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 제35권 제40 칠일품七日品 ②
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미묘한 법을 설명하리라.
그것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으며 마지막도 좋아 뜻은 깊고 멀며 범행을 두루 갖추어 닦을 수 있는 것이다.
이 경 이름은 모든 번뇌를 깨끗이 하는 법이니 너희들은 잘 명심하라.
모든 번뇌를 깨끗이 하는 법이란 무엇인가.
어떤 번뇌는 봄으로 말미암아 끊어지고, 어떤 번뇌는 친근하므로 말미암아 끊어지며
어떤 번뇌는 즐김으로 말미암아 끊어지고 어떤 번뇌는 위의로 말미암아 끊어지며
어떤 번뇌는 생각하므로 말미암아 끊어지느니라.
어떤 번뇌가 봄으로 말미암아 끊어지는가.
이른바 범부는 성인을 보지 못하고 여래님 법을 순종하지 않으며
성현의 법을 옹호하지 않고 선지식을 친근하지 않으며 선지식과 함께 일하지 않는다.
그래서 법을 듣고는 생각해야 할 것은 분별하지 못하고 생각하지 않아야 할 것은 생각한다.
거기서 생기지 않은 탐욕의 번뇌는 생기고 이미 생긴 탐욕의 번뇌는 더욱 많아지며
생기지 않은 생존의 번뇌는 생기고 이미 생긴 생존의 번뇌는 더욱 많아지며
생기지 않은 무명의 번뇌는 생기고 이미 생긴 무명의 번뇌는 더욱 많아진다.
이것이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을 생각한다는 것이니라.
그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 법을 생각하지 않는가.
이른바 생각할 법이란 생기지 않은 탐욕의 번뇌는 생기지 못하게 하고
이미 생긴 탐욕의 번뇌는 없애며 생기지 않은 생존의 번뇌는 생기지 못하게 하고
이미 생긴 생존의 번뇌는 없애며 생기지 않은 무명의 번뇌는 생기지 못하게 하고
이미 생긴 무명의 번뇌는 없애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생각해야 할 법을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생각해야 할 법을 생각하지 않아서 생기지 않은 탐욕의 번뇌는 생기고
이미 생긴 탐욕의 번뇌는 더욱 많아지며 생기지 않은 생존의 번뇌는 생기고
이미 생긴 생존의 번뇌는 더욱 많아지며 생기지 않은 무명의 번뇌는 생기고
이미 생긴 무명의 번뇌는 더욱 많아진다는 것이니라.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떻게 먼 과거가 있는가. 내게 먼 과거나 있었을 것이다'고.
혹은 또 생각한다.
'먼 과거는 없다. 어떻게 먼 과거가 있을 것인가. 누가 먼 과거를 가지고 있는가.
어떻게 먼 미래가 있는가. 내게 장차 먼 미래가 있을 것이다'고.
혹은 또 말한다.
'먼 미래는 없다. 어떻게 먼 미래가 있을 것인가. 누가 먼 미래를 가졌는가.
어떻게 중생의 영원이 있는가. 중생의 영원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여기서 목숨을 마치면 어디서 날 것인가'고,
그는 이 나쁜 생각을 내어 곧 여섯 가지 소견을 일으키고 계속해서 삿된 소견을 낸다.
즉 '<나>가 있다'는 소견을 확실히 가지고 '<나>가 없다'는 소견을 확실히 가지며
'나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중간 소견을 확실히 가지고,
또 그 몸을 관찰해 소견을 가지고 '자기에게서 자기를 보지 않는다'는 소견을 가지고
'<나>가 없는데서 <나>가 없다고 보지 않는다'는 중간 소견을 가진다.
그 때에 그는 또 이런 삿된 소견을 일으킨다.
'<나>란 곧 이승에도 있고 저승에도 있다.
언제나 세상에 존재하여 없어지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으며 옮기지도 않는다'고.
이것이 이른바 삿된 소견의 무더기로서 삿된 소견의 재앙, 근심, 슬픔, 괴로움, 번민은 모두 이것으로 말미암아 생겨
고칠 수 없고 또 버릴 수도 없어 괴로움의 근본을 더욱 더해 간다. 그래서 사문이 행과 열반의 길을 이루지 못하느니라.
