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집 序/이자李耔
매월당집 序/이자李耔
청한자성금淸寒子姓金 명시습名時習 자열경字悅卿
청한자는 성姓이 김씨요 이름은 시습時習이고 자字는 열경이다.
본명주구족야本溟州舊族也 본관은 명주(강릉)의 세습 가문이다.
칠팔세七八歲 통경적通經籍 7, 8세에 4書3經에 통하였고
구세九歲 점시문占詩文 명동경사名動京師 9세에 詩文에 능하여 한양에 이름을 떨쳐
루형천장屢形天奬 여러 번 임금님의 칭찬을 받았다.
►명시습名時習
시습이라는 이름은 이웃에 살던 최치운崔致雲이 지어준 것인데 <論語>의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라는 구절에서 따 온 것이다.
►명주溟州 ‘강릉江陵’의 옛 이름.
김시습은 강릉 김씨 시조인 김주원金周元의 22세 손이다.
신라 제37대 선덕왕宣德王이 785년 후사가 없는 상태에서 죽자 군신들은 화백회의를 열었다.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김춘추 재위 654~661)의 6세손 김주원金周元과
내물왕奈勿王의 12세손 김경신金敬信 중에서 김주원을 국왕으로 추대하였다.
당시 경주에서 북쪽으로 20리나 떨어져 있던 김주원은 경주로 향하였으나 때마침 크나큰 홍수로 알천(북천)이
범람하여 건너갈 수 없어 결국에는 화백회의에 참석을 하지 못했다.
김주원이 화백회의에 참석을 하지 못한 그 사이 상대등 김경신이
왕궁을 점거하고 왕위에 올라 38대 원성왕이 되었다.
반면 왕이 되지 못한 김주원은 차후 자신에게 화가 미칠 것을 염려하여 명주溟州(강릉)로 도피를 하였다
이 지방에는 원래 김주원과 연결된 친족 세력이 있던 곳이었다.
원성왕 2년(786)
왕권 강화와 변방 방어를 위하여 정치력을 발휘해 김주원에게 명주 일대를 식읍으로 하사하여
명주군왕으로 봉하고 동해안 일원인 명주, 양양, 삼척, 울진, 평해, 통천 등을 식읍食邑으로
다스리게 하여 김주원은 이곳에서 일가를 이루었으며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경적經籍 옛 성현聖賢들이 유교儒敎의 사상思想과 교리敎理를 써 놓은 책冊.
<易經·書經·詩經·禮記·春秋·大學·論語·孟子·中庸> 따위를 통틀어 이른다.
성질탕性跌宕 고염기속苦厭羈束 성격이 호방 활달하여 구속되는 것을 괴롭고 싫게 여겼으나
충의분격忠義奮激 충성과 의리에는 뽐내고 격동하여
불능일일수세저앙不能一日隨世低昂 하루도 세상 따라 높낮이를 맞추는 일에 능하지 못해
수탁적치소遂托迹緇素 편력명산遍歷名山 마침내 중이 되어 명산을 두루 다니며
터발흉중뢰괴攄發胸中磊塊 가슴 속 울분을 토할 수 있어
이위운천승업以爲雲泉勝業 운천의 좋은 일이 되었다.
►질탕跌宕(佚蕩) 신이 나서 정도程度가 지나치도록 흥겨움. 또는 그렇게 노는 짓.
►분격奮激 분발奮發하여 마음을 떨쳐 일으킴.
►저앙低昂 낮아졌다 높아졌다 함. 또는 낮추었다 높였다 함.
►탁적托迹 ···에 의탁하다. ···에 의지하다.
►치소緇素 검은 옷과 흰옷을 아울러 이르는 말. 승려와 속인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운천雲泉 폭포瀑布(비천飛泉)나 ‘산속의 샘물[山泉]’ 또는 ‘흰 구름과 맑은 샘’을 뜻하지만
주로 지역 이름 또는 字로 쓰였다.
운천비소탁雲泉非所濯 폭포 물은 씻는 것 아니고
나월불가원蘿月不可援 등나무 사이의 밝은 달은 당길 수 없네.
/위응물韋應物 <운양관회곡구雲陽館懷谷口>
►승업勝業 거룩한 일. 운명적인 것.
