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詩/매월당집梅月堂集

매월당집梅月堂集 서序/이산해李山海

空空 2023. 12. 9. 07:53

매월당집梅月堂集 서序/이산해李山海

궁양지간穹壤之間 유청명정수지기종어인有淸明精秀之氣鍾於人

이위영예절륜지자而爲英銳絶倫之資 이지위문장위언어以至爲文章爲言語

호한약강하浩汗若江河 갱굉약금석鏗鍧若金石 대명우우주자大鳴于宇宙者

여如 본조신금시습시이本朝臣金時習是已

 

하늘과 땅 사이에 청명淸明하고 정수精秀한 기운이 있어 사람에게 뭉쳐서

영특하고 뛰어난 인격이 되고 그것으로 文章을 하고 언어를 하면

호한浩汗하기 江河 같고 金石 소리 같이 쟁쟁하게 크게 우주에 울리는데

예를 들면 우리나라 사람 김시습金時習이 그러한 분이다.

 

►궁양穹壤 하늘과 땅. ‘하늘 궁, 고을 이름 공穹’ ‘흙덩이 양壤’

►청명淸明 날씨가 맑고 밝음. 24節氣의 하나, 춘분春分과 곡우穀雨의 사이로 陽曆 4월 5ㆍ6일께.

►정수精秀 정량精良(매우 정묘精妙하고 훌륭함)하고 뛰어남.

 

►영예英銳 영민英敏하고 예기銳氣가 있음.

►절륜絶倫 매우 두드러지게 뛰어남.

►호한浩汗 넓고 끝이 없는 것.

►갱굉鏗鍧 낭랑하다

 

 

희噫

천지생시재야天之生是材也 사비우연似非偶然

이기생야만而其生也晚 기불능구의어성문제자지렬旣不能摳衣於聖門弟子之列

조우遭遇 성제盛際 우미획읍양어도유우불지간又未獲揖讓於都兪吁咈之間

 

아아!

하늘이 그런 재목을 내놓은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닐 것 같은데

그 출생이 늦어서 聖門弟子의 반열에 참여하지 못하였고

좋은 시대를 만났어도 찬성하고 반대하는 사이에서 절하고 사양하는 것을 얻지 못하였다.

 

회적산림晦迹山林 궁아이사窮餓以死 천과하심재天果何心哉

山林 속에 몸을 감추고 곤궁하게 굶주리다가 죽었으니 하늘이 과연 무슨 마음에서이었던가?

 

공유아恭惟我 주상전하主上殿下 성지수출聖智首出

문사집희文思緝煕 범소시조凡所施措 도월전고度越前古

기어락선애사지성其於樂善愛士之誠

우무소불용기극尤無所不用其極

 

공경하여 생각하건대 우리 주상 전하께서 聖智가 높으시고

文思가 밝으시어 무릇 시정施政하는 것이 전 시대를 뛰어넘으시며

그 선한 것을 즐겨하시고 선비를 사랑하시는 정성은

더욱 그 지극하지 않으심이 없으시어

 

구유일재지가관苟有一才之可觀 진실로 한 재주[一才]의 볼만한 것과

일행지가취一行之可取 한 행실[一行]의 취할 만한 것이 있으면

즉수재천백대지상則雖在千百代之上 비록 천 백년 전에 있다 하더라도

무불가상이표이無不嘉尙而表異 가상하게 여기시어 표창해 주셨거늘

 

황여시습실況如時習實 하물며 김시습金時習 같이

본조인물지걸연자호本朝人物之傑然者乎 본국의 인물로 뛰어난 자를 말해 무엇 하겠는가?

 

만력임오추萬曆壬午秋 만력萬曆 壬午年 가을에

명대제학신리이命大提學臣李珥 대제학 臣 이이李珥에게 명하시어

찬전이진撰傳以進 전傳을 편찬하여 올리게 하시고

 

선명운각旋命芸閣 인출기유고印出其遺稿 곧 운각芸閣에 명령하시어 그 유고遺稿를 인쇄해 내게 하셨으니

오호嗚呼 천기유대어금일호天其有待於今日乎 아! 하늘이 그 이날을 기다렸던 것인가?