또 비구들이여,
성현의 제자는 그 법을 닦되 차례를 잃지 않고 잘 옹호하며 선지식과 더불어 함께 일한다.
그는 능히 분별하여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도 잘 알고 생각해야 할 법도 잘 안다.
그래서 그는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은 생각하지 않고 생각해야 할 법은 생각하느니라.
그는 어떤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을 생각하지 않는가.
이른바 모든 법에 있어서 생기지 않은 탐욕의 번뇌는 생기고 이미 생긴 탐욕의 번뇌는 더욱 많아지며
생기지 않은 생존의 번뇌는 생기고 이미 생긴 생존의 번뇌는 더욱 많아지며
생기지 않은 무명의 번뇌는 생기고 이미 생긴 무명의 번뇌는 더욱 많아진다.
이런 법은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이다.
그는 어떤 생각해야 할 법을 생각하는가.
모든 법에 있어서 생기지 않은 탐욕의 번뇌는 생기지 않고 이미 생긴 탐욕의 번뇌는 없애며,
생기지 않은 생존의 번뇌는 생기지 않고 이미 생긴 생존의 번뇌는 없애며
생기지 않은 무명의 번뇌는 생기지 않고 이미 생긴 무명의 번뇌는 없앤다.
이것이 이른바 생각해야 할 법을 생각한다는 것이니라.
그는 생각하지 않아야 할 것은 생각하지 않고 생각해야 할 것은 생각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여 곧 세 가지 법을 없앤다.
어떤 것이 세 가지 법인가.
몸이 있다는 소견과 그릇된 계율에 대한 집착과 그리고 의심이다.
이것을 바로 알고 보지 못하면 번뇌의 행이 더할 것이요,
만일 잘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면 번뇌의 행이 더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알고 보면 번뇌가 생기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번뇌의 소견이 끊어진 것이라 하느니라.
그 어떤 것이 공경으로 번뇌가 끊어지는 것인가.
이른바 비구는 굶주림과 추위를 참고 바람, 비, 모기, 등에와 욕설과 꾸짖음에 괴로워하며
몸에 병이 생겨 고통이 심해 곧 죽게 되어도 그것을 능히 참는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곧 괴로움이 생기고 만일 그것을 참으면 괴로움이 생기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공경으로 번뇌가 끊어진 것이라 하느니라.
그 어떤 것이 친근으로 번뇌가 끊어지는 것인가.
이른바 비구는 조심해서 옷을 받아도 그것을 호사로 생각하지 않고 다만 그것으로
몸을 지탱하고 추위와 더위를 피하며 바람과 비를 피하고 몸을 가리어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또 조심해 때때로 밥을 빌어도 거기에 집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다만 몸을 지탱하며 묵은 병을 고치고 세 병은 나지 않게 하며
온갖 행을 잘 단속하여 범하는 일이 없으며 언제나 안온하게 범행을 닦으면서 세상에 오래 살려고 한다.
또 조심해 침구를 친하고 호사로운 옷을 입지 않는다.
다만 굶주림과 추위, 바람과 비, 모기와 등에를 막으며 그 몸을 지탱해 도법을 행하려 한다.
또 조심해 의약을 친해도 거기에 집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다만 그 의약으로 병을 고치고 몸을 안온하게 하려 한다.
그래서 만일 친근하지 못하면 곧 번뇌의 근심이 생기고 만일 친근하면 번뇌의 근심이 없어진다.
이것이 이른바 친근으로 번뇌가 끊어진 것이라 하느니라.
그 어떤 것이 멀리 떠남으로 번뇌가 끊어지는 것인가.
이른바 비구로서 어지러운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마치 나쁜 코끼리, 낙타, 소, 말, 호랑이, 이리, 개, 뱀, 독사와 깊은 구덩이,
위험한 언덕과 가시덤불, 벼랑, 진창 등을 멀리 피하는 것처럼
나쁜 벗과 사귀지 않고 또 나쁜 사람은 가까이하지 않으며 깊이 생각해 마음에서 떠나보내지 않는다.
