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評 唱】
남산운南山雲 북산우北山雨 ‘남산의 구름이여 북산의 비’라는 것은
설두매모상두雪竇買帽相頭 설두가 모자를 사면서 머리 크기를 살펴보고
간풍사범看風使帆 바람 방향을 따라서 돛을 올리듯
향검인상向劍刃上 여이하개주각與爾下箇注腳 칼 날 위에서 그대들에게 주석을 달아준 것이다.
직득사칠이삼면상도直得四七二三面相睹 야막착회也莫錯會
“28대 조사와 여섯 명의 조사가 서로 마주 본다”고 했는데 이것을 잘못 알지 말라.
차此 지송고불여로주상교只頌古佛與露柱相交 시제기기료야是第幾機了也
이것은 “고불과 노주가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데
이는 몇 번째 등급이냐?”에 대해 송으로 끝맺은 것이다.
후면後面 벽개로劈開路 타갈등打葛藤 요견타의要見他意
뒤이어 얼른 말을 이어 운문의 의도를 간파하도록 하고 있다.
신라국리증상당新羅國裏曾上堂 대당국리미타고大唐國裏未打鼓
“신라국에서는 상당하였는데 당나라에서는 아직 북도 치지 않았다”
설두향전전성비처편도雪竇向電轉星飛處便道 설두는 번개치고 유성流星이 날듯이 민첩하게 읊었다
고중락苦中樂 락중고樂中苦 “괴로움속의 즐거움이여, 즐거움 속의 괴로움이여”
설두사퇴일퇴칠진팔보雪竇似堆一堆七珍八寶 재저리료在這裏了
설두는 마치 한 무더기 진기珍奇한 보배를 쌓아 놓고 그 속에 누워 있는 것과도 같다.
소이말후유저일구자所以末後有這一句子 운云 그러므로 소의 끝에 한 구절을 덧붙여 말했다.
수도황금여분토誰道黃金如糞土 “어느 누가 황금이 똥 같다고 말하리오.”
차일구此一句 시선월행로난시是禪月行路難詩 설두인래용雪竇引來用
이 한 구절의 시는 선월禪月의 <행로난行路難>의 시구인데 설두가 이를 인용한 것이다.
선월운禪月云 선월의 <행로난> 시는 다음과 같다.
산고해심인불측山高海深人不測 산 높고 바다 깊어 사람이 헤아릴 길 없는데
고왕금래전청벽古往今來轉青碧 예나 제나 더더욱 푸르기만 하여라.
천근경부막여교淺近輕浮莫與交 천박하고 경솔한 자와는 사귀지 마오.
지비지해생형극地卑只解生荊棘 땅이 메마르면 가시덤불만이 나는 것이오.
수도황금여분토誰道黃金如糞土 어느 누가 황금을 똥 같다고 말하는가.
장이진여단소식張耳陳餘斷消息 장이張耳와 진여陳餘는 소식이 감감하다.
행로난行路難 행로난行路難 인생길 험난하고 험난하니
군자간君自看 그대여 스스로 살펴보오.
차막토광인희且莫土曠人稀
이 시의 내용은 아마 땅이 드넓어 알 만한(知音)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닐까?
운거라한雲居羅漢 설두는 운거사雲居寺의 나한상처럼 자만을 부리는군.
►장이진여張耳陳餘
'장이張耳(前264-前202)' 대량인大梁人(今河南開封西北).
가어외황家於外黃 외황外黃에 거주했음.
진말한초인물秦末漢初人物 증참가진말농민기의군曾參加秦末農民起義軍
진말한초의 인물이니 일찍이 진말秦末 농민기의군農民起義軍에 참가했고
항우분봉십팔로제후시項羽分封十八路諸侯時 항우가 18路 제후를 분봉分封했을 때
장이피봉위상산왕張耳被封爲常山王 장이는 상산왕常山王으로 피봉被封되었고
(후세위피한문제휘後世爲避漢文帝諱 항산개작상산恒山皆作常山
후세에 漢文帝의 諱를 피해 恒山을 모두 常山으로 지었음)
정도양국定都襄國(형태邢台) 양국襄國(邢台)에 정도定都했음.
