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5권 10-18
매월당 시집 제5권 10-18
10 화초花草
18 작약芍藥 작약꽃
심산오월초수번深山五月草樹繁 깊은 산의 오월은 풀과 나무가 무성하고
홍약당계영소헌紅藥當階映小軒 섬돌 밑의 붉은 작약이 작은 집을 비추네
연옥담홍구불속軟玉淡紅俱不俗 부드러운 옥빛 엷은 붉은색 다 속되지 아니하고
투향협접정소혼偸香蛺蝶正銷魂 향기 탐하는 나비도 정신을 잃는다네
깊은 산 오월달에 풀과 나무 번성한데
붉은 작약 섬돌에서 작은 마루에 비추어 오네.
연옥軟玉 담홍색이 속되지 않아서
향기 훔치는 나비들도 한창 정신을 잃었다네.
►작약芍藥 꽃이 크고 아름다워서 觀賞用으로 庭園에 심음.
뿌리는 重要한 韓藥材로서 뿌리의 빛이 흰 것을 白芍藥, 빛이 붉은 것을 赤芍藥이라 함.
‘함박꽃 작, 연밥 적芍’ 함박꽃, 작약芍藥
►홍약紅藥 작약.
►연옥軟玉 옥의 한 가지.
►담홍淡紅→淡紅色(담홍색)). 엷은 붉은색.
►불속不俗 속俗되지 아니함.
►협접蛺蝶 나비.
►소혼銷魂 (너무 슬프거나 기뻐서) 혼을 뺏기다. 넋이 나가다. 정신[넋]이 빠지다.
●희제계전작약戱題階前芍藥 섬돌 앞 작약芍藥을 노래함/유종원柳宗元(773-819)
범훼여시사凡卉與時謝 꽃들은 시절 따라 시들고 凡卉與時謝 姸華麗茲晨
연화려자신姸華麗茲晨 아름다운 꽃은 이 새벽이 곱구나
의홍취농로欹紅醉濃露 붉은 꽃송이 이슬에 취해 기울고
요조류여춘窈窕留餘春 고요한 아름다움에 남은 봄 붙잡아 두었네
고상백일모孤賞白日暮 홀로 즐기다 해는 저물어 가고,
훤풍동요빈暄風動搖頻 따뜻한 바람 자주 흔드는데.
야창애방기夜窻藹芳氣 밤 창가에 부드러운 향기 가득하니,
유와지상친幽臥知相親 조용히 누우니 서로 친함을 알겠네
원도진유증願到溱洧贈 진수와 유수로 보내 드렸으면 하지만
유유남국인悠悠南國人 멀기만 한 남쪽에 있는 사람이라
►유종원柳宗元(773-819)
唐나라 文人으로 唐宋8大家의 한 사람. 字는 자후子厚. 산서 하동河東 사람.
詩는 自然 묘사描寫에 뛰어나 왕유王維에 버금간다고 傳한다.
한유韓愈와 더불어 6朝 以後 병려체騈儷體 文學의 정체停滯를 타개打開하여
古文 부흥[得興] 운동運動을 제창提唱했다.
‘간담상조肝膽相照 간과 쓸개를 내놓고 서로에게 내보일’ 정도로
서로 마음을 터놓고 친밀하게 사귀거나 그런 관계를 비유하는 말이다.
유종원柳宗元이 유주자사柳州刺史로 任命되었는데
그의 친구親舊 유몽득劉夢得도 파주자사播州刺史로 가게 되었다.
유종원이 그것을 알고 울먹이면서
“파주播州는 몹시 궁벽窮僻한 변방邊方인데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갈 수도 없을 것이고
또한 그 事實을 어떻게 어머님께 알릴 수 있겠는가?
내가 간청懇請하여 몽득夢得 代身 파주播州로 가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했다.
유종원이 유주에서 죽은 후 한유韓愈가 그 友情에 감복感服하여 유종원의 묘지명墓誌銘을 썼다.
그 당시 명문장가 한유는 묘지명을 잘 쓰기로 이름 나 누구나 그에게 묘지명을 청탁했었다.
“사람이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참된 절개와 의리가 드러난다.
평소에는 서로 그리워하고 같이 술을 마시며 놀고 즐겁게 웃는 것이
마치 간과 쓸개를 내보일 것처럼 하면서 죽는 한이 있어도 우정만은 변치 말자고 맹세한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있으면 언제 봤냐는 듯 외면한다.
말은 제법 그럴듯하지만 일단 털끝만큼이라도 이해관계가 생기는 날에는
눈을 부릅뜨고 언제 봤냐는 듯 안면을 바꾼다.
더욱이 함정에 빠져도 손을 뻗쳐 구해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이 빠뜨리고
위에서 돌까지 던지는 인간이 이 세상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이다.”
●작약화芍藥花/노수신盧守愼
막석부생불사타莫惜浮生不似他 덧없는 人生이 꽃 같지 않다고 아쉬워하지 마오.
귀신소식내시하鬼神消息奈時何 귀신鬼神의 소식消息도 때가 있으니 어찌할 것인가.
일조표락종무유一朝飄落終無有 하루아침에 떨어지고 나면 결국 없는 것이니
래세중개시별화來歲重開是別花 내년來年에 다시 피는 것은 다른 꽃이로다.
►노수신盧守愼(1515-1590)
조선 전기의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자는 과회寡悔. 호는 소재蘇齋ㆍ여봉노인茹峯老人ㆍ암실暗室ㆍ이재伊齋.
을사사화 때 순천으로 유배되었다가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루되어 진도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이언적에게 배우고 이황, 김인후 등과도 학문을 논하였다.
경일敬一 공부를 강조하고 도심미발道心未發·인심이발설人心已發說을 주장했다.
충주의 팔봉서원 등에 제향 되었다.
저서에 <소재집蘇齋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