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1권 3-64
매월당 시집 제1권 3-64
3 술회述懷
64 희심주제戲甚走題 희롱이 심해 붓을 달려 쓰다
강엄오색필江淹五色筆 강엄江淹의 五色 붓은 한낱 꿈이요
정교오색구釘鉸五色毬 정교釘鎔의 오색 공은 창작이라네.
천고만유유千古漫悠悠 천년 동안 부질없이 유유한데
이왕불가구已往不可求 이미 간 것 구求할 수 없네.
안전유생애眼前有生涯 눈앞에 살아가는 것 있음이라
필하운연무筆下雲煙繆 붓 아래에 구름과 연기 얽혀져 있네.
시성자유운詩成自有韻 시 이루면 자연히 운치韻致 있어서
알알여명구戛戛如鳴球 알알함이 방울 울리는 것 같으네.
아원득기묘我願得其妙 나는 그 묘리妙理 얻기가 소원이라
불로공아휴不勞空哦咻 수고하지 않고 공연히 노래 부르네.
청계인여생淸溪咽如笙 맑은 시냇물 흐느낌이 생황 같은데
초당청이유草堂淸而幽 초당은 맑고도 그윽하도다.
경물자소조景物自蕭條 경치는 자연히 소조한데
완전영쌍모宛轉盈雙眸 분명하게 두 눈에 차들어 오네.
랑음시수편朗吟詩數篇 낭랑하게 시 두어 편 읊었더니
애애춘운부靄靄春雲浮 뭉개 뭉개 봄 구름이 떠오른다.
척지불성향擲地不成響 땅에 던져도 아무런 소리 안나니
벌아삼천구罰我三千觩 나에게 삼천 말의 벌주나 주소.
희심주제戲甚走題 장난삼아 휘갈긴 글.
강엄의 글 솜씨
정교의 오색영롱한 구슬.
천년 아득한 세월이 질펀하게 흘러
이미 지난 일은 찾을 길이 없다네.
눈앞에는 내 인생이 펼쳐져있고
글재주는 운치가 가득 얽혀있네.
시를 지으면 운율이 저절로 생겨나
독창적인 어휘가 서로 부딪혀 영롱한 방울소리가 난다오.
나는 그 오묘한 시의 창작원리를 깨닫고자
별다른 노력 없이 공염불 외듯 읊조린다네.
맑은 계곡물소리는 목 메인 생황소리 같고
초가집은 그윽하여 맑은 정취라네.
쓸쓸하고 고요한 계절의 풍경은
내 두 눈에 넘치도록 또렷하다네.
낭랑한 목소리로 시 몇 편을 읊조리니
봄날의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듯
땅바닥에 내던진들 아무소리도 나지 않으니
그 벌로 나에게 술 삼천 잔을 내리시라.
►강엄江淹(444-505) 양梁나라 文人. 유불도儒佛道에 통달한 재사才士.
<南史 강엄전江海傳>에
“강 엄이 꿈에 어떤 사람이 와서 붓을 달라 하여 가졌던 오색붓[五色筆]을 주었는데
그 뒤로는 다시 좋은 문장을 쓰지 못했다.”는 기사가 있다.
►오색필五色筆 다섯 빛깔의 붓. 글재주 있는 사람을 비유比喩하는 말
►정교釘鉉 中唐代 시인 호령능胡令能(785-826)
전당시全唐詩에 七言絶句인 <소아수조小兒垂釣> 등 4편의 시가 전함.
胡令能은 河南 중모현中牟縣에서 채소농사[圃田]지었던 은사隱士로 집이 가난하여
어려서부터 놋그릇이나 항아리 등을 수리 보수하였는데 사람들이 그를
못[釘]과 가위[鉸]로 수리하는 사람이라며 호정교胡釘鉸라 불렀다.
<당시기사唐詩紀事> 호영능胡令能에
영능令能이 젊었을 때 철공업으로 생활하는데
그가 사는 동네가 예전 열자列子라는 명현이 살던 곳이므로
집안은 가난했어도 다과茶果를 얻으면 먼저 '열자님에게 올립니다.' 하고서 총명하기를 바랐더니
어느 날 꿈에 웬 사람이 와서 영능의 배를 가르고 책 한 권을 넣어 주고 갔다.
그 후 시를 잘 짓게 되었는데 세상에서 호정교胡釘錢[銅匠]라 하였다.
►오색구五色毬 구毬는 공(球)모양 또는 모직포毛織布.
►유유悠悠 아득하게 멂
►필하筆下 글재주(笔底下). 작가의 어휘선택과 의도.
►운연雲煙 구름과 연기. 운치韻致있는 필적筆跡.
►‘얽을 무’繆 얽힘. 묶다
►알알戛戛 어긋남. 독창적인 모습 ‘창 알戛’
►아휴哦咻 중얼중얼 읊조림.
‘읊조릴 아哦’ 읊조리다. 성오醒悟의 감탄사感歎詞
‘신음 소리 휴, 따스이 할 후, 외칠 효咻’신음 소리. 지껄이다
►‘목구멍 인, 삼킬 연, 목멜 열咽’ 목구멍. 목 메인 소리.
►소조蕭條 분위기가 매우 쓸쓸함. 고요하고 조용함
►완전宛轉 완연한 모양. 순탄順坦하고 원활圓滑함.
►애애靄靄 안개나 구름, 아지랑이가 피어오름. ‘아지랑이 애靄’
►‘뿔 굽을 구觩’ 제사상을 진설陳設함. 제주祭酒
희심주제戲甚走題 희롱이 심해 붓을 달려 짓다
江淹五色筆 강엄의 오색붓
釘鉸五色毬 정교의 오색공
千古漫悠悠 천년을 부질없이 아득하여
已往不可求 지나간 일을 찾을 수가 없도다
眼前有生涯 눈앞의 살아가는 일들
筆下雲煙繆 눈 아래 구름과 연기처럼 얽혀있다
詩成自有韻 시 지어지면 자연히 운치 있고
戛戛如鳴球 부딪힘이 방울 울리는 소리 난다
我願得其妙 나는 그 묘리 얻기를 원하노니
不勞空哦咻 수고하지 않고 공연히 노래 부른다
淸溪咽如笙 맑은 개울물 흐느낌 생황소리 같고
草堂淸而幽 초가집 분위기 맑고도 그윽하구나
景物自蕭條 경치는 저절로 쓸쓸한데
宛轉盈雙眸 분명하게 두 눈동자 채워진다
朗吟詩數篇 낭낭히 시 몇 편을 읊으니
靄靄春雲浮 뭉게뭉게 봄 구름이 떠오른다
擲地不成響 땅에 던져버려도 소리 나지 않으니
罰我三千觩 나에게 삼천 말이나 되는 벌주를 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