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2권 1-2
1 영사詠史
2 노중련魯仲連(BC305-BC.245)
전국시대 제齊나라 사람으로 절개節槪의 은둔거사隱遁居士.
“도리道理를 모르는 진秦나라가 천하통일하면 동해에 빠져죽겠다”고 했음
주철동천왕강유周轍東遷王綱揉 주나라가 동천東遷하여 왕실 기강 구겼는데
렬국쟁웅상격투列國爭雄相格鬪 열국列國이 크게 다투어 서로 치고 싸웠다네.
불시인의칭제왕不施仁義稱帝王 인의仁義는 아니 펴고 제왕帝王이라 칭하니
분분운운막지구紛紛紜紜莫之救 시끄럽고 어지러운 형편 구할 길 없었네.
종횡지도우요리縱橫之徒又邀利 종횡가縱橫家의 무리는 또 利만을 구하니
왕기욕신유불치枉己辱身猶不恥 자기를 굽혀 몸이 욕되어도 부끄러움 없었네.
당당발췌로선생堂堂拔萃魯先生 당당하게 그 틈에서 나오신 노선생魯先生은
가감칭위천하사可堪稱爲天下士 천하의 선비라 불러도 족할 만하였네.
주나라가 서울을 동쪽으로 옮기면서 왕실 기강이 약해졌고
여러 나라가 자웅을 다투어 서로 치고받고 싸웠다네.
인의를 베푸는 정치가 아니도 자칭 제왕이란 자만 설치니
시끄럽고 난잡한 세상을 구하지도 못했다오.
나라들이 합종연횡으로 자기이익만 추구하니
비굴하게 몸을 숙이는 것도 수치스럽지 않게 여기네.
당당히 그 무리에서 벗어난 노중련선생
천하의 선비라 일컬어도 충분한 분이네.
►동천東遷 주周의 평왕平王이 長安에서 동쪽의 낙양洛陽으로 천도遷都(BC770)
合縱策을 주장한 소진蘇秦과 연형책連衡策을 설한 장의張儀가 대표적이다.
►열국列國 춘추전국시대(BC8C-BC3C)에 할거割據하던 나라들.
BC770 周의 낙양洛陽 遷都 이후를 東周라 부르며 춘추春秋와 전국戰國시대로 나누어짐
►운운紜紜 잡다하고 난잡함. ‘어지러울 운紜’
►종횡가縱橫家 전국시대에 독자적인 정책을 가지고 군주 사이를 유세하며 돌아다닌 외교가.
►맞을 요邀 맞다. 맞이하다. 만나다, 마주치다
►왕기枉己 원칙을 저버리고 상대에게 영합迎合함
일언해분불수봉一言解紛不受封 한 마디로 분란 풀고 封爵을 받지 않고
일찰약시하연루一札約矢下燕壘 편지 한 장 화살에 매니 연燕나라 城 항복했네.
불긍제진불사제不肯帝秦不仕齊 진秦을 帝라 하지 않고 제 나라에 벼슬하지 않고
가둔해상종불기嘉遯海上終不起 해변으로 멀리 가서 끝내 나오지 아니했네.
인언제하심차활人言濟河深且闊 사람들은 제하濟河의 물 깊고 또 넓음을
가비선생삼촌설可比先生三寸舌 선생의 세치 혀[舌]에 비할 수 있다 하였네.
인언태산고차절人言泰山高且截 사람들은 泰山이 높고 또 막힘을
가비선생일편절可比先生一片節 선생의 한 조각 절조에 비할 수 있다 하였네.
말 한 마디로 분쟁을 해결하고도 봉작을 받지 않았는데
화살에 묶은 편지 한 통으로 연나라의 무릎을 꿇렸네.
진시황제 떠받들기 거부하고 제나라 벼슬도 사양하니
바닷가로 가서 끝내 세상에는 나오지 않았다네.
사람들은 제하 강물이 깊고도 넓어서
선생의 세 치 혀에 비교된다 한다네.
사람들은 태산이 높고 험준하다지만
선생의 일편단심 절개에 비할 만 하다하네.
►해분解紛 분쟁分爭을 해결함.
魯仲連은 연燕나라가 점령한 요성遼城의 장수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편지를 화살에 매달아 성안에 쏘아 보내
이를 읽어 본 적장敵將은“魯仲連 뜻에 따르겠다.”며 항복한 뒤 自殺했고
燕나라 병사들은 활을 거꾸로 맨 채 퇴각退却했다.
