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명과 동시대의 인물 허순許詢
도연명과 동시대의 인물 허순許詢
허순許詢(?-?)
고양高陽 사람으로 허귀許皈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명은 아눌阿訥이고 자는 현도玄度이다.
어렸을 때부터 용모가 출중하였고 사람들로부터 신동으로 불리었다.
부친 허귀가 회계 내사内史가 되자 산음山陰(지금의 저장성 사오싱紹興시)으로 이주했다.
허순은 문장에 능했고 오언시에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왕수와 더불어 널리 알려졌는데 허순은 자신이 왕수와 함께 거론되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동진東晉 시기의 문학가로 왕희지王羲之, 손작孫綽, 지둔支遁 등과 더불어
문명文名을 떨쳤고 종신토록 벼슬을 살지 않았다.
영화永和 9년(353)에 왕희지와 사안, 손작, 허순 등 41인의 명사名士들이
회계 산음의 난정에 모여 서로 시부詩賦를 짓고 <난정집서蘭亭集>를 편집했다.
왕희지와의 우정이 돈독하여 왕희지가 만년에 섬현剡縣 금정에 은거하자 허순은 특별히
소현蕭縣(지금의 안후이安徽성 쑤현)에서 달려와서 이웃이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이백의 시에
“이곳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섬剡의 땅에 들어가서 왕희지와 허순의 자취를 찾는다.”는 시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황로학黃老學(黃帝ㆍ老子)과 시에 능했는데 특히 현언시玄言詩(노장사상을 주 내용으로 하는 시)로 유명하다.
저서로 문집 8권이 있었는데 송나라 이후에 전해지지 않고 단지 그의 오언시 중 대표작으로
〈답유승연시答庾僧淵詩〉〈죽선시竹扇詩〉〈농리시農里詩〉 등이 전해지고 있다.
아들로는 허원지許元之, 허이지許彝之, 허중지許仲之, 허궤지許軌之, 허계지許季之 등이 있다./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