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語錄/벽암록

벽암록 25칙 本則 評唱

【評 唱】

제인환재변득련화봉암주마諸人還裁辨得蓮花峰庵主麼 여러분은 연화봉 암주를 알 수 있겠느냐?

각근야미점지재腳跟也未點地在 (전혀 자취를 남기지 않아) 발꿈치조차도 땅에 대지 않았다.

 

국초시國初時 재천태련화봉탁암在天台蓮花峰卓庵

그는 송宋이 건국됐을 무렵 천태산 연화봉에 암자를 세웠다.

 

고인기득도지후古人既得道之後 옛 사람들은 도를 얻은 뒤에는

모자석실중茅茨石室中 초옥이나 석실石室에서

절각당아내折脚鐺兒內 발 부러진 가마솥에

자야채근끽과일煮野菜根喫過日 나물 뿌리를 삶아 먹으면서 날을 보냈다.

 

차불구명리且不求名利 방광수연放曠隨緣 수일전어垂一轉語

명예와 이익을 구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인연 따라 일전어를 하면서

 

차요보불조은且要報佛祖恩 전불심인傳佛心印

불조의 은혜에 보답하고 부처님의 심인心印을 전하고저 하였다.

 

재견승래纔見僧來 편념주장운便拈拄杖云

그는 어떤 스님이 오는 것을 보기만 하면 바로 주장자를 들고서

 

고인도저리위십마불긍주古人到這裏為什麼不肯住

“옛사람이 여기에 이르러 무엇 때문에 안주하려 하지 않았을까?”라고 물었다.

 

전후이십여년前後二十餘年 이렇게 전후 20여 년간을 지내왔으나

종무일인답득終無一人答得 끝내 한 사람도 대답한 자가 없었다.

 

지저일문只這一問 야유권유실也有權有實 유조유용有照有用

이 물음에는 방편도 있고 진실도 있고 지혜도 있고 행동도 갖추어져 있다.

 

약야지타권궤若也知他圈繢 불소일날不消一捏

그의 속셈을 알았다면 말해줄 것이 없다.

 

이차도인십마이십년여차문爾且道因什麼二十年如此問

그대들은 말해보라, 무엇 때문에 20여년간 이처럼 물었는가를?

 

기시종사소위既是宗師所為 이는 종사宗師이기에 할 수 있었던 일인데

하고지수일궐何故只守一橛 무엇 때문에 언어의 말뚝에 얽매여 있는가?

 

약향개리견득若向箇裏見得 만일 이 경지를 알아차리면

자연불향정진상주自然不向情塵上走 자연히 알음알이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범이십년중凡二十年中 유다소인有多少人 여타평전與他平展

20여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설명하기도 했고

 

하어정견해下語呈見解 주진기량做盡伎倆

의견을 붙이기도 하면서 자기가 이해한 바를 드러내기에 온 힘을 다하였다.

 

설유개도득設有箇道得 야부도타극칙처也不到他極則處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해도 궁극의 자리에는 이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황차사수부재언구중況此事雖不在言句中 비언구즉불능변非言句即不能辨

비록 이 경지는 언구 속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언구가 아니고서는 분별하지 못한다.

 

불견도不見道 듣지 못하였느냐?

도본무언道本無言 “도란 본디 말이 아니지만

인언현도因言顯道 말로 인하여 도는 나타나는 것이다”라고 했던 것을.

 

소이험인단적처所以驗人端的處 하구편지음下口便知音

그러므로 사람을 시험하는 급소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알아차려야 한다.

 

고인수일언반구古人垂一言半句 역무타亦無他 지요견이지유부지유只要見爾知有不知有

옛사람이 남긴 일언반구는 다름이 아니라 (그 급소를) 아는가 모르는가를 보려는 데 있다.

