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評 唱】
운문초참목주雲門初參睦州 운문스님이 처음 목주睦州스님을 참방하자
주선기전전州旋機電轉 목주스님은 기연을 움직임이 번개 치듯 하여
직시난주박直是難湊泊 참으로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심상접인尋常接人 평소 사람을 맞이함에
재과문편추주운纔跨門便搊住云 문에 들어서자마자 문득 멱살을 움켜쥐고는
도도道道 “말해보라, 말해보라”고 하였으며
의의불래擬議不來 그가 머뭇거리면서 말하지 못하면
편추출운便推出云 바로 밀어 제쳐 쫓아내면서 말하길
진시탁력찬秦時𨍏轢鑽 “진秦나라의 탁력찬𨍏轢鑽 같은 무용지물이로구나”하였다.
운문범거견雲門凡去見 지제삼회至第三回 재고문纔敲門
운문스님이 만나러 갔다가 3번째 가서 겨우 문을 두드리니
주운州云 수誰 목주스님이 “누구냐?”고 물었다.
문운門云 문언文偃 재개문편도입纔開門便跳入 “문언文偃입니다”라고 말하고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주추주운州搊住云 도도道道 목주스님이 멱살을 움켜쥐고는 “말해보라, 말해보라”하였다.
문의의門擬議 편피추출便被推出 운문스님이 머뭇거리자 바로 밀어제쳐 쫓아내었다.
문일족재문곤내門一足在門閫內 운문스님의 한쪽 발이 아직 문지방 안에 있는데
피주급함문被州急合門 찰절운문각拶折雲門腳
목주스님이 갑자기 문을 닫는 바람에 운문스님의 다리기 치여 부러졌다.
문인통작성門忍痛作聲 홀연대오忽然大悟
운문스님은 아픔을 참지 못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완전히 깨쳤다.
후래어맥접인後來語脈接人 일모탈출목주一摸脫出睦州
후일 말로써 사람을 가르침에 있어 하나같이 목주스님을 빼닮았다.
후어진조상서댁後於陳操尚書宅 주삼년住三年 그 후 尙書 진조陳操의 집에서 3년을 머물렀는데
목주지주설봉처거睦州指往雪峰處去 목주스님은 그를 설봉스님의 처소로 가도록 하였다.
지피출중편문至彼出眾便問
설봉스님의 처소에 이르러 대중 가운데 있다가 나와 설봉스님에게 물었다.
여하시불如何是佛 “무엇이 부처입니까?”
봉운峰云 막매어莫寐語 “잠꼬대하지 마라.”
운문편예배雲門便禮拜 일주삼년一住三年 운문스님은 바로 예배하고 줄곧 3년을 지났는데
설봉일일문雪峰一日問 그러던 어느 날 설봉스님이 물었다.
자견처여하子見處如何 “그대의 경지는 어떠한가?”
문운門云 모갑견처某甲見處 여종상제성與從上諸聖 불이역일사호허不移易一絲毫許
“저의 경지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성인들과 더불어 실낱만큼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영수이십년靈樹二十年 불청수좌不請首座
영수靈樹의 여민如敏(?-920)스님이 20년 동안 수좌를 뽑지 않고
상운常云 아수좌생야我首座生也 항상 “내 수좌가 태어났다”고 하였으며
우운又云 아수좌목우야我首座牧牛也 또한 “내 수좌가 수행[牧牛行]을 하고 있다”하였으며
부운復云 아수좌행각야我首座行腳也 또 다시 “내 수좌가 행각한다”고 말하곤 했다.
홀일일령당종忽一日令撞鐘 갑자기 하루는 종을 치게 하고
삼문전접수좌三門前接首座 삼문三門 앞에서 수좌를 맞이한다고 하니
중개아지眾皆訝之 대중들이 모두 의아해 하였다.
운문과지雲門果至 변청입수좌료便請入首座寮 해포解包
운문스님이 과연 이르자 바로 그를 수좌료首座療로 맞이해 짐을 풀게 하였다.
영수인호왈지성선사靈樹人號曰知聖禪師 사람들이 영수를 일컬어 지성선사知聖禪師라 하니
과거미래사개예지過去未來事皆預知 스님은 과거와 미래의 일들을 모두 미리 알았던 것이다.
일일광주류왕一日廣主劉王 장흥병將興兵
하루는 광주의 왕 유은劉隱(874~911)이 군사를 일으키기에 앞서
궁입원躬入院 청사결장부請師決臧否
몸소 사원을 찾아가 스님께 성패 여부를 알려주기를 청하려 하였다.
영수이선지靈樹已先知 이연좌화怡然坐化
영수스님은 이를 먼저 알았으나 가만히 앉아서 입적한 뒤였다.