관기유람구도觀其遊覽舊都 시습이 옛 도읍들을 유람할 때에는
필배회척촉必徘徊躑躅 강개비가慷慨悲歌 반드시 서성거리고 주춤거리며 비분강개해서 노래 부르며
루월망귀累月忘歸 여러 달씩 돌아가기를 잊었다.
►배회徘徊 같은 장소(場所)를 배회(徘徊)하며 선후(先後)를 보는 모양(模樣)임.
►척촉躑躅 주저하다. 배회하다. 왔다 갔다 하다. 철쭉.
상금도고傷今悼古 류비시인類非詩人 오늘의 일에 마음 상하고 옛일을 슬퍼한다는 것을 본다면
수댁장점귀부자지소능판數宅藏點鬼簿者之所能辦
수댁장數宅藏 점귀부點鬼簿 따위의 詩人이 해 낼 수 있는 바가 아니어서
여심기기위인余甚奇其爲人 내가 매우 기이하게 여겼으나
이언론풍개而言論風介 막언무징邈焉無徵 언론言論이나 풍채가 막연하여 찾을 길이 없었다.
►수댁장數宅藏 옛 詩人이 자기 詩를 오래 전하기 위해 여러 집에 나누어 두는 것.
►점귀부點鬼簿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은 장부帳簿(賬簿).
옛사람의 이름을 많이 따다가 지은 詩文을 놀림조調로 이르는 말.
당唐나라 때의 文章家인 양형楊炯이 詩文 가운데에
옛사람의 이름을 많이 따 넣은 것을 世人이 논평論評한 데서 유래由來한다.
상구구유편嘗購求遺篇 전부터 남아 있는 책[篇]을 구하려고 하여도
이산일태진而散逸殆盡 흩어지고 없어져 거의 찾을 길이 없었는데
적십년積十年 시득삼권始得三卷 10년이나 적공을 들여 겨우 3권을 얻었으니
내기수소찬록乃其手所纂錄 그것은 그의 손으로 편찬하고 기록한 것으로
필적고담筆迹古淡 필적이 예스럽고 담담하며
정사균적整斜勻適 정돈되고 흘려 쓴 것이 고르고 분명하여
약유의어전후자야若有意於傳後者也 후세에 전하려는 뜻이 있는 것 같았다.
►산일散逸 흩어져 一部가 빠져 없어짐.
►태진殆盡 거의 다 되다
►찬록纂錄 문서文書나 자료資料를 모아서 기록記錄함.
이산락어애곡而散落於崖谷 그러나 문자[山谷]가 흩어져 버리고
건몰어범속자乾沒於凡俗者 범속凡俗한 자에게 그대로 없어진 것이
부지기기하不知其幾何 그 얼마인지 알지 못할 지경이었다.
기일권즉수척어촌지잔간지중其一卷則搜剔於寸紙殘簡之中
그 중에 한 권은 한 치쯤 되는 헌 종이쪽과 벌어진 간권 속에서 찾아내고 도려내어
령선서자전록令善書者傳錄 잘 쓰는 사람을 시켜 베끼게 하였고
우기득어전문자又其得於傳聞者 또 전해들은 데에서 얻은 것은
즉여수록지則余手錄之 총약간편總若干篇 내가 손수 기록하여 모두 약간편若干篇을 얻었다.
►잔간殘簡 단편잔간斷編殘簡의 준말.
‘단편잔간斷編殘簡’ 떨어지고 빠지고 하여서 完全하지 못한 모양模樣.
►전록傳錄 전하여 기록함. 또는 그 기록.
오호嗚呼 아아!
사기인이불가견思其人而不可見 그 사람을 생각해도 볼 수 없다면
송독시문誦讀詩文 그의 詩나 文을 읽고 외며
삼완수적森翫手迹 그 필적을 들여다보는 것도
역서기득기요령의亦庶幾得其要領矣 또한 그 요령要領을 얻는 방법일 것이다.