그래서 만일 잘 단속하지 않으면 곧 번뇌가 생기고 잘 단속하면 번뇌가 생기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멀리 떠남으로써 번뇌가 끊어진다는 것이니라.
어떻게 위의로써 번뇌가 끊어지는가.
이른바 비구로서 눈으로 빛깔을 보아도 빛깔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고
또 더러운 마음을 일으키지 않아서 눈을 온전히 가져 흐림이 없어 눈을 잘 단속하고
귀로 소리를 듣거나 코로 냄새를 맡거나 혀로 맛을 알거나 몸으로 닿임을 느끼거나
뜻으로 법을 알아도 전연 더러운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또 집착하는 생각을 내지 않는 것이니
만일 그 위의를 갖추지 않으면 번뇌가 생기고 그 위의를 갖추면 번뇌가 생기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위의로써 번뇌가 끊어진다는 것이니라.
또 비구들이여,
비구로서 모든 번뇌에 있어서 소견으로 끊을 것은 소견으로 끊고, 공경으로 끊을 것은 공경하여 끊으며
친근으로 끊을 것은 친근하여 끊고 멀리 떠남으로 끊을 것은 멀리 떠나 끊으며
위의로 끊을 것은 위의로 끊고, 생각으로 끊을 것은 생각하여 끊으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로서 일체 위의를 완전히 갖추어 결박을 끊고
탐애를 떠나 네 가지 흐름을 건너 점점 괴로움을 벗어난다는 것이니라.
비구들이여,
모든 번뇌를 없애고 모든 부처 세존님들이 늘 행하시는 바
일체 형상이 있는 중생들을 자비스레 생각하는 것을 나는 이제 다해 마쳤다.
너희들은 고요한 곳이나 나무 밑을 즐겨 부지런히 정진하여 게을리 하지 마라.
지금 부지런히 하지 않으면 뒤에 뉘우쳐도 소용이 없느니라.
이것이 내 교훈이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다.
七.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아유사 강가에서 五백의 큰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그 때에 대균두大均頭는 한적한 곳에서 생각하였다.
'항상 공덕을 더하는 어떤 일이 있는가, 없는가.'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사뢰었다.
"저는 아까 한적한 곳에서 '혹 어떤 일을 하면 공덕을 더할 수 있는가'고 생각하였나이다.
저는 지금 세존님께 여쭙나이다. 원컨대 말씀하여 주소서."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공덕을 더할 수 있느니라."
"어떻게 공덕을 더할 수 있나이까."
"공덕을 더하는 일곱 가지 일이 있다. 그 복은 헤아릴 수 없고 또 그것을 헤아릴 사람도 없느니라.
어떤 것이 일곱 가지인가.
이른바 선남자, 선녀인으로서 절이 없는 곳에 절을 세우면 그 복은 헤아릴 수 없다.
또 균두야, 선남자, 선녀인으로써 절이나 비구 중에게 자리를 보시하면 이것은 헤아릴 수 없는 둘째 복이다.
또 균두야, 만일 선남자, 선녀인으로서 비구 중에게 밥을 보시하면 그것은 헤아릴 수 없는 셋째 복이니라.
또 균두야, 만일 선남자, 선녀인으로써 절이나 비구 중에게 비옷을 보시하면
그것은 넷째 공덕으로서 그 복은 헤아릴 수 없다.
또 균두야, 만일 선남자, 선녀인으로서 비구 중에게 약을 보시하면 그것은 헤아릴 수 없는 다섯째 복이니라.
또 균두야, 만일 선남자, 선녀인으로써 넓은 들판에 좋은 우물을 파면 그것은 여섯째 공덕으로서 그 복은 헤아릴 수 없다.
또 균두야, 만일 선남자, 선녀인으로서 길 가까이 집을 지어 미래나 과거의 나그네들을 묵게 하면
그것은 일곱째 공덕으로서 그 복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
균두야, 이것이 일곱 가지 공덕으로서 그 복이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다.
다니거나 앉았거나 혹은 목숨을 마치더라고 그 복이 그 뒤를 따르는 것과 같아 그 복은 헤아릴 수 없다.