광주노왈廣主怒曰 광주의 왕은 성을 내면서 말하였다.
화상하시득질和尚何時得疾 “스님께서는 언제 병이 나셨는가?”
시자대왈侍者對曰 시자가 말하였다.
사부증유질師不曾有疾 “스님께서는 일찍이 병이 나신 적이 없으십니다만
적봉일합자適封一合子 아까 작은 상자 하나를 봉하여 놓으시고
영후왕래정지令俟王來呈之 왕이 오거든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광주개합득일첩자운廣主開合得一帖子云 왕이 상자를 열어보니 한 통의 편지에 이르길
인천안목人天眼目 당중수좌堂中首座 “인천의 안목은 이곳에 있는 수좌로다”라고 씌어 있었다.
광주오지廣主悟旨 수침병遂寢兵 왕이 그 뜻을 깨닫고 드디어 군사를 일으키지 않고
청운문출세請雲門出世 주령수住靈樹
운문스님에게 세상에 나와 영수의 주지가 되어주기를 청하였다.
후래방주운문後來方住雲門 그 뒤 마침내 운문의 주지가 되었다.
사개당설법師開堂說法 스님께서 개당설법開堂說法을 하니
유국상시치문有鞠常侍致問 국鞠 상시常侍가 운문스님에게 물었다.
령수과자숙야미靈樹果子熟也未 “영수靈樹의 과일이 익었는지요?”
문운門云 십마년중什麼年中 득신도생得信道生 “어느 해인들 아직 설익었다[生]고 여길 수 있으리요”
부인류왕석위매향객등인연復引劉王昔為賣香客等因緣
다시 광주 유왕劉王을 맞아 그의 전생은 향 장수였다는 인연들을 말해주니
류왕후시령수劉王後諡靈樹 위지성선사為知聖禪師
그 후 유왕은 영수스님께 “지성선사知聖禪師”라는 시호를 하사하였다.
령수생생불실통靈樹生生不失通 영수스님은 세세생생에 신통력을 잃지 않았지만
운문범삼생위왕雲門凡三生為王 운문스님은 삼생三生 동안 왕이 된 까닭에
소이실통所以失通 신통력을 잃게 된 것이다.
일일류왕조사입내과하一日劉王詔師入內過夏
하루는 유왕이 스님에게 조서詔書를 보내어 대궐에서 여름 안거를 보내시게 했다.
공수인존숙共數人尊宿 개수내인문신설법皆受內人問訊說法
몇몇의 큰스님들과 함께 궁궐내의 왕공귀족王公貴族, 관료官僚들의 인사를 받으며 설법을 하는데
유사일인불언唯師一人不言 역무인친근亦無人親近
오직 스님만은 말도 안 하고 남들과 가까이 하지도 않았다.
유일직전사有一直殿使 서일게書一偈 첩재벽옥전상운貼在碧玉殿上云
한 직전사直殿使가 벽옥전碧玉殿 위에 다음과 같은 게송을 붙여놓았다.
대지수행시시선大智修行始是禪 큰 지혜로 수행하는 것이 비로소 선禪일지니
선문의묵불의훤禪門宜默不宜喧 선문禪門이란 말이 없어야지 시끄러워서는 안 된다.
만반교설쟁여실萬般巧說爭如實 온갖 교묘한 설법이라도 어찌 참다움만 하리요.
수각운문총불언輸卻雲門總不言 운문에게 져서 모두들 두 손 들고 말았네.
운문심상애설삼자선雲門尋常愛說三字禪 운문스님은 평소에 세 글자로 禪을 말하기 좋아하였는데
고감이顧鑒咦 즉 '살펴보아라[顧]' ‘비추어 보아라[鑑]’ ‘아이쿠[咦]’가 그것이다.
우설일자선又說一字禪 또 한 글자로 선을 말하기도 하였는데
승문僧問 어느 스님이 묻기를
살부살모殺父殺母 불전참회佛前懺悔
“아비를 죽이고 어미를 살해한 자는 부처님 앞에 참회하겠지만
살불살조殺佛殺祖 향십마처참회向什麼處懺悔
부처와 조사를 죽이면 어느 곳에서 참회를 해야 합니까?”라고 하자,
문운門云 로露 운문스님은 “노露(숨기지 말고 드러내라)”라고 말하였으며
우문又問 여하시정법안장如何是正法眼藏 또한 “무엇이 정법안장正法眼藏 입니까?”라고 묻자
문운門云 보普 “보普(어디에나 있다)”라고 하였다.