기위시호탕其爲詩浩蕩 그 시 된 것이 호탕浩蕩해서
조석연운朝夕煙雲 밀물인 듯 썰물인 듯[朝夕], 연기인 듯,
구풍리우驅風詈雨 구름인 듯, 바람을 몰고 비를 호령하며,
노진희소怒嗔喜笑 개성구어皆成句語 노하여 꾸짖고 기뻐 웃는 것이 모두다 시가 되었건만
불규규어성률不規規於聲律 이전장불문而典章不紊 음운音韻에 구속되지 않으면서도 법칙이 문란하지 아니하고
부자자어사화不刺刺於詞華 이대박유려而大璞愈麗 문구에 애쓰지 아니 하되 큰 보석처럼 더욱 아름다웠다.
지어리욕성명지설至於理欲性命之說 형제단구形諸短句
천리天理·人欲과 性·命의 說에 이르기까지 짧은 싯귀로 표현하였지만
호발불상毫髮不爽 털끝만큼이라도 틀리는 것이 없었으니
비신리이유득자非身履而有得者 자신이 경험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면
하능제사역재何能躋斯域哉 어찌 그 지경에 이를 수 있겠는가?
문제장로聞諸長老 기위인야其爲人也 모침정한貌寢精悍 간이소위의簡易少威儀
어른들에게 들으니 그 사람됨이 외모는 볼품없으며 민첩하고 간이簡易해서 위엄은 적었다.
자이성명대조自以聲名大早 스스로 이름남이 너무 일렀고
성부다우性復多迂 성격 또한 오활하여서
규량시세揆量時勢 역난용처亦難容處 시대의 형편에 용납되기 어려웠던 까닭으로
고방광회랑故放狂詼浪 멋대로 미친 듯이 농담과 익살을 부려가며
이완류속以翫流俗 시속을 조롱하므로
인견기형해人見其形骸 사람들은 그 모양을 보고는 문득
거지위경조遽指爲輕躁 “경망하고 조급하다.”고 지목하고서
압모사매狎侮肆罵 불이위기不以爲忌 업신여기고 조롱하며 함부로 욕하기를 꺼려하지 아니하였다.
►압모狎侮 멸시蔑視함. 경멸輕蔑함.
►사매肆罵 함부로 욕하다
희噫 아아!
차기인지소이위락此其人之所以爲樂 이것이 그 사람의 낙樂으로 삼던 것인데도
이인방락기도내而人方落其度內 사람들은 그 계획 속에 빠져 있으면서
내갱교기득실迺更校其得失 도리어 그의 잘잘못을 따지려 하니
기불위대가소재豈不爲大可笑哉 어찌 크게 우스운 것이 아니겠는가?
기어시야역연其於詩也亦然 조초지류啁噍之流 그 詩에서도 또한 그러하니 옹알거리고 중얼대는 무리들이
방무불천謗誣不淺 비방하고 헐뜯기를 적지 아니하였지만
사기유관어청한재斯豈有關於淸寒哉 그것이 어찌 청한자淸塞子에게 관계되겠는가?
상기투적선혈想其投迹禪穴 생각하면 그가 발길을 禪門에 들여놓은 것도
역유소인亦有所因 또한 연유한 바가 있었던 까닭에
고수심거궁령故雖深居窮嶺 비록 궁한 산골에 깊이 들어가 있으면서도
미능과어망세未能果於忘世 세상일을 과감하게 잊어버리지 못하고
범문대제배凡聞大除拜 무릇 높을 지위에 임명된 자 있음을 들으면
첩루일통곡왈輒累日痛哭曰 곧 여러 날씩 통곡하며 말하기를
사민하죄斯民何罪 이차인당차임재而此人當此任哉
“이 백성이 무슨 죄가 있기에 그 사람이 그런 임무를 맡게 되었는가?” 하였다.
약우가진길일若遇佳辰吉日 좋은 때나 좋은 날을 당할 것 같으면
구명수향화具明水香火 명수明水와 향불을 갖추어 가지고
례배고선禮拜古先 예전 賢人의 무덤을 찾아가 절하든가
혹림절학요명월或臨絶壑邀明月 혹은 높은 석벽石壁위에 올라가 밝은 달을 맞이하여
휘체망반揮涕忘返 눈물을 뿌리며 돌아오기를 잊어버리기도 하고
혹이목각삭或以木刻削 혹은 나무를 깎아
위농부경운지상爲農夫耕耘之狀 농삿꾼이 밭 갈고 김매는 형상을 만들었는데
다지백여품多至百餘品 많기가 1백여 벌이나 되었다.
