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panasati sutta(出入息念經) 다섯 가지 기능들[5根 indriya]
2013-12-30 13:29:19
(The Five Faculties) 다섯 가지 기능들[5根 indriya]
“다시 우다윈이여,
나는 제자들에게 다섯 가지 정신적 기능(오근)들을 계발하는 길을 분명하게 말해왔다.
여기 한 비구는 평화와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믿음의 기능”(saddha)을 계발한다.
믿음의 기능은 또한 확신의 기능으로 불린다.
어떤 사람이 삶의 고통을 놓아버리려는 관심을 가진다.
그의 호기심이 더 커지고 명상 스승을 찾기 시작한다.
다행히 유능한 스승에게 배우게 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올바른 수행을 통해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그의 확신은 커지게 된다.
그 결과 그는 수행에 대한 열의가 커지고 좀 더 수행하기를 원하게 된다!
“그는 평화와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정진의 기능’(viriya)을 계발한다.”
확신이 커지면 자연적으로 더 많은 힘을 수행에 쏟을 것이다.
좀 더 오래 앉기 시작하고 마음은 더욱 맑아질 것이다.
초보자에게 추천하는 한차례 앉기 수행 시간은 45분보다 짧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앉기 수행이 잘 되면 계속할 수 있는 한 오래 앉아있기 바란다.
좋은 수행간격을 위해서는 한 시간, 한 시간 십분 또는 그 이상 계속되어야 할지 모른다.
점차 더 오랜 시간 앉아 있는 것은 좋다.
앉기 수행에 집착하게 된다고 걱정하지 마라.
집착하게 되는 유일한 방식은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함에 의한 것이고 올바른 방법으로 명상하지 않을 때 그렇다.
충분히 연습해왔다면 신체적으로 상하지 않을 정도에서 앉기 수행을 오래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긴 시간동안 편안하게 앉아 있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만 한두 시간 또는 세 시간동안 앉기 수행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만약 그 같이 오래 앉아있는 것이 매번 고통을 일어나게 한다면 스스로에게 불필요한 신체적 불편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앉는 수행자세는 편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수행자가 무언인가에 기대지 않는다면 걸상이나 의자 같은 것을 사용해도 좋다.
기대는 것은 졸리고 멍하게 하기 쉽다.
그것은 명상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더 확신을 가질수록 수행에 좀 더 많은 힘을 쏟게 된다.
열의도 자연적으로 커진다.
“그는 평화와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사띠의 기능’(sati)을 계발한다.”
수행자의 정진이 향상됨에 따라 알아차림과 사띠는 자연적으로 강해진다.
이것은 강제적이 아닌 자연스런 과정이다.
여러분과 나 같은 보통 사람의 마음을 살펴보자.
메뚜기, 나비와 같은 마음을 발견한다.
그것은 또한 미친 원숭이와 같은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항상 움직이고 주변을 뛰어다닌다.
매 순간 공상과 충동이 변화하고 있다.
마음은 자극의 먹이이고 마음 스스로 자극에 대해 감정적인 반응을 한다.
이것은 어떤 자극들이 일어날 때 늘 해오던 식으로 조건에 되받아 행하는 반응이다.
외부 세계에 대한 기억에서 발산된 일련의 연상, 희망, 공포, 기억, 공상, 후회들이 마음에서 항상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마음은 쾌락과 만족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 맹목적이고 결코 멈추지 않으며 만족하지 않는다.
마음이 몹시 미쳐있고 불만족함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 놀랄 일이 아니다.
그리고 마음은 조건이 되는 사건들의 끝없는 정글 속에서
충분한 과일을 찾아 가지에서 가지로 옮겨 다니는 들뜨고 미친 원숭이로 묘사된다.
그래서 명상을 하기 시작할 때 마음은 자연적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명상의 대상에서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
때때로 수행자가 알아차릴 수 있기 전에 이삼 분이 걸리기도 한다.
그때는 부드럽게 놓아버리고 머리에서 생긴 긴장을 이완한다.
그리고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다시 호흡으로 주의를 되돌린다.
마음은 습관적으로 스스로 좋아하는 곳으로 돌아 다녀왔기 때문에 명상의 처음에 이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수행이 계발되어 잘 알 수 있고 더 빨리 놓아버리게 됨에 따라 수행자의 사띠는 점차 더 뚜렷해지게 된다.
알아차리기 전에 단지 일분 동안 마음이 호흡에서 떨어져 있게 될지 모른다.
그때 놓아버리고, 마음을 이완하고, 호흡으로 돌아온다.
이때 마음이 다시 떠나기까지 호흡에 더 오랜 시간(아마도 삼십 초 정도)동안 머무르기 시작한다.
