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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도연명陶淵明

도연명집서陶淵明集序

도연명집서陶淵明集序

/남조량소명태자소통南朝梁昭明太子蕭統

 

1

부자현자매자夫自衒自媒者 무릇 자신을 팔고 자신을 중매 서는 것은

사녀지추행士女之醜行 선비와 여인의 추한 행동이며

불기불구자不忮不求者 해하지 않고 탐하지 않는 것은

명달지용심明達之用心 명달明達한 이의 마음 씀이다.

 

시이성인도광是以聖人韜光 이 때문에 聖人은 빛을 감추며

현인둔세賢人遁世 현인賢人은 세상에 숨으니

기고하야其故何也 그 까닭이란 무엇인가?

 

함덕지지含德之至 덕을 지님의 지극함은

막유어도莫逾於道 도道보다 더한 것이 없고

친기지절親己之切 자기와 친함의 절실함은

무중어신無重於身 몸보다 중한 것이 없다.

 

고도존이신안故道存而身安 그러므로 道가 보존되면 몸이 편안하고

도망이신해道亡而身害 도道를 잃으면 몸에 해가 끼쳐진다.

 

처백령지내處百齡之內 백년도 못사는 수명에 처하여

거일세지중居一世之中 한세상을 사니

숙홀비지백구倏忽比之白駒 세월 빠르기를 백마(가 달리는 것을 틈사이로 바라보는 것)에 비유하고

기우위지역려寄遇謂之逆旅 또한 우리가 몸 붙여 사는 곳을 여인숙이라 일컫는다.

 

의호여대괴이영허宜乎與大塊而盈虛 의당 자연과 더불어 이 세상을 채웠다가 비우고

수중화이임방隨中和而任放 중화中和를 따라 자유로워야 할 것이지

기능척척로어우외豈能戚戚勞於憂畏 어찌 서글퍼 근심걱정에 힘들어 하며

급급역어인간汲汲役於人間 급급하게 인간사에 부림을 당할 것인가?

 

►부자현자매자夫自衒自媒者무릇 자신을 팔고 자신을 중매서는 것은(‘자랑할 현衒’ 팔다)

사녀지추행士女之醜行 선비와 여인의 추한 행동이며

 

조식曹植의 <구자시표求自試表>(文選 卷37)에 나오는 구절.

<구자시표求自試表>는 <여양덕조서與揚德祖書><여오계중서與吳季重書> 등과 더불어

조식曹植 산문散文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내용은 그의 형인 조비가 죽고 난후 그 아들 명제明帝에게

자신을 등용해 줄 것을 간절히 청하는 내용인데 수용되지 않았다.

 

►불기불구자不忮不求者 해하지 않고 탐하지 않는 것은. ‘해칠 기忮’ 해치다, 거스르다,

<論語·자한편子罕篇>

자왈子曰 공자 말씀하시기를

의폐온포衣敝縕袍 “헤어진 무명옷과 도포를 입고

여의호맥자與衣狐貉者 여우와 이리의 털로 만든 갖옷을 입은 자와 같이 서되

립이불치자立而不恥者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는 자는

기유야여其由也與 아마도 유由(子路)일 것이다.

 

불기불구不忮不求 남의 부귀를 시기하지 아니하며 탐내지 아니하면

하용부장何用不臧 어찌 등용한들 착하지 아니하겠느냐.”고 하셨다.

 

자로종신송지子路終身誦之 자로가 이 말씀을 항상 외웠더니

자왈子曰 공자 말씀하시기를

시도야하족이장是道也何足以臧 “그것이 도리이기는 하나 그것만으로 어찌 족히 좋다고 하겠는가.”고 하셨다.

 

이 중 ‘불기불구不忮不求 하용부장何用不臧 해치지 않고 탐하지 않으면 어찌 착하지 않다 할까’는

<詩經> 패풍邶風에 나오는 말이다.

 

►도광韜光 노자老子 <道德經> 제 7장의 章名.

천장지구天長地久 하늘과 땅은 길이길이 오래 되었는데

천지소이능장차구자天地所以能長且久者 천지가 長生하고 長壽할 수 있는 이유는

이기부자생以其不自生 자기만 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며

고능장생故能長生 그러므로 오래살 수 있다.

 

시이성인후기신是以聖人後其身 이 때문에 聖人은 자신을 뒤에 두고

이신선而身先 몸소 솔선수범하면서도

외기신外其身 자신을 도외시하니

이신존而身存 그 몸이 보존되는 것이다.

 

비이기무사야非以其無私邪 그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고능성기사故能成其私 그러므로 종국에는 그 사사로움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갑자기 숙倏’ 갑자기. ‘숙홀倏忽’ 갑작스러움, 급속함.

►백구白駒 <莊子·지북유知北遊>

인생천지지간人生天地之間 사람이 천지사이에 사는 것은

약백구지과극若白駒之過隙 백마가 달리는 것을 틈사이로 보는 것과 같으니

홀연이이忽然而已 홀연히 끝나버린다.

 

►중화中和 중용의 근본 이치에 어긋남이 없어서 모든 일이 잘 조화되어 감.

 

2

제구조녀지오齊謳趙女之娛 제나라의 노래[謳]와 조趙나라 미녀의 오락,

팔진구정지식八珍九鼎之食 여덟가지 진미와 아홉 솥의 음식,

결사련기지영結駟連騎之榮 네 마리 말을 묶어 잇달아 재갈을 물리고 노닐음,

치몌집규지귀侈袂執圭之貴 사치스런 옷소매에 홀을 드는 귀함이

악기악의樂既樂矣 즐겁기는 즐거워도

우역수지憂亦隨之 근심이 또한 뒤따른다.