►조석朝夕은 조석潮夕과 같은 말. 따라서 여기에서는 ‘그의 詩의 호탕함이 밀물・썰물[潮水]과 같다.'는 뜻.
►간이簡易 예의범절을 간단히 하고 엄하지 아니한 것.
►명수明水
원래는 구리로 만든 거울에 수증기가 닿아서 물방울이 된 것을 모은 것’이라 하지만 여기서는 깨끗한 물을 말한다.
렬치안변列置案邊 숙시종일熟視終日 첩곡이분지輒哭而焚之
그것을 책상 옆에 벌여 놓고 온종일 숙시熟視하다가 곧 통곡하고는 태워 버렸고
우입일산又入一山 또 어느 산에 들어가
권승도치화전勸僧徒治火田 소수차요所收差饒 중들에게 火田 갈기를 권하여 가을 수확이 많게 되면
즉각목작통卽刻木作桶 렬치간곡列置澗曲 나무를 파서 통을 만들어 시냇가에 벌여 놓고
양주기중釀酒其中 지표도음持瓢導飮 술을 빚어 넣었다가 바가지를 가지고 권해 마시게 하기를
경수월내지經數月乃止 두어 달이 지나서야 그쳤다.
기분세질속其憤世疾俗 정근호탕精勤豪蕩 다류시多類是
그가 세상을 분개하고 시속을 미워하며 부지런하고 호방하기가 흔히 이와 같았다.
어석전於釋典 역통철무애亦洞徹無礙 발휘정미發輝精微
불경佛經도 또한 환하게 통해 막힘없이 정묘한 것을 발휘하였다.
일일과동도一日過東都 획연대오왈劃然大悟曰 하루는 東都(慶州)를 지나다가 명확하게 크게 깨닫고 말하기를
선리파심禪理頗深 사량오재思量五載 “선리禪理는 퍽 깊어서 생각한 지 다섯 해 만에
내득투개乃得透開 투명하게 열리는 것을 얻었으나
여오도자유계급如吾道自有階級 우리 도[吾道] 같은 것은 본래가 계급이 있어서
약건자지승제若健者之升梯 건강한 자가 사닥다리를 오르는 것같이
재거일족纔擧一足 거달일중遽達一重 한 발을 들면 곧 한 층을 올라가는 것으로
무돈오쾌결지락無頓悟快決之樂 문득 깨달아 시원하게 열리는 즐거움은 없지만
이유우유함영지미而有優游涵泳之味 조용히 지내면서 젖어드는 맛이 있으니
시기심지허명是其心地虛明 촉처통연觸處洞然 그것은 그 마음속이 허명虛明하여 닿는 데마다 환하게 비추어
이어진안빈주지분而於眞贗賓主之分 고이빙석이운해의固已氷釋而雲解矣
참과 거짓, 손과 주인의 분별이 진실로 이마 얼음처럼 녹고 구름처럼 풀리는 것이 있다.” 하였다.
희噫 슬프다!
고지소위명치자古之所謂名緇者 예전에 이른바 이름 있는 중이라 하는 이는
혹담론승과或談論勝果 혹 좋은 결과를 말하고
혹유의편십或游意篇什 혹 글귀에 뜻을 두어
이개득립명당세而皆得立名當世 모두 當世에 이름이 드러나고
수요간책垂耀簡策 간책簡策에 빛을 내었거늘
황오청한況吾淸寒 하물며 우리 청한자淸寒子는
행유이적불行儒而迹佛 유가儒家의 행위로서 佛家의 길을 걸어
명리이해석明理而該釋 이치에 밝으면서 불교에도 해박하였고
우기평생락척불우又其平生落拓不偶 또 그의 평생이 쓸쓸하고 고단하여
우우황허踽踽荒虛 거친 시골에서 외롭게 지낸 것으로
성부족엄자재誠不足掩者哉 덮어 놓을 수 없는 것이겠는가?
►낙척落拓 어렵거나 불행不幸한 환경環境에 빠짐.