직시불용의의直是不容擬議
참으로 머뭇거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도평포처到平鋪處 우각매인약하일구어又卻罵人若下一句語 여철궐자상사如鐵橛子相似
도리어 사람을 꾸짖었으나 만일 한 구절의 말을 했다 하면 마치 쇠말뚝과 같았다.
후출사철後出四哲 그 밑에서 네 사람의 哲人이 나왔으니
내동산초乃洞山初 지문관智門寬 덕산밀德山密 향림원香林遠
동산수초洞山守初·지문사관智門師寬·덕산연밀德山緣密·향림징원香林澄遠스님이다.
개위대종사皆為大宗師 그 모두가 대종사大宗師였다.
향림십팔년위시자香林十八年為侍者 향림스님이 18년 동안 시자를 했는데
범접타凡接他 지규원시자只叫遠侍者 그를 가르침에 다만 “원시자遠侍者야!”라고 부르면
원운遠云 야喏 원시자는 “네”하고 대답하였고
문운門云 시십마是什麼 운문스님은 “이 무엇인가?”라고 말할 뿐이었다.
여차십팔년如此十八年 일일방오一日方悟 이렇게 하기를 18년 만에 어느 날 바야흐로 깨치니
문운門云 운문스님이 말하기를
아금후경불규여我今後更不叫汝 “내가 지금 이후로 다시는 너를 부르지 않으리라”고 하였다.
운문심상접인雲門尋常接人 다용목주수단多用睦州手段
운문스님이 평소 사람을 가르침에 있어 목주스님의 솜씨를 많이 썼다.
지시난위주박只是難為湊泊 그런데 그것은 (초신자에게는) 접근하기 어렵지만
유추정발설저겸추有抽釘拔楔底鉗鎚
우리를 속박하는 못과 문설주를 뽑아내는 뻰찌나 망치[鉗鎚]와 비슷했다.
설두도雪竇道 아애소양신정기我愛韶陽新定機
설두스님이 말하기를 “나는 소양韶陽(운문스님)의 참신한 기용機用을 사랑한다.
일생여인추정발설一生與人抽釘拔楔
(그는) 일생 동안 사람들에게 속박의 못과 문설주를 뽑아주었다.”고 하였다.
수개문두시중운垂箇問頭示眾云 질문을 던져서 대중에게 설법하기를
십오일이전불문여十五日已前不問汝 “십오일 이전에 대해서는 그대에게 묻지 않겠지만
십오일이후도장일구래十五日已後道將一句來
십오일 이후에 대하여 한 구절을 말해 보아라”하였으니
좌단천차불통범성坐斷千差不通凡聖
이는 대뜸 천 가지 차별을 끊어버린 것이며 범부이건 성인이건 관계없다.
자대운自代云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스스로 대신하여 “나날이 좋은 날이다”라고 하였다.
십오일이전十五日已前 저어이좌단천차這語已坐斷千差
“십오일 이전”이라 한 말은 이미 천 가지 차별을 좌단坐斷한 것이며
십오일이후十五日已後 저어야좌단천차這語也坐斷千差
“십오일 이후”라 한 말 또한 천 가지 차별을 끊어버린 것이다.
시타부도명일시십륙是他不道明日是十六
그는 ‘내일이 16일이니까’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후인지관수어생해後人只管隨語生解
뒷사람들이 그저 말에 휘둘려 알음알이를 냈으니 무슨 관계가 있는가?
유십마교섭타운문립개종풍有什麼交涉他雲門立箇宗風 수시유개위인처須是有箇為人處
저 운문스님이 종풍宗風을 세운 이유는 남들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였다.
수어료垂語了 각자대운卻自代云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설법을 끝내고서는 스스로 대신하여 “나날이 좋은 날이다”하였으니
차어통관고금此語通貫古今 종전지후從前至後 일시좌단一時坐斷
이 말은 고금을 관통하여 전후前後를 일시에 차단한 것이다.
산승여차설화山僧如此說話 야시수어생해也是隨語生解
산승이 이처럼 말하는 것 또한 말을 따라서 알음알이를 낸 것이라 하겠다.
타살불여자살他殺不如自殺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자신을 죽이는 것보다 어렵지 않다.
재작도리纔作道理 타갱락참墮坑落塹 이러니저러니 말하자마자 구덩이에 떨어진다.
운문일구중雲門一句中 삼구구비三句俱備 운문스님의 한 구절 속에 세 구절[三句]이 갖춰 있으니
개시타가종지여차蓋是他家宗旨如此 이는 모두 그의 종지宗旨가 이와 같기 때문이다.
수일구어垂一句語 수요귀종須要歸宗 한 구절의 말일지라도 모름지기 근본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약불여차若不如此 지시두찬只是杜撰 만일 그렇지 못하면 그것은 두찬杜撰일 뿐이다.