 

타견인불회他見人不會 소이자대운所以自代云

암주는 학인들이 알지 못한 것을 보고서 스스로 대신하여

 

위타도로부득력為他途路不得力

“그들이 수행의 도상에서 도움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간타도득看他道得 보아라. 그는 제대로 말했기 때문에

자연계리계기自然契理契機 자연히 이치와 기틀에 계합했다.

기증실각종지幾曾失卻宗旨 어찌 종지를 잃었겠는가?

 

고인운古人云 옛사람의 말에

승언수회종承言須會宗 “말을 들으면 모름지기 종지를 알아야지

물자립규구勿自立規矩 제멋대로 기준을 세우지 말라”하였다.

 

여금인如今人 요즈음 사람들은

지관당장거편료只管撞將去便了 오로지 한 번 부딪쳐 보고는 그걸로 그만이니

득즉득得則得 쟁내만안롱동爭柰顢頇儱侗 심정이야 알겠다만 뻔뻔스럽고 미련한 일임을 어찌하랴.

 

약도작가면전若到作家面前 만일 작가 선지식한테 가서

장삼요어인공將三要語印空 삼요어三要語로 허공에 도장을 찍고[印空]

 

인니인수험타印泥印水驗他

진흙에 도장을 찍고[印泥] 물에 도장을 찍어서[印水] 그(작가 선지식)를 시험하면

 

편견방목두원공便見方木逗圓孔 무하락처無下落處

곧 모난 나무로 둥근 구멍을 막는 듯하여 들어맞을 리가 없을 것이다.

 

도저리到這裏 이렇게 되어서는

토일개동득동증討一箇同得同證 자기와 똑같이 도를 깨친 자를 찾아보아도

림시향십마처구臨時向什麼處求 그 경우에 어느 곳에서 이를 찾아야 좋을까?

 

약시지유저인若是知有底人 만일 (본분소식을)아는 사람이라면

개회통개소식開懷通箇消息 가슴을 열어놓고 소식을 주고받음에

유하불가有何不可 어찌 불가능함이 있겠는가?

 

약불우인若不遇人 차권이회지且卷而懷之

만일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그 소식을) 가슴속 깊이 간직해두어야 한다.

 

차문이제인且問爾諸人 그대들에게 묻노라.

주장자拄杖子 주장자란

시납승심상용저是衲僧尋常用底 평소 납승이 사용하는 것인데

 

인십마각도도로부득력因什麼卻道途路不得力

무엇 때문에 “수행의 도상에서 도움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고 말했을까?

 

고인도차불긍주古人到此不肯住 옛사람은 이런 경지에도 머물려 하지 않았다.

기실금설수귀其實金屑雖貴 락안성예落眼成翳

그것은 금가루가 비록 귀하기는 해도 눈에 떨어지면 장애물이 되는 것과 같다.

 

석실선도화상石室善道和尚 당시조사태當時遭沙汰

석실선도石室善道 스님은 당시에 당 무종武宗의 법난法難을 만났다.

 

상이주장시중운常以拄杖示眾云 항상 주장자를 들고서 설법하기를

과거제불야임마過去諸佛也恁麼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이러했고,

미래제불야임마未來諸佛也恁麼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이러할 것이며

현전제불야임마現前諸佛也恁麼 현재의 모든 부처님도 이와 같다”라고 했다.

 

설봉일일승당전념주장시중운雪峰一日僧堂前拈拄杖示眾云

설봉스님이 하루는 승당僧堂 앞에서 주장자를 들고 대중에게 말하였다.

 

저개지위중하근인這箇只為中下根人

“이것은 중등 내지는 하등의 근기를 지닌 사람을 위한 것일 뿐이다.”

 

시유승출문운時有僧出問云

그때에 어떤 스님이 대중 속에서 나오면서 말하였다.

 

홀우상상인래시여하忽遇上上人來時如何

“갑자기 으뜸의 근기를 지닌 사람을 만났을 때는 어떻게 합니까?”

