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詩/매월당집梅月堂集

매월당 시집 제1권 3-64

空空 2023. 12. 26. 04:24

매월당 시집 제1권 3-64

3 술회述懷

 

64 희심주제戲甚走題 희롱이 심해 붓을 달려 쓰다

 

강엄오색필江淹五色筆 강엄江淹의 五色 붓은 한낱 꿈이요

정교오색구釘鉸五色毬 정교釘鎔의 오색 공은 창작이라네.

천고만유유千古漫悠悠 천년 동안 부질없이 유유한데

이왕불가구已往不可求 이미 간 것 구求할 수 없네.

 

안전유생애眼前有生涯 눈앞에 살아가는 것 있음이라

필하운연무筆下雲煙繆 붓 아래에 구름과 연기 얽혀져 있네.

시성자유운詩成自有韻 시 이루면 자연히 운치韻致 있어서

알알여명구戛戛如鳴球 알알함이 방울 울리는 것 같으네.

 

아원득기묘我願得其妙 나는 그 묘리妙理 얻기가 소원이라

불로공아휴不勞空哦咻 수고하지 않고 공연히 노래 부르네.

청계인여생淸溪咽如笙 맑은 시냇물 흐느낌이 생황 같은데

초당청이유草堂淸而幽 초당은 맑고도 그윽하도다.

 

경물자소조景物自蕭條 경치는 자연히 소조한데

완전영쌍모宛轉盈雙眸 분명하게 두 눈에 차들어 오네.

랑음시수편朗吟詩數篇 낭랑하게 시 두어 편 읊었더니

애애춘운부靄靄春雲浮 뭉개 뭉개 봄 구름이 떠오른다.

 

척지불성향擲地不成響 땅에 던져도 아무런 소리 안나니

벌아삼천구罰我三千觩 나에게 삼천 말의 벌주나 주소.

 

 

희심주제戲甚走題 장난삼아 휘갈긴 글.

 

강엄의 글 솜씨

정교의 오색영롱한 구슬.

천년 아득한 세월이 질펀하게 흘러

이미 지난 일은 찾을 길이 없다네.

 

눈앞에는 내 인생이 펼쳐져있고

글재주는 운치가 가득 얽혀있네.

시를 지으면 운율이 저절로 생겨나

독창적인 어휘가 서로 부딪혀 영롱한 방울소리가 난다오.

 

나는 그 오묘한 시의 창작원리를 깨닫고자

별다른 노력 없이 공염불 외듯 읊조린다네.

맑은 계곡물소리는 목 메인 생황소리 같고

초가집은 그윽하여 맑은 정취라네.

 

쓸쓸하고 고요한 계절의 풍경은

내 두 눈에 넘치도록 또렷하다네.

낭랑한 목소리로 시 몇 편을 읊조리니

봄날의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듯

 

땅바닥에 내던진들 아무소리도 나지 않으니

그 벌로 나에게 술 삼천 잔을 내리시라.

 

 

►강엄江淹(444-505) 양梁나라 文人. 유불도儒佛道에 통달한 재사才士.

<南史 강엄전江海傳>에

“강 엄이 꿈에 어떤 사람이 와서 붓을 달라 하여 가졌던 오색붓[五色筆]을 주었는데

그 뒤로는 다시 좋은 문장을 쓰지 못했다.”는 기사가 있다.

 

►오색필五色筆 다섯 빛깔의 붓. 글재주 있는 사람을 비유比喩하는 말

 

►정교釘鉉 中唐代 시인 호령능胡令能(785-826)

전당시全唐詩에 七言絶句인 <소아수조小兒垂釣> 등 4편의 시가 전함.

 

胡令能은 河南 중모현中牟縣에서 채소농사[圃田]지었던 은사隱士로 집이 가난하여

어려서부터 놋그릇이나 항아리 등을 수리 보수하였는데 사람들이 그를

못[釘]과 가위[鉸]로 수리하는 사람이라며 호정교胡釘鉸라 불렀다.

 

<당시기사唐詩紀事> 호영능胡令能에

영능令能이 젊었을 때 철공업으로 생활하는데

그가 사는 동네가 예전 열자列子라는 명현이 살던 곳이므로

집안은 가난했어도 다과茶果를 얻으면 먼저 '열자님에게 올립니다.' 하고서 총명하기를 바랐더니

어느 날 꿈에 웬 사람이 와서 영능의 배를 가르고 책 한 권을 넣어 주고 갔다.

그 후 시를 잘 짓게 되었는데 세상에서 호정교胡釘錢[銅匠]라 하였다.

 

►오색구五色毬 구毬는 공(球)모양 또는 모직포毛織布.

►유유悠悠 아득하게 멂

►필하筆下 글재주(笔底下). 작가의 어휘선택과 의도.

►운연雲煙 구름과 연기. 운치韻致있는 필적筆跡.

►‘얽을 무’繆 얽힘. 묶다

►알알戛戛 어긋남. 독창적인 모습 ‘창 알戛’

 

►아휴哦咻 중얼중얼 읊조림.

‘읊조릴 아哦’ 읊조리다. 성오醒悟의 감탄사感歎詞

‘신음 소리 휴, 따스이 할 후, 외칠 효咻’신음 소리. 지껄이다

 

►‘목구멍 인, 삼킬 연, 목멜 열咽’ 목구멍. 목 메인 소리.

►소조蕭條 분위기가 매우 쓸쓸함. 고요하고 조용함

►완전宛轉 완연한 모양. 순탄順坦하고 원활圓滑함.

►애애靄靄 안개나 구름, 아지랑이가 피어오름. ‘아지랑이 애靄’

►‘뿔 굽을 구觩’ 제사상을 진설陳設함. 제주祭酒

 

 

희심주제戲甚走題 희롱이 심해 붓을 달려 짓다

江淹五色筆 강엄의 오색붓

釘鉸五色毬 정교의 오색공

千古漫悠悠 천년을 부질없이 아득하여

已往不可求 지나간 일을 찾을 수가 없도다

 

眼前有生涯 눈앞의 살아가는 일들

筆下雲煙繆 눈 아래 구름과 연기처럼 얽혀있다

詩成自有韻 시 지어지면 자연히 운치 있고

戛戛如鳴球 부딪힘이 방울 울리는 소리 난다

 

我願得其妙 나는 그 묘리 얻기를 원하노니

不勞空哦咻 수고하지 않고 공연히 노래 부른다

淸溪咽如笙 맑은 개울물 흐느낌 생황소리 같고

草堂淸而幽 초가집 분위기 맑고도 그윽하구나

 

景物自蕭條 경치는 저절로 쓸쓸한데

宛轉盈雙眸 분명하게 두 눈동자 채워진다

朗吟詩數篇 낭낭히 시 몇 편을 읊으니

靄靄春雲浮 뭉게뭉게 봄 구름이 떠오른다

 

擲地不成響 땅에 던져버려도 소리 나지 않으니

罰我三千觩 나에게 삼천 말이나 되는 벌주를 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