후귀한성위류방부속後歸漢成爲劉邦部屬 피가봉위조왕被加封爲趙王
후에 歸漢하여 유방의 부속이 되었고 가봉하여 조왕趙王이 됨을 입었음.
한고제오년훙漢高帝五年薨 시왈경왕諡曰景王 습칭조경왕習稱趙景王
한고조 5년에 훙(薨)했고 시호는 가로되 景王이니 습칭習稱이 조경왕.
‘진여陳餘’(?-前204)
대량인今大梁人(今河南開封) 위국명사魏國名士.
성격고오性格高傲 여장이위문경지교與張耳爲刎頸之交
성격이 고오高傲했고 장이와 문경지교刎頸之交를 하였음.
대택향기의지후大澤鄕起義之後 동투분진승同投奔陳勝
대택향大澤鄕에서 起義한 후 함께 진승陳勝에게 投奔했음.
후근수무신점거조지後跟隨武臣占據趙地
후에 武臣을 근수跟隨(따라다님)하며 조지趙地를 점거했고
무신자립위조왕후武臣自立爲趙王後 출임대장군出任大將軍
무신이 자립하여 조왕이 된 후 대장군으로 出任했음.
무신피부장리량살사武臣被部將李良殺死 여장이립조헐위조왕與張耳立趙歇爲趙王
무신이 부장 이량李良에게 죽임을 입자 장이와 더불어 조헐을 세워 조왕으로 삼았음.
리량인진군대장장감공조李良引秦軍大將章邯攻趙
이량이 진군秦軍의 대장군 장감章邯을 당겨 공조攻趙했고
조헐패주거록趙歇敗走巨鹿 피진장왕리포위被秦將王離包圍
조헐은 거록으로 패주하여 진장秦將 왕리의 포위를 입었음.
자각병소自覺兵少 불감진병공진不敢進兵攻秦
병졸이 적음을 자각하고 감히 進兵하여 攻秦하지 못하자
장이대노張耳大怒 책괴진불수신의責怪陳不守信義
장이가 대노하여 진여가 信義를 지키지 않음을 책괴責怪했음.
방출병오천거구거록方出兵五千去救巨鹿 연전군복몰然全軍覆沒
바야흐로 5천을 출병하여 가서 거록을 구제했으나 그러나 전군이 복몰覆沒했음.
후항우대군지後項羽大軍至 대승진군大勝秦軍 해거록지위解巨鹿之圍
후에 항우의 대군이 이르러 진군秦軍에게 대승하여 거록의 포위를 풀었음.
장이재차견시張耳再次見時 장이가 재차 상견했을 때
책양진여이불긍구조責讓陳餘以不肯救趙 구조救趙를 不肯한 진여를 責讓(꾸짖다)했고
진일기지하장수인교출陳一氣之下將帥印交出 진여가 一氣(한 호흡)의 아래 將帥印을 交出(내놓다).
종차장진량인절교從此張陳倆人絕交 이로부터 장이와 진여 두 사람은 절교絕交했음.
항우분봉제후왕시項羽分封諸侯王時 항우가 제후를 분봉分封했을 때
진지피봉위후陳只被封爲侯 심유불만心有不滿
진여는 다만 후侯에 피봉被封되었고 마음에 불만이 있어
어시련합제왕전영於是聯合齊王田榮 이에 제왕齊王 전영田榮과 연합하여
격주장이擊走張耳 복립조헐複立趙歇 자위대왕自爲代王
장이를 격퇴해 도주하게 하고는 조헐을 복립했고 스스로 代王을 했다.
한신평정위후韓信平定魏後 한신이 위魏를 평정한 후
여장이일동공조與張耳一同攻趙 장이와 일동一同으로 조趙를 공격했고
진미접수모사리좌차적건의陳未接受謀士李左車的建議
진여가 모사 이좌거李左車의 건의를 접수하지 않아
경시한신적배수렬진법輕視韓信的背水列陣法
한신의 배수열진법背水列陣法을 경시했다가 패전한 후
패후피참살어지수敗後被斬殺於泜水
지수泜水에서 참살됨을 입었음/百度百科]
/2014-10-09 19: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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