►일찰약시一札約矢
연燕나라의 장수가 제齊나라의 城 하나를 빼앗고
그 섬을 굳게 지켜 제齊나라에서 어찌 할 바를 몰랐는데
노중련魯仲連이 편지를 화살에 매어 성안으로 보냈더니 그 장수가 항복하였다.
그래서 그 공으로 제齊에서 높은 벼슬을 주었건만 노중련은 받지 않았고
또 진秦나라가 最强國이라 하여 秦의 왕을 황제로 추대하자고 말하는 자가 있었으나
그것을 노중련이 적극 반대하여 성립되지 않았다.
►‘맺을 약, 부절 요, 기러기발 적約’ 묶다. 맺다. 약속約束하다
►둔해遯海 바다로 달아남.
魯仲連은 제왕帝王이 작위爵位를 받아달라고 간청하자
“남에게 눌려 부귀를 누리느니 가난해도 내 맘대로 살겠다.”며
바닷가로 몸을 숨겨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제하濟河 제수濟水.
하남성河南省 제원濟源에서 발원
산동성山東省을 거쳐 발해만渤海灣으로 흘러들어감
빈천내사지貧賤乃肆志 빈천貧賤해야 뜻대로 할 수 있고
부귀위인굴富貴爲人詘 부귀富貴는 사람을 비굴하게 만드니
뢰뢰락락장부심磊磊落落丈夫心 막힘없이 드높이 솟은 장부 마음
만고천추유불멸萬古千秋猶不滅 천년만년 오래도록 없어지지 않으리.
숙능여지배고풍孰能與之配高風 누가 능히 높은 풍도風度에 짝할 수 있으랴.
망망창해일륜월茫茫滄海一輪月 망망한 창해에 떠 있는 둥근 달일세.
가난하고 천함은 제 뜻대로 행할 수 있지만
부귀를 쫒으면 사람이 비굴해지기 마련이라네.
거침없고 호탕한 대장부 노중련이 품은 뜻은
만고천추에 사라지지 않으리라.
누가 노중련의 고상한 풍채에 비할 수 있으리까.
넓고 푸른 바다에 뜬 둥근 달은 오로지 하나라네.
►사지肆志 자기 뜻대로 함
►뇌뢰낙락磊磊落落 자잘한 일에 얽매이지 않는 활달하고 호탕한 마음씨
►고풍高風 뛰어난 人德. 고상한 풍채風采
●노중련魯仲連(노련魯連 BC305?-BC245?)
1. 재물, 녹봉, 작위를 받지 않았던 고결한 선비
노중련은 전국시대 제齊나라(지금의 山東) 사람으로 노련魯連으로 불리고
존칭으로 노중련자魯仲連子 혹은 노련자魯連子로 불린다.
그는 고상한 절조와 지조를 가졌고 항상 남을 위해 어려움을 물리치고 분쟁을 풀어주었지만
스스로는 재물이나 녹봉, 작위 등을 받지 않았던 전국시대의 고결한 선비였다.
그는 변론을 잘했고 항상 쌍방의 문제에 대한 정곡을 찔러 화해를 성공시켰다.
노중련은 소년 시절 스승 서겁徐劫에게 배웠다.
그는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했으며 남달리 변론을 잘했고
기개가 아주 커서 사람들이 ‘천리마’라고 불렀다.
2. 고대의 준마 ‘비일’에 비유된 일화
당시 여러 제후국은 자기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서 적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서로 헐뜯고 무력에 의지하는 것 외에도 바로 정치상의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다.
그래서 모신謀臣과 책사가 막힘없이 담론하고 웅변하는 것이 일종의 풍조였다.
제나라의 변사辯士 중에 전파田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쓸데없는 소리를 잘하고
의론할 때에 초빙 받아서 말을 끊임없이 유창하게 했지만 실속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변론을 잘했고 허다한 사람들이 그를 이기지 못하였기 때문에 스스로 의기양양했다.
하루는 전파가 의론을 할 때에 매우 흥겹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12세의 노중련이 스승 서겁을 따라 그곳에 갔다가 공손하게 전파에게 말했다.
