다.
보시당布施堂에서는 향내가 흘러나오고,온갖 종류의 꽃과 향의 그윽한 향기가 풍기고 있었다.
눈길을 끄는 많은 재보가 가득 차 있고 화려한 상품을 진열한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도시는 금ㆍ은ㆍ구리ㆍ보석으로 가득 차 있어 눈부신 보물의 나라와도 같았다.
곡식과 재산과 일용의 물자가 창고에 가득했다.
부유하기로는 울타라쿠루에 비길 만하고 영광스럽기로는 毘沙門天의 수도인 알라카만다를 닮았다.
지금까지 사아가라 지방에 관한 이야기를 해 왔다.
이제 우리는 두 사람 즉 미린다 왕과 나아가세나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여섯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이야기 할까 한다.
① 그들의 전생이야기, ② 미린다 왕의 난문難問, ③ 특징에 관한 질문, ④ 반론反論에서 생기는 난제難題,
⑤ 추리推理에서 생기는 난제, ⑥ 비유譬喩에 관한 논의論議등이다.
이 가운데 미린다 왕의 난문은 특징에 관한 질문과 의문을 없애기 위한 문제의 두 가지로 되어 있고
반론에서 생기는 난제는 긴 대목(大品)과 수행론자脩行論者에 대한 두 가지로 되어 있다.
2. 전생前生 이야기
옛날 카아샤파(迦葉) 부처가 불법을 펴고 계실 때 간지스강 근방에 많은 비구比丘들이 살고 있었다.
계율과 본분을 잘 지키는 비구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긴 빗자루를 들고 마음속으로
부처님의 공덕을 외우며 경내의 청소를 하는 것이 일과의 하나였다.
쓰레기가 모여 산더미처럼 쌓였다.
어느 날 한 비구가 사미沙彌에게 그 쓰레기 더미를 치우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미는 못 들은 척하고 지나가 버렸다.
비구는 그를 아주 고집 센 풋나기로 알고 화를 내며 빗자루로 때렸다.
사미는 감히 거역할 수 없는 두려움 때문에 울면서 그 일을 해치웠다.
그리고 사미는 최초의 발원을 세웠다.
‘이 쓰레기를 치우는 공덕으로 열반涅槃에 이를 때까지 다시 어디에 태어나든지
한낮의 태양처럼 커다란 위력과 광채를 갖게 해 주십시오’라고.
그는 쓰레기를 치우고 간지스 강가로 목욕하러 나갔다.
거기서 그는 강물이 세차게 물결치는 것을 보고 두 번째 발원을 세웠다.
‘열반에 이를 때까지 다시 어디에 태어나든지 간지스 강 물결이 파도치는 것처럼
척척 대답하는 말재주와 다할 줄 모르는 말재주를 갖게 해주십시오’라고.
그런데 비구도 빗자루를 헛간에다 치워 놓고 목욕하러 간지스 강가를 배회徘徊하다가
우연히 그 풋나기 사미가 발원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때 그는 마음속으로
‘사미도 저렇게 발원을 하는데 나라고 어찌 발원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하고 발원을 세웠다.
‘열반에 이를 때까지 어디에 태어나든지 간지스 강의 세찬 파도와 같이
다할 줄 모르는 말재주를 갖게 해 주시고
저 사미가 묻는 하나하나의 질문과 난제難題를 환하게 풀어 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 주십시오‘하였다.
이 두 사람은 각기 天上과 人間界를 윤회하면서 한 부처의 출현에서 다음 부처의 출현까지의 기간을 지냈다.
그런데 카아샤파 부처에 의하여 이들의 미래는 다음과 같이 예언 되었다.
‘내가 죽은 五백년 뒤, 두 사람은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르친 오묘한 진리와 계율은 두 사람의 문답과
비유의 적용으로 풀기 어려운 실마리가 풀리고 분명하게 될 것이다‘고.
뒷날 이 두 사람은 예언대로 각기 왕과 비구로 태어났다.
3. 해후解逅
오랜 뒤의 어느 날 미란다 왕은 4軍(象ㆍ馬ㆍ戰車ㆍ步兵)으로 조직된 무수한 병력을 시외에서 사열했다.
사열을 끝낸 뒤 쾌락론자·궤변론자들과 토론하기를 바란 왕은 높이 솟은 해를 쳐다보고 나서 侍臣들에게 말했다.
“날은 아직 훤하다. 이처럼 일찍 시내에 들어간들 무엇 하겠는가?
현자든 수행자든 바라문이든 또는 교단이나 학파의 지도자든, 대중의 도사導師이든
- 심지어 부처라든가 正等覺者라고 지칭하는 사람까지도 -
누구든 나와 토론하여 나의 의문을 풀어줄 사람은 없을까?”
이 무렵 수많은 아라한들이 히말라야 산록의 랏기다라에 모여 나아가세나 존자를 만나고자 하였다.
아라한들의 만나고자 하는 전갈을 받은 나아가세나 존자는 아라한들 앞에 나타났다.
수많은 아라한들은 나아가세나 존자에게 말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미린다 왕은 어려운 문제와 반대론을 가지고 질문하여 비구 대중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저 미린다 왕을 굴복시켜 주십시오.”
“존자들이여, 미린다 왕 뿐 아니라 전인도의 왕들이 나에게 와서 질문 하더라도
나는 모든 난문難問에 대답하여 해결해 보겠습니다.
그대들은 두려워하지 말고 사아가라 시로 가십시오.”
그래서 장로와 비구들은 사아가라로 돌아갔다.
한편 한 바라문을 난문으로 물리친 미린다 왕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정말 전 인도는 빈 껍질이다. 정말 왕겨와 같다.
대론하여 나의 의심을 없애 줄 수 있는 출가자나 바라문은 한 사람도 없구나.”