시습어차時習於此 가이무감의可以無憾矣 김시습도 여기에서 유감 됨이 없을 것이다.

 

►도유우불都兪好佛 요순堯舜시대에 임금과 신하들이 찬성하고 반대할 때 쓰던 말.

‘유兪’는 임금의 찬성, ‘도都’는 신하의 찬성, ‘불佛’은 임금의 반대, ‘우于’는 신하의 반대로 썼다.

 

►만력萬歷 임오년壬午年 만력萬曆은 明나라 神宗의 年號이니 임오년은 선조宣祖 15년(1582)

►운각芸閣 교서관校書館 혹은 홍문관弘文館의 별칭.

 

 

익년동翌年冬 명신산해서기권단命臣山海序其卷端

신이비졸臣以菲拙 하족이앙체성지何足以仰體盛旨 천양유광闡揚幽光

 

이듬해 겨울에 臣 이산해李山海에게 명하시어 그 책머리에 서문을 쓰게 하시니

신의 거칠고 졸렬한 것으로 어찌 성스러우신 뜻을 우러러 받들어 그윽한 광채를 드러낼 수 있겠는가?

 

제신상모기위인第臣嘗慕其爲人

읍유복어잔편단간지중자挹遺馥於殘篇斷簡之中者 비일일의非一日矣

급득윤춘년소편집시문及得尹春年所編輯詩文 미상불삼부이절비야未嘗不三復而竊悲也

 

다만 臣은 전부터 그 사람됨을 흠모하여

남겨 놓은 향취를 남긴 책[殘篇]과 떨어진 종이 가운데에서 찾았던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더니

윤춘년尹春年이 편집한 詩文을 얻은 뒤에 3번 다시 읽고 그윽이 슬퍼하였노라.

 

►윤춘년尹春年(1514-1567) 자는 언문彦文, 호는 학음學音·창주滄州, 참판 윤안인尹安仁의 아들.

1534년(중종 29) 生員이 되고 1543년(중종 38) 式年文科에 갑과甲科로 급제,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역임하였으나 윤원형尹元衡에 아부하여 을사사화乙巳士禍 때 많은 선비를 추방하였다.

1565년 윤원형이 실각하자 예조판서로 파직당한 뒤 은퇴하였으며 음률音律에 밝았다.

 

 

자재강보自在襁褓 이효문의已曉文義 총경신오聰警神悟

불사전수不俟傳授 사서제경四書諸經 영인자해迎刃自解

 

강보强褓에 있을 때부터 이미 문장의 뜻을 깨달아 총명하고 민첩하여 정신으로 깨달았고

가르쳐 줌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四書와 諸經의 뜻은 칼날이 닿기 전에 댓가지가 쪼개지듯 스스로 해독하였다.

 

고금문적古今文籍 과안첩기過眼輒記 지여도리정미至如道理精微

비유완색지공非有玩索之功 역다령회지지亦多領會之地

 

고금의 서적을 눈만 거치면 곧 기억하였고 道와 理의 정밀하고 미묘한 것도 들여다보고

사색하는 공부가 없음에도 또한 요령을 깨닫는 일이 많았었다.

 

즉개기소득어천자則蓋其所得於天者 고초매형절固超邁迥絶

이자품지미而資稟之美 수위지아어상지雖謂之亞於上智 가야可也

 

대개 그 하늘에서 얻은 것이 진실로 초월하게 영매하고 훨씬 뛰어났으니

才質의 아름다움은 비록 上智의 다음이라 하여도 가할 것이다.

►상지上智 가장 지혜가 뛰어난 사람. 聖人.

 

기소이권회심장其所以卷懷深藏 장왕불반長往不返 포기명교拋棄名敎

환형선문幻形禪門 여병여광如病如狂 대해류속자大駭流俗者 억하의여抑何意歟

 

그가 생각하던 것을 걷어 치워 깊이 간직하고 훌훌히 가고서 돌아오지 아니하며 名敎를 포기하고

불교로 탈바꿈하여 병든 것도 같고 미친 것도 같이 하여 세상을 크게 놀라게 한 것은 또 무슨 뜻이었던가?