 

하의복지난량何倚伏之難量 언제 화복禍福이 닥칠지 혜량하기 힘들듯

역경조지상급亦慶弔之相及 또한 경사慶事 조사弔事가 번갈아 닥쳐온다.

 

지자현인智者賢人 지혜로운 자와 어진 사람은

거지심리박빙居之甚履薄冰 처신하기를 얇은 얼음을 밟듯 심히 조심하는데

우부탐사愚夫貪士 어리석은 사내와 탐욕스런 선비는

경지약설미려競之若泄尾閭 앞 다투기를 바닷물이 새어 나가듯 한다.

 

옥지재산玉之在山 옥이 산에 있으면

이견진이종파以見珍而終破 진귀하게 여겨져 깨뜨려짐을 자초하나

란지생곡蘭之生谷 난蘭이 골짜기에서 자라면

수무인이자방雖無人而自芳 비록 보는 사람이야 없지만 오히려 꽃을 피워낸다.

 

고장주수조어호故莊周垂釣於濠 그런 까닭에 莊子는 호강[濠水]에서 낚싯대를 드리웠고

백성궁경어야伯成躬耕於野 백성자고伯成子高는 들에서 몸소 밭을 갈았으며

혹화해동지약초或貨海東之藥草 어떤 이는 해동의 약초를 매매했고

혹방강남지락모或紡江南之落毛 어떤 이는 강남의 낙모落毛 실을 자았다.

 

비피원추譬彼鴛雛 비유컨대 저 원추鴛雛가

기경연치지육豈競鳶鴟之肉 어찌 올빼미의 고기를 다툴 것이며

유사잡현猶斯雜縣 마찬가지로 저 잡현雜縣이란 새가

녕로문중지생寧勞文仲之牲 어찌 문중文仲의 희생과 비교가 되겠는가?

 

►의복倚伏 화禍와 복福은 서로 인연因緣이 되어 생기고 없어짐.

가의賈誼의 <복조부鵩鳥賦>에

화혜복소의禍兮福所倚 화禍는 福에 依支하며

복혜화소복福兮禍所伏 복福은 禍안에 잠복한다.

 

►미려尾閭 전설에서 바다의 깊은 곳에 있어 물이 끊임없이 새어 든다는 곳.

<莊子·추수편秋水篇>

천하지수天下之水 막대어해莫大於海 세상의 물중에 바다 보다 더 큰 것은 없다.

만천귀지萬川歸之 모든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며

부지하시지不知何時止 이불영而不盈 잠시도 흘러듦을 멈추지 않는 데도 차서 넘치지 않는다.

 

미려설지尾閭泄之 부지하시이不知何時已 미려에서는 바닷물이 잠시도 쉬지 않고 흘러 나가지만

이불허而不虛 물이 마르지 않는다.

 

►고장주수조어호故莊周垂釣於濠 그런 까닭에 莊子는 호강[濠水]에서 낚싯대를 드리웠고

<莊子·추수편秋水篇>

장자여혜자어호량지상莊子與惠子於濠梁之上 장자와 혜자가 濠강 다리 가에서 노닐었다.

 

►백성궁경어야伯成躬耕於野 백성자고伯成子高는 들에서 몸소 밭을 갈았으며/<莊子·天地篇>

 

요치천하堯治天下 요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

백성자고입위제후伯成子高立爲諸侯 백성자고伯成子高는 등용되어 제후가 되었다.

 

요수순堯授舜 순수우舜授禹 요는 순에게 제위를 물려주고 순은 우에게 주었다.

백성자고사위제후이경伯成子高辭爲諸侯而耕 그러자 백성자고는 제후에서 물러나 밭을 갈았다.

 

►비피원추譬彼鴛雛 비유컨대 저 원추鴛雛(봉황의 일종)가

기경연치지육豈競鳶鴟之肉 어찌 올빼미의 고기를 다툴 것이며/<莊子·秋水篇>

 

<안정성루安定城樓>/당唐‧이상은李商隱

초체고성백척루迢遞高城百尺樓 높이 솟은 고성의 누각에 올라서니

록양지외진정주綠楊枝外盡汀洲 푸른 버들가지 너머는 온통 모래톱일세.

가생년소허수체賈生年少虛垂涕 가의는 어려서 공연히 눈물 흘렸고

왕찬춘래경원유王粲春來更遠遊 왕찬은 봄이 오면 더 멀리 떠돌아다녔네.

 

영억강호귀백발永憶江湖歸白髮 백발이 되면 강호로 돌아가려 늘 생각하였는데

욕회천지입편주欲迴天地入扁舟 세상을 다 구한 후에야 조각 배 타야겠네.

부지부서성자미不知腐鼠成滋味 썩은 쥐가 맛이 좋은 줄 아지 못하지만

시의원추경미휴猜意鵷雛竟未休 원추(새)가 의심받는 일 그치질 않네.

 

►영억강호귀백발永憶江湖歸白髮 백발이 되면 강호로 돌아가려 늘 생각하였는데

욕회천지입편주欲迴天地入扁舟 세상을 다 구한 후에야 조각 배 타야겠네.

 

관리로써 나이 들면 물러나 조각배 띄우며 은거하고도 싶으나

막상 그럴 형편도 아니 됨을 탄식하고 있는 장면이다.

 

진부득진進不得進 퇴불능퇴退不能退

나아갈 수도 물러날 수도 없는 세상사에 묶인 처지로써

현실과 꿈 사이를 오가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안정성루安定城樓> /이상은李商隱 이 시에 대한 해석 하나.

