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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 제20권 제28 성문품聲聞品 ⓷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 제20권 제28 성문품聲聞品 ⓷

 

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널리 설명할 네 가지 큰 이치가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이른바 계경契經, 율律, 아비다르마, 계율이니 이것을 네 가지라 한다.

 

비구여, 알라.

만일 어떤 비구가 동방에서 와서 경을 외우고 법을 가지며 계율을 받들어 가지면서

'나는 능히 경을 외우고 법을 가지며 계율을 받들어 갖고 널리 배우고 많이 들었다'고 말하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진실로 믿지 말고 마땅히 그 비구를 붙들고 그 법을 따져 서로 변론해야 한다.

 

어떤 법을 따져 변론해야 하는가.

법을 따져 변론한다는 것은 이른바 널리 설명할 네 가지 법이니 즉 계경과 율과 아비다르마와 계율이다.

먼저 그 비구를 향해 계경을 설명하고 율을 펴 보이고 법을 분별해야 한다.

 

만일 그가 계경을 설명하고 율을 펴 보이고 법을 분별할 때에

그 설명이 계경과 맞고 율과 법에 맞으면 곧 받들어 가질 것이요.

 

만일 그것이 계경과 율과 아비다르마에 맞지 않거든 그 사람에게 이렇게 대답하라.

'그대는 알라. 그것은 여래의 말씀이 아니다. 그리고 그대의 말은 바른 경전의 근본이 아니다.

왜 그러냐 하면, 내가 지금 설명한 계경과 율과 아비다르마와는 전연 맞지 않기 때문이다'고.

 

계경이 맞지 않거든 다시 계행을 물어 보라.

만일 그것이 계행과 맞지 않거든 그에게 말하라.

'이것은 여래의 본 뜻이 아니다'고.

 

그래서 곧 떼쳐 보내야 한다.

이것이 이른바 큰 이치의 근본을 연설하는 첫째이니라.

 

다시 비구들이여. 만일 어떤 비구가 남방에서 와서

'나는 능히 경을 외우고 법을 가지며 계율을 받들어 가지고 널리 배우고 많이 들었다'고 말하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진실로 믿지 말고 그 비구를 붙들고 서로 변론해야 한다.

 

만일 그 비구의 말이 이치에 맞지 않거든 마땅히 떼쳐 보내고 만일 이치에 맞거든 그에게 대답하라.

'그것은 옳은 말이다. 그러나 바른 경의 근본은 아니다'고.

 

그래서 그 이치는 취하고 경책을 받지 말라.

왜 그러냐 하면 이치는 경을 해설하는 근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른바 큰 이치의 근본을 연설하는 둘째이니라.

 

다시 비구들이여, 만일 어떤 비구가 서방에서 와서

'경을 외우고 법을 가지며 계율을 받들어 행하고 널리 배우고 많이 들었다'고 하거든

그 비구를 향해 계경과 율과 아비다르마를 설명하라.

 

그러나 그 비구가 문자만 이해하고 뜻을 이해하지 못하거든 그에게 이렇게 말하라.

'우리는 이 말이 여래의 말씀인지 아닌지 분명히 모른다'고.

 

만일 그가 계경과 율과 아비다르마를 설명할 때에 문자만 이해하고 뜻은 이해하지 못하거든

비록 그 비구의 말을 듣더라도 좋다고 칭찬하지도 말고 나쁘다고도 말하지 말라.

그리고 계행을 물어 보아 이치에 맞거든 받들어 가져라.

 

왜 그러냐 하면 계행은 문자와는 맞지마는 그 뜻은 밝힐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른바 이치를 연설하는 셋째이니라.

 

다시 비구들이여,

만일 어떤 비구가 북방에서 와서 경을 외우고 법을 가지며 계율을 받들어 행하면서

'여러분, 의심이 있거든 곧 내게 와서 그 뜻을 물어라. 나는 설명하리라'고

 

말하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외우지 말고 그 비구에게 계경과 율과 아비다르마와 계율을 물어 보라.

그래서 서로 맞거든 곧 그 이치를 묻고 또 이치가 옳거든 그를 칭찬해 주라.

'장하오 선비님,

그것은 진실로 여래의 말씀하신 이치와 어긋나지 않고 계경과 율과 아비다르마와 계율에 맞다'고.

그리고 공양으로 그 비구를 대접하라.

 

왜 그러냐 하면 여래는 법을 공경하기 때문에 법을 공양하는 이는 곧 나를 공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법을 본 이는 곧 나를 보는 것이다.

 

법이 있으면 곧 내가 있으며 법이 있으면 네 무리가 있고 법이 있으면 네 가지 성 받이가 세상에 있다.