 

봉념주장편거峰拈拄杖便去

이에 설봉스님은 주장자를 집고서 바로 자리를 떠나버렸다.

 

운문운雲門云 (이에 대해) 운문스님이 말하였다.

아즉불사설봉타파랑적我即不似雪峰打破狼籍

“나라면 설봉처럼 엉망진창으로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승문僧問 미심화상여하未審和尚如何

어떤 스님이 “그럼 스님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묻자

 

운문편타雲門便打 운문스님은 대뜸 후려쳤다.

대범참문大凡參問 야무허다사無許多事 무릇 묻는 것은 복잡할 것이 없다.

 

위이외견유산하대지為爾外見有山河大地 그대들이 밖으로는 산하대지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내견유견문각지內見有見聞覺知 안으로도 견문각지見聞覺知가 있다고 여기거나

 

상견유제불가구上見有諸佛可求

위로는 우리가 도달해야만 하는 부처님의 경지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하견유중생가도下見有眾生可度 아래로는 제도해야 할 중생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직수일시토각直須一時吐卻 그런 생각일랑 모두 토해버려라!

 

연후십이시중然後十二時中 행주좌와行住坐臥 타성일편打成一片

그래야지만 하루 종일 행주좌와 하는 가운데 한결같아지리라.

 

수재일모두상雖在一毛頭上 관약대천사계寬若大千沙界

러하면 비록 한 터럭 끝이라도 大千沙界만큼이나 넓으며

 

수거확탕로탄중雖居鑊湯爐炭中 여재안락국토如在安樂國土

확탕․ 노탄 지옥에 있어도 안락국토에 있는 듯하며

 

수거칠진팔보중雖居七珍八寶中 여재모자봉호하如在茅茨蓬蒿下

온갖 보배 속에 있어도 초라한 띠풀 집에 있는 것과 같을 것이다.

 

저반사這般事 이 같은 일은

약시통방작자若是通方作者 툭 트인 작가 선지식이라면

도고인실처到古人實處 옛사람의 참된 경지에 이르는 데

자연불비력自然不費力 자연히 힘들지 않을 것이다.

 

타견무인구득타저他見無人搆得他底 부자징운復自徵云

그(연화봉 암주)는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을 보고서 다시 다그쳐 물었다.

 

필경여하畢竟如何 우내하부득又柰何不得 자운自云

“궁극적으로 무엇인가?”하고는 어찌할 수 없어 스스로가 말하였다.

 

즐표횡담불고인楖標橫擔不顧人 직입천봉만봉거直入千峰萬峰去

“주장자를 비껴 든 채 옆 눈 팔지 않고 천 봉우리 만 봉우리 속으로 곧장 들어간다.”고 하였다.

 

저개의우작마생這箇意又作麼生 이 뜻은 무엇일까?

차도지십마처위지두且道指什麼處為地頭 말해보라. 어디가 그의 영역이라 하겠는가?

 

불방구중유안不妨句中有眼 참으로 구절 속에 눈이 있고

언외유의言外有意 말 밖에 뜻이 있어

자기자도自起自倒 스스로 일어났다가 스스로 넘어지고

자방자수自放自收 스스로 놓았다가 스스로 거둬들인 것이다.

 

기불견엄양존자豈不見嚴陽尊者 로봉일승路逢一僧 념기주장운拈起拄杖云

듣지 못하였는가? 엄양존자가 길가에서 한 스님을 만나자 주장자를 세우면서 말한 것을.

 

시십마是什麼 “이것이 무엇이냐?”

승운僧云 불식不識 “모르겠습니다.”

엄운嚴云 일조주장야불식一條拄杖也不識 “한 자루의 주장자도 모르는군.”