련면고용적성장상유백척고적성루連綿高聳的城牆上有百尺高的城樓

아재루상거목조망我在樓上舉目眺望

벽록양류외진시일편편사주碧綠楊柳外盡是一片片沙洲

 

상도자기여년소재고적가의도연류루想到自己如年少才高的賈誼徒然流淚

제출적의견불수중시提出的意見不受重視

야상춘일등루적왕찬우장원유也像春日登樓的王粲又將遠遊

감탄이향신미이비오토感嘆異鄉信美而非吾土

 

아총시향왕저능재로년백발시귀은강호我總是嚮往著能在老年白髮時歸隱江湖

단야요선뉴전건곤후재공성신퇴但也要先扭轉乾坤後再功成身退

안심승상편주리거安心乘上扁舟離去

 

진관신조원추불지부취적사서시십마자미儘管神鳥鵷雛不知腐臭的死鼠是什麼滋味

치효경잉대기시기불휴鴟鴞竟仍對其猜忌不休

나사소인야시저양호란췌도아적심지아那些小人也是這樣胡亂揣度我的心志啊

 

높이 솟은 고성의 누각에 올라서니, 푸른 버들가지 너머는 온통 모래톱일세.

가의는 어려서 공연히 눈물 흘렸고, 왕찬은 봄이 오면 더 멀리 떠돌아다녔네.

 

백발이 되면 강호로 돌아가려 늘 생각하였는데, 세상을 다 구한 후에야, 조각 배 타야겠네.

썩은 쥐가 맛이 좋은 줄 아지 못하지만, 원추()가 의심받는 일 그치질 않네.

 

마지막 구절

‘부지부서성자미不知腐鼠成滋味 썩은 쥐가 맛이 좋은 줄 아지 못하지만

시의원추경미휴猜意鵷雛竟未休 원추(새)가 의심받는 일 그치질 않네.’는 장자의 다음 이야기에 빗댄 것이다.

 

혜자상량惠子相梁 혜자가 양나라 재상이 되니

장자왕현지莊子往見之 장자가 그를 방문하였다.

 

혹위혜자왈或謂惠子曰 어떤 이가 혜자를 보고 일러 말하였다.

장자래莊子來 욕대자상欲代子相 ‘장자가 온 것은 그대의 재상 자리를 대신하려 함이요.’

 

어시혜자공於是惠子恐 이에 혜자는 두려워

수어국중삼일삼야搜於國中三日三夜 삼일 밤낮으로 나라 전국을 뒤져 장자를 찾았다.

 

장자왕현지왈莊子往見之曰 장자가 찾아와 말하였다.

남방유조南方有鳥 기명위원추其名為鵷鶵 ‘남방에 새 하나가 있으니, 그 이름을 원추鵷鶵라 하오.

자지지호子知之乎 그대는 이 새를 아는가?

 

부원추발어남해이비어북해夫鵷鶵發於南海而飛於北海 이 원추가 남해에서 북해로 날을 때,

비오동부지非梧桐不止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으며,

비련실불식非練實不食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를 않고,

비례천불음非醴泉不飲 단 샘물이 아니면 마시질 않으오.

 

어시치득부서於是鴟得腐鼠 올빼미가 썩은 쥐를 얻어 가지고

원추과지鵷鶵過之 옆을 지나는 원추를

앙이시지왈仰而視之曰 처다 보며 소리를 내었소.

 

혁嚇 ‘허억’ - (쥐를 빼앗길까 두려워 내는 소리)

금자욕이자지량국이혁아사今子欲以子之梁國而嚇我邪

그대는 양나라 (재상) 자리를 빼앗길까봐, 나를 두려워하고 있음인가?’/<莊子·秋水>

 

혜시蕙施는 장자와 절친한 친구이자 논적論敵이기도 했다.

사람의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아주 정반대이다시피 하였는데

장자는 양梁나라 재상으로 있던 혜시를 찾아간 일이 있었다.

 

그런데 마침 혜시는 자리에 없었다.

장자는 헛수고를 하고 돌아왔고 혜시의 측근 한 사람이 혜시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자가 재상님을 찾아왔었다 합니다.

이는 틀림없이 재상님을 밀어내고 자기가 재상이 되고자 해서일 것입니다."

 

이 말에 깜짝 놀란 혜시는 백방으로 장자를 찾았다.

사흘 밤낮동안 나라 안을 샅샅이 뒤졌으므로 온통 소란이 일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얼마 만에 장자가 홀연히 혜시 앞에 나타났다.

 

장자는 혜시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시오, 혜시 선생. 내 말을 좀 들어보시오.

저 남쪽 나라에 원추鴛雛라는 새가 있다오. 그 새는 어떤 새인가. 그 놈은 보통 새가 아니라오.

그 새가 한번 뜻을 내어 북해로 건너가게 될 때에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아 쉬지를 아니하고,

연실練實(대나무 열매)이 아니면 먹지 아니하며, 예천醴泉(단물 샘)이 아니면 마시지를 않는다오.

그런데 원추가 엄청난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그 때에 올빼미 한 마리가 나무 위에 앉아 있었다오.

그 올빼미는 마침 썩은 쥐 하나를 입에 물고 있다가

마치 구름처럼 큰 새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그 쥐를 빼앗길까봐

‘억!’ 하고 비명을 질렀다 하오."

 

장자는 말을 이었다.

"여보시오, 혜시 선생,

당신이 지금 그 올빼미가 되어 썩은 쥐 하나를 입에 물고 나를 향해 억! 하고 비명을 지르는 거요?"

 

►유사잡현猶斯雜縣 마찬가지로 저 잡현雜縣이란 새가

녕로문중지생寧勞文仲之牲 어찌 문중文仲의 희생과 비교가 되겠는가?

 

‘잡현雜縣’ 바다새의 이름, 일명 원거爰居.

‘문중文仲’ 장문중臧文仲.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

잡현이 도읍의 동문 밖에 날아와 사흘을 머물자 장문중이 희생을 바쳐 제사를 올린 일이 있음.

