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語錄/信心銘

신심명信心銘 ⑨

신심명信心銘 ⑨

<허공의 꽃을 어이 붙잡으려 하는가?>

 

미생적난迷生寂亂 미혹하기 때문에 고요함과 어지러움이 생기고

오무호오悟無好惡 깨달으면 좋고 싫음이 없다.

 

일체이변一切二邊 모든 것에 대한 두 변은

랑자짐작浪自斟酌) 헛되이 스스로 짐작함에서 생긴다.

 

미혹한 마음이므로 언제나 고요함과 어지러움이 생겨 한없이 환영을 따르지만

모든 존재는 정해진 모습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면 좋고 싫을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본래의 마음을 잃게 되면 이원적 대립이 생기지만 깨달으면 그 대립이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이원적 대립은 자신이 분별하여 헤아리는 것에 의해 일어나는 것.

 

‘짐작’은 본래 ‘술을 대작한다.’라는 뜻이다.

즉 ‘사정을 생각해서 정도껏 잘 배려하는 것’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자아의 분별을 의미한다.

대립된 분별은 자아의 망상에서 만들어져 나온 환상幻想이라는 것이다.

 

몽환허화夢幻虛華 꿈과 환상, 헛된 꽃을

하로파착何勞把捉 어찌 붙잡으려고 애쓰는가.

 

득실시비得失是非 득실도 시비도

일시방각一時放却 한 번에 내려놓아야 한다.

 

우리들은 언제나 실체가 없는 허공의 꽃과 같은 모든 것에 실체가 있다고 집착하여

멈추지 않지만 그러나 실상은 무상한 것임을 밝히는 불교의 요체를 말하고 있다.

 

‘몽환허화 하로파착’은 <임제록><조주록>에서 인용되어 잘 알려진 구절이다.

공화空華는 허화虛華라고 하는데

이는 대승경전에 실상에 대한 이해를 위해 이 말을 자주 쓰고 있다.

공화는 눈병이 걸린 사람이 공중에 꽃이 있는 것처럼 보일 때를 말한다.

 

이처럼 ‘몽환공화’는 눈에는 보이는 것 같지만 실체가 없는 것에 대한 비유이다.

<수능엄경>에

“눈이 침침한 자가 공중에 꽃을 보는 것과 같이

침침한 병이 나으면 꽃은 허공에서 사라진다.”고 하였다.

 

‘일체이변一切二邊’ 즉 ‘이원대립’은 모두 공한 것이며 그래서 ‘비실재’(무자성)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자신이 일으킨 공화에 자신 스스로가 이에 치우치고 집착하는 헛된 수고를 하는 것이다.

 

선과 악, 깨달음과 미혹함, 모두를 일시에 내려놓아라!

그것이 깨달음으로 향하는 절대 조건임을 강조한다.

 

안약불수眼若不睡 (마음의)눈이 잠자지 않는다면

제몽자제諸夢自除 모든 꿈은 자연히 제거되며

 

심약불이心若不異(본래의)마음이 다르지 않다면

만법일여萬法一如 모든 존재는 일여하다.

 

마음의 눈이 깨어 있으면 희비고락의 여러 가지 악몽은 자연히 제거되며

범부도 성인도 그 마음이 동일한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만법에도 차별이 있지 않는 즉 일여함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보리달마의 ‘범성동일진성凡聖同一眞性’의 ‘이입理入’을 근거로 한 말이다.

 

잠을 자지 않으면 꿈은 자연히 없는 것과 같이 마음도 본래의 마음 그대로 변하지 않고 같다면

즉 ‘심약불이心若不異’이라면 ‘모든 존재는 그대로 한 가지’라는 것이다.

 

양변에 걸리지 않는 것을 앞에서는 ‘일종’이라고 했지만

이번에는 ‘일여’라고 하는 불교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양변은 이변과 같이 이원상대의 분별의 세계로서 우두법융의 <심명>에도 보인다.

“득실의 양변, 좋고 싫음을 누가 논하리오”라고.

 

일여는 ‘한가지로서 같은 것’이라는 뜻.

‘심심불이 만법일여’는 임제록에도 나온다.

 

‘안약불타 제몽자제’는 노자에

‘옛날 참된 사람은 잠을 자도 꿈이 없고 깨어 있어도 근심이 없다.’는 말이 있고

참선자도 마찬가지로 ‘잠을 자도 꿈이 없다’라고 한다.

 

선가에서는 공부를 잘 하는 선자는 절대 꿈이 없다고 전해지고 있다.

꿈이 많은 자를 시시한 업보가 많아서 그렇다고.

 

‘몽중서래의夢中西來意’라는 공안이 있다.

이에 대해 어느 선자는

“깊은 잠으로 산중에 비가 내리는 것을 알지 못했는데

깨어나 보니 누각이 시원하구나.”라고 그 견해를 보였다.

 

‘몽중서래의’는 다만 ‘깊은 잠’ 뿐으로 그 밖의 어떤 ‘서래의’가 있을까라고 하는 것이다.

다르지 않는 순일한 마음이 그대로 ‘서래의’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혜원스님 동국대 선학과 교수/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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