 

엄부이주장嚴復以拄杖 지상차일하地上劄一下 운云 환식마還識麼

엄양존자가 다시 주장자를 땅에 내리꽂으면서 “알겠느냐?”고 하자

 

승운僧云 불식不識 여전히 스님은 “모르겠다.”고 하니

엄운嚴云 토굴자야불식土窟子也不識 “움푹 패인 구멍도 모르는군.”하고

 

엄부이주장담운嚴復以拄杖擔云 엄양스님은 다시 주장자를 걸머지면서 말하였다.

회마會麼 “알겠느냐?”

승운僧云 불회不會 “모르겠습니다.”

 

엄운嚴云 엄양이 말했다.

즐표횡담불고인楖標橫擔不顧人 직입천봉만봉거直入千峰萬峰去

“주장자를 비껴든 채 옆 눈 팔지 않고 천 봉우리 만 봉우리 속으로 곧바로 들어간다.”

 

고인도저리古人到這裏 위십마불긍주為什麼不肯住

옛사람이 여기에 이르러 무엇 때문에 머물려 하지 않았을까?

 

설두유송운雪竇有頌云 설두스님에게는 다음과 같은 송頌이 있다.

수당기誰當機 어느 누가 기봉을 당하랴.

거부잠舉不賺 역환희亦還希 거론해 속이지 못하나 꽤나 희귀하기도 하여라.

 

최잔초준摧殘峭峻 높은 경지 꺾어버리고

소삭현미銷鑠玄微 현미玄微함을 녹여버렸네.

 

중관증거벽重關曾巨闢 겹겹의 관문 활짝 열어젖히고

작자미동귀作者未同歸 작가 선지식은 남과 같은 길을 가지 않는구나.

 

옥토사원사결玉兔乍圓乍缺 달은 찼다가는 이지러지고

금오사비불비金烏似飛不飛 해는 날아갈 듯 하나 날지 않는구나.

 

로로불지하처거盧老不知何處去 노공盧公(설두 자신)은 어디로 갔을까?

백운류수공의의白雲流水共依依 흰 구름, 흐르는 강물만이 아련하다.

 

인십마산승도因什麼山僧道 뇌후견시막여왕래腦後見腮莫與往來

왜 산승(원오 자신)은 “뒤통수에서 뺨이 보이는 사람과는 함께 사귀지 말라”고 주석하였을까?

 

재작계교纔作計較 편시흑산귀굴리작활계便是黑山鬼窟裏作活計

사량분별을 하자마자 바로 흑산의 귀신 굴속에서 살림살이하는 것이다.

 

약견득철신득급若見得徹信得及 만일 사무치게 보고 믿음이 따르면

천인만인千人萬人 자연라롱부주自然羅籠不住 내하부득柰何不得

모든 사람이 그를 얽매이려 해도 어찌하지 못하리라.

 

동착찰착動著拶著 자연유살유활自然有殺有活

움직이거나 한 대 내질러도 자연히 살리거나 죽이거나 자유자재하리라.

 

설두회타의도雪竇會他意道 설두스님은

직입천봉만봉거直入千峰萬峰去 “천 봉우리 만 봉우리 속으로 곧바로 들어간다.”한

방시성송方始成頌 암주의 뜻을 알고서 송을 지었다.

 

요지락처要知落處 간취설두송운看取雪竇頌云

그의 의도를 알려고 한다면 설두스님의 송을 보아라.

 

 

►재변득裁辨得 감별하다. 식별하다.

‘裁辨’ 감별鑑别 변별辨别

 

►각근야미점지재脚跟也未點地在

각근脚跟 어선림상전지본래자아於禪林常轉指本來自我

각근脚跟은 선림에서 늘 전轉하여 본래의 자아를 가리킴.

 

각근미점지脚跟未點地 시대수행미순숙지용어是對修行未純熟之用語

각근미점지脚跟未點地는 이는 수행이 순숙하지 못함에 대한 용어임.

