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2
2013-06-23 02:07:10
나무
나무는 자연의 사물 중 가장 풍부하며 광범위한 상징을 가진 주제의 하나이다.
인류 문화의 모든 시대, 모든 지방에 걸쳐서 그 예를 볼 수 있는데,
요약하면 이들은 중심축, 생명과 풍요, 원조적 이미지로 대별할 수 있다.
중심 심벌
수목은 뿌리가 지하에 뻗치고,
나뭇가지가 천공에 뻗치기 때문에 많은 민족 문화중에서
땅과 천공을 연결하는 우주축(세계축, axis mundi)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엘리아데는 이를 <중심의 심벌리즘>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와 같은 우주축의 관념은 기원전 3000년부터 기원전 4000년경에 이미 있었으며,
수목만이 아니라 기둥, 봉, 탑, 산은 모두 이 심벌리즘을 공유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스칸디나비아에 전해지는 <에다> 중에 호소된 이그드라실이라고 불리는 토네리코의 나무이다.
이는 하늘, 땅, 지하라는 세개의 우주 영역의 중심에 서서,
운명의 세 여신이 이 나무에 운명의 샘 울드의 물을 준다.
이 나무를 끊임없이 갉아먹는 거대한 뱀은 파멸과 죽음의 원리를 나타낸다.
이렇게 나무는 죽음에서 끊임없이 재생하고, 영원히 회귀하는 우주의 시간도 상징한다.
앗시리아ㆍ인도의 성스러운 힘과 우주의 재생력의 상징으로서 성수聖樹 신앙을 가지며,
기원전 2000년경부터 예술적으로 많이 표현되었다.
이외에 골인은 오크, 게르만인은 보리수, 이슬람 교도는 올리브, 인도인은 바니얀이라고 하는 무화과,
시베리아에 사는 원주민족은 낙엽송을 각각 성스러운 나무로서 숭배했다.
이들 나무는 모두 세계의 축으로서 하늘과 땅이 결합하는 장소,
신성이 통하는 길이 되는데 시베리아의 낙엽송에는 태양과 달이 새가 되어서 춤을 추면서 내려오며
중국 및 인도의 우주수에는 12마리의 태양의 새(황도 12궁의 상징)가 내려온다.
또한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는 세계축을 따라서 여행을 하고, 지옥의 깊은 곳에서 천계로 가는데,
이 계단은 대부분의 경우 1그루의 나무로서 표현된다.
그노시스파 신비사상에서는
<대지와 물에 의해서 배양되며, 7개의 하늘로 뻗치는>
나무가 그노시스의 상징으로서 이용되었다.
우주수의 이미지 중에는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는 <거꾸로 서 있는 나무>가 있다.
고대 인도의 베다 및 우파니샤드에서는 거꾸로 서 있는 무화과나무에 전 세계가 머문다고 한다.
거꾸로 서 있는 나무는 우주 생명의 원천이 태양에 있으며, 천공에 만물의 종자가 머물고,
전 세계로 확산되는 것을 나타낸다.
따라서 그 뿌리와 열매는 가지이며, 가지가 뿌리이다.
베다에서는 이 만물의 초월적 원천은 <브라만>이라고 하는 종자이며, 만물은 그 하방으로 나타난다.
또한 이슬람 교도 사이에서는 <행복수>의 뿌리는 최고천에 뻗치고, 가지는 지하로 뻗친다고 한다.
아일랜드 및 핀란드의 민간 의례에서는 거꾸로 선 나무를 제단에 세우며
오스트레일리아의 슈만은 마법의 나무를 거꾸로 심고, 거기에 사람의 피를 부은 후, 이를 태운다.
중세의 유대신비주의,
특히 카발라에는 신의 현현으로서의 우주창조를 거꾸로 선 나무로 나타내는 이미지가 있으며,
카발라 문헌 『바히르』(12세기), 『
조하르』(13세기)는 위에서 아래로 뻗친 태양 같은 나무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이때 신으로부터 유출하는 힘을 <세피로트>라고 하는데
이는 3개의 가지로 나뉘어서 카발라의 <생명수>를 만든다.
이 카발라 나무는 르네상스 이후의 신비주의자에게 계승되며
초월적 원천에서의 우주생성의 상징도 되었다.
이외에 유럽의 메이폴(Maypole),
나바호 인디언의 갈대도 거기에 신성이 머무는 우주축의 심벌의 일종이며,
십자가도 이와 같은 중심의 심벌리즘의 발전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생명과 풍요의 심벌
나무는 또한 지모신地母神이 가진 풍요로운 생산력의 상징이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중심의 심벌리즘과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인도에서 수액은 지모신의 젓이며,
모든 여성의 유방을 채우고 모든 나무를 흘러서 열매를 맺게 해주는 <소마> 또는 <아므리타>이다.