차사무허다론설此事無許多論說 이 일은 많은 말이 필요 없지만
이미투자而未透者 투철하게 알지 못하면 이렇게 해야 한다.
각요여차卻要如此 약투득若透得 만약 투철하게 깨치게 되면
편견고인의지便見古人意旨 곧 옛사람의 뜻을 알아차릴 것이다.
간취설두타갈등看取雪竇打葛藤 설두스님이 지은 언어문자를 보도록 하자.
►‘참여할 참參’ 參究. 선에 입문해서 가르침을 받다.
►목주睦州 목주도명睦州道明(780-877) 진존숙陳尊宿
사황벽희운嗣黃檗希運 견하제10칙見下第十則
운문의 발목을 부러뜨려 깨닫게 하고 임제를 황벽에게 데리고 가 깨닫게 해준 선의 거장.
짚신을 팔아서 어머니를 봉양했다.
►선기전전旋機電轉 교화의 방법이 자유자재하다
►추주搊住 추搊 구야拘也 지야持也 추搊는 구拘(잡다)임. 지持임.
►진시탁력찬秦時𨍏轢鑽 아방궁을 지을 때 쓰던 큰 송곳. 무용지물無用之物.
‘탁력찬𨍏轢鑽=도삭찬鍍鑠鑽’
진나라 시황제 때 만리장성을 쌓기 위해 사용한 공구였는데,
그 뒤에는 '너무 커서 아무 쓸모가 없는 물건'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종문에서는 한갓 말솜씨만이 지나치게 날카롭고 얻은 바 없는 사람을 평하는 말로 사용했다
탁력찬𨍏轢鑽 위자거랍전謂藉車拉轉 이사지찬물지대추以使之鑽物之大錐
탁력찬𨍏轢鑽은 이르자면 수레를 빌려 잡아 돌려서 이를 사용해 물건을 뚫는 큰 송곳임.
진시황건아방궁시秦始皇建阿房宮時(일설만리장성一說萬里長城)
진시황이 아방궁阿房宮(일설엔 만리장성)을 건립할 때
증조거대지추曾造巨大之錐 일찍이 거대한 송곳을 만들었는데
기후其後 차대추이무용此大錐已無用 그 후에 이 큰 송곳이 이미 쓸 데가 없었음.
선림수이진시력찬禪林遂以秦時轢鑽 비유무용지인比喩無用之人
선림에서 드디어 진시탁력찬으로써 쓸데없는 사람에 비유함.
►일모탈출一摸脫出=의막탈출依摸脫出.
동일한 주형鑄型에서 찍혀 나온 것처럼 똑 같이 닮았다.
►진조상서陳操尙書 당대거사唐代居士
목주진존숙법사睦州陳尊宿法嗣 見下第33則
►상서尙書 관명官名
최초시장관문서주장적관원最初是掌管文書奏章的官員
최초엔 이 문서와 주장奏章을 장관掌管하는 관원이었음.
시치어전국시始置於戰國時 수대시설륙부隋代始設六部
전국 시 처음 설치했고 수대隋代에 비로소 6부部를 설치했고
당대확정륙부위唐代確定六部爲 리吏호戶례禮병兵형刑공工
당대에 6부를 이吏호戶예禮병兵형刑공工으로 삼음을 확정했음.
각부이상서시랑위정부장관各部以尙書侍郞爲正副長官
각 부에 상서와 시랑侍郞을 정부正副 장관으로 삼았음.
►령수靈樹 령수여민靈樹如敏(?-920) 오대후한승五代後漢僧 복건민천인福建閩川人
초알황벽희운初謁黃檗希運 처음에 황벽희운을 참알參謁했다가
후지복주알장경대안後至福州謁長慶大安(사백장회해嗣百丈懷海) 사기법嗣其法
뒤에 복주福州에 이르러 장경대안(백장회해를 이음)을 참알하고 그의 법을 이음.
출주소주出住韶州(금광동소관今廣東韶關)령수선원靈樹禪院
출세하여 소주韶州(지금의 광동韶關) 영수선원에 주住했음.
위인관후순독爲人寬厚純篤 우선점복尤善占卜
사람됨이 관후순독寬厚純篤했으며 특히 점복占卜을 잘했으므로
남한제주상영기입궁결의난사南漢諸主常迎其入宮決疑難事
남한의 제주가 항상 그를 맞이해 입궁케 하여 의심과 난사難事를 결택決擇했으며
사호지성대사賜號知聖大師 지성대사知聖大師란 호를 주었다.
사화피령남사십여년師化被嶺南四十餘年 파다이적頗多異迹
스님의 교화가 嶺南을 입히기 40여 년이었는데 異迹이 파다頗多했다.