 

►국초國初 宋나라 초. 송 태조 당시(960-976)

►절각당아折脚鐺兒 다리가 부러진 무쇠 솥

‘鐺兒’

즉당卽鐺 온기溫器 사과似鍋 삼족三足 아兒 후철後綴

즉 쟁鐺이니 온기溫器임. 과鍋(노구솥)와 비슷하고 3족足임. 아兒는 후철後綴.

 

►방광放曠 방달放達. 언행에 거리낌이 없음.

말과 행동의 구속을 받지 않음. 마음이 너그러워 일에 구애되지 않음.

 

군가용방광君家容放曠 그대 집에서는 방광을 용납하나

각공해금시却恐駭今時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 오히려 두렵네.

/박은朴誾 <만리뢰萬里瀨> 2首

 

차지호방광달此指豪放曠達 불구례속不拘禮俗

여기에선 호방광달豪放曠達하여 예속禮俗(예의범절에 관한 풍속)에 구애되지 않음을 가리킴.

 

►일전어一轉語 심기일전시키는 언어. 새로운 국면을 제세하는 말.

미혹한 마음을 싹 바꿔 깨달음에 들게 하는 간단명료한 한 마디 말.

 

►지유知有=지도知道(알다. 이해하다). 지효知曉(알아서 깨달음. 또는 환히 앎).

지유차사知有此事 차사此事가 있음을 앎.

 

►기증幾曾 어찌 ~할 수 있겠는가?

►승언수회종承言須會宗/석두희천참동계문石頭希遷參同契文

<참동계參同契>/석두희천石頭希遷

 

축토대선심竺土大仙心 천축국 부처님의 마음에 관한 법이

동서밀상부東西密相付 서쪽과 동쪽에서 비밀리에 전해졌다.

인근유리둔人根有利鈍 사람들의 근기에는 우열 있어도

도무남북조道無南北祖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남과 북이 없다.

 

영원명교결靈源明皎潔 부처님의 가르침은 맑고 밝아 분명한데

지파암류주枝派暗流注 서로 다른 가지로 갈리었도다.

집사원시미執事元是迷 어떤 것에 집착하면 그게 바로 미혹이요

계리역비오契理亦非悟 겨우겨우 아는 것도 깨달음은 아니다.

 

문문일체경門門一切境 문파마다 내세우는 여러 가지 경계들이

회호불회호回互不回互 서로간에 얽히기도 엇갈리기도 하는데

회이갱상섭回而更相涉 얽히면 더욱더 관계가 깊어지고

불이의위주不爾依位住 멀리 하면 따로따로 제자리에서 지내게 된다.

 

색본수질상色本殊質象 오감으로 느끼는 사물은 성품이나 모양과 다르고

성원이악고聲元異樂苦 이름 또한 즐거움이나 괴로움과 다르나니

압합상중언暗合上中言 상근기와 중근기는 앞에 한 말에 부합하여

명명청탁구明明淸濁句 좋은 말 나쁜 말 맞는 말 틀린 말을 밝게 보리라.

 

사대성자복四大性自復 사대의 성품이 스스로 회복되면

여자득기모如子得其母 자식이 그 어미를 얻은 것과 같으니

화열풍동요火熱風動搖 뜨거운 불의 열기 바람을 일으키고

수습지견고水濕地堅固 차가운 물이 땅을 적셔 단단하게 만들도다.

 

안색이음성眼色耳音聲 눈으로 색깔을 보고 귀로 소리 들으며

비향설함초鼻香舌鹹醋 코로 향기를 맡고 혀로 맛을 보니

의연일일법依然一一法 그것들 모두 하나하나 공능의 법이 있어

의근엽분포依根葉分布 뿌리와 잎처럼 제자리에 분포하는데

본말수귀종本末須歸宗 뿌리와 나무 끝은 근본으로 돌아가야 하는데도

존비용기어尊卑用其語 귀함과 천함이 따로따로 자기 말을 쓰는구나.

