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도연명陶淵明

기記 전傳 술述 찬贊 3.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

空空 2025. 2. 22. 13:49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幷贊)

선생부지하허인야先生不知何許人也 선생은 어느 곳의 사람인지 알지 못하고

역불상기성자亦不詳其姓字 그 성명과 자字도 자세하지 않다.

댁변유오류수宅邊有五柳樹 집 주변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가 있었으니

인이위호언因以為號焉 그것으로 호號를 삼았다.

 

한정소언閑靜少言 불모영리不慕榮利 한가롭고 조용하여 말이 적었으며, 명예나 실리를 바라지 않았다.

호독서好讀書 불구심해不求甚解 책읽기를 좋아했지만 깊이 이해하려 하지 않았으며

매유회의毎有會意 변흔연망식便欣然忘食 매번 뜻이 맞는 글이 있으면 즐거워하시며 밥 먹는 것도 잊곤 하였다.

 

성기주性嗜酒 성품이 술을 좋아하지만

가빈불능상득家貧不能常得 집이 가난하여 항상 즐기지는 못 하였으며

친구지기여차親舊知其如此 친척과 친구들이 이와 같은 처지를 알고는

혹치주이초지或置酒而招之 간혹 술을 준비하여 그를 불렀다.

 

조음첩진造飲輒盡 술자리에 이르러서는 번번이 다 마셔버려

기재필취期在必醉 반드시 취하고자 하였으며

기취이퇴既醉而退 취한 뒤에는 물러나는데

증불린정거류曾不吝情去留 가고 머무름에 전혀 미련을 두지 않았다.

 

환도소연環堵蕭然 좁은 집안에는 아무것도 없어 가난했으며

불폐풍일不蔽風日 바람과 햇빛을 가리지도 못하였고

단갈천결短褐穿結 짧은 베옷을 기워 입으시고

단표루공簞瓢屢空 안여야晏如也 밥그릇이 자주 비어도 태연하였다.

 

상저문장자오常著文章自娛 파시기지頗示己志 항상 문장을 지어 스스로 즐기면서, 자못 자신의 뜻을 나타내었다.

망회득실忘懷得失 이차자종以此自終 득실에 대한 생각을 버리어, 이렇게 자신의 일생을 마치려 하였다.

 

찬왈贊曰 논평하시기를

검루지처유언黔婁之妻有言 검루黔婁의 처가 남편이 죽은 뒤에 말하기를

 

불척척어빈천不戚戚於貧賤 불급급어부귀不汲汲於富貴

‘고인께서는 빈천을 겁내지 않으셨고 부귀를 부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말하였다고 찬양하였다.

 

극기언極其言 그 말을 잘 새겨보면

자약인지주호茲若人之儔乎 이 사람 오류선생은 검루와 같은 무리 아니겠는가?

 

감상부시酣觴賦詩 이락기지以樂其志 술을 즐기고 시를 지어 그 뜻을 즐기셨다.

무회씨지민여無懷氏之民歟 ​무회씨無懷氏의 백성인가?

갈천씨지민여葛天氏之民歟 갈천씨葛天氏의 백성인가?

 

►하허인何許人 어느 곳의 사람. 어디 사람. ‘허락할 허/나라 이름 허, 이영차 호許’는 곳, 장소.

►한정閑靖 한가하고 조용하다.

►흔연欣然 매우 즐거워함.

►친구親舊 친척과 친구.

►치주置酒 술자리를 마련하다.

►조음造飮 술 먹는 자리에 나가다.

 

►첩진輒盡 번번이 다 마시다.

►기재필취期在必醉 꼭 술에 취하고자 하다. ‘기약할 기期’는 바라다.

►증불曾不 전혀 ~하지 않다.

►인정吝情 아쉽다. 미련이 남다.

►환도소연環堵蕭然 집안에 아무것도 없이 매우 가난함을 이르는 말.

‘환도環堵’는 흙 담으로 둘러싸인 좁은 집. ‘소연蕭然’은 적막하고 조용하다.

 

►단갈短褐 굵은 베로 짧게 지은 옷. 짧은 베잠방이.

►단표루공簞瓢屢空 생활이 매우 가난함을 이름.

‘소쿠리 단簞’은 대나 고리로 짠 바구니,‘ 바가지 표瓢’는 표주박. ‘여러 루(누)屢’는 자주, 언제나.

 

►안여晏如 태연스러움.