남한건형사년南漢乾亨四年(920)示寂 시호령수선사諡號靈樹禪師
남한南漢 건형乾亨 4년(920)에 시적 했으며 시호는 영수선사靈樹禪師
/조당집祖堂集19 전등록傳燈錄11
►목우牧牛 수행을 하다.
번뇌망상을 길들이는 것을 ‘소를 길들이는 것’에 비유
►삼문三門 山門. 절의 정문
산문지제형여궐山門之制形如闕 개삼문開三門 고역왈삼문故亦曰三門
산문山門의 제형制形이 궁궐과 같이 3문을 여는지라 고로 또한 가로되 3문門.
우지유일문又只有一門 역호위삼문亦呼爲三門
또 다만 1문만 있어도 또한 칭호稱號하여 3문이라 하나니
개표치공무상무작삼해탈문지칭야蓋標幟空無相無作三解脫門之稱也
대개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의 3해탈문解脫門을 표치標幟하는 명칭.
<석씨요람상釋氏要覽>上 사원삼문寺院三門
범사원유개삼문자凡寺院有開三門者 무릇 사원에 3문을 엶이 있는 것인데
지유일문역호위삼문자하只有一門亦呼爲三門者何
다만 1문만 있어도 또한 호칭하여 3문이라 하는 것은 왜인가.
불지론운佛地論云 대궁전大宮殿 삼해탈문三解脫門 위소입처爲所入處
불지론佛地論에 이르되 대궁전과 3해탈문은 소입처所入處가 된다.
대궁전유법공열반야大宮殿喩法空涅槃也 대궁전은 법공열반法空涅槃에 비유하고
삼해탈문위공문三解脫門謂空門 무상문無相門 무작문無作門
3해탈문은 이르자면 공문空門ㆍ무상문無相門ㆍ무작문無作門이다.
금사원시지계수도今寺院是持戒修道 여금의 사원은 이 지계하고 수도하면서
구지열반인거지求至涅槃人居之 열반에 이름을 구하는 사람이 거주하는지라
고유삼문입야故由三門入也 고로 3문으로 말미암아 들어간다.
►광주류왕廣主劉王 유은劉隱(873-911) 상채인上蔡人(금하남상채今河南上蔡)
5대16국의 하나인 南漢의 건국자 류은劉隱
봉주자사류겸장자封州刺史劉謙長子 봉주자사封州刺史 유겸劉謙의 장자.
당말오대십국시기령남번진남한정권존기인唐末五代十國時期嶺南藩鎭南漢政權奠基人
당말 오대십국 시기에 영남 번진藩鎭인 남한南漢 정권의 존기인奠基人(創始人).
류겸사후대임봉주자사劉謙死後代任封州刺史
유겸이 죽은 후에 대신하여 봉주자사를 맡았음.
천우원년天祐元年(904) 수임청해절도사授任淸海節度使
천우天祐 원년(904) 청해절도사淸海節度使에 수임授任(임무나 직무를 줌. 임명).
건화원년乾化元年(911) 진봉기위남해왕進封其爲南海王
건화乾化 원년(911) 그를 진봉進封(封爵을 더함)하여 南海王으로 삼았음.
동년류은병서同年劉隱病逝 시년삼십팔세時年三十八歲
같은 해 유은劉隱이 병으로 서거했는데 때의 나이 38세였음.
기제류엄계임기위其弟劉龑繼任其位
그의 아우 유엄劉龑이 그 지위를 승계해 맡았음.
정명삼년貞明三年(917) 류엄칭제劉龑稱帝 정명 3년(917) 유엄이 칭제稱帝하고
건립대월建立大越(남한南漢)정권政權 대월大越(南漢) 정권을 건립했으며
추시류은위양황제追諡劉隱爲襄皇帝 유은을 추시追諡하여 양황제襄皇帝라 했음
/백도백과百度百科
►장부臧否 吉凶. 착함과 착하지 못함.
►이연怡然 기쁘고 좋음. 편안하다. 넉넉하다.
►일합자一合子 합자盒子. 한 개의 향 담은 상자[香合子] ‘子’ 후철後綴
►일첩자一帖子 자첩字帖. 한 통의 편지
►인천안목人天眼目 인간과 천상계의 지도자
►침병寢兵 전쟁을 종식시키다. 휴전하다.
►출세出世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수행자가 선 수행을 끝내고 선의 수행자가 되는 것.
제불諸佛이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하기 위爲하여 사바세계娑婆世界로 나옴.
►개당설법開堂說法 선원의 지도자가 되어 행하는 최초의 설법
‘개당開堂’
선원신임주지禪院新任住持 시초상당설법칭작개당始初上堂說法稱作開堂
선원의 신임 주지가 처음으로 상당하여 설법함을 일컬어 개당이라 함.