►명교名敎 인륜의 명분을 밝히는 가르침. 유교儒敎.

 

 

적기소위迹其所爲 그가 한 일을 찾아보면

제시이곡題詩而哭 각목이곡刻木而哭 시를 쓰고서 통곡하고 나무에 조각하고서 통곡하며

예화이곡刈禾而哭 등령필곡登嶺必哭 벼[禾]를 베고서 통곡하고 고개에 올라서면 반드시 울고

림기필곡臨歧必哭 갈림길을 당하면 반드시 울었으니

 

즉평생미의소존則平生微意所存 그 평생에 가졌던 깊은 뜻의 소재는

수미가역규雖未可易窺 비록 쉽게 들여다 볼 수가 없으나

이대요개부득기평자호而大要皆不得其平者乎 대체의 요지는 다 그 평형함을 얻지 못해서가 아니었던가?

 

 

지어초연고도至於超然高蹈 비예일세睥睨一世

소오산수지향嘯傲山水之鄕 방랑형해지외放浪形骸之外

행지한적行止閑適 유동고운독조有同孤雲獨鳥

방촌형철方寸瑩澈 무괴빙호추월無愧氷壺秋月

즉기고풍아운則其高風雅韻 유난이필찰형용有難以筆札形容

고인소위특립독행古人所謂特立獨行 긍만세이불고자亘萬世而不顧者 서기근지의庶幾近之矣

 

그 초연하게 고답高踏하는 태도로 온 세상을 흘겨보면서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휘파람 불며 거만부리고 물질 밖에서 방랑한 데에 이르렀으며

행동거지[行止]가 한가하고 쾌적하여 외로운 구름이나 홀로 나는 새와도 같은 것이 있어서

마음속이 환하고 맑아 얼음 든 옥병과 가을 밤 달에 부끄러움이 없으니

그 높은 풍모風貌와 아담한 운격韻格은 붓끝으로 형용하기 어려움이 있어

옛사람의 이른바 “우뚝 서서 홀로 행하는데 몇 만년을 지나도 고려하지 않는다.”

는 것이 거의 이에 근사할 것이다.

 

기위시야其爲詩也 본제성정本諸性情 형어음영形於吟詠

고불사단련수회故不事鍛鍊繡繪 이자연성장而自然成章

장편단십長篇短什 유출이유불군愈出而愈不窘

 

그가 시를 짓는 데는 자기 性情에 근본하여 읊고 나타냈으므로

애써서 꾸미지 아니하였어도 자연히 시가 되어

긴 노래든가 짧은 시도 나올수록 더욱 군졸窘拙하지 아니하였다.

 

 

기혹우수강개지극其或憂愁慷慨之極 륜균뢰괴지흉輪囷磊塊之胸

무이자창無以自暢 즉필어문자언발지則必於文字焉發之

종필휘쇄縱筆揮灑 초약완롱희극初若玩弄戲劇 략불경의略不經意

이억양개합而抑揚開闔 변동파측變動叵測

중체구정衆體具呈 만상필로萬狀畢露

 

그가 혹 근심하고 비분강개하는 극치極致와 활활 돌고 높게 뭉친 가슴 속을

무엇으로 시원하게 할 수 없으면 반드시 시문에다 발산하여

붓 가는 대로 휘두르는데 처음에는 희롱하는 듯 연극하는 듯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았으나

억양抑揚하고 여닫는 변동을 측량할 수 없을 만큼

여러 체제體制가 모두 나오고 일만 가지 형상이 다 드러났다.