공자가 이를 비판한 내용이 <春秋·文公篇>에 나온다.

 

3

지어자상至於子常 녕희지륜寧喜之倫 그러나 자상子常, 영희寧喜의 무리와

소진蘇秦 위앙지필衛鞅之匹 소진蘇秦, 상앙商鞅 등 탐욕스런 무리에 대해서는

사지이불의死之而不疑 (사람들이) 그들을 죽일 때에도 (그 죄를) 의심하지 않았으며

감지이불회甘之而不悔 (죽임을) 달게 여겨 후회하지 않았다.

 

주보언언主父偃言 주보언主父偃은 말하기를

생불오정식生不五鼎食 “살아서 五鼎의 음식을 먹지 못하더라도

사즉오정팽死則五鼎烹 죽을 때에는 五鼎에 삶긴다.”했는데

 

졸여기언卒如其言 끝내 그 말처럼 되었으니

기불통재豈不痛哉 어찌 슬프지 않으랴!

 

우초자관주又楚子觀周 또 초왕楚王은 周나라에서 관병식을 하다

수절어손만受折於孫滿 주周 왕손인 만滿에게 좌절을 당하였고

곽후참승霍侯驂乘 곽광霍光은 천자와 같이 수레를 타다,

화기어부망禍起於負芒 재앙이 (천자가 그를) 등의 까끄라기처럼 여김에서 일어난 적이 있다.

 

도철지도饕餮之徒 탐욕스런 무리는

기류심중其流甚眾 그 갈래가 몹시 많은 것이다.

 

►지어자상至於子常 녕희지륜寧喜之倫 그러나 자상子常, 영희寧喜의 무리와

춘추시대 사람. 子常은 楚나라의 권신, 寧喜는 衛나라의 권신으로 국정을 농락했다.

 

►소진蘇秦 전국시대의 인물.

위앙지필衛鞅之匹 소진蘇秦, 상앙商鞅 등 탐욕스런 무리에 대해서는

 

蘇秦은 합종책을 주장하던 유세가 였으며

그의 합종책은 장의 등이 헌책한 연횡책連衡策(連橫策)에 패배하여 실패했다.

그 후 연나라의 관직에 있다가 다시 제나라에 출사했으나 제나라 大夫의 미움을 사 암살당하였다.

 

상앙商鞅은 위魏에서 진秦으로 망명해 변법變法을 실행하였다.

위衛나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위앙衛鞅이라고 한다.

진秦 효공孝公 22년(BC340) 상商에 봉함을 받았으나

효공이 죽은 뒤 중신들에게 원한怨恨을 사, 극형에 처해졌다.

 

►주보언主父偃 한漢 나라 무제武帝 때의 신하.

남의 비밀을 폭로하기 좋아하므로 대신들이 두려워하여 뇌물을 바쳤으며

뒤에 제왕帝王이 그의 누이와 간음하는 것을 말하다 멸족되었다.

 

<漢書> <主父偃傳>

대장부大丈夫 생불오정식生不五鼎食 사즉오정팽이死則五鼎烹耳

대장부가 살아 五鼎으로 먹지 못하면 죽을 때 五鼎에 삶기리라.

 

五鼎은 다섯 개의 솥에 각각 소[牛] 양[羊] 돼지[豕] 물고기[魚] 고라니[麋]를 담아 신에게 바침.

傳하여 좋은 것을 먹으면서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린다는 뜻.

 

►우초자관주又楚子觀周 또 초왕楚王은 周나라에서 관병식을 하다

수절어손만受折於孫滿 주周 왕손인 만滿에게 좌절을 당하였고/<春秋·선공편宣公篇>

 

초자벌육혼지융楚子伐陸渾之戎 초나라 왕이 육혼陸渾의 융戎족을 치고

수지우락遂至于雒 드디어 낙수雒水에 이르러

관병우주강觀兵于周疆 주나라 경계에서 관병식을 하였다.

 

정왕사왕손만노초자定王使王孫滿勞楚子 정왕定王이 왕손 만滿을 시켜 초나라 왕을 위로케 하니

초자문정지대소경중언楚子問鼎之大小輕重焉 초왕이 九鼎의 크기와 무게를 물었는데

‘九鼎’ 중국 하夏나라의 우왕禹王 때에 전국의 아홉 주州에서 거두어들인 금으로 만들었다는 솥.

주周나라 때까지 대대로 천자에게 전해진 보물이었다고 한다.

 

대왈對曰 대답하기를

재덕부재정在德不在鼎 “천자가 되는 것은 덕에 있지 九鼎에 있지 않다”고 하였다.

 

►곽후참승霍侯驂乘 곽광霍光은 천자와 같이 수레를 타다,

화기어부망禍起於負芒 재앙이 (천자가 그를) 등의 까끄라기처럼 여김에서 일어난 적이 있다.

 

‘곽광霍光’은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의 사람.

무제의 유조遺詔를 받들어 대사마대장군大司馬大將軍의 직책으로써 소제昭帝를 도왔으며

다음 창읍왕昌邑王이 음란하므로 폐위시키고 다시 선제宣帝를 세웠다.

국정을 농단하다 반란을 일으키고 나중에 구족이 멸족되었다./<漢書·霍光傳>

 

선제시위宣帝始位 선제宣帝가 처음 제위에 올라

알현고묘謁見高廟 고묘高廟에 알현하게 되었는데

대장군광종참승大將軍光從驂乘 대장군 곽광霍光이 좆아 수레에 동승하니

상내엄탄上內嚴憚 황제가 속으로 두려워

약유망자재배若有芒刺在背 마치 까끄라기가 등에 있는 것 같았다.

 

►도철饕餮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악수惡獸의 이름으로 탐욕이 많고 악한 사람을 비유하는 데 쓰인다.