결국에 마음이 달아난 것을 더 잘 보게 되고 사띠는 더욱 날카로워져 마음이 무엇을 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다.
그래서 수행자의 믿음(saddha)이 더 강해질 때 그들의 정진(viriya)도 커진다.
그리고 그 결과 사띠(sati)도 자연스럽게 계발된다.
“그는 평화와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사마디(고요하고 평온함)의 기능’(samadhi)을 계발한다.”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사띠가 향상될 때 마음은 자연적으로 명상의 대상에 훨씬 더 오래 머무르게 된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것을 ‘집중’이란 말로 표현하지만 그것은 정확하게 나타낸 말이 아니다.
명상의 대상에 몰입되거나 고정되지 않는 대신 매우 고요하고 이완된 평온한 마음으로 호흡에 아주 잘 머물러 있다.
이때 강한 기쁨이 일어나고 몸은 매우 가벼워지고 붕 뜬 것처럼 느껴진다.
그 기쁨이 사라질 때 강한 평온, 평정, 편안의 느낌이 일어난다.
수행자는 날카로운 알아차림(awareness)으로 이런 느낌들에 휩쓸리지 않는다.
그러나 수행자가 이 상태를 근사하고 좋은 상태로 생각하여 내적 언어화를 시작한다면
그 상태에서 벗어나고 마음 속에 졸음이 매우 자주 들어올 것이다.
이것은 호흡으로 되돌아오지 못하고 그런 느낌에 집착하고 슬그머니 사로잡혀 버렸기 때문이다.
그 상태를 생각하고 내적으로 언어화하기 시작하고 그 상태를 조절하려는 생각에 휩쓸림에 따라 사띠가 사라진다.
이것은 기쁨과 평온에 대한 갈망을 가질 때에도 일어난다.
이러한 욕망은 마음을 매우 경직되게 하고 들뜸(restlessness)과 불만족(dissatisfaction)이 일어나게 한다.
‘어떤 것이 특정한 방식으로 있었으면’하는 바람이 정신적 향상을 사라지게 하기 때문에
이렇게 짝이 된 수행의 장애들은 정신적 수행이 더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수행자는 이 즐거운 머무름에 대한 생각을 더욱 사띠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믿음이 커지고 정진도 커진다.
이것이 우리의 사띠를 향상시키고 사마디(평온하고 고요한 마음)를 더 강하고 오래 지속되게 한다.
“비구가 평화와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지혜(또는 이해)의 기능’(panna)을 계발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나의 많은 제자들은 올바른 지혜의 완성과 성취에 도달하여 머문다.”
마음이 더 평온하고 고요해짐에 따라 담마(실체)에 대한 진정한 본성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지혜 또는 지성의 계발은 현상이 스스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봄으로써 얻어진다.
예를 들어 수행자가 선정(명상의 단계)상태에서 앉기 수행 하는 동안이라도 어떻게 기쁨이 일어나는지 본다.
그런 상태가 잠시 동안 있다가 사라지는 것을 겪는다.
그리고 어떻게 평온과 행복이 일어나는지 본다.
그는 그런 현상이 잠시 동안 있다가 사라지는 것을 겪는다.
그는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함으로써 수행의 처음단계에서도 무상의 진정한 본성을 볼 수 있다.
그는 느낌과 감정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한다.
또한 이렇게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들에 불만족함이 있고 이런 느낌과 감정은 괴로움의 한 형태임을 안다.
특히 원하는 방식으로 이런 느낌과 감정들이 행해지지 않을 때 괴로움과 불만족함이 있음을 안다.
진실로 이 과정의 불만족함을 볼 때 이 과정이 비자아적인 과정(impersonal process)임을 분명하게 본다.
이런 현상들의 나타남과 소멸함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선정[명상의 단계]에 있는 동안일지라도 기쁨의 일어남을 실제로 조절할 수 없다.
기쁨은 기쁨이 일어날 조건이 맞으면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결코 기쁨을 강제로 머무르게 할 수 없다.
기쁨은 조건이 맞을 때 사라질 것이다.
그런 멋진 기쁨이 사라짐은 불만족을 더욱더 일어나게 한다.
그래서 그는 존재의 3가지 특성을 매우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즉 아니짜(無常), 둑카(괴로움), 그리고 無我(아나따)를 보는 것이고 이것은 지혜를 계발하는 길이다.
그래서 순관과 역관 모두로 연기를 보도록 점진적으로 이끈다.
(연기를 보는 것은 곧 사성제를 보고 체험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수행자가 연기를 보지 못했더라도 3가지 존재의 특성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연기를 볼 때 無常, 苦, 無我라는 존재의 세 가지 특성을 동시에 본다.
이것을 뒤에 더 자세하게 이야기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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