 

혹릉려돈좌或凌厲頓挫 유묘회울幽眇回鬱

사인창연이비使人愴然而悲 숙연이공肅然而恐

혹호준질탕或豪儁跌宕 혹소산충원或蕭散沖遠

 

혹은 높이 올라 돈좌頓挫하고 그윽하고 적은 것을 돌려 서려서

사람으로 하여금 허전한 듯 슬프게 하고 엄숙한 듯 두렵게 하며

혹은 호기 있고 잘난 듯 질탕跌岩(방자함)하며 혹은 깨끗하고 쌀쌀하여 없는 듯 먼 듯한데

 

잡이회해방광기괴지어雜以恢諧放曠奇瑰之語

유가이감발징창有可以感發懲創

유가이부세교후민이자有可以扶世敎厚民彝者 불일이족不一而足

시유수지안류무도是猶水之安流無濤 홍함연이泓涵演迤

 

농담과 방탕하고 넓은 것과 재치 있는 말이

사람을 감발感發하며 일어나게 하고 징계하여 조심하게도 하며

세상의 敎化를 도와주고 人倫을 두텁게 할 수 있는 것이 한둘만이 아니었으니

그것은 마치 물이 평온하게 흘러서 파도가 없으면 맑게 담겨 있고,

 

이급기우경구촉애기而及其遇驚颶觸崖磯

효후분격이부지지哮吼奮激而不知止

사가위부득기평이명자호斯可謂不得其平而鳴者乎

 

조용히 둘러 흐르다가 그 놀라운 구풍颶風을 만나 언덕과 돌에 부딪치면

성내어 울부짖고 뽐내어 격동해서 그칠 줄 모르는 것과 같았으니

그것이 바로 평형함을 얻지 못해서 운다는 것이라고 이를 것인가?

 

 

자고문장지괴위자自古文章之魁偉者 다출어기려초야多出於羈旅草野

심지소존心之所存 기불능화완서태旣不能和緩舒泰

즉문사지발則文辭之發 불기공이자공不期工而自工

신호기수사지성요묘信乎其愁思之聲要妙 이궁고지언역호야而窮苦之言易好也

 

예로부터 “문장의 높고 거룩한 것은 객지에 떠도는 사람과 들에 묻힌 사람에게서 많이 나온다.” 하였고

마음에 있는 것이 이미 평화스럽고 누그러지고 태평하지 아니하다면

文辭의 發함이 공교하기를 기대하지 아니하여도 저절로 공교하여지니

과연 그 근심하고 생각하는 소리는 긴요하고 묘하며 궁하고 괴로운 말은 좋게 되기 쉬운 것이다.

 

 

억신절유소감언抑臣竊有所感焉 또 臣은 여기에 그윽이 느끼는 바 있으니

사인지작斯人之作 이 사람의 작품만

기독품천지청수지기豈獨稟天地淸秀之氣 어찌 홀로 하늘과 땅의 맑고 빼어난 기운을 받았을 뿐이겠는가?

 

역막비아亦莫非我 렬성배양진작지방列聖培養振作之方 유이고무이흥기야有以鼓舞而興起也

또한 우리 열성조列聖朝에서 배양하고 진작振作 시킨 방법이

그를 고무鼓舞해서 흥기興起하지 않음이 없었던 것이다.

 

 

지우아至于我 선왕先王 복재지덕覆載之德 우리 先王이 덮어 주시고 살게 해 주신 덕의德義로

역능우용이성취지亦能優容而成就之 또한 능히 포용하고 성취시킨 까닭으로

고한방자적故閑放自適 임기천성任其天性 한적함과 자적自適함이 천성대로이었고

 

이체아而逮我 성상聖上 우리 성상聖上에 이르러서는

숭장천발지전崇奬闡發之典 높여서 장려하시고 표창하여 열어주신 은전恩典이

우광고소무又曠古所無 즉거국지인則擧國之人 또 만고에 없던 바이니 온 나라 사람들로

 

숙불앙대성인소위출어심상만만호孰不仰大聖人所爲出於尋常萬萬乎

누가 大聖人의 하신 일이 보통 사람보다 몇 만 갑절 뛰어난 것을 우러러 보지 않겠는가?