►상시常侍
중상시혹산기상시적간칭中常侍或散騎常侍的簡稱
중상시中常侍 혹 산기상시散騎常侍의 간칭簡稱.
진여서한적중상시秦與西漢的中常侍 동한이환관충지東漢以宦官充之
진秦과 서한의 중상시는 동한에선 환관으로 충당했음.
위진이하적산기상시魏晉以下的散騎常侍 균유사인충당均由士人充當
위진魏晉 이하의 산기상시散騎常侍는 균일하게 사인으로 말미암아 충당했음
/백도백과百度百科
►과자果子 과실果實(과일) 과자餜子(菓子)
범지당식고점泛指糖食糕點 차지과실此指果實
널리 당식糖食(설탕으로 만든 식품)과 고점糕點(케이크ㆍ과자ㆍ빵 따위의 총칭)을 가리킴.
►신도생信道生
신信 확실確實 자휘字彙 신信 불차상야不差爽也
신信은 확실임. 자휘字彙 신信은 어긋나지(差爽) 않음이다.
생生 식물과실미성숙적植物果實未成熟的
생生은 식물의 과실이 성숙하지 않은 것이다.
►매향객賣香客 객客 상객商客. 향을 파는 상인
►존숙尊宿 수행을 쌓은 선승에 대한 존칭.
덕존년장자德尊年長者 덕이 높은 연장자.
<관무량수불경소觀無量壽佛經疏> 2云
덕고왈존德高曰尊 기년왈숙耆年曰宿
덕고德高를 가로되 존尊이며 기년耆年을 가로되 숙宿이다.
►내인內人 궁중에 사는 사람들. 궁중에서 시중드는 여인들
►문신問訊 방문함. 질문함. 문의함. 서로 글을 보내 가르침을 받음.
선종禪宗에서 합장合掌하면서 안부安否를 묻는 경례법敬禮法.
합장이구문안부야合掌而口問安否也 합장하면서 입으로 안부를 물음임.
단경읍이표문안부지심但敬揖以表問安否之心 역운문신亦云問訊
다만 경읍敬揖하면서 안부를 표문表問하는 마음도 또 이르되 문신.
<설문說文> 신訊=문問
►선문禪門 선종의 법문을 가리킴. 선종문류禪宗門流ㆍ선종ㆍ불심종ㆍ선가.
►직전사直殿使 왕궁 친위대의 대장[指揮使]
►벽옥전碧玉殿 류왕劉王의 궁전
►수각輸却 지다. 패하다. ‘却’ 동사 뒤에 붙어 의미를 강조함.
수輸 부負 재교량중실패在較量中失敗
수輸는 부負(지다)니 교량較量 중에 실패함.
►고감이顧‘顧’
‘顧’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라.
원래는 주위를 돌아 본 운문의 동작이다.
그래서 후대에는 이 ‘顧’를 빼 버리고 ‘鑒’ ‘咦’만을 썼다.
‘鑒’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라
‘咦’ 놀랐을 때 나오는 감탄사
<선종송고련주통집禪宗頌古聯珠通集>32
운문매견승雲門每見僧 필고시왈감必顧視曰鑒
운문이 매번 중을 보면 반드시 돌아보고(顧視) 가로되 감鑒.
승의의僧擬議 내왈이乃曰咦
중이 의의擬議(헤아려 의논하려 함)하면 곧 가로되 이咦 했다.
후덕산원명대사後德山圓明大師 산거고자위지추고刪去顧字謂之抽顧
후에 덕산원명대사德山圓明大師가 고자顧字를 깎아 제거하고는 이를 일러 추고抽顧라 했는데
총림목운문고감이叢林目雲門顧鑒咦
총림에서 제목 해 운문의 고감이顧鑒咦라 했다.
►참회懺悔 불교에서 잘못을 뉘우쳐 해탈을 구하는 수행법을 지칭하는 용어. 불교수행법.
지관칠왈止觀七曰 <지관7>에 가로되
참명진로선악懺名陳露先惡 참懺은 이름이 선악先惡을 진로陳露함이며
회명개왕수래悔名改往修來 회悔는 이름이 개왕수래改往修來(과거를 고쳐서 미래를 닦음)다.
연참위범어참마지략然懺爲梵語懺摩之略 이비한어而非漢語
그러나 참懺은 범어 참마懺摩(梵 kṣama)의 약칭이며 한어漢語가 아니다.
고태종지자제불취지故台宗之子弟不取之
고로 천태종의 자제들은 이를 취하지 않는다.
<금광명경문구기金光明經文句記>3
참회이자懺悔二字 내쌍거이음乃雙擧二音 참회懺悔 2자는 곧 2음을 쌍거雙擧했다.