왜 그러냐 하면 법이 세상에 있으므로 말미암아 이 현겁賢劫동안에 큰 위엄스런 왕이 세상에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법이 세상에 있기 때문에 곧 네 가지 성 받이가 세상에 있으니 곧 크샤트리야, 바라문, 공사, 거사종이다.

법이 있기 때문에 네 천왕과 도솔천, 야마천, 화자재천, 타화자재천이 세상에 있다.

 

법이 세상에 있기 때문에 욕계천, 색계천, 무색계천이 세상에 있다.

법이 세상에 있기 때문에 곧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벽지불과 불법이 세상에 나타났느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법을 잘 공경하라.

그 비구가 그대들의 필요한 것을 때를 따라 이바지하고 공양하거든 그에게 이렇게 말하라.

'착하고 착하다. 네 말과 같다. 그대가 오늘 말한 것은 바로 여래의 말씀이다'고.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널리 연설할 네 가지 큰 이치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은 마음과 뜻을 바로 잡아 이 네 가지 일을 행하되 실수가 없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셨다.

 

그때에 프라세나짓 왕은 이른 아침에 네 종류의 군사를 거느리고 보배 깃 수레를 타고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대왕은 어디서 오시기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네 종류 군사를 모았소. 무슨 일이 있소."

 

왕이 사뢰었다.

"지금 이 나라에 큰 도적이 일어났기에 어제 밤중에 군사를 일으켜 그들을 사로잡았나이다.

그래서 몸이 매우 피로해 궁으로 돌아가려 하다가 도중에서 생각하였나이다.

'나는 여래께 먼저 가 뵈옵고 그 다음에 궁으로 돌아가자'고.

 

도적 때문에 자나깨나 편치 못하였더니

지금은 도적을 쳐부순 공로가 있어 못내 기뻐 어쩔 줄 모르고 일부러 와서 뵈옵는 것이옵니다.

만일 어젯밤에 군사를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도적을 잡지 못했을 것이옵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하오, 대왕이여. 대왕의 말과 같소. 왕은 알아야 하오,

먼저는 괴로우나 뒤에는 즐거운 네 가지 일이 있소.

 

어떤 네 가지인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먼저는 괴로우나 뒤에는 즐겁소.

기름 소를 마시는 것은 먼저는 괴로우나 뒤에는 즐겁소.

쓴 약을 마시는 것은 먼저는 괴로우나 뒤에는 즐겁소,

살림살이와 혼인은 먼저는 괴로우나 뒤에는 즐겁소.

대왕이여, 이것이 먼저는 괴로우나 뒤에는 즐거운 네 가지 일이오."

 

왕은 사뢰었다.

"세존님 말씀은 참으로 옳나이다. 그런 일은 먼저는 괴로우나 뒤에는 즐겁나이다.

왜냐 하오면 나는 지금 그 네 가지 일을 손바닥의 구슬 보듯이 환히 보기 때문이옵니다.

그것은 다 먼저는 괴로우나 뒤에는 즐겁나이다."

 

세존께서는 왕을 위해 미묘한 법을 설명하시어 기쁜 마음을 내게 하셨다.

왕은 설법을 듣고 사뢰었다.

 

"나라 일이 너무 많아 돌아가고자 하나이다."

"형편대로 하시오."

 

​왕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조아려 세존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을 세 번 돌고 물러갔다.

 

먼저는 괴로우나 뒤에는 즐거운 네 가지 일이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법행을 닦기는 먼저는 괴로우나 뒤에는 즐겁다.

경문을 외우기는 먼저는 괴로우나 뒤에는 즐겁다.

선정을 닦기는 먼저는 괴로우나 뒤에는 즐겁다.

드나드는 숨길을 세기는 먼저는 괴로우나 뒤에는 즐겁다.

비구들이여, 이 네 가지 일을 행하기는 먼저는 괴로우나 뒤에는 즐겁느니라.

 

또 만일 어떤 비루로서 먼저는 괴로우나 뒤에는 즐거운 네 가지 법을 행하면

그는 사문으로서 뒷날에 반드시 즐거운 갚음을 얻을 것이다.

 

어떤 네 가지인가.

만일 어떤 비구로서 이 법을 부지런히 닦아 탐욕의 나쁜 법을 버리고

기쁨과 편안함을 생각해 가지고 마음이 첫째 선정에 놀리면 이것은 첫째 즐거움이다.

 

다시 머트러운 생각과 세밀한 관찰이 있고 안으로 기쁜 마음이 있으면서 알뜰한 마음으로 닦아 머트러운 생각과

세밀한 관찰은 없어지고 기쁨과 편안함을 생각해 가져 둘째 선정에 마음을 놀면 이것은 사문의 둘째 즐거움이니라.