 

당명중유암當明中有暗 밝은 것 가운데 어두운 게 있으니

물이암상우勿以暗相遇 어둠으로 밝음을 보지 말아야 하고

당암중유명當暗中有明 어둠 속에 밝음이 또한 있으니

물이명상도勿以明相睹 밝음으로 어둠을 보지도 말아야 한다.

 

명암각상대明暗各相對 밝음과 어두움이 서로를 상대하는 것은

비여전후보比如前後步 비유적으로 말하면 걸음의 앞뒤와 같고

만물자유공萬物自有功 온갖 사물에 저마다의 공능 있으니

당언용급처當言用及處 마땅히 그 작용이 미치는 곳을 말해야 한다.

 

사존함개합事存函蓋合 일은 때로 뚜껑 덮인 상자처럼 모호할 때 있지만

이응검봉괘理應劍鋒挂 도리란 마땅히 칼끝처럼 날카로워야 한다.

승언수회종承言須會宗 말을 들을 때는 반드시 바른 뜻을 알아야 하니

물자립규구勿自立規矩 함부로 추측하고 짐작하지 말 일이다.

 

촉목불회도觸目不會道 눈을 뜨고도 바른 길을 보지 못하면

운족언지로運足焉知路 걷는 다리가 어떻게 길을 알겠는가.

진보비근원進步非近遠 진보란 멀리 가는 것에 달려 있지 않은데

미격산하고迷隔山河固 미혹되면 산과 강처럼 넘기 힘든 장애가 된다.

근백참현인謹白參玄人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는 이여

광음막허도光陰莫虛度 귀중한 세월 헛되게 흘러가게 말지니라.

 

►당장거변료撞將去便了 생각으로 헤아리고 글자를 파헤쳐 알려고 한다.

►인공인니인수印空印泥印水 깨달음의 정도를 시험하는 3가지 방법

만일 작가 선지식한테 가서 삼요어三要語로

인공印空 허공에 도장을 찍고

인니印泥 진흙에 도장을 찍고

인수印水 물에 도장을 찍어서

그(작가 선지식)를 시험하면 곧 모난 나무로

둥근 구멍을 막는 듯하여 들어맞을 리가 없을 것이다.

 

<3種禪思想>

불교의 선종에서 선을 3종으로 구분하여 전개시킨 불교교리.

 

삼종선은 의리선義理禪·여래선如來禪·조사선祖師禪으로 분류된다.

의리선은 선을 언어나 문자 등으로 그 이치를 설명하는 것이고

여래선은 교에 의지하여 自性의 본래 청정한 바탕을 바르게 체득하는 것이며

조사선은 불립문자不立文字·교외별전敎外別傳의 선지禪旨를 곧바로 체득하는 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에 백파白坡가 <선문수경禪門手鏡>을 저술하여

삼종선을 분류함에 따라서 여러 가지 주장이 대두되었다.

 

백파는 삼종선을 임제종의 개산조인 임제臨濟의 3句로써 대비하였다.

즉 조사선을 임제3구의 제1구인 인공인印空印 삼요三要에

여래선을 제2구인 인수인印水印 삼현三玄에

의리선을 제3구인 인니인印泥印에 각각 붙였다.

그리고 조사선과 여래선을 총칭하여 격외선格外禪이라 하고

의리선을 최하급의 선이라고 하였다.

 

백파는 또 이들 삼종선을 정의하여 조사선은 眞空과 妙有를 깨달아서 얻는 선의 경지이고

여래선은 萬法을 통합하여 一心을 다루고 일심의 실재함을 증오證悟하는 선경禪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의리선은 이치와 뜻에 있어서 유무 또는 현상과 실재의 관계는 판별하지만

아직 唯心의 체험에 이르지 못한 口頭禪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백파의 이와 같은 설에 대해 의순意恂은 <사변만어四辨漫語>를 저술하여

의리선과 격외선, 여래선과 조사선, 殺人劍과 活人劍, 眞空과 妙有의 四辨으로써

백파의 주장을 반박하였다.