<춘추좌씨전 문공 18년>

진운씨유부재자縉雲氏有不才子 진운 씨에게 못된 자손이 있었는데

탐우음식貪于飮食 모우화회冒于貨賄 그들은 음식을 탐하고 재물을 탐하며

침욕숭치侵欲崇侈 불가영염不可盈厭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욕심이 깊고 사치하여 만족할 줄을 모르며

취감적실聚歛積實 부지기극不知紀極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어들이고 재물을 쌓아 다할 줄을 모르며

불분고과不分孤寡 불휼궁궤不恤窮匱 고아와 과부에게 나누어 주지도 않고 가난한 자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천하지민이비삼흉天下之民以比三凶 천하의 백성들은 그들을 <삼흉>에 견주어

위지도철謂之饕餮 <도철>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4

당요唐堯 사해지주四海之主 요堯임금은 사해의 임금이었으나

이유분양지심而有汾陽之心 분수汾水 남쪽에서 세상을 벗어나고픈 마음을 지녔고

자진子晉 천하지저天下之儲 왕자교王子喬는 천하의 태자[쌓을 저儲]였으나

이유락빈지지而有洛濱之誌 낙수洛水 물가에서 노닐려는 뜻을 지녔다.

 

경지약탈사輕之若脫屣 (자신의 고귀한 지위를) 하찮게 여기길 헌 신발짝 벗어 던지듯 했고

시지약홍모視之若鴻毛 가볍게 보기를 기러기 털같이 했으니

이황어타호而況於他乎 하물며 다른 것에야 어떠했겠는가?

 

시이지인달사是以至人達士 때문에 초탈한 사람과 통달한 선비는

인이회적因以晦跡 이런 (前例에) 따라 발자취를 감추는 것이다.

 

혹회리이알제或懷釐而謁帝 혹자는 治世의 道[다스릴 리釐]를 품고 황제를 알현하기도 하지만

혹피갈이부신或披褐而負薪 혹자는 베옷을 입고 땔감을 지거나

고즙청담鼓楫清潭 맑은 못에서 노를 두드리기도 하고

기기한곡棄機漢曲 한수漢水의 굽이에서 무엇을 꾀하고자 하는 마음[機心]을 버리니

 

정부재어중사情不在於眾事 (隱者들의) 마음은 세속의 일에 있지 않으며

기중사이망정자야寄眾事以忘情者也 세속의 일에 기탁하여 마음을 잊은 것이다.

 

►당요唐堯 사해지주四海之主 요堯임금은 사해의 임금이었으나

이유분양지심而有汾陽之心 분수汾水 남쪽에서 세상을 벗어나고픈 마음을 지녔고

 

<莊子·소요유逍遙遊>

요치천하지민堯治天下之民 요堯 임금이 천하의 백성을 다스리고

평해내지정平海內之政 해내의 정사를 공평히 하다가

왕견사자막고사지산往見四子藐婟射之山 막고야 산으로 네 사람을 찾아가 만난 후

분수지양汾水之陽 분수汾水의 남쪽에 이르러

요연상기천하언窅然喪其天下焉 멍하니 슬퍼하며 천하에 뜻을 잃게 되었다.

 

►자진子晉 천하지저天下之儲 왕자교王子喬는 천하의 태자[저儲]였으나

이유락빈지지而有洛濱之誌 낙수洛水 물가에서 노닐려는 뜻을 지녔다.

 

<列仙傳·王子喬>

왕자교자王子喬者 주영왕태자진야周靈王太子晉也 왕자교는 주나라 영왕의 태자 진이다.

호취생작봉황명好吹笙作鳳凰鳴 생황을 잘 불러 봉황의 울음소리를 내었으며

유이낙지간遊伊洛之間 이수와 낙수사이에서 노닐었다.

 

►고즙청담鼓楫清潭 맑은 못에서 노를 두드리기도 하고

<楚辭·漁父>

어부완이이소漁父莞爾而笑 고설이거鼓枻而去 굴원屈原에게 어부는 빙그레 웃고는 노를 저으며 가벼렸다.

 

►기기한곡棄機漢曲 한수漢水의 굽이에서 무엇을 꾀하고자 하는 마음[機心]을 버리니

孔子의 제자 子貢이 만난 隱者와 관련된 기술/<莊子·天地篇>

 

자공남유어초子貢南遊於楚 자공이 남쪽 초나라에 놀다가

반어진反於晉 과한음過漢陰 진나라로 돌아가려고 한수 남안을 지나는데

견일장인방장위포휴見一丈人方將為圃畦 노인 하나가 밭이랑을 만드는 참이었다.

 

착수이입정鑿隧而入井 그는 파낸 우물 안으로 들어가

포옹이출관抱甕而出灌 옹기에 물을 길어 밭에 물을 대었다.

골골연용력심다이견공과搰搰然用力甚多而見功寡 허나 힘을 쓰나 별로 이룬 것은 없었다.

 

자공왈子貢曰 자공이 말했다.

유계어차有械於此 “여기 기계가 있소

일일침백휴一日浸百畦 하루에 백이랑에 물을 댈 수 있소.

용력심과用力甚寡 힘은 적게 들고

이견공다而見功多 부자불욕호夫子不欲乎 공은 많을 것이니 써보지 않으려오?”

 

위포자앙이시지왈為圃者卬而視之曰 그러나 노인은 쳐다보며

내하奈何 “그게 무엇이오?”

 

왈曰

착목위기鑿木為機 후중전경後重前輕 “나무를 깎아 만드는데, 뒤는 무겁고 앞은 가벼워

설수약추挈水若抽 물을 끌어오는 게 마치 물건 꺼내듯 하고

수여일탕數如泆湯 빠르기가 마치 물 끓듯 하니

기명위고其名為槔 그 이름인즉 용두레라고 하오.”