범어참마梵語懺摩 화언회과華言悔過 범어 참마懺摩는 화언으로 회과悔過다.
<기귀전寄歸傳>2
구운참회舊云懺悔 비관설죄非關說罪
구역舊譯에 이른 참회懺悔는 설죄說罪와 상관되지 않는다.
하자何者 참마내시서음懺摩乃是西音 자당인의自當忍義
왜냐하면 참마懺摩는 곧 이 서음西音이며 스스로 인忍의 뜻에 상당한다.
회내동하지자悔乃東夏之字 추회위목追悔爲目
회悔는 동하東夏의 글자니 추회追悔로 명목한다.
참지여인懺之與忍 형불상간逈不相干
참懺과 인忍은 멀어서 상간相干되지 않는다.
►정법안장正法眼藏 불법의 올바른 안목
우왈청정법안又曰淸淨法眼 선가이지위교외별전지심인禪家以之爲敎外別傳之心印
또 가로되 청정법안이니 선가가 이로써 교외별전의 심인心印으로 삼음.
►평포平鋪 평상, 보통. 현활顯豁(환함)히 명백明白함. 평직平直
►철궐자鐵橛子 철봉鐵棒. 무쇠막대기. ‘언어문자로 설명할 수 없는 것’
남의 生死에 관계되는 약점을 잡고 사람을 마음대로 다루는 것.
►동산초洞山初 동산수초洞山守初(910-990)
사운문문언嗣雲門文偃 운문문언雲門文偃을 이었음. 아래 제12칙을 보라.
►지문관智門寬 지문사관智門師寬(?-?) 오대후진승五代後晉僧
호명교號明敎 참운문문언득오參雲門文偃得悟 호는 명교明敎며 운문문언을 참해 깨침을 얻었고
주수주쌍천산住隨州雙泉山 후주지문後住智門 수주隨州 쌍천산에 거주하다가 후에 智門에 거주.
/전등록傳燈錄22 오등회원五燈會元15
►덕산밀德山密 덕산연밀德山緣密(?-?) 오대초승五代楚僧
호원명號圓明 운문문언법사雲門文偃法嗣 주정주덕산住鼎州德山
호는 원명이며 운문문언의 법사며 정주鼎州 덕산에 거주함
/오등회원五燈會元15 전등록傳燈錄22 련등회요聯燈會要26
►향림원香林遠 향림징원香林澄遠(908-987)
사운문문언嗣雲門文偃 아래 17則을 보라
►소양신정기韶陽新定機
①운문이 사용했던 목주의 전술전략.
‘韶陽’은 운문산 光泰禪院이 있던 곳. 운문을 가리키는 말.
‘新定’ 모주가 머물던 목주군의 별명. 목주를 가리킴.
‘機’ 기략. 전술전략.
운문은 목주에게 大悟했기에 납자를 지도함에 목주의 지도방법을 많이 사용했다
②운문(韶陽)으 참신(新)하고 지혜로운(定=禪定智) 機略
광동소양廣東韶陽 지운문문언指雲門文偃 광동廣東 소양이니 운문문언을 가리킴.
<불조력대통재佛祖歷代通載>17曰
사거령수師居靈樹 구지천소양久之遷韶陽(광동廣東)운문雲門
스님이 영수靈樹에 거주하다가 오래되자 소양韶陽(廣東) 운문으로 옮겼다.
‘신정기新定機’
불자구철不藉舊轍 이참신령기접인자以斬新靈機接人者
구철舊轍(전철)을 빌리지 않고 참신한 영기靈機로 접인하는 것
/벽암록제륙칙종전초碧巖錄第六則種電鈔
►3句 운문종의 특성을 나타낸 세 글귀.
함개건곤涵蓋乾坤 함개절류函蓋截流
하늘과 땅을 덮어 포용한다, 곧 진리는 모든 현상에 널리 퍼져 있다는 뜻.
절단중류截斷衆流 함개절류函蓋截流
모든 흐름을 끊어 버린다, 곧 수행자의 번뇌·망상을 명쾌하게 끊어 버린다는 뜻.
수파축량隨波逐浪 파도를 따라 흐름을 같이한다,
곧 수행자의 소질이나 능력에 따라 자유 자재로 지도한다는 뜻.
►문두問頭 문제問題 ‘頭’ 조사助詞
►종풍宗風
① 한 선승禪僧의 독자적인 가르침이나 지도 방법.
② 한 宗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독특한 가르침이나 지도 방법.
지일종지각별풍모指一宗之各別風貌 1종宗의 각기 다른 풍모를 가리킴.