 

또 홍기洪基는 백파의 <선문수경>이 전통적인 선에 관한 해석과 어긋나기 때문에

그것을 고쳐 바르게 한다는 뜻에서 <선문증정록禪門證正錄>을 지어 백파의 주장을

비판하는 한편 고석古釋을 인증引證하여 그 잘못된 바를 지적하였다.

 

이에 대하여 백파의 문인이자 법손法孫인 유형有炯은 <선원소류禪源遡流>를 지어

의순과 홍기의 설을 다시 반박하고 백파의 주장을 지지하였다.

 

그 뒤 서진하徐震河는 <선문재정록禪門再正錄>을 지어

백파 등 여러 선사들의 주장에 대해 논술하였다.

 

서진하는 백파의 설에 대해 찬성도 하고 반대도 하였지만

이들 여러 고승의 선에 관한 논란을 총정리하여 집대성하지는 못하였다.

 

이와 같은 삼종선에 관한 쟁변은 조선 말기의 불교계에 있었던 한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방목두원공方木逗圓孔 원공방목圓孔方木, 방예원조方枘圓鑿

네모난 나무를 동그란 구멍 속에 넣으려고 하는 것처럼

두 가지 일이나 사물이 합해질 수 없는 것을 가리킨다.

 

용방형목두욕투합어원공用方形木頭欲投合於圓孔

네모꼴의 나무를 써서 둥근 구멍에 투합投合하려고 함이니

 

비유방법착오比喩方法錯誤 무법달도목적無法達到目的

방법의 착오로 목적에 달도達到(도달)할 법이 없음에 비유함.

 

두逗 물상투합야物相投合也

두逗는 물건을 서로 투합投合 함.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운거도응雲居道膺

약장유한심식작무한중용若將有限心識作無限中用

중생의 마음을 부처의 경계에서 써보려고 하는 것은

 

여장방목두원공如將方木逗圓孔

모난 몽둥이를 동그란 구멍에 넣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근수정혜결사문勤修定慧結社文>/지눌知訥

이집인탐착지심구불경계以執吝貪着之心求佛境界

인색하고 탐욕스러운 마음으로 부처의 경계를 구하려고 하는 것은

 

여장방목두원공야如將方木逗圓孔也

모난 몽둥이를 둥근 구멍에 넣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임시臨時 그때가 돼서

►금설수귀락안성예金屑雖貴落眼成翳

유지불법설교대우선오시다여喩指佛法說敎對于禪悟是多餘

불법의 설교는 선오禪悟에 상대해선 이 다여多餘며

 

심지유애적甚至有礙的

심하기론 장애가 있음에 이름을 비유로 가리킴.

 

►석실선도石室善道 선도善道 당대승唐代僧 사장자광嗣長髭曠(사석두희천嗣石頭希遷)

치사태値沙汰 내작행자乃作行者 사태沙汰를 만나 이에 행자가 되어

거담주居潭州(今湖南長沙)석실石室 담주(지금의 호남 장사)의 석실에 거주했으며

세칭석실선도世稱石室善道 석실행자石室行者 세칭이 석실선도ㆍ석실행자임

/전등록傳燈錄14

 

►사태沙汰 회창會昌 5년(845)에 있었던 唐 武宗의 불교 탄압사건.

사찰 4,600개를 파괴하고 승려 26만 500명을 환속시켰다.

 

►12時

일일중지십이개시진一日中之十二箇時辰 종자시지해시從子時至亥時

1일 중의 12개 시진時辰이니 자시로부터 해시에 이르기까지.

 

►대천사계大千沙界=대천세계大千世界.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7칙 大千을 보라)

 

►안락국安樂國 안락세계安樂世界. 안락정토安樂淨土. 안락국토安樂國土.

서방극락세계지별명西方極樂世界之別名 서방 극락세계의 별명임.