“전 선생,
제가 듣기에 방안에서는 뛸 수가 없고 들에 난 풀은 김맬 수가 없으며
앞에 들이닥친 칼날은 구할 길이 없고 날아오는 화살은 급히 멈출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어떤 일을 말할 때에 모두 완급과 경중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급한 때에 쓸데없는 사정을 가지고 한가한 이야기를 하면 되겠습니까?
지금 초나라 군사가 南陽(지금의 허난성 난양)에 진을 치고
조나라가 고당高唐(지금의 산둥성 랴오청聊城 가오탕현)을 공격하고 있으며
연나라 십만 대군이 요성聊城을 떠나지 않고 있어 나라가 금방 망할 지경에 이르러 있습니다.
선생께서는 이러한 형세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십니까?
또 어떤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에 당신의 긴 담론이 조국에게 쓸모가 없으면 그렇게 장황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까?
이것은 마치 고양이 머리를 가지고 올빼미 울음소리를 내는 것처럼
사람들은 들을수록 싫증을 낼 것입니다.
청컨대 선생은 다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지 말아주십시오.”
전파는 어린 노중련의 말을 듣고 말문이 막혀서 얼굴과 귀가 다 빨개졌다.
최후에는 굴복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완전히 당신의 의견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더불어 서겁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어린 학생은 천리마가 아니라 날아다니는 비일飛逸과 같다.”
비일은 고대의 준마 이름으로 하루에 만리를 갈 수 있고
뛰어다는 것이 마치 토끼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파는 ‘비일’로 어린 노중련을 비유하여 칭찬하고 그에게 감복했다.
이로부터 전파는 다시는 스스로 과장되게 담론하지 않았다.
3. 고명한 변론으로 조나라의 위기를 해제하다
노중련은 성장한 후로 여전히 정의를 위하여 공정한 말을 하고
남의 어려움을 물리치고 분쟁을 풀어주며 보답을 바라지 않은 고상한 절조와 지조를 지켰다.
노중련은 조趙 나라 평원군平原君의 식객이었다.
노중련은 전단田單을 도와 제齊나라를 부흥復興 시켰고
조趙와 위魏나라에 유세를 하여 진秦나라에게 항거하게 만들었다.
조효성왕趙孝成王 7년 진秦나라가 한단邯鄲을 포위하는 위기를 만났다.
진秦이 조를 포위하고 위魏나라의 신원연新垣衍을 평원군에게 보내어
진을 추대하여 황제를 삼고자 하니 노중련이 성중에 있다가 그 말을 듣고 신원연을 찾아가서
‘포악한 진나라를 추대하면 나는 차라리 동해 바다에 빠져 죽을지언정 진나라 백성이 되지 않겠다.’
하여 신원연의 의논을 중지시켰던바 진의 장수가 그 소문을 듣고 30리를 퇴각하고
마침 마침 위나라 구원병이 오자 진秦나라 군대가 철수했다.
그 후 제齊나라 장군 전단田單이 제나라 땅을 회복하려고
요성聊城을 공격했지만 함락시키지 못했다.
노중련이 연수장燕守將에게 이해관계로 설득하니 싸우지 않고도 항복을 받아냈다.
조나라의 위기가 해제된 후에 전단이 제나라 왕에게 말해 노중련에게 관직을 내리려고 준비하고
더불어 천금을 하사하려고 했는데 노중련은 바닷가로 달아나 여생을 마쳤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후인들에게 칭송을 받았다.
<史記>에는 노중련이 최후에 東海에 은거했다고 한다.
왕사정王士楨은 <지북우담池北偶談> 중에서
“신성新城(환태현桓台縣) 東北 쪽에 금추호錦秋湖 상에 노중련피魯仲連陂가 있는데
전하는 바로 노중련魯仲連이 거주했던 곳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저서에 <노중련자魯仲連子>14篇이 있었지만 없어졌고 지금은 편집본만 전한다.
수성동어부遂性同漁父 성품을 이룩하기는 어부같이 하고
성명이노련成名異魯連 이름을 날리기는 노중련과 다르리로다.
/<두보杜甫 회도回棹>
주행노련해舟行魯連海 노중련의 동해를 배 타고 가서,
설빙륙생사舌聘陸生辭 육가陸賈의 말솜씨를 다루어 보렷다.
/<이수광李晬光 증사명산인왕일본贈四溟山人往日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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