 

위포자분연작색爲圃者忿然作色 이소왈而笑曰 그러자 노인 농부는 분연히 낯 색을 바꾸며 웃음 지며 이른다.

오문지오사吾聞之吾師 “내가 우리 스승께 들으니

유기계자有機械者 필유기사必有機事 기계가 있으면 그를 쓰는 기사機事가 있으며

유기사자有機事者 필유기심必有機心 기사機事가 있으면 필시 기심機心(교사巧詐한 마음)이 있다.

 

기심존어흉중機心存於胸中 즉순백불비則純白不備 기심機心이 흉중에 있으면, 순백을 갖추지 못하게 된다.

순백불비純白不備 즉신생부정則神生不定 순백을 갖추지 못하면 정신이 안정되지 못한다.

 

신생부정자神生不定者 도지소부재야道之所不載也 정신이 안정되지 못하면 도를 지킬 수 없다.

오비부지吾非不知 수이불위야羞而不爲也 나는 부끄러움을 아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을 뿐이다.”

 

자공만연참子貢瞞然慚 부이부대俯而不對 자공은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만약 기계를 쓴다면 하루에 백 두렁의 밭에 물을 줄 수 있습니다.

힘은 적게 들이고 효과는 많을 터인데 왜 그것을 쓰려고 하지 않는지요?”

 

농부는 성난 듯 얼굴색이 바뀌었지만 이내 웃으며 말했다.

“우리 선생에게서 들은 말인데 기계를 가진 자는 반드시 기계를 쓸 일이 있게 되고

기계를 쓸 일이 있는 자는 반드시 기계에 사로잡혀 무엇을 꾀하는 마음이 생긴다고 합니다.

 

가슴속에 무엇을 꾀하는 마음이 생기면 순백의 바탕이 없어지고,

순백의 바탕이 없어지면 정신과 성품이 안정되지 못하고,

정신과 성품이 불안정하면 도가 깃들 곳이 없다고 합니다.

내가 두레박을 몰라서가 아니라 부끄러워서 쓰지 않는 것입니다.”

 

 

5

유의도연명시편편유주有疑陶淵明詩篇篇有酒 도연명의 시에 편편마다 술이 언급되어 있어 의문이 있지만

오관기의부재주吾觀其意不在酒 내가 살펴보기에 그 뜻이 술에 있지 않으니

역기주위적자야亦寄酒為跡者也 역시 술을 빌어 글을 쓴 것이다.

 

기문장불군其文章不群 그 문장은 발군拔群이고

사채정발辭彩精拔 표현이 정밀하고도 빼어나며

질탕소창跌宕昭彰 호탕하면서도 밝아

독초중류獨超眾類 홀로 우뚝 뛰어나니

억양상랑抑揚爽朗 표현의 강약과 상쾌하고 맑음은

막지여경莫之與京 그보다 뛰어날 수 없다.

 

횡소파이방류橫素波而傍流 (비유컨대) 흰 파도가 비끼며 곁으로 흘러가는 듯하고

간청운이직상幹青雲而直上 푸른 구름을 뚫고 곧바로 올라가는 듯하다.

 

어시사즉지이가상語時事則指而可想 시사時事를 말한 부분은 지적한 점들이 모두 생각해 봄직하고

론회포칙광이차진論懷抱則曠而且真 회포懷抱를 논한 부분은 황량하나 또한 진심이 담겨있다.

 

가이정지불휴加以貞志不休 뜻을 바로 세워 흔들리지 아니한 외에도

안도고절安道苦節 도를 편안히 여겨 절조를 견지 하였으며

불이궁경위치不以躬耕為恥 몸소 밭 갈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불이무재위병不以無財為病 재물 없음을 근심하지 않았으니

 

자비대현독지自非大賢篤志 진실로 어짊과 돈독한 의지가 아니라면

여도오륭與道汙隆 비록 道와 함께 있더라도 인생의 부침을

숙능여차호孰能如此乎 누가 이처럼 헤쳐 나갈 수 있겠는가?

 

►막지여경莫之與京 그보다 뛰어날 수 없다.

경京 대大 막지여경지몰유십마비타경대莫之與京指沒有什麼比它更大 형용극대形容極大

<左傳˙莊公二十二年>

시위봉황우비是謂鳳皇于飛 이는 봉황 두 마리가 날며

화명장장和鳴鏘鏘 함께 우는 소리가 대단한 것이로다.

 

유규지후有媯之後 그러므로 규성을 가진 진나라 자손이

장육어강將育於薑 장차 강성의 나라에서 키워져

 

오세기창五世其昌 5대 후에는 번영하여

병어정경並於正卿 정경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팔세지후八世之後 8대 후에는

막지여경莫之與京 이들과 견줄 자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예언했다.

 

 

6

여애기기문余愛嗜其文 나는 그의 글을 좋아하여

불능석수不能釋手 손에서 놓지 못하였고

상상기덕尚想其德 항상 그 덕을 떠올리며

한불동시恨不同時 동시대에 살지 못함을 한스러워하였다.

 

고가수교故加搜校 그런 까닭에 그의 글을 더 찾아

조위구목粗為區目 교정하고 편목들을 구분하여 <陶淵明集>을 편찬하였다.

 

백벽미하白璧微瑕 그의 작품 중 옥의 작은 티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유재<한정>일부惟在<閒情>一賦 <한정부閒情賦> 한편인데

 

양웅소위권백이풍일자揚雄所謂勸百而諷一者

양웅이 일찍이 ‘권함이 백번에 풍간諷諫이 한번이다.’라고 한 적이 있는데,

 

졸무풍간卒無諷諫 이 부賦는 끝내 풍간諷諫이 없으니

하족요기필단何足搖其筆端 어찌하여 그 붓끝을 놀려야 했던가?