말하자면 그렇게 많은 복이 있다.
마치 바닷물은 말이나 되로 셀 수 없을 만큼 그렇게 많은 물이 있는 것처럼
그 일곱 가지 공덕도 그와 같아서 그 복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균두야, 선남자, 선녀인은 부디 방편을 구해 그 일곱 가지 공덕을 성취하도록 하라.
균두야,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균두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다.
八.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죽음이라는 생각을 닦고 죽음을 깊이 생각하여야 하느니라."
때에 그 자리의 어떤 비구는 세존께 사뢰었다.
"저는 항상 죽음이라는 생각을 닦고 죽음을 깊이 생각하나이다."
"너는 어떻게 죽음을 생각하고 그 생각을 닦는가."
"죽음을 생각할 때에
'이레 동안 살면서 일곱 가지 각의覺意를 생각하면 여래님 법에 많은 이익이 있고
죽은 뒤에는 원한이 없을 것이라'고 여기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죽음을 생각하나이다."
"말마라, 말 말라, 비구야.
그것은 죽음을 생각하는 행이 아니다, 그것은 방일하는 법이니라."
또 어떤 비구는 사뢰었다.
"저는 능히 죽음이라는 생각을 닦나이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어떻게 죽음이라는 생각을 닦는가."
"저는 이렇게 생각하나이다.
'엿새 동안 살면서 여래님의 바른 법을 생각한 뒤에 곧 목숨을 마치면 그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라'고
이렇게 죽음을 생각하나이다."
"말마라, 말 말라, 비구야.
너도 또한 방일하는 법이다. 그것은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니라."
또 어떤 비구는 사뢰었다.
"저는 닷새 동안 살려고 하나이다."
이렇게 나흘, 사흘, 이틀, 하루라고 말하였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말마라, 말 말라, 비구들이여.
그것도 다 방일하는 법이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니라."
또 어떤 비구는 사뢰었다.
"저는 능히 죽음이라는 생각을 닦나이다.
저는 때가 되어 가사를 입고 바루를 가지고 슈라아바스티이에 가서 걸식하고는 도로 슈라아바스티이에서 나와 절로
돌아와 고요한 방에 들어가 일곱 가지 각의를 생각하다가 목숨을 마치면 그것이 곧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라 여기옵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말마라, 말 말라, 비구야. 그것도 죽음을 생각하고 그 생각을 닦는 것이 아니다.
너희 여러 비구들이 말한 것은 다 방일한 행이요 죽음을 생각하고 수행하는 법이 아니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거듭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저 박칼리이 같은 비구는 참으로 죽음을 생각한다 할 수 있다.
그는 잘 죽음을 생각하고 이 몸의 오로惡露의 더러움을 싫어하였다.
만일 비구로서 죽음을 생각하는 그 생각을 매어 앞에 두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드나드는 숨길의 가고 오는 수를 줄곧 생각하면서
그 중간에 일곱 가지 각의를 깊이 생각하면 여래 법에 많은 이익이 될 것이다.
왜 그러냐하면 모든 법은 다 비고 고요하여 생기는 것이나 사라지는 것이 모두 허깨비로서 진실이 없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만일 드나드는 숨길 속에서 죽음을 생각하면 곧 생노병사와 근심, 걱정, 고통, 번민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다.
九.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셨다.
그 때에 프라세나짓 왕은 신하들에게 명령하였다.
"빨리 보배깃 수레를 준비하라. 나는 세존께 나아가 예배하고 문안 드리리라."
왕은 곧 성을 나가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그 때에 여래께서는 무수한 대중에게 둘러싸이어 설법하고 계셨다.
때에 니르그란타 일곱 명과 옷 벗은 이 일곱 명과 검은 범지 일곱 명과
옷 벗은 바라문 일곱 명이 세존님 앞 가까이 지나갔다.
프라세나짓 왕은 그들이 세존님 앞 가까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곧 부처님께 사뢰었다.
"지금 저 머무르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오매 모두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을 알아 집도 직업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의 아라한 중에서 저들이 가장 우두머리가 되겠나이다.