►불우不偶=불우不遇 ‘만날 우𠓱(古字)’ (同字)偶=만날 우𨔆
1.좋은 때를 만나지 못하여 불행不幸함.
2.포부抱負나 재능才能이 있어도 운수運數가 나빠 世上에 잘 쓰이지 못함.
‘만날 우, 땅 이름 옹遇’ (우연히)만나다. 조우遭遇하다.
‘짝 우偶’ 짝, 배필配匹. 동료同僚, 동아리. 허수아비
►우우踽踽 매우 외로움.
동방문헌무징東方文獻無徵 우리나라의 문헌文獻에 믿을 것이 없어서
수당세명경거공雖當世名卿鉅公 비록 당세의 이름난 경卿이나 큰 公으로
훈업병저勳業炳著 훈공과 사업이 빛나게 드러났어도
이자비국승소재而自非國乘所載 나라 역사[國乘]에 기재된 것이 아니면
병인몰부존並湮沒不存 모두 없어지고 남지 아니하였는데
황위세소기況爲世所棄 하물며 세상에서 버림을 받아
존몰불록存沒不錄 살고 죽는 것을 기록하지 아니한
여청한자재如淸寒者哉 청한자淸塞子 같은 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약과십년若過十年 장병여금일소록이망지將並余今日所錄而亡之 가승탄재可勝嘆哉
만일 10년이 지난다면 내가 오늘 기록한 것까지 함께 없어질 것이니 한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평생불행余平生不幸 명과실名過實 내 평생에 불행하게도 헛이름이 실상을 지났고
작부덕爵浮德 벼슬도 德보다 넘쳐서
의위만랑依違漫浪 료무촌장了無寸長 어물어물 허황되게 지냈으니 조금도 쓸모가 없고
우불능선기심처又不能先幾審處 또 사기事幾를 먼저 살펴 처리하지 못하여
위세소산爲世所訕 세상의 비평을 받았지만
행몽천지우幸蒙天之佑 병처전리屛處田里 다행히 하늘의 도움을 받아 물러나 농촌에 있으며
필명구학畢命丘壑 언덕과 구렁에서 수명을 마치게 되었으니
차여숙석지원此余宿昔之願 이것은 나의 전부터의 소원이었으나
이여흔상중而餘釁尙重 귀책다단鬼責多端 남은 죄과罪過가 아직도 무거워 귀신의 침책侵責이 다단多端하여
상앙인비식尙仰人鼻息 이위서참以爲舒慘 오히려 남의 콧김을 우러러보고서 기쁘고 슬픈 것을 삼으니
기시청한방랑명교지외其視淸寒放浪名敎之外 그것을 청한자가 명교名敎의 밖에서 방랑放浪하면서
우유졸세자優游卒歲者 우하여재又何如哉 한가하게 놀며 세월을 보낸 것과 비교할 때 또 어떻겠는가?
정덕신사●월초오일正德辛巳●月初五日 한산리자차야韓山李耔次野 서書
정덕正德 신사辛巳 월月 초5일에 한산韓山 이자李耔 차야次野가 쓰다.
이자李耔 서序
청한자는 성姓이 김씨요 이름은 시습時習이고 자字는 열경이다.
본관은 명주(강릉)의 세습 가문이다.
7, 8세에 4書3經에 통하였고 9세에 詩文에 능하여 한양에 이름을 떨쳐
여러번 임금님의 칭찬을 받았다.
성격이 호방 활달하여 구속되는 것을 괴롭고 싫게 여겼으나
충성과 의리에는 뽐내고 격동하여 하루도 세상 따라 높낮이를 맞추는 일에 능하지 못해
마침내 중이 되어 명산을 두루 다니며 가슴 속 울분을 토할 수 있어 운천雲泉의 좋은 일이 되었다.
시습이 옛 도읍들을 유람할 때에는
반드시 서성거리고 주춤거리며 비분강개해서 노래 부르며 여러 달씩 돌아가기를 잊었다.
오늘의 일에 마음 상하고 옛일을 슬퍼한다는 것을 본다면
수댁장數宅藏 점귀부點鬼簿 따위의 詩人이 해 낼 수 있는 바가 아니어서
내가 매우 기이하게 여겼으나 언론言論이나 풍채가 막연하여 찾을 길이 없었다.