 

석재惜哉 애석하구나!!

망시가야亡是可也 이는 차라리 없는 것이 좋겠다.

 

병조점정기전並粗點定其傳 아울러 대략 그의 傳記를 검토해 정하고

편지어록編之於錄 <陶淵明傳>으로 이 책에 편찬해 기록해 둔다.

 

상위유능관연명지문자嘗謂有能觀淵明之文者 일찍이 그의 글을 애독하는 자가 있다면

치경지정견馳競之情遣 명리를 추구하는 마음을 놓게 되고

비린지의거鄙吝之意祛 인색함을 버리며[거祛 떨어 없애다]

탐부가이렴貪夫可以廉 탐욕스러움을 청렴함으로 바꾸고

 

나부가이립懦夫可以立 나약함을 立志로 바꾸게 될지니[나懦 나약하다, 겁쟁이]

기지인의가도豈止仁義可蹈 어찌 仁義를 실천하는데 만 그칠 것인가?

 

억내작록가사抑乃爵祿可辭 종내는 爵祿도 사양하게 될 것이며[작록爵祿 작위爵位와 봉록俸祿]

불필방유태화不必傍遊太華 태산泰山, 화산華山에서 노닐거나

원구주사遠求柱史 멀리 老子에게서 구할 필요를 없게 할 테니

차역유조어풍교야此亦有助於風教也 이 역시 풍교風教에 도움이 될 것이다.

 

►백벽미하白璧微瑕 그의 작품 중 옥의 작은 티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유재<한정>일부惟在<閒情>一賦 <한정부閒情賦> 한편인데

 

소통의 이러한 견해에 대해 蘇東坡는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연명작한정부淵明作閒情賦 연명이 지은 <한정부>는 말하자면

소위국풍所謂國風 호색이불음好色而不淫 국풍처럼 색을 좋아하나 지나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정사불급주남여굴송소진하이正使不及周南與屈宋所陳何異

가령 이글이 주남과 굴원, 송옥에 미치지 못한다면, 어떤 점이 못 미치는지 나열할 수 있겠는가?

 

이통대기지而統大譏之 그러나 소통은 크게 이 작품을 나무라고 있으니

차내소아강작해사자此乃小兒强作解事者 이는 마치 곧 어린아이가 억지로 지어 해석한 것과 같다.

 

►권백이풍일勸百而諷一 권함이 백번에 풍간諷諫이 한번이다. ‘풍간諷諫’ 완곡하게 간함, 넌지시 간함.

<漢書> <卷57下 사마상여전찬司馬相如傳贊>에 司馬遷은 사마상여에 대한 평가를 내리길

 

상여수다허사람설相如雖多虛辭濫說 사마상여는 비록 허황된 文辭와 지나친 言說이 많긴 하지만

연요기귀인지어절검然要其歸引之於節儉 마지막 결론부분에서는 節制함으로 인도함을 중요시 하였다.

 

차역<시>지풍간하이此亦<詩>之風諫何異 따라서 이 역시 <詩經>의 諷諫함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였다.

‘풍간諷諫’ 넌지시 나무라는 뜻을 둘러 比喩로 잘못을 고치도록 깨우침.

 

양웅이위미려지부揚雄以為靡麗之賦 하지만 양웅揚雄은 ’지나치게 화려한 賦는,

권백이풍일勸百而諷一 권함이 백번에 풍간諷諫이 한번이라,

 

유빙정猶騁鄭 위지성衛之聲 비유컨대 鄭과 衛의 음악이 음란함으로 한참 치닫다가

곡종이주아曲終而奏雅 마칠 때만 우아하게 마치는 것과 같으니

불이희호不已戲乎 희극적이지 않는가?’라고 비판하였다.

 

►비린鄙吝 몹시 인색함.

►주사柱史=주하사柱下史. 노자老子를 달리 이르는 말.

‘주하사柱下史’ 노자老子가 주周나라의 주하사柱下史란 벼슬에 있었기 때문에.

►풍교風敎 덕행으로 사람을 가르치고 인도 하는 일.

 

 

●陶淵明集序/蕭統

 

무릇 자신을 팔고 자신을 중매서는 것은 선비와 여인의 추행이며,

해치지 않고 구하지 않는 것은 명달明達한 이의 마음 씀이다.

이 때문에 성인聖人은 빛을 감추며 현인賢人은 세상에 숨으니, 그 까닭이란 무엇인가?

 

덕을 지님에 지극함은 도보다 더한 것이 없고 자기와 친함에 절실함은 몸보다 중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도가 보존되면 몸이 편안하고 도를 잃으면 몸에 해가 끼쳐진다.

 

백년 이내의 수명에 처하여 한 세상을 살아가니,

빠르기를 백마에 비유하며 붙어사는 곳을 여인숙이라 일컫는다.

 

의당 대지와 더불어 피었다가 마르고 중화中和를 따라 자유로워야 할 것이지,

어찌 서글퍼하며 근심 걱정에 힘들이고 급급하게 인간사에 부림을 당할 것인가!

 

 

제齊나라의 노래와 조趙나라 미녀의 오락, 여덟 가지 진미와 아홉 솥의 음식,

네 마리 말을 묶어 잇달아 재갈을 물리고 노닐음,

 

사치스런 옷소매에 홀을 드는 귀함이 즐겁기는 즐거워도 근심이 또한 뒤따른다.

어찌 인과를 상량하기 어려우랴만 또한 경조사가 서로 미쳐온다.

 

지혜로운 자와 어진 사람은 처신하기를 얇은 얼음을 밟듯 심히 조심하는데

어리석은 사내와 탐욕스런 선비는 앞 다투기를 바닷물이 새어 나가듯 한다.