왜 그런가 하오면 저들은 많은 사람들 중에서 매우 괴로운 행을 닦으면서 세상 이익을 탐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대왕은 아직 참 아라한을 분별하지 못하오. 옷을 벗었다고 하여 아라한이라 할 수 없소.
대왕은 알아야 하오. 저것은 다 진실한 행이 아니오.
먼 과거의 사실을 생각해 관찰하고 또 친해야 할 이는 친할 줄 알고 가까이 할 이는 가까이 할 줄 알아야 하오.
나는 이제 그 이유를 말하겠소.
먼 과거에 일곱 명 범지가 한 곳에서 공부하고 있었소. 그들은 매우 노쇠하였소.
풀로 옷을 만들어 입고 나무 열매를 먹으면서 온갖 삿된 소견을 내어 제각기 생각하였소.
'우리는 이 고행한 덕으로 뒤에 큰 나라 왕이 되거나 혹은 제석천이나 범천이나 四천왕이 되자'고.
그 때에 하늘 스승 아시타는 그 범지들의 조부였소.
그는 그 범지들의 마음속의 생각을 알고 곧 범천에서 사라져 그 범지들에게 왔소.
그는 하늘 복장을 버리고 범지 모양이 되어 맨 땅에서 거닐었소.
그 일곱 명 범지들은 아시타가 거니는 것을 보고 제각기 성을 내어 말하였소.
'저 어떤 탐욕 많은 사람이 우리 범행인들 앞에서 거니는가. 지금 주문을 외워 재로 만들어 버리리라.'
그들은 곧 손으로 물을 움켜 그에게 뿌리면서 주문을 외쳤소.
'너는 지금 곧 재가 되라.'
그렇게 범지들은 성을 내었지마는 그 하늘 스승의 얼굴빛은 더욱 단정하였소.
왜 그러냐 하면 자비는 성내는 마음을 없애기 때문이오.
그 때에 그들은 생각하였소.
'우리는 계율에서 타락한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이처럼 성을 내는데 저 사람은 저처럼 단정하구나.'
그 때에 일곱 명 범지들은 다음 게송을 읊었소.
하늘인가 혹은 건달바인가 나찰인가 혹은 귀신인가
지금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우리들은 그것을 알고 싶구나.
그 때에 아시타 하늘 스승도 게송으로 대답하였소.
나는 하늘이나 건달바 아니요 귀신이나 또 나찰도 아니다
저 하늘의 스승 아시타는 바로 지금의 이 내가 그이니라.
'나는 지금 너희들의 그 마음 속 생각을 알고 저 범천 위에서 내려 왔을 뿐이다.
범천은 여기서 너무 멀다. 제석천도 그렇다. 너희들은 전륜성왕도 될 수 없다.
그런 고행으로는 제석천도 범천도 四천왕도 될 수 없다."고 하였소.
그리고 그 하늘 스승 아시타는 곧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소.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 있고 바깥 복장은 추하고 거칠구나
다만 부지런히 바른 소견을 닦아 그 나쁜 길에서 멀리 떠나라.
마음으로 계율 지켜 행이 깨끗하고 입으로 말하는 행 그와 같으며
그 나쁜 생각에서 멀리 떠나면 반드시 저 천상에 태어나리라.
그 때에 일곱 명 범지들은 아시타에게 사뢰었소.
"당신은 참으로 하늘 스승입니까."
그는 대답하였소.
"그렇다, 그런데 범지들이여,
그 벗은 몸으로는 천상에 날 수 없고 그런 고행을 닦는다 해서 반드시 범천에 나는 것은 아니다.
또 벗은 몸으로 갖가지 고행을 닦음으로써 저 곳에 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마음을 잘 거두어 잡아 움직이게 하지 않으면 곧 천상에 날 것이다.
그대들이 익힌 그 행으로는 천상에 날 수 없느니라."
대왕이여, 이 사실로 보더라도 옷을 벗었다 하여 아라한이라 할 수 없소.
범부로서는 참 사람을 알려고 해도 그것은 될 수 없는 일이오.
그러나 참 사람은 익히는 바의 범부의 행을 잘 분별하오.