 

►칠진팔보七珍八寶 위다수적진보謂多數的珍寶 다수의 진보珍寶를 말함.

칠혹팔표시다수七或八表示多數 7 혹 8은 다수를 표시함.

 

칠진七珍 칠종가진중지보야七種可珍重之寶也 여소위칠보동與所謂七寶同

7진珍은 7종의 가히 진중珍重한 보배니 소위所謂 7보와 같음.

 

제경론소설소이諸經論所說少異 여러 경론에서 설하는 바가 조금씩 다름.

<법화경삼수기품法華經三受記品> 금金 은銀 류리琉璃 차거硨磲 마노瑪瑙 진주眞珠 매괴玫瑰

<무량수경상無量壽經上> 금金 은銀 류리琉璃 파리玻璃 산호珊瑚 마노瑪瑙 차거硨磲

 

►징徵 1.증명證明 2.추구推究 3.책문責問.

►지두地頭 종점終點 목적目的 극칙처極則處

저기만의 영역. 원래는 ‘상인들의 세력범위’를 일컫는 말.

 

►엄양존자嚴陽尊者 엄양선신嚴陽善信.

당대승唐代僧 휘선신諱善信 조주종심법사趙州從諗法嗣

 

초결려무녕신흥엄양산初結廬武寧新興嚴陽山 천우天祐(904-907)간間 거명심사居明心寺

처음에 무녕 신흥 엄양산에 오두막집을 엮었고 천우天祐(904-907)간 明心寺에 거주했음

/전등록傳燈錄11 오등회원五燈會元4

 

►토굴자土窟子 토굴土窟 ‘子’ 후철後綴

►유송운有頌云 명각선사明覺禪師 <조영집祖英集>5를 보라.

►최잔摧殘 꺾어서 손상을 입힘. 꺾어서 없앰. 꺾어버리다.

<참전계경參佺戒經> 최잔摧殘

최잔자摧殘者 납후지야拉朽枝也 최잔摧殘이란 썩은 가지를 꺾는 것이다.

 

수유혐원雖有嫌怨 불인어잔자不忍於殘者 인계야 仁界也

비록 미움과 원망이 있지마는 쇠잔衰殘함을 참지 못하는 것이 인仁의 세계이다.

 

도인계蹈仁界 인의 세계를 따라 행行하면

즉혐원자해則嫌怨自解 복리자지福利自至

미움과 원망(嫌怨)이 저절로 풀리고 행복과 이익(福利)이 저절로 찾아온다.

 

약이랍후지이若以拉朽之易 만약 섞은 것을 꺾는 것이 쉽다고 여기고

번연하결지翻然下抉之 미년춘근부지未年春根復至

뒤집듯이 아래를 도려내면 이듬해 봄에 밑동이 다시 자라난다.

 

►소삭銷鑠 (쇠붙이 등을)녹이다.녹여 없애다. (오랫동안 병을 앓아) 수척하다.

►현미玄微 도리道理나 기예技藝가 깊어서 썩 미묘微妙함. 현묘하고 미묘하다.

►노로盧老 설두 자신

 

►의의依依 물이 유유히 흘러가는 모양. 사모하는 모양. 그리워하는 모양.

연약한 나뭇가지가 바람에 한들거리는 모양. 아쉬워하는 모양. 섭섭해 하는 모양.

 

개부물반연기의불절모야蓋附物攀緣其意不絶貌也

대개 부물附物하고 반연攀緣하여 그 뜻이 단절되지 않는 모양임.

 

소보운회미운왈小補韻會微韻曰 의依 증운增韻 부야附也 광운廣韻 연야緣也

소보운회 미운微韻에 가로되 의依 증운增韻 부附다. 광운 연緣이다.

 

►견득철見得徹 밑바닥 끝까지 간파하다. 투철하게 깨닫다.

►신득급信得及 신불급信不及. 믿다. 믿을 만하다. 확실해서 의심할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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