 

 

억인주지권선징악抑人主之勸善懲惡 또 임금이 착한 이를 권장하고 악한 이를 징계하는 방법은

초부재어경상위형지말初不在於慶賞威刑之末 처음부터 상주고 형벌하는 말절末節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이일호령일거조지간而一號令一擧措之間 하나의 명령이나 하나의 행동하는 동안에도

족이사첨령용동足以使瞻聆聳動 넉넉히 보고 들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기뻐서 움직이게 하여

 

이사기자려而士氣自勵 사기士氣가 스스로 격려되어

완나렴립頑懦廉立 완악한 자가 청렴해지고 나약한 자가 뜻을 세워

이박속비변而薄俗丕變 나쁜 풍속이 아름답게 변하도록 하는 것이니

 

즉시집지행則是集之行 이 문집의 발행이

유보어풍화자有補於風化者 부기천천재夫豈淺淺哉 풍속과 교화에 유익함이 어찌 얕은 것이라 하겠는가?

 

약연즉당시지인울불평자若然則當時之湮鬱不平者

역득이소융동활어구천지하亦得以消融洞豁於九泉之下

 

만약 그렇다면 당시에 울분하고 불평해 하던 것도

또한 사라지고 통하여 구천九泉에까지 시원하게 트이겠고

 

이기문장언어지약강하약금석자而其文章言語之若江河若金石者

장수불후어무궁야필의將垂不朽於無窮也必矣 기우하비其又何悲

 

그 문장이나 언어의 江河와 같고 金石과 같은 것도

앞으로 무궁한 후대에까지 내려가며 썩어 없어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 그 또 무엇을 슬퍼하겠는가?

 

 

만력십일년십이월십팔일萬曆十一年十二月十八日

숭정대부崇政大夫 의정부우찬성겸지경연사議政府右贊成兼知經筵事

홍문관제학弘文館提學 신리산해臣李山海 봉奉

 

만력萬曆 11년 12월 18일

숭정대부崇政大夫 의정부議政府 우찬성右贊成 겸지경연사

홍문관제학弘文館提學 이산해李山海 받들다.

 

 

 

하늘과 땅 사이에 청명淸明하고 정수精秀한 기운이 있어 사람에게 뭉쳐서 영특하고 뛰어난 인격이 되고

그것으로 文章을 하고 언어를 하면 호한浩汗하기 江河 같고 金石 소리 같이 쟁쟁하게 크게 우주에 울리는데

예를 들면 우리나라 사람 김시습金時習이 그러한 분이다.

 

아아!

하늘이 그런 재목을 내놓은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닐 것 같은데

그 출생이 늦어서 聖門弟子의 반열에 참여하지 못하였고

좋은 시대를 만났어도 찬성하고 반대하는 사이에서 절하고 사양하는 것을 얻지 못하였다.

 

山林 속에 몸을 감추고 곤궁하게 굶주리다가 죽었으니 하늘이 과연 무슨 마음에서이었던가?

공경하여 생각하건대 우리 주상 전하께서 聖智가 높으시고 文思가 밝으시어

무릇 시정施政하는 것이 전 시대를 뛰어넘으시며 그 선한 것을 즐겨하시고

선비를 사랑하시는 정성은 더욱 그 지극하지 않으심이 없으시어

진실로 한 재주[一才]의 볼만한 것과 한 행실[一行]의 취할 만한 것이 있으면

비록 천백년 전에 있다 하더라도 가상하게 여기시어 표창해 주셨거늘

하물며 김시습金時習 같이 본국의 인물로 뛰어난 자를 말해 무엇 하겠는가?

 

만력萬曆 壬午年가을에 대제학 臣 이이李珥에게 명하시어 전傳을 편찬하여 올리게 하시고

운각芸閣에 명령하시어 그 유고遺稿를 인쇄해 내게 하셨으니

아! 하늘이 그 이날을 기다렸던 것인가?

김시습도 여기에서 유감 됨이 없을 것이다.

 

►도유우불都兪好佛 요순堯舜시대에 임금과 신하들이 찬성하고 반대할 때 쓰던 말.

유兪는 임금의 찬성, 도都는 신하의 찬성, 불佛은 임금의 반대, 우于는 신하의 반대로 썼다.

 

►만력萬歷 임오년壬午年 만력萬曆은 明나라 神宗의 年號이니 임오년은 선조宣祖 15년(1582)

►운각芸閣 교서관校書館 혹은 홍문관弘文館의 별칭.