고대 서아시아에서 대지의 여신인 이슈타르의 연인은 식물신인 나무로,
여신과 나무의 성혼聖婚에 의해서 대지는 봄의 재생과 겨울의 종자를 반복한다.
고대 로마에서도 대지의 풍요의 여신 큐벨레는 아티스와 성혼하고 이를 죽여서 소나무로 바꾼다.
그리스의 아도니스는 몰약의 나무에서 태어났다.
이들 식물혼 또는 사람과 나무의 메타모르포즈(변신)의 신화는 또한 인간과 식물의 전생의 심벌인데,
이도 널리는 우주적 생명력의 편재를 믿는 안트로포몰르피즘(의인관)이 있는 곳에서 항상 나타난다.
불타의 어머니는 무우수無憂樹 밑에서 자식을 낳았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에덴의 중심에 생명수와 함께 서 있는데 가끔 이들은 한 그루의 나무로서
또는 병렬하는 나무로서 표현되고 인간의 생과 죽음을 상징하며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가끔 영원한 생명을 나타내는 한 그루의 나무로서 표현된다.
고대 서아시아의 성수聖樹도 성수聖獸에 둘러싸였을 때 자연에 생명을 주는 활력의 심벌이 된다.
생명수와 마주하는 동물의 모티브는 이슬람 문화를 통해서 중세 유럽 및 아시아에 널리 전파되었다.
원조적 이미지–계통수
생명수의 이미지는 민족 또는 가족의 신비적 근원의 상징이 된다.
많은 민족에서 나무는 원조인 아버지 또는 어머니와 동일시된다.
나무의 원조적 이미지 중 대표적인 것은 12세기의 신비가 요아킴 데 프로리스에 의한 것으로
그는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나무로서 보았다.
아버지인 노아에게서 셈과 야벳의 2개의 줄기가 뻗치고
이 2개가 교차해서 만드는 세 개의 동그라미에 의해서 그리스도교의 과거, 현재, 미래가 상징된다.
<이사야서>(11장)에 나오는 <이새의 나무>는 유대인의 역사를 상징하고 중세를 통해서 많은 표현된 이미지이다.
이새의 허리에서 나온 나무에는 마리아와 그리스도가 열린다.
아마 이 이새 나무가 요아킴의 나무를 비롯해 인간 생명의 각 단계나 가족의 계통을 나타내는 나무의 심벌의 원형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여기에서 한 명의 남자의 몸에서 자란 나무의 이미지에 의해서 원조 또는 조형과 그 분기 또는 발전의 계통을 도시하는 전통이 생겼다. 이를 백과전서적 지知의 조직도로서 볼 때 학예나 지의 심벌로서의 계통수가 발생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밀라노의 스폴처성에 그린 뿌리와 가지로 덮인
<아세의 사이(중심축 사이)>는 그가 이들 상징을 체득하였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현대적 상상력 속의 나무
나무는 항상 자연계에 대한 인간의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20세기의 바슈라르, 엘리아데, 융 등에 의한 연구는 중심, 생명의 원천, 죽음과 재생, 성장, 우주적 생명력의 편재를 상징하는 이미지로서의 나무가 현대의 예술가에게도 유효한 테마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19세기 인간의 내적 생명과 자연 또는 우주의 생명과의 대응을 믿은 낭만파 시인, 문학자, 화가에 의해서 나무는 과거의 테마가 되었다.
예를 들어 쉘리의 <서풍의 오드>(1819)는 겨울을 앞에 두고 잎이 떨어지는 나무에 재생의 희구를 상징시켰다.
20세기에 사르트르는 마로니에의 <뿌리>를 보고 실존의 공포를 느끼며(<구토>)
대강건삼랑大江健三郞은 나무를 주제로 하는 일련의 작품 중에서 우주수의 심벌리즘을 부활시켰다.
슐레아리스트의 에른스트는 숲의 연작을 그렸는데 이는 낭만파와 중세 신비주의를 계승한 것으로 문명에 때묻지 않는 인간 정신의 근원을 상징한다.
몬드리안도 나무의 연작에 의해서
나무가 가진 우주적 심벌리즘을 수평과 수직의 밸런스로 추상화하였다.
클레나 칸딘스키는 모두 나무를 예술 창조의 과정으로 비유하고
브랑쿠시는 『무한의 기둥』에 의해서 원초의 우주축을 재현하고 있다.
출처 / 종교학대사전, 1998.8.20, 한국사전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