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詩/매월당집梅月堂集

매월당 시집 제1권 3-54

空空 2023. 12. 25. 07:06

매월당 시집 제1권 3-54

3 술회述懷

 

54 자면自勉 스스로 힘쓰게 하며

 

로자정무지老子正無知 노자老子는 정히 아는 것 없어

객지이종진客至而從嗔 손이 오면 따라서 성을 내었네.

일오엄시비日午掩柴扉 해가 한낮 되어도 사립문 닫고서

고와희황민高臥羲皇民 복희씨伏羲氏적 백성인 양 높이 누웠네.

 

불구출세법不求出世法 출세법出世法은 구하지 아니하고

역불련풍진亦不戀風塵 또한 풍진 세상 생각하지 않았네.

다년사층등多年事蹭蹬 여러 해 동안 일이 실패되었지만

빈구무산신貧窶無酸辛 가난으로 쓰고 싶은 마음 전혀 없다네.

 

음시부대반吟詩不待伴 시 지어도 같이 지을 이 바라지 아니하고

고소요기순高嘯搖其唇 크게 휘파람 불면서 입술만 움직였네.

득실량망전得失兩忘筌 얻고 잃음의 두 가지가 을 잊었으니

만사귀창민萬事歸蒼旻 모든 일은 저 하늘로 돌릴 뿐이네.

 

욱재면차심勗哉勉此心 힘쓸지어다! 이 마음 따라 근면하고

막학주언륜莫學周彥倫 주언륜周彦倫은 배우지 말게 할지어다.

 

 

자면自勉 스스로 힘쓰기

 

나라는 노인네는 정말로 무식해서

누가 찾아와 화내면 시인 두보처럼 참지 못하고 덩달아 화를 낸다네.

한낮에도 사립문 닫아놓고

복희씨 태평성대처럼 높은 자리에 누웠다오.

 

출세할 방법도 강구하지 않고

번거로운 속세 역시 좋아하지 않았네.

수 년 간을 방황하며 헤맸지만

가난에 찌들어도 괴롭고 쓰라려하진 않았다오.

 

시를 음송하지만 친구를 불러 함께하지 않고

큰소리 낼 때도 있지만 입을 함부로 놀리진 않는다네.

이해득실은 물고기 잡은 뒤의 통발처럼 잊어버리고

모든 일은 하늘의 뜻에 귀의하고 있다오.

 

힘써야 할 바는 이런 마음을 권면하는 것이니

주옹의 처세술 같은 건 배우지마시라.

 

 

►노자老子 늙은이. 金時習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

일반적으로 老子는 周나라의 철학자이자 道家의 시조를 지칭하는데

이 詩의 문맥文脈으로 보아 道德經의 老子로 보기는 힘듦

 

객지이종진客至而從嗔 손이 오면 따라서 성을 내었네.

杜甫의 三絶句 제3수 중 한 句節을 借用

 

●삼절구三絶句 절구 3수/두보杜甫

 

其一

전년주살자사前年州殺刺史 작년에 유주에서 자사를 죽이더니

금년개주살자사今年開州殺刺史 올해는 개주에서 자사를 죽였다.

군도상수극호낭群盜相隨劇虎狼 도적들이 서로 어울려 호랑이와 승냥이보다 지독하니

식인갱긍류처자食人更肯留妻子 사람을 잡아먹으면서 처자식을 또 남겨 두려 했겠는가?

 

其二

문외로자거부래門外鸕鶿去不來 문 밖에 가마우지 가고 나서 안 오더니

사두홀견안상시沙頭忽見眼相猜 의심스런 몸짓으로 모래밭에 나타났네

자금이후지인의自今已後知人意 오늘로 해치지 않는 걸 알게 된 뒤엔

일일수래일백회一日須來一百回 하루에도 백 번 천 번 돌아오겠지

 

其三

무수춘순만림생無數春笋滿林生 봄에 나온 죽순이 대숲 안에 가득해서

시문밀엄단인행柴門密掩斷人行 사립문 닫았더니 사람들 발길이 끊어졌네.

회수상번간성죽會須上番看成竹 처음 나온 것들이 대나무 되는 것 지켜보며

객지종진불출영客至從嗔不出迎 손님이 와서 뭐라 하던 나가서 맞지 않으리라.

 

►종진從嗔 덩달아 화를 냄 ‘성낼 진, 성한 모양 전嗔’

►희황羲皇 복희伏羲. 고대 중국 전설상의 임금.

백성들에게 수렵狩獵과 漁撈·牧畜을 처음 가르쳤고 八卦를 만들어 易의 시조始祖가 됨

 

►층등蹭蹬 잘못 디뎌 길을 잃음. 권세權勢를 잃고 어정거림

‘비틀거릴 층蹭’ 비틀거리다. 실족失足하는 모양. 일에 차질이 생긴 모양

‘비틀거릴 등蹬’ 비틀거리다. 밟다. 오르다

 

►빈구貧窶 가난에 찌듦. 빈곤하여 제멋대로 삶. 살림이 몹시 가난하여 보잘 것이 없음.

‘가난할 구, 높고 좁은 곳 루(누)窶’

 

►‘휘파람 불 소, 꾸짖을 질嘯’ 휘파람. 울부짖다

 

►‘통발 전筌’ 고기 잡는 통발.

득어망전得魚忘筌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는다/<莊子 外物篇>

바라던 바를 이루고 나면 그 目的을 達成하기 爲해서 썼던 事物을 잊어버림을 比喩

 

전자소이재어筌者所以在魚 득어이망전得魚而忘筌

통발은 물고기를 잡는 도구인데 물고기를 잡고 난 뒤에는 통발은 잊어버리고 만다.

 

덫은 토끼를 잡기 위한 것이나 토끼를 잡고 나면 덫을 잊어버린다.

그리고 말은 뜻을 나타내는데 쓰이기 때문에 뜻을 알고 나면 말은 잊어버리게 된다.

내 어찌 저 말을 잊은 사람을 만나서 그와 더불어 말할 수 있을꼬.

 

득어망전得魚忘筌은 自己의 뜻한 바를 이룬 後에는

그 手段이나 過程에 對하여는 愛着을 갖지 말라는 것인데

일단一旦 目的을 達成하면 手段으로 利用하던 物件을 잊어버린다.

 

어전량망魚筌兩忘 고기도 통발도 다 잊었다(禪家에서 주로 쓰는 말)

 

►창민蒼旻 창천蒼天. 가을하늘

►‘힘쓸 욱勗’ 노력努力함. 힘을 씀. 권면勸勉하다.

 

►주언륜周彦倫 주옹周顒의 자字.

南北朝時代 南京의 종산鍾山 北山에 살았던 은자隱者.

天子의 부름을 받고 산을 떠나 해염현령海鹽縣令이 됐고 그 뒤에 또 北山에 들어가려 하자

제齊나라 저명 文人이던 공치규孔稚珪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에 산신령의 뜻이라는 핑계[假託]를 대고 사이비 은사隱士인 周彦倫을 배척하는

북산이문北山移文을 지어 관아官衙에 널리 배포하여 그가 入山하지 못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