►자종自終 자신의 일생을 마치다.

►‘도울 찬贊’ 논평하다. 인물이나 사물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은 옛날 문체의 일종.

►검루黔婁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은사隱士.

청렴결백하여 벼슬살이를 하지 않았는데 그가 죽자 그의 시체는 누더기가 걸쳐진 상태였고

시체를 덮은 헝겊이 짧아 발이 다 드러났다.

 

문상을 간 증자曾子가 헝겊을 비스듬히 돌려서 손발을 덮으려하자 검루의 처가

“고인께서는 바른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헝겊을 비뚤게 놓는 것은 사邪라 좋지 않습니다.

또 고인께서는 빈천을 겁내지 않으셨고 부귀를 부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했다./유향劉向 <열녀전烈女傳>

 

►척척戚戚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모양.

►급급汲汲 한 가지 일에만 정신을 쏟아 골똘함.

►‘무성할 자兹’ 이. 이에.

►약인若人 이 사람. 즉 오류선생(五柳先生)을 말한다.

 

►‘무리 주儔’ 무리. 동아리.

►감상酣觴 술잔을 돌려가며 실컷 마심.

►무회씨無懷氏 갈천씨葛天氏

전설적 상고시대의 제왕으로 교화에 힘써 백성의 생활이 안락하고 세상이 태평했다고 한다.

 

 

도연명이 자신의 집 주변에 버드나무가 다섯 그루 있다하여

자신을 五柳先生이라 호號를 정하고 자신의 생활관과 인생관을 독서, 음주, 문장을 들어 자찬한 글이다.

 

 

<五柳先生>

선생은 어디 사람인지 알 수 없고 그 이름도 자세하지 않다.

집 주변에 다섯 그루 버들이 있어서 그것을 따서 이름을 삼았다.

 

조용하고 말이 없으며 부귀영화를 사모하지 않았다.

독서를 좋아하였으나 깊이 따지지 않았으며 매번 뜻에 맞는 글을 얻으면 식사를 잊을 정도로 기뻐하였다.

 

성품은 술을 좋아하였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늘 얻을 수가 없었다.

친구들이 이를 알고 간혹 술자리를 마련하여 그를 부르면 가서 마시는데 반드시 취할 때까지 진탕 마셨다.

취한 후에는 물러나는데 일찍이 가고 머무름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둘러싼 담벼락은 쓸쓸한데 바람과 햇빛을 가리지 못하였으며 짧은 베옷을 기워 입고

밥그릇 국그릇은 늘 비었으나 편안하였다.

 

항상 글을 지어 즐기며 자못 자신의 뜻을 보여주었다.

득실을 잊고 이렇게 살다 삶을 마쳤다.

 

 

방도공구택訪陶公舊宅 병서幷序

도연명의 옛집을 방문하여/백거이白居易(772-846)

 

[序]

여숙모도연명위인余夙慕陶淵明爲人 내가 일찍부터 도연명의 사람됨을 사모하여

왕세위상한거往歲渭上閑居 옛날에 위수渭水가에서 한가로이 지내며

상유효도체시십육수嘗有效陶體詩十六首 도연명의 시체詩體를 본뜬 16수의 시를 지은 적이 있었다.

 

금유여산今遊廬山 경시상經柴桑 과율리過栗里 지금 여산에 유람 왔다가 시상을 지나 율리를 방문하였다.

사기인思其人 방기택訪其宅 그 사람을 그리워하며 그의 옛집을 찾으니

불능묵묵不能黙黙 말이 없을 수 없어 다시 이 시를 짓는다.

 

[本文]

구진불오옥垢塵不汚玉 때와 먼지도 옥을 더럽히지 못하고

영황불탁전靈凰不啄羶 신령스러운 봉황은 비린 것을 먹지 않는다.

 

명호도정절鳴呼陶靖節 아아! 도정절 선생은

생피진송간生彼晋宋間 저 진晋나라와 송宋나라 시기에 살면서

심실유소수心實有所守 마음속에 진실로 지키는 바 있었으나

구종불능언口終不能言 입으로 끝내 말해 내지 못했다.

 

영유고죽자永惟孤竹子 내내 고죽군의 두 아들 생각하였으니

불의수양산拂衣首陽山 옷 떨치고 수양산으로 갔다지.

이제각일신夷齊各一身 백이와 숙제는 각기 다른 사람인데

궁아미위난窮餓未爲難 (똑같이)곤궁과 배고픔을 어렵게 여기지 않았다.