 

 

이듬해 겨울에 臣 이산해李山海에게 명하시어 그 책머리에 서문을 쓰게 하시니

신의 거칠고 졸렬한 것으로 어찌 성스러우신 뜻을 우러러 받들어 그윽한 광채를 드러낼 수 있겠는가?

 

다만 臣은 전부터 그 사람됨을 흠모하여 남겨 놓은 향취를 남긴 책[殘篇]과 떨어진 종이 가운데에서 찾았던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더니 윤춘년尹春年이 편집한 詩文을 얻은 뒤에 3번 다시 읽고 그윽이 슬퍼하였노라.

 

►윤춘년尹春年(1514-1567) 자는 언문彦文, 호는 학음學音·창주滄州, 참판 윤안인尹安仁의 아들.

1534년(중종 29) 生員이 되고 1543년(중종 38) 式年文科에 갑과甲科로 급제,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역임하였으나

윤원형尹元衡에 아부하여 을사사화乙巳士禍 때 많은 선비를 추방하였다.

1565년 윤원형이 실각하자 예조판서로 파직당한 뒤 은퇴하였으며 음률音律에 밝았다.

 

 

강보强褓에 있을 때부터 이미 문장의 뜻을 깨달아 총명하고 민첩하여 정신으로 깨달았고

가르쳐 줌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四書와 諸經의 뜻은 칼날이 닿기 전에 댓가지가 쪼개지듯 스스로 해독하였다.

 

고금의 서적을 눈만 거치면 곧 기억하였고 道와 理의 정밀하고 미묘한 것도 들여다보고

사색하는 공부가 없음에도 또한 요령을 깨닫는 일이 많았었다.

 

대개 그 하늘에서 얻은 것이 진실로 초월하게 영매하고 훨씬 뛰어났으니

才質의 아름다움은 비록 上智의 다음이라 하여도 가할 것이다.

 

그가 생각하던 것을 걷어 치워 깊이 간직하고 훌훌히 가고서 돌아오지 아니하며 名敎를 포기하고

불교로 탈바꿈하여 병든 것도 같고 미친 것도 같이 하여 세상을 크게 놀라게 한 것은 또 무슨 뜻이었던가?

 

►상지上智 가장 지혜가 뛰어난 사람. 聖人.

►명교名敎 인륜의 명분을 밝히는 가르침. 유교儒敎.

 

 

그가 한 일을 찾아보면 시를 쓰고서 통곡하고 나무에 조각하고서 통곡하며 벼[禾]를 베고서 통곡하고

고개에 올라서면 반드시 울고 갈림길을 당하면 반드시 울었으니 그 평생에 가졌던 깊은

뜻의 소재는 비록 쉽게 들여다 볼 수가 없으나 대체의 요지는 다 그 평형함을 얻지 못해서가 아니었던가?

 

그 초연하게 고답高踏하는 태도로 온 세상을 흘겨보면서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휘파람 불며

거만부리고 물질 밖에서 방랑한 데에 이르렀으며 행동거지[行止]가 한가하고 쾌적하여

외로운 구름이나 홀로 나는 새와도 같은 것이 있어서 마음속이 환하고 맑아

얼음 든 옥병과 가을 밤 달에 부끄러움이 없으니 그 높은 풍모風貌와 아담한 운격韻格은

붓끝으로 형용하기 어려움이 있어 옛사람의 이른바

“우뚝 서서 홀로 행하는데 몇 만년을 지나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 거의 이에 근사할 것이다.

 

그가 시를 짓는 데는 자기 性情에 근본하여 읊고 나타냈으므로 애써서 꾸미지 아니하였어도

자연히 시가 되어 긴 노래든가 짧은 시도 나올수록 더욱 군졸窘拙하지 아니하였다.

 

그가 혹 근심하고 비분강개하는 극치極致와 활활 돌고 높게 뭉친 가슴 속을 무엇으로 시원하게 할 수 없으면

반드시 시문에다 발산하여 붓 가는 대로 휘두르는데 처음에는 희롱하는 듯 연극하는 듯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았으나

억양抑揚하고 여닫는 변동을 측량할 수 없을 만큼 여러 체제體制가 모두 나오고 일만 가지 형상이 다 드러났다.