그러나 미린다 왕은 주위의 요나카(그리이스) 군중들이 아무 두려움 없이 침착해 있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아니다. 이 요나카 군중들이 조용히 있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나와 대론할 수 있는 박식한 비구가 있을 거야.”
그래서 미린다 왕은 요나카 인들에게 물었다.
“신하들이여, 나와 대론하고 나의 의심을 없애 줄 수 있는 다른 박식한 비구가 있는가.”
이때 나아가세나 존자는 비구들을 거느리고 촌락ㆍ읍ㆍ도시를 탁발하여 돌아다니면서
점차 사아가라에 가까이 오고 있었다.
나아가세나 존자는 승단의 지도자요, 가나(제자의 집단)의 우두머리였다.
그의 이름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 명성이 높았고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는 또 현자요, 학자이며, 지혜가 있고 총명하고, 박식하고, 교양 있고, 자신 있는 수도승이었다.
미란다 왕의 신하 데바만티야는 왕에게 말했다.
“대왕이여,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나아가세나라는 장로가 오고 있습니다.
그 분은 박식하여 유능하고 지혜로우며, 용기 있고 多聞하며 담론에 뛰어나고, 말솜씨가 시원시원합니다.
부처님의 정신과 가르침을 해설함에 있어서나 이단자異端者를 굴복시킴에 걸림이 없고,
자재한 능력을 가진 아주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 분은 지금 상케이야 승방에 살고 계십니다. 대왕이여,
그 곳에 가서 그 분에게 질문을 해 보십시오.
그 분은 대왕과 대론하여 대왕의 의문을 풀어줄 수 있을 줄로 압니다.”
미린다 왕은 나아가세나에 대한 소개말을 듣자 갑자기 두렵고 불안하여 머리끝이 오싹했다.
그리고 그는 데바만티야에게 다구쳐 물었다.
“정말 그러한가?”
『대왕이여, 그 분은 인드라ㆍ마야ㆍ바루나ㆍ쿠베라.푸라쟈아파티ㆍ수야아마ㆍ상투시타 등의 수호신들과
또 사람의 조상인 부라흐마아와도 대론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사람과의 대론이겠습니까.”
“그러면 데바만티야, 그 분에게 내가 찾아뵈러 간다는 전갈을 보내라.”
데바만티야는 왕의 분부대로 전갈을 보냈다. 그리고 나아가세나 존자는 와도 좋다는 회답을 했다.
왕은 오백 명의 요나카 인을 이끌고 훌륭한 수레에 올라 거대한 수행원들과 함께
나아가세나 존자가 있는 상케이야 승방으로 갔다.
그때 나아가세나 존자는 8만 명의 비구들과 함께 뜰 안 정자에 앉아 있었다.
미린다 왕은 나아가세나 존자와 거기 모인 무리를 멀리서 보고 데바만티야에게 물었다.
“데바만티야, 저 큰 모임은 누구의 회상인가?”
“대왕이여, 나아가세나 존자의 회상입니다.”
그때 미린다 왕은 그 대회 중을 머리 바라보자 다시 두렵고 불안하기 시작했다.
미린다 왕은 마치 코뿔소에게 포위당한 코끼리와 같이 가루라새(金銊鳥)에게 포위 당한 용과 같이,
뱀에게 쫓기는 개구리와 같이, 표범에게 쫓기는 사슴과 같이, 고양이를 만난 쥐와 같이, 무당을 만난 악마와 같이,
새장에 갇힌 새와 같이, 그물에 걸린 물고기와 같이, 임종臨終을 맞이한 天子와 같이 부들부들 떨며 두려워하고
불안해 하다가 공포의 괴로움으로 정신을 잃을 뻔했다.
그러나 적어도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는 것만은 피해야겠다고 정신을 가다듬은 다음
용기를 내어 데바만티야에게 말했다.
“데바만티야, 나에게 어느 분이 나아가세나 존자인가를 가르쳐 줄 필요는 없다.
일러 주지 않아도 나는 나아가세나 존자를 알아낼 수 있다.”
“그렇습니다. 대왕께서는 틀림없이 그를 알아보실 것입니다.”
나아가세나 존자는 비구들 가운데서 앞쪽에 앉은
4만명의 비구보다 젊고 뒤쪽에 앉은 4만 명의 비구보다 연장이었다.
미린다 왕은 멀리서 앞자리와 뒷자리와 중앙에 앉은 모든 비구의 무리를 둘러보고
나아가세나 존자가 바로 중앙에 앉아 있음을 알았다.
왕은 두려움이나 놀람이 없고 공포와 전율이 전혀 없는 모습을 보고
그 분이 바로 나아가세나 존자임을 알아 차렸다.
왕은 데바만티야에게 저 분이 바로 나아가세나 존자냐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대왕이여, 저 분이 바로 나아가세나 존자입니다.
대왕께서는 나아가세나 존자를 잘 알아 보셨습니다.”
왕은 남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나아가세나 존자를 알아보았음을 기뻐했다.
그러나 미린다 왕은 나아가세나 존자를 보자마자 두렵고 얼떨떨하고 또 불안해졌다.
이때의 정경을 읊은 시는 다음과 같다.
현명하고 청정淸淨하며 가장 훌륭하고 유감없이 자신을 잘 다스리는
나아가세나 존자를 보고 미린다 왕은 이렇게 말했도다.
많은 논사論師를 만났고 많은 대론對論을 해 보았으나
오늘처럼 놀람과 두려움으로 마음을 압도당한 일은 결코 없었다.
아마도 오늘은 내가 패배하고 승리는 나아가세나 존자에게 갈 것이다.
내 마음은 몹시 불안하도다.
/연인사 道窓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