 

선생유오남先生有五男 선생도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

여지동기한與之同飢寒 그들과 함께 굶주리고 추웠지.

장중식불충腸中食不充 뱃속에는 먹은 것이 부족했고

신상의불완身上衣不完 몸 위에는 입은 것이 허술했다.

 

연징경불기連徵竟不起 조정에서 계속 불러도 끝내 나서지 않았으니

사가위진현斯可爲眞賢 이야말로 진정한 현자라고 할 만하다.

 

아생군지후我生君之後 내가 선생의 후대에 태어나

상거오백년相去五百年 서로 떨어진 것이 오백 년이나 되지만

매독오류전每讀五柳傳 매번 <五柳先生傳>을 볼 때마다

목상심권권目想心拳拳 눈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사모한다.

 

석상영유풍昔嘗詠遺風 옛날에 일찍이 그 유풍을 읊조려

저위십육편著爲十六篇 16편의 시를 지었는데

금래방고택今來訪故宅 이제 찾아와 옛집을 둘러보니

삼약군재전森若君在前 엄연히 선생이 눈앞에 계신 듯하다.

 

불모준유주不慕樽有酒 술동이에 술이 있던 것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불모금무현不慕琴無絃 거문고에 줄이 없던 것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모군유영리慕君遺榮利 선생이 영달과 이익을 초월했던 것이 그리운데

노사차구원老死此丘園 이곳의 언덕에 늙어서 잠드셨구나.

 

시상고촌락柴桑古村落 시상의 오래 된 촌락과

율리구산천栗里舊山川 율리의 옛 산천에

불견리하국不見籬下菊 울 아래 국화는 보이지 않고

단여허중연但餘墟中煙 다만 마을의 연기만 남아 있다.

 

자손수무문子孫雖無聞 후손에 대해서는 들어보지 못했지만

족씨유미천族氏猶未遷 같은 성씨는 아직도 살고 있다.

매봉성도인每逢姓陶人 도씨 성을 가진 사람을 만날 때마다

변아심의연便我心依然 나도 하여금 마음속에 그립게 하는구나.

/도연명 산문집 김창환 역주

 

 

당唐 원화元和 11년(816), 백거이 45세에 도연명의 고택을 방문하고 지은 것이다.

서문에서

금유여산今遊廬山 경시상經柴桑 과율리過栗里

지금 여산에 유람 왔다가 시상을 지나 율리를 방문하였다.

라고 한 데서 당시 도연명의 고택은 율리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도연명의 옛집을 방문하여>

 

티끌은 옥을 더럽히지 못하고

봉황새 누린내 나는 고기를 먹지 않지요.

 

아, 도연명 선생이시어

진晉 송宋의 교체기에 태어나

마음에는 진실로 고수하는 바 있었지만

입으로는 끝내 말할 수 없었지요.

 

항상 백이伯夷 숙제叔齊와 같이

수양산首陽山에 은둔할 것을 생각했는데

백이 숙제는 각각 독신이어서

굶주림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지만

 

선생은 다섯 아들을 두시어

굶주림과 추위를 함께 겪으며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없었고

몸에는 온전한 의복마저 없었지요.

 

여러 차례 조정에서 불렀지만

그럼에도 일어나 나아가지 않으시어

참으로 현인이라 부를 수 있나니

 

내 당신의 뒷시대에 태어나

서로 오백 년이 떨어져 있지만

매번 <五柳先生傳>을 읽으며

눈으로 그려보고 마음에 못 잊어 하지요.

 

지난 날 남기신 풍도風度를 읊어

열여섯 수의 시를 짓기도 했는데

오늘 와서 옛집을 찾아보니

당신의 모습 눈앞에 선합니다.

 

술 즐긴 것을 사모해서가 아니고

무현금無玄琴 연주한 것을 사모해서도 아니고

명예와 이익 내던지고

이곳 고향에서 늙어 죽은 것을 사모해서입니다.

 

시상柴桑은 옛날 그 마을이고

율리栗里는 오랜 산천 그대로건만

울타리 아래 국화는 보이지 않고

마을 가운데 연기만 남아 있습니다.

 

자손들 가운데 이름난 이는 없지만

후예들 아직도 옮겨가지 않고 살아

도陶씨인 사람을 만날 때마다

사모하는 마음 여전히 일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