우칭풍의又稱風儀 선풍禪風 또 명칭이 풍의風儀ㆍ선풍禪風.
선종특칭종사가지풍의위종풍禪宗特稱宗師家之風儀爲宗風
선종에서 종사가의 풍의를 특칭特稱하여 종풍이라 함.
►대운代云
상문념거지공안화두上文拈擧之公案話頭 상문上文에 염거拈擧한 공안화두에
약결답어若缺答語 만약 답어答語가 결손하면
선가대의답어禪家代擬答語 선가禪家가 대신해 답어 하려하면서
시이대운示以代云 대운代云으로 보임.
시선가설법적일종형식是禪家說法的一種形式 이는 선가의 설법의 일종 형식임.
야시선가어록적일종류형也是禪家語錄的一種類型 또 이는 선가어록의 일종 유형임.
►타살불여자살他殺不如自殺 타인을 경책하는 것보다 자기자신을 경책하는 것이 더 낫다
‘殺’ 경책하다
►타갱락참墮坑落塹=타갱락참又作墮坑落壍
질락갱리구리跌落坑裏溝裏 미끄러져 구덩이 속 도랑 속에 떨어짐.
다유함입언사지해多喩陷入言辭知解 불계선법不契禪法
다분히 언사와 지해에 함입陷入하여 선법에 계합하지 못함에 비유함.
►종지宗旨
① 종문宗門의 교의敎義의 취지. 종의宗意ㆍ종치宗致
② 주장主張이 되는 요지나 根本이 되는 重要한 뜻.
지경전여론서등지주요지취指經典與論書等之主要旨趣
경전과 논서 등의 주요한 지취를 가리킴.
여종취與宗趣 종요宗要 종체등宗體等 의의상동意義相同
종취宗趣ㆍ종요宗要ㆍ종체宗體 등과 의의가 서로 같음.
어선종於禪宗 칙칭선지요지위종지則稱禪之要旨爲宗旨
선종에선 곧 선의 요지를 일컬어 종지宗旨라 함.
역칭종풍亦稱宗風 종취宗趣 종승宗乘
또한 명칭이 종풍ㆍ종취宗趣ㆍ종승宗乘임.
►두찬杜撰
저술著述에 전거典據나 출처出處가 확실確實하지 않은 文字를 쓰거나 오류誤謬가 많음.
원지재시문혹기타저작중原指在詩文或其他著作中
원래 詩文이나 혹은 기타의 저작 가운데 있어
망작론술이호무근거지정형妄作論述而毫無根據之情形
망령妄靈되이 논술을 지어 터럭만큼도 근거가 없는 정형情形을 가리킴.
기어유래하렬제설其語由來下列諸說
그 말의 유래는 아래에 여러 설을 나열하겠음.
1,
한대지전하정통역학漢代之田何精通易學 천거두릉遷居杜陵 세칭두전생世稱杜田生
한대漢代의 전하田何가 역학易學을 정통하였으며 두릉杜陵에 옮겨 거주했는데 세칭이 두전생임.
연혹위기역학실무사승지처然或謂其易學實無師承之處
그러나 혹은 이르기를 그 역학이 실은 사승師承한 곳이 없는지라
고세인다이두전故世人多以杜田 혹두원或杜園 기지譏之
고로 세인이 많이 두전杜田 혹은 두원杜園이라 하여 그를 비웃었음.
후와칭위두찬後訛稱爲杜撰
후에 잘못 호칭하여 두찬杜撰이라 했음.
2,
거전二據傳 도가오천여권지서중道家五千餘卷之書中 제도덕경이권외除道德經二卷外
전傳에 의거하건대 도가道家의 5천여 권의 책 중에 도덕경 2권(道經ㆍ德經)을 제한 밖에
기여균위당말문인두광정소찬술其餘均爲唐末文人杜光庭所撰述
그 나머지는 균일하게 당말唐末의 문인인 두광정杜光庭이 찬술한 것이며
다속허탄지설多屬虛誕之說 많이 허탄虛誕의 설에 속한지라
고후인다칭근빙억조故後人多稱僅憑臆造
고로 후인이 많이들 겨우 억설臆說에 의빙하여 조작하고
而이무소본지설위두찬無所本之說爲杜撰
근본 할 바의 설이 없는 것을 일컬어 두찬杜撰이라 하였다.
3.
송대문인두묵작시시宋代文人杜默作詩時 상불합률常不合律
송대宋代의 문인 두묵杜默이 시를 지을 때 늘 율律에 맞지 않았으므로
시인수이행사불합법식자時人遂以行事不合法式者 위지두찬謂之杜撰
당시의 사람이 드디어 행사行事가 법식에 맞지 않는 것을 두찬杜撰이라고 말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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