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言詩 24. 계묘세시춘회고전사癸卯歲始春懷古田舍 2首
계묘세시춘회고전사癸卯歲始春懷古田舍 2首
계묘년에 농가에서 옛일을 회상하며 봄 밭갈이를 시작하다
其一
재석문남무在昔聞南畝 예전에 남쪽 밭에 대해 듣긴 했어도,
당년경미천當年竟未踐 그때는 끝내 농사를 지어보지 못했다.
누공기유인屢空既有人 자주 끼니를 굶는 안회와 같은 사람이 있었거늘
춘흥기자면春興豈自免 봄 밭갈이를 어찌 하지 않을 수 있으랴?
숙신장오가夙晨裝吾駕 이른 아침 내 수레를 준비해놓고
계도정이면啟塗情已緬 길 떠나니 마음은 벌써 저 멀리를 향한다.
조롱환신절鳥哢歡新節 새들은 지저귀며 새봄을 기뻐하고
냉풍송여선泠風送餘善 시원한 바람은 넉넉한 선심을 베푸네.
한죽피황혜寒竹被荒蹊 겨울 대나무는 황폐한 길을 덮어 우거졌고(竹↔草)
지위한인원地為罕人遠 대지는 인적 없이 멀리 펼쳐져 있다.
시이식장옹是以植杖翁 그러기에 지팡이 꽂고 김매던 노인네는
유연불복반悠然不復返 유유자적하여 다시는 세속에 돌아가지 않았구나.
즉리괴통식即理愧通識 도리를 따지는 것은 식견을 통달한 이들에게 부끄럽지만
소보거내천所保詎乃淺 이내 절조를 보전하는 것이 어찌 천박하기만 하겠는가?
►계묘세癸卯歲 진晉 안제安帝 원흥元興 2년(403). 도연명이 39세 때.
►전사田舍 농부의 집. 전가田家
►남무南畝 남쪽 밭.
►밟을 천踐 밟다. 농사를 짓다.
►누공屢空 자주 끼니를 굶다. 매우 가난함.
자왈子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회야기서호回也其庶乎 루공屢空 안회는 도에 가까웠고 자주 끼니를 굶었다./<논어 선진>
►유인有人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를 말한다.
►춘흥春興 봄철의 흥취. 봄날에 농사를 시작하다.
►숙신夙晨 이른 아침. 새벽.
►장오가裝吾駕 농사를 짓는 거마와 농구를 준비하다.
►계도啓塗 출발하다.
►정이면情已緬 생각은 아득히 멀리를 이미 생각한다. ‘멀 면緬’ 멀다.
►냉풍冷風 산들바람. 시원한 바람.
►여선餘善 넘치는 즐거움.
►피황혜被荒蹊 황량한 오솔길에 뒤덮여 있다.
►한인罕人 인적이 드물다.
►식장옹植杖翁 지팡이를 땅에 꽂은 채 농사를 짓는 노인.
장인왈丈人曰 장인丈人이 말하기를
사체불근四體不勤 사지四肢를 부지런히 하지 않고
오곡불분五穀不分 오곡을 분별하지 못하니
숙위부자孰為夫子 누구를 선생이라 하는가?
식기장이운植其杖而芸 지팡이를 꽂아놓고 김을 매었다./<논어 미자微子>
►즉리即理 사물의 이치. 은거하며 농사짓는 것을 말한다.
►통식通識 식견이 통달된 고명한 사람.
►소보所保 개인의 명예와 절조를 보전하다.
►‘어찌 거詎’ 어찌. 부터. 몇
其二
선사유유훈先師有遺訓 공자孔子께서 남기신 가르침에
우도불우빈憂道不憂貧 도道를 걱정하되 가난은 걱정 말라하셨다.
첨망막난체瞻望邈難逮 우러러보아도 아득하고 도달하기 어렵기에
전욕지장근轉欲志長勤 생각 바꿔 길이 농사에 힘써 볼까 한다.
병뢰환시무秉耒歡時務 쟁기 잡고 즐겁게 때맞춰 농사짓고
해안권농인解顏勸農人 웃음 띤 얼굴로 농부들을 격려한다네.