또 범부로는 범부의 행을 알지 못하오. 참 사람이라야 범부의 행을 알 수 있는 것이오.
대왕은 알아야 하오. 부디 방편을 구해 먼 과거의 습관은 현재에 맞지 않는 줄을 알아야 하오.
부디 그렇게 보시오. 대왕이여, 방편을 구해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오."
왕은 사뢰었다.
"여래님 말씀은 매우 유쾌하여 세상 사람의 깨달을 수 없는 것이옵니다.
그러나 나라 일이 너무 많아 이만 돌아가려 하나이다."
"형편대로 하시오."
왕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님 발에 예배하고 물러갔다.
그 때에 프라세나짓 왕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十.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석씨 카필라바스투의 냐그로오다 동산에서 五백의 큰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공양을 마치고 냐그로오다 동산에서 비라야 촌락의 어떤 나무 밑에 앉아 계셨다.
때에 범지 집장종종執杖種種은 카필라바스투를 나와 세존님께 나아가 잠자코 섰다가 말하였다.
"사문님은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주장하는가."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범지야, 알라. 내 주장은 하늘이나 용이나 귀신으로서 미칠 바가 아니다.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또 세상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내 주장은 바로 이것을 말할 뿐이니라."
집장종종은 머리를 끄덕이며 찬탄하고는 곧 물러갔다.
여래께서도 곧 자리에서 일어나 본 처소로 돌아가셨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까 저 동산에 앉아 있을 때 어떤 집장종종은 내게 와서 물었다. '사문님은 무슨 주장을 하느냐'고.
나는 대답하기를
'내 주장은 하늘이나 세상 사람으로서 미칠 바가 아니다.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세상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내 주장은 바로 이것을 말할 뿐이다'고 하였다.
집장종종은 이 말을 듣고 곧 물러갔느니라."
그 때에 어떤 비구는 세존님께 사뢰었다.
"어떤 것을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또 세상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라 하나이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내 주장으로 말하면 이 세상에 전연 집착하지 않고 탐욕에서 벗어나 갖가지 의혹을 끊고 아무 잡생각이 없는 것이다.
내 주장은 바로 이것을 말할 뿐이니라."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곧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셨다.
이 때에 비구들은 저희끼리 말하였다.
"이제 세존께서는 너무 간략히 말씀하셨다.
누가 그 이치를 널리 설명할 수 있겠는가."
또 그들은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늘 마하아 카아탸아야나를 칭찬하셨다.
저 카아탸아야나만이 능히 그 이치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비구들은 카아타아야나에게 말하였다.
"아까 여래께서는 그 이치를 너무 간략히 말씀하셨습니다.
원컨대 존자는 그것을 널리 연설하고 낱낱이 분별하여 이 여러 사람들을 이해하도록 하십시오."
카아탸아야나는 대답하였다.
"마치 어떤 마을 사람이 나무 열매를 구하려고 마을을 나갔다가 큰 나무를 보고
그것을 베어 가져와 잎사귀만 가지고는 그 나무를 버리고 떠나는 것처럼
이제 그대들도 그와 같아서 여래님을 버리고 왔으니 빈 가지에서 열매를 구하는 것과 같소.
그런데 여래께서는 모든 것을 두루 보시고 온 세상을 두루 비추어 천상, 인간의 길잡이가 되셨소.
여래님은 법의 참 주인이신 데 그대들은 좋은 기회를 얻어 마침 여래께서 그 이치를 설명하시는 때를 만나게 된 것이오."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여래께서 법의 참 주인으로서 그 이치를 널리 설명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존자도 그 이치를 널리 설명할 수 있다는 세존님의 증명을 받았습니다."
카아탸아야나는 말하였다.
"그대들은 자세히 듣고 잘 명심하시오. 그 이치를 분별해 널리 설명하리다."
"매우 좋습니다."
비구들은 듣고 있었다.
카아탸아야나는 말하였다.
"아까 여래께서
'내 주장은 하늘이나 용이나 귀신으로서 미칠 바가 아니다.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세상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벗어나 온갖 의혹을 끊고 다시는 망설임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지금 중생들이 다투기를 좋아해 온갖 어지러운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이오.