 

혹은 높이 올라 돈좌頓挫하고 그윽하고 적은 것을 돌려 서려서 사람으로 하여금 허전한 듯 슬프게 하고

엄숙한 듯 두렵게 하며 혹은 호기 있고 잘난 듯 질탕跌岩(방자함)하며 혹은 깨끗하고 쌀쌀하여 없는 듯 먼 듯한데

농담과 방탕하고 넓은 것과 재치 있는 말이 사람을 감발感發하며 일어나게 하고 징계하여 조심하게도 하며

세상의 敎化를 도와주고 人倫을 두텁게 할 수 있는 것이 한둘만이 아니었으니

그것은 마치 물이 평온하게 흘러서 파도가 없으면 맑게 담겨 있고,

조용히 둘러 흐르다가 그 놀라운 구풍颶風을 만나 언덕과 돌에 부딪치면

성내어 울부짖고 뽐내어 격동해서 그칠 줄 모르는 것과 같았으니

그것이 바로 평형함을 얻지 못해서 운다는 것이라고 이를 것인가?

 

예로부터 “문장의 높고 거룩한 것은 객지에 떠도는 사람과 들에 묻힌 사람에게서 많이 나온다.” 하였고

마음에 있는 것이 이미 평화스럽고 누그러지고 태평하지 아니하다면

文辭의 發함이 공교하기를 기대하지 아니하여도 저절로 공교하여지니

과연 그 근심하고 생각하는 소리는 긴요하고 묘하며 궁하고 괴로운 말은 좋게 되기 쉬운 것이다.

 

또 臣은 여기에 그윽이 느끼는 바 있으니

이 사람의 작품만 어찌 홀로 하늘과 땅의 맑고 빼어난 기운을 받았을 뿐이겠는가?

또한 우리 열성조列聖朝에서 배양하고 진작振作 시킨 방법이

그를 고무鼓舞해서 흥기興起하지 않음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 先王이 덮어 주시고 살게 해 주신 덕의德義로 또한 능히 포용하고 성취시킨 까닭으로

한적함과 자적自適함이 천성대로이었고 우리 성상聖上에 이르러서는

높여서 장려하시고 표창하여 열어주신 은전恩典이 또 만고에 없던 바이니

온 나라 사람들로 누가 大聖人의 하신 일이 보통 사람보다 몇 만 갑절 뛰어난 것을 우러러 보지 않겠는가?

 

또 임금이 착한 이를 권장하고 악한 이를 징계하는 방법은

처음부터 상주고 형벌하는 말절末節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명령이나 하나의 행동하는 동안에도 넉넉히 보고 들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기뻐서 움직이게 하여 士氣가 스스로 격려되어

완악한 자가 청렴해지고 나약한 자가 뜻을 세워 나쁜 풍속이 아름답게 변하도록 하는 것이니

이 문집의 발행이 풍속과 교화에 유익함이 어찌 얕은 것이라 하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시에 울분하고 불평해 하던 것도

또한 사라지고 통하여 구천九泉에까지 시원하게 트이겠고

그 문장이나 언어의 江河와 같고 金石과 같은 것도 앞으로 무궁한 후대에까지 내려가며

썩어 없어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 그 또 무엇을 슬퍼하겠는가?

 

만력萬曆 11년 12월 18일

숭정대부崇政大夫 의정부議政府우찬성右贊成 겸지경연사 홍문관제학弘文館提學 이산해李山海 받들다.

 

►이산해李山海(1538~1609) 자는 여수汝受, 호는 아제鵝溪, 본관은 한산韓山.

내자시정內資寺正 이지번李之蕃의 아들.

1558년(명종 13) 진사시進士試에 합격, 1561년(명종 16) 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여러 관직을 거쳐 1588년 우의정이 되고

이 무렵 東人이 南人·北人으로 갈라지자 북인의 영수로 정권을 장악, 1590년 영의정이 되었다.

서화書畵와 文章에 능하여 선조조宣祖朝 문장 八家 중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