전부터 남아 있는 책[篇]을 구하려고 하여도 흩어지고 없어져 거의 찾을 길이 없었는데
10년이나 적공을 들여 겨우 3권을 얻었으니
그것은 그의 손으로 편찬하고 기록한 것으로
필적이 예스럽고 담담하며 정돈되고 흘려 쓴 것이 고르고 분명하여
후세에 전하려는 뜻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문자[山谷]가 흩어져 버리고 범속凡俗한 자에게 그대로 없어진 것이
그 얼마인지 알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 중에 한 권은 한 치쯤 되는 헌 종이쪽과 벌어진 간권 속에서 찾아내고 도려내어
잘 쓰는 사람을 시켜 베끼게 하였고 또 전해들은 데에서 얻은 것은
내가 손수 기록하여 모두 약간편若干篇을 얻었다.
아아!
그 사람을 생각해도 볼 수 없다면 그의 詩나 文을 읽고 외며
그 필적을 들여다보는 것도 또한 그 요령要領을 얻는 방법일 것이다.
그 시 된 것이 호탕浩蕩해서 밀물인 듯 썰물인 듯[朝夕], 연기인 듯, 구름인 듯, 바람을 몰고 비를 호령하며,
노하여 꾸짖고 기뻐 웃는 것이 모두다 시가 되었건만, 음운音韻에 구속되지 않으면서도 법칙이 문란하지 아니하고,
문구에 애쓰지 아니 하되 큰 보석처럼 더욱 아름다웠다.
天理·人欲과 性·命의 說에 이르기까지 짧은 싯귀로 표현하였지만
털끝만큼이라도 틀리는 것이 없었으니 자신이 경험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면 어찌 그 지경에 이를 수 있겠는가?
어른들에게 들으니 그 사람됨이 외모는 볼품없으며 민첩하고 간이簡易해서 위엄은 적었다.
스스로 이름남이 너무 일렀고 성격 또한 오활하여서 시대의 형편에 용납되기 어려웠던 까닭으로 멋대로 미친 듯이 농담과 익살을 부려가며 시속을 조롱하므로 사람들은 그 모양을 보고는 문득 “경망하고 조급하다.”고 지목하고서 업신여기고 조롱하며 함부로 욕하기를 꺼려하지 아니하였다.
아아! 이것이 그 사람의 낙樂으로 삼던 것인데도 사람들은 그 계획 속에 빠져 있으면서
도리어 그의 잘잘못을 따지려 하니 어찌 크게 우스운 것이 아니겠는가?
그 詩에서도 또한 그러하니 옹알거리고 중얼대는 무리들이
비방하고 헐뜯기를 적지 아니하였지만 그것이 어찌 청한자淸塞子에게 관계되겠는가?
생각하면 그가 발길을 禪門에 들여놓은 것도 또한 연유한 바가 있었던 까닭에 비록 궁한 산골에 깊이 들어가 있으면서도
세상일을 과감하게 잊어버리지 못하고 무릇 높을 지위에 임명된 자 있음을 들으면 곧 여러 날씩 통곡하며 말하기를
“이 백성이 무슨 죄가 있기에 그 사람이 그런 임무를 맡게 되었는가?” 하였다.
좋은 때나 좋은 날을 당할 것 같으면 明水와 향불을 갖추어 가지고 예전 賢人의 무덤을 찾아가 절하든가
►조석朝夕은 조석潮夕과 같은 말. 따라서 여기에서는 ‘그의 詩의 호탕함이 밀물・썰물[潮水]과 같다.'는 뜻.
►간이簡易 예의 범절을 간단히 하고 엄하지 아니한 것.
►명수明水
원래는 구리로 만든 거울에 수증기가 닿아서 물방울이 된 것을 모은 것’이라 하지만 여기서는 깨끗한 물을 말한다.
혹은 높은 석벽石壁위에 올라가 밝은 달을 맞이하여 눈물을 뿌리며 돌아오기를 잊어버리기도 하고
혹은 나무를 깎아 농삿군이 밭 갈고 김매는 형상을 만들었는데 많기가 1백여 벌이나 되었다.