또 여래께서는
'나는 거기에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소.
그것은 탐욕의 번뇌와 성냄, 삿된 소견, 욕심 세계의 번뇌와 교만, 의심, 무명의 번뇌를 말한 것으로서
중생들은 혹은 칼이나 몽둥이의 고통의 갚음을 받으면서
사람들과 다투고 온갖 나쁜 행과 어지러운 생각과 좋지 않은 행을 일으키지 때문이오.
눈으로 빛깔을 보면 알음이 생기고 이 세 가지를 인연하여 곧 닿임이 생기며 닿임으로 말미암아 느낌이 생기고
느낌으로 말미암아 깨달음이 생기며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생각이 있어 여러 가지로 헤아리고
거기서 온갖 집착하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오.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으며 혀로 맛을 알고 몸으로 닿임을 알고 뜻으로 법을 알면 곧 알음이 생기오.
이 세 가지로 인연하여 곧 닿임이 있고 닿임으로 말미암아 느낌이 있으며 느낌으로 말미암아 깨달음이 있고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생각이 있으며 생각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헤아리고
거기서 온갖 집착하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오.
그것은 즉 탐욕의 번뇌, 성냄, 삿된 소견, 교만, 욕심 세계의 번뇌와 어리석음과
의심의 번뇌로서 칼이나 몽둥이의 온갖 변을 일으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것이오.
만일 어떤 사람이 '눈이 없고 빛깔이 없어도 닿임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소.
또 '닿임이 없어도 느낌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도 옳지 않소.
또 '느낌이 없어도 집착하는 생각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도 옳지 않소.
또 어떤 사람이
'귀가 없고 소리가 없으며 코가 없고 냄새가 없으며 혀가 없고 맛이 없으며
몸이 없고 닿임이 없으며 뜻이 없고 법이 없어도 알음이 있다'고 말한다면 결코 그럴 이치가 없는 것이오.
또 만일 '알음이 없어도 닿임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소.
'닿임이 없어도 느낌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도 옳지 않소.
'느낌이 없어도 집착하는 생각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도 옳지 않은 것이오.
만일 어떤 사람이 '눈이 있고 빛깔이 있으면 거기서 알음이 생긴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렇소.
또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닿임, 뜻과 법이 있으면 거기서 알음이 생긴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렇소.
여러분은 알아야 하오. 이 까닭으로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소.
'내 주장은 하늘이나 세상 사람이나 악마나 혹은 악마 하늘로서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세상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 탐욕에서 해탈을 얻어 의심을 끊고 다시는 망설임이 없다'고.
세존께서는 이런 이유로 그 이치를 간략히 말씀하신 것이오.
그대들이 만일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하겠거든 다시 여래님께 가서 그 이치를 여쭈어 보시오.
만일 여래께서 무슨 말씀이 계시거든 잘 명심하고 받들어 가지시오."
그 때에 비구들은 그 카아탸아야나의 말을 듣고도 옳다고 말하지 않고 아니라고도 말하지 않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그들은 저희끼리 말하였다.
"우리는 이 이치를 여래님께 여쭈어 보자.
만일 여래께서 무슨 말씀이 계시거든 잘 받들어 행하자."
그 때에 비구들은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이 사실을 자세히 사뢰었다.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카아탸아야나 비구는 총명하고 변재가 있어 그 이치를 널리 설명하였다.
만일 너희들이 내게 와서 그 이치를 물었더라고 나도 또한 그렇게 말하였을 것이다."
그 때에 아아난다는 부처님 뒤에 있다가 세존께 사뢰었다.
"그 이치는 매우 깊나이다.
마치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단 이슬을 만나 그것을 먹으면 매우 향기롭고 맛나 아무리 먹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것처럼
이것도 그와 같아서 어떤 선남자, 선녀인으로서 어디서나 이 법을 들으면 염증을 내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는 거듭 사뢰었다.
"이 경 이름은 무엇이며 어떻게 받들어 가져야 하겠나이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경 이름은 <단 이슬 법 맛>이다. 잘 명심해 받들어 가져야 하느니라.
그 때에 아아난다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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