 

옥이 산에 있으면 진기하게 여겨져 깨뜨려짐을 자초하나

난이 골짜기에서 자라면 비록 보는 사람이야 없지만 오히려 꽃을 피워 낸다.

 

그런 까닭에 장주는 호수에서 낚싯대를 드리웠고, 백성자고는 들에서 몸소 밭을 갈았으며,

어떤 이는 해동의 약초를 매매했고, 어떤 이는 강남의 낙모落毛 실을 자았다.

 

비유컨대 저 원추鵷雛가 어찌 소리개의 고기를 다툴 것이며 마찬가지로

이 잡현雜縣이 어찌 문중文仲의 희생을 괴롭히겠는가!

 

 

그러나 자상子常ㆍ영희寗喜의 무리와 소진蘇秦ㆍ위앙衛鞅의 짝에 이르러서는

죽더라도 의심하지 않았으며 달게 여겨 후회하지 않았다.

 

주부언主父偃은 말하길,

“살아서 다섯 솥의 음식을 먹지 못하더라도 죽을 적에는 다섯 솥에 삶긴다.” 했는데

끝내 그 말처럼 되었으니 어찌 슬프지 않으랴!

 

또 초왕楚王은 주周나라에서 무력시위를 하다 왕손인 만滿에게 좌절을 당하였고,

곽광霍光은 천자와 같이 수레를 타다 재앙이 등의 까그라기에서 일어난 적이 있다.

탐욕스런 무리는 그 갈래가 몹시 많은 것이다.

 

 

당요唐堯는 사해의 임금이었으나 분수汾水 북쪽에서 세상을 벗어나고픈 마음을 지녔고,

자진子晋은 천하의 태자였으나 낙수洛水의 물가에서 노닐려는 뜻을 지녔다.

 

하잖게 여기기를 벗겨진 신발같이 했고

가볍게 보기를 큰기러기 털같이 했으니 하물며 다른 것에야 어떠했겠는가?

 

때문에 초탈한 사람과 통달한 선비는 이에 따라 발자취를 감추는 것이다.

혹 치도治道를 품고 황제를 알현하기도 하지만, 혹은 베옷을 입은 채 땔감을 지거나

 

맑은 못에서 노를 두드리고 한수漢水의 굽이에서 기심機心을 버렸으니,

마음이 일을 많이 하는데 있지 않으며 일 많이 하는 데에 기탁해서 마음을 잊은 것이다.

 

 

도연명의 시에 편편마다 술이 언급되어 있어 의문이 있지만,

내가 살펴보기에 그 뜻이 술에 잇지 않으니 역시 술에 기탁해서 자취를 삼는 것이다.

 

그 문장은 다름 무리와 같지 않아 사어詞語의 광채가 정미하고 빼어나며 질탕하고도 밝아

홀로 여러 부류를 뛰어 넘었으니 억누르고 드날림과 상쾌하고 명랑함은 그보다 뛰어날 수가 없다.

흰 파도를 비끼며 곁으로 흘러가고 푸른 구름을 찾아 곧바로 올라가는 것이다.

 

시사時事를 말한 것은 가리킨 바를 생각해 볼 수 있고, 회포를 논한 것은 환하고도 진실 되다.

곧은 뜻으로써 가하기를 쉬지 않고 도를 편안히 여겨 절조를 견지 하였으며

 

몸소 밭을 갊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재물 없는 것을 병으로 여기지 않았으니,

만일 큰 어짊과 독실한 뜻이 아니라면 도와 함께 성쇠 함을 누가 이처럼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의 글을 좋아하고 즐겨 손에서 놓지 못한 채

위로 그 덕을 상상하면서 동시대에 살지 못함을 한스러워하였다.

그런 까닭에 다시 더 찾아 구하고 대략 편목을 구분해 놓는다.

 

백옥의 작은 흠이랄 것은 오로지 <한정부閑情賦> 한 편에 있으니

양웅揚雄이 말한 ‘권한 것은 백 가지 이면서 풍자한 것은 한 가지’인 것인가?

 

끝내 풍간諷諫 함이 없거늘 어찌하여 꼭 그 붓끝을 놀려야 했던가?

애석하구나! 이는 없는 것이 좋겠다.

아울러 대략 그의 전기를 검토해 정하고 책에 엮어 놓는다.

 

 

나는 일찍이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도연명의 글을 능히 애독하는 자가 있다면 명리를 추구하는 정을 놓아 버리며 비루하고 인색한 뜻을 떨어내며,

탐욕스런 사내를 청렴하게하고 나약한 사내를 서게 할 것이니 어찌 인의를 실천하게끔 하는 데에 그칠 것인가?

 

역시 작록爵祿도 사양하게 할 것이다!

泰山ㆍ華山 곁에서 노닐거나 노자老子에게서 멀리 구할 필요가 없으니 이 역시 풍교風敎에 도움이 있는 것이다.

 

 

도연명이 생전에 남긴 시문들은 도연명 死後 백여 년이 지나 소통에 의해 문집으로 편찬되었다.

<도연명집>은 현재 전하지 않고 이 <서문>과 소통이 편찬한 <도연명전陶淵明傳>만이 전한다.

 

<서문>에서 소통은 도연명의 인품과 그가 남긴 시문에 대해 칭송하고 말미에서

“내가 평소에 그의 글을 애호하여 손에서 놓지 못한 채

간절히 그 덕을 생각하면서 동시대에 살지 못함을 한스러워하였다.

그래서(흩어진 서문들을)모으고 교감하여 대략적으로 편목을 구분해 놓는다.”라고

<도연명집>을 편찬한 내력과 과정을 서술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