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2권 1-16
매월당 시집 제2권 1-16
1 영사詠史
16 애소무哀蘇武 소무蘇武를 슬퍼한다 2首
1
모절소소락북풍旄節翛翛落北風 모절旄節이 소소히 북풍에 떨어지니
요요남망상림홍遙遙南望上林鴻 멀리 남쪽으로 上林의 기러기를 바라보네.
한가문물료심곡漢家文物撩心曲 한나라의 문물에 마음 굽이 산란하고
호역정기염안중胡域旌旗厭眼中 오랑캐의 깃발에 눈살 찌푸리네.
북풍에 모절이 나부낄 때마다
머나먼 남쪽 상림의 기러기 바라보았네
고국의 문화에 마음 설레고
오랑캐의 깃발에 눈살 찌푸렸네
기담서장제초실飢啖鼠腸除草實 배고파 쥐 창자를 씹으며 풀[草]씨를 가려내고
갈연설편하창공渴嚥雪片下蒼空 목마르면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를 삼켰네.
리릉의파상간루李陵衣把相看淚 이능李陵의 옷을 잡고 서로 눈물을 머금고
천지유궁비불궁天地有窮悲不窮 천지는 다하여도 슬픔은 다하지 않으리.
쥐 잡아 요기하며 풀씨를 뱉고
목이 타면 눈을 받아 목을 축이며
포로된 이릉 만나 눈물지으니
세상은 끝이 있어도 눈물은 가이없네
►소무蘇武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使臣으로 흉노에 갔다가 흉노에 억류되어 19년 동안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도 志操를 굽히지 아니하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이다.
蘇武는 19년 동안 그것을 꼭 가지고 있었다.
►모절旄節 짧은 깃대와 같은 것인데 황제의 명령을 받고 간다는 표지標識였다.
►소소翛翛 ‘날개 찢어질 소, 빠를 유, 빨리 나는 모양 숙翛’
(깃털이) 모지라지다. 닳아서 없어지다. 찢기고 상하다.
쉬쉬. 쉭쉭. 솨솨[나무가 흔들리거나 비바람이 내리는 소리를 묘사함]
►요요遙遙 멀고 아득함. ‘멀 요遙’ 아득하다. 거닐다
►기담서장飢啖鼠腸
흉노족들이 소무에게 사막지방 호숫가에서 양이나 기르게 하고 먹을 것은 주지 않아
소무는 쥐를 잡아먹고 눈과 담요의 털을 씹고서 살았다고 한다.
►이능李陵
한漢나라 장수로 步兵 오천을 영솔하고 흉노와 싸우다가 포로가 된 사람이다.
전부터 소무와 친했는데 흉노 땅에서 다시 만났으나 이능은 흉노에게 항복하여 높은 벼슬을 하였다.
그 두 사람이 후일 헤어질 적에 주고받은 <하량송별시河梁送別詩>는 유명한 시이다.
2
강변위률죄통천降邊衞律罪通天 76) 변경에서 항복한 위율衞律 죄가 하늘에 닿아서
우살사련승예언虞殺辭連勝預焉 관련되어 죽을까 걱정하여 이기는 데 참여하였네.
발검로정녕자문拔劍虜庭寧自刎 칼 빼어 노정虜庭에서 차라리 스스로 목 벨지언정
목양해상숙상련牧羊海上孰相憐 해변에서 양친다고 그 누가 불쌍히 여기리?
변절자의 죄 하늘에 닿아
함께 벌 받을세라 베려 했더니
되잡혀 스스로 죽을지언정
양치기로 변한 신세 누가 알아주리
리릉종도무귀사李陵縱道無歸思 이능은 비록 고국에 돌아갈 생각 없다고 말하지만
상혜하기광응전常惠何期誑應傳 상혜常惠가 거짓으로 기러기 전함 있다 할 줄 어찌 알았으리?
락일호가성갱인落日胡笳聲更咽 석양에 오랑캐 피리 소리 더욱 목이 메이는데
타년미료득생환他年未料得生還 뒤에 살아 돌아올 줄 생각이나 하였으랴?
이릉은 눌러앉을 생각이었지만
상혜의 거짓 편지가 통할 줄이야
저녁놀 호가소리에 목이 메면서
뒷날 돌아갈 줄은 생각도 못했으리
►위율衛律 변방 사람으로 자진하여 흉노로 들어가 흉노를 도와 한漢나라에 해가 되게 하였다.
►상혜常惠 소무의 부사副使로 흉노에 갔던 사람.
그가 한나라에서 다시 온 사신에게 “소무가 살아서 지금 어느 호숫가에 있다.”고 이르고
“흉노 임금에게는
'황제가 사냥하다가 기러기 한 마리를 잡았는데 그 다리에 소무의 편지가 매어 있었다.'고 말하라.”
하여 흉노에서는 그 말을 듣고 하는 수 없이 소무를 돌려보냈다.
호연제선우壺衍鞮單于가 국내가 어지럽게 되자 위율과 모의하여 한 나라와 화친하니
한사漢使가 가서 소무를 요구했다.
흉노는 소무가 죽었다고 속였다.
그러자 상혜常惠가 사사로 사신에 시키기를
“천자가 상림上林 중에서 쏘아 잡은 기러기 발목에 비단에 쓴 편지가 매어 있었는데
거기에 소무가 어느 택중澤中에 있다고 쓰여 있었다고 선우에 말하라.” 하므로
사자가 상혜의 말대로 하니 선우가 놀라 사례하고 소무를 돌려보내니 무릇 19년 만이었다.
●소무蘇武(?-BC60)
전한 경조京兆 두릉杜陵 사람. 자는 자경子卿,
흉노 정벌에 공을 세운 소건蘇建의 둘째 아들이다.
무제武帝 때 낭郞이 되고 얼마 뒤 중감中監으로 옮겼다.
천한天漢 원년(기원전100) 중랑장中郞將으로 흉노匈奴 지역에 사신으로 갔을 때
선우單于에게 붙잡혀 항복할 것을 강요당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아 北海(바이칼호) 부근에서 19년 동안 유폐되었다.
식음을 전폐한 채 눈[雪]을 먹고 가죽을 씹으면서도 지조를 지켰다.
흉노에게 항복한 옛 동료 이릉李陵이 설득했지만 굴복하지 않고 절개를 지켰다.
소제昭帝 시원始元 6년(기원전81) 흉노와 화친하자 석방되어 돌아와 전속국典屬國에 올랐다.
선제宣帝의 옹립에 가담하여 그 공으로 관내후關內侯가 되었다.
선제宣帝 때 좨주祭酒로 대접받고 80여 세에 사망하니 기린각麒麟閣에 그의 초상이 걸렸다.
친구親舊인 이능과 함께 五言古詩의 창시자創始者로 일컬어진다/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