평주교원풍平疇交遠風 평탄한 넓은 밭에는 멀리서 바람 불어오고
양묘역회신良苗亦懷新 좋은 벼 싹들도 새로운 생기 품고 있다.
수미량세공雖未量歲功 일년 수확은 아직 알 수 없으나
즉사다소흔即事多所欣 눈앞의 농사일에 즐거움이 한량없다네.
경종유시식耕種有時息 밭 갈고 씨 뿌리며 때때로 쉬건만
행자무문진行者無問津 나루터 묻는 행인도 없네.
일입상여귀日入相與歸 해가 지면 함께 돌아와
호장노근린壺漿勞近隣 술병 들고 이웃 사람 위로한다네.
장음엄시문長吟掩柴門 사립문 닫으며 길게 읊조리니
요위롱무민聊為隴畝民 그럭저럭 농부가 된 것 같다네.
►선사先師 공자孔子에 대한 존칭.
►우도불우빈憂道不憂貧 도를 걱정하고 가난함을 걱정하지 않는다.
자왈子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모도불모식君子謀道不謀食 군자는 道를 도모하고 밥을 도모하지 않는다.
경야耕也 뇌재기중의餒在其中矣 밭을 갊에 굶주림이 그 가운데에 있고
학야學也 록재기중의祿在其中矣 학문을 함에 녹祿이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니
군자우도불우빈君子憂道不憂貧 군자는 道를 걱정하고 가난함을 걱정하지 않는다./<論語 衛靈公>
►첨망瞻望 우러러보다.
►막난체邈難逮 아득히 멀어 도달하기 어렵다.
►가래 뢰/뇌耒 쟁기.
►시무時務 농사.
►해안解顔 얼굴에 웃음을 띰.
►평주平疇 평평한 논밭.
►회신懷新 보리 싹이 생기를 품고 있다.
►세공歲功 1년 농사의 수확.
►즉사卽事 눈앞의 일과 풍물.
►문진問津 나루터를 묻다.
장저걸닉우이경長沮桀溺耦而耕 장저長沮·걸익桀溺이 함께 밭을 갈고 있었는데
공자과지孔子過之 공자께서 지나다가
사자로문진언使子路問津焉 자로를 시켜 그들에게 나루를 묻게 하셨다/<논어論語 미자微子>편
►호장壺漿 술. 병에 담은 음료수.
►일할 로/노勞 위로하다.
►귀 울 료/요聊 그럭저럭.
►농무민隴畝民 농민. ‘롱무隴畝’는 밭이랑.
<도연명집陶淵明集>에 실려 있으며 진晉 안제安帝 원흥元興 2년(403) 도연명의 나이 39세 봄에 지은 시이다.
37세 때(401) 강릉江陵에 머물고 있는 환현桓玄의 밑에서 벼슬을 하다가 휴가를 얻어 고향에 다녀온 뒤
다시 다음 해(402) 어머니 상을 당하여 농사짓는 고향 집으로 돌아와 이 시를 지은 것이다.
403년 봄에 남쪽 발에서 가난 때문에 몸소 밭을 갈며 생활하기로 결심하고
이웃들과 어울려 은거의 삶을 사는 즐거움을 표현한 시이다.
그는 이미 벼슬살이보다도 전에 일구어 놓은 땅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세상으로부터 숨어 살면서 농사나 지으려는 뜻을 갖고 있었다.
첫째 시에서는 자신이 일구어 놓은 땅이 있는 시골로 돌아가겠다는 마음을 읊고 있지만,
둘째 시에서는 어렵게 농사짓는 즐거움을 읊고 있다.
그리고 이 시를 "길게 읊조리며 울타리 문을 닫고 그대로 농사짓는 백성이 되려네."
라는 말로 끝맺고 있다.
벼슬을 그만두고 전원으로 돌아가겠다는 도연명의 마음은 이때에 이미 그의 가슴속에 분명히 도사리고 있었다.
도연명이 산 동진 시대는 매우 정치가 어지러웠던 시대였음으로
시인이 겪은 짧은 동안의 벼슬살이는 더욱 세상일로부터 그의 정을 멀어지게 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