 

다시 아무런 생각도 없어지고 아무 것도 없는 데에 마음을 놀려 언제나 스스로 몸의 즐거움을 깨달아 알고

모든 성현의 바라는 바의 생각의 즐거움을 간직해 셋째 선정에 마음을 놀리면 이것은 사문이 얻는 셋째 즐거움이니라.

 

다시 괴로움과 즐거움이 이미 다하고 본래 있던 근심과 슬픔이 없어지고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이

생각의 깨끗함을 간직하여 넷째 선정에 마음을 놀리면 이것은 사문의 넷째 즐거움이니라.

 

다시 어떤 비구로서 이 먼저 괴로운 행을 행하여 뒤에 사문의 네 가지 즐거움의 갚음을 얻으면

세 가지 결박의 그물을 끊고 수다원의 물러나지 않는 법을 이루어 반드시 열반에 이르게 되느니라.

 

비구들이여, 만일 그 세 가지 결박을 끊고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지면

사다함斯陀含을 이루어 이 세상에 한 번 왔다가 반드시 괴로움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만일 다시 어떤 비구가 욕심 세계의 다섯 가지 번뇌를 끊으면

아나함을 이루고 거기서 열반에 들어 다시는 이 세상에 오지 않느니라.

 

비구들이여,

만일 다시 어떤 비구가 번뇌가 다하고 번뇌가 없게 되어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가 해탈하면

현재에서 진리를 몸소 증득하여 스스로 즐거이 놀게 된다.

그래서 나고 죽음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태胎를 받지 않을 줄을 여실히 아느니라.

 

비구들이여,

이것이 그 비구가 먼저 괴로운 법을 닦아 뒤에 얻는 사문의 네 가지 결과의 즐거움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은 방편을 구하여 그 먼저는 괴로우나 뒤에는 즐거운 법을 성취하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七.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네 종류인가.

마찰라 꽃과 같은 사문이 있고 푼다리이카 꽃과 같은 사문이 있으며

부드러운 사문이 있고 부드러운 중의 부드러운 사문이 있다.

 

어떤 이가 마찰라 꽃과 같은 사문인가.

혹 어떤 사람은 세 가지 번뇌를 끊고 수다원을 이루어 물러나지 않는 법에서

반드시 열반에 이르되 몹시 드디어 일곱 번 죽고 일곱 번 나야 한다.

 

혹은 집집[家家]의 한 종류로서 마치 마찰라 꽃을 아침에 꺾으면 저녁에 자라나는 것처럼

그 비구도 그와 같아서 세 가지 번뇌가 이미 다하고 수다원을 이루어 물러나지 않는 법에서

반드시 열반에 이르되 몹시 드디어 일곱 번 죽고 일곱 번 나야 한다.

 

그러나 만일 용맹스런 마음으로 방편을 구하는 사람이면 집집의 한 종류로서 곧 도를 이루게 된다.

이것을 마찰라 꽃과 같은 사문이라 하느니라.

 

어떤 이를 푼다리이카 꽃과 같은 사문이라 하는가.

어떤 사람은 세 가지 번뇌가 이미 다하고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

사다함을 이루어 이 세상에 한 번 와서야 괴로움을 벗어난다.

 

그러나 만일 조금 더딘 이라면 이 세상에 와서 괴로움을 벗어나지마는

만일 용맹스러운 이라면 거기서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난다.

마치 푼다리이카 꽃을 아침에 꺾으면 저물어서 시들어지는 것과 같다.

이것을 푼다리이카 꽃과 같은 사문이라 하느니라.

 

어떤 이를 부드러운 사문이라 하는가.

어떤 사람은 욕심 세계의 다섯 가지 번뇌를 끊고 아나함을 이루어 거기서 바로 열반에 들어 이 세상에 오지 않는다.

이것을 부드러운 사문이라 하느니라.

 

어떤 이를 부드러운 중의 부드러운 사문이라 하는가.

어떤 사람은 번뇌가 다하고 번뇌가 없게 되어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가 해탈하여, 현세에서 진리를 몸으로 증득하여 스스로 즐겁게 논다.

그래서 나고 죽음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태를 받지 않을 줄을 여실히 안다.

이것을 부드러운 중의 부드러운 사문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이여, 이런 네 종류의 사람이 세상에 있다.

그러므로 비구들은 방편을 구해 부드러운 중의 부드러운 사문이 되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수타와 수마균과 핀돌라와 그늘과 핫타카와 녹두와 널리 연설함 즐거움과 부드러움 뒤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