그것을 책상 옆에 벌여 놓고 온종일 숙시熟視하다가 곧 통곡하고는 태워 버렸고 또 어느 산에 들어가 중들에게 火田 갈기를 권하여 가을 수확이 많게 되면 나무를 파서 통을 만들어 시냇가에 벌여 놓고 술을 빚어 넣었다가 바가지를 가지고 권해 마시게 하기를 두어 달이 지나서야 그쳤다.
그가 세상을 분개하고 시속을 미워하며 부지런하고 호방하기가 흔히 이와 같았다.
불경佛經도 또한 환하게 통해 막힘없이 정묘한 것을 발휘하였다.
하루는 東都(慶州)를 지나다가 명확하게 크게 깨닫고 말하기를
“선리禪理는 퍽 깊어서 생각한 지 다섯 해 만에 투명하게 열리는 것을 얻었으나 우리 도[吾道] 같은 것은 본래가 계급이 있어서 건강한 자가 사닥다리를 오르는 것같이 한 발을 들면 곧 한 층을 올라가는 것으로 문득 깨달아 시원하게 열리는 즐거움은 없지만 조용히 지내면서 젖어드는 맛이 있으니 그것은 그 마음속이 허명虛明하여 닿는 데마다 환하게 비추어 참과 거짓, 손과 주인의 분별이 진실로 이마 얼음처럼 녹고 구름처럼 풀리는 것이 있다.” 하였다.
슬프다!
예전에 이른바 이름 있는 중이라 하는 이는 혹 좋은 결과를 말하고 혹 글귀에 뜻을 두어 모두 當世에 이름이 드러나고 간책簡策에 빛을 내었거늘 하물며 우리 청한자淸寒子는 儒家의 행위로서 佛家의 길을 걸어 이치에 밝으면서 불교에도 해박하였고 또 그의 평생이 쓸쓸하고 고단하여 거친 시골에서 외롭게 지낸 것으로 덮어 놓을 수 없는 것이겠는가?
우리나라의 문헌文獻에 믿을 것이 없어서 비록 당세의 이름난 경卿이나 큰 공公으로 훈공과 사업이 빛나게 드러났어도 나라 역사[國乘]에 기재된 것이 아니면 모두 없어지고 남지 아니하였는데 하물며 세상에서 버림을 받아 살고 죽는 것을 기록하지 아니한 청한자淸塞子 같은 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만일 10년이 지난다면 내가 오늘 기록한 것까지 함께 없어질 것이니 한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 평생에 불행하게도 헛이름이 실상을 지났고 벼슬도 德보다 넘쳐서 어물어물 허황되게 지냈으니 조금도 쓸모가 없고 또 사기事幾를 먼저 살펴 처리하지 못하여 세상의 비평을 받았지만 다행히 하늘의 도움을 받아 물러나 농촌에 있으며 언덕과 구렁에서 수명을 마치게 되었으니 이것은 나의 전부터의 소원이었으나 남은 죄과罪過가 아직도 무거워 귀신의 침책侵責이 다단多端하여 오히려 남의 콧김을 우러러보고서 기쁘고 슬픈 것을 삼으니 그것을 청한자가 명교名敎의 밖에서 방랑放浪하면서 한가하게 놀며 세월을 보낸 것과 비교할 때 또 어떻겠는가?
정덕正德 신사辛巳 월月 초5일에 한산韓山 이자李耔 차야次野가 쓰다.
►오도吾道 유자儒者들이 유교의 道를 일컫는 말.
►이치에 밝다[明理] 함은 유교의 이치에 밝음.
►경卿 육판서六判書나 이에 준하는 높은 벼슬.
►공公 삼정승三政丞 같은 최고의 벼슬.
►정덕正德 명明나라 무종武宗의 연호年號.
►차야次野 이자李耔(1480~1533)의 자字. 조선조 중종中宗 때의 문신. 호는 음애陰崖·몽옹夢翁, 본관은 한산韓山,
대사간 이예견李禮堅의 아들. 1501년(연산군 7)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504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장원,
감찰監察을 지내고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다시 벼슬에 올라 우참찬右參贊까지 올랐으나 기묘사화己卯士禍로 파직되어 음성陰城·충주忠州 등지에서 학문을 닦으며 여생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