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4권 8-3
8 누각樓閣
3 운주루運籌樓
각적기모준조간却敵奇謀樽俎間 적敵을 쫓는 묘한 꾀를 술병과 도마 새에 이뤘는데
웅비장외렬성반熊羆帳外列成班 곰 같은 용맹한 것들이 장막 밖에 반열班列 지었네.
산성풍경조궁건山城風勁琱弓健 산성에 바람 거세나 옥으로 새긴 활이 튼튼하고
해국연소백마한海國煙消白馬閒 바다 나라에 연기 사라지니 백마도 한가롭네.
적을 몰아내는 기발한 책략은 술자리에서 나왔고
곰 같이 용맹한 병졸들이 장막 밖에 도열했다네.
산성에 거센 바람이 불어도 튼튼한 활이 있어 듬직하고
바다에 안개 걷히니 백마도 한가롭다오.
거기연연초륵석車騎燕然初勒石 거기장군 연연산燕然山에 처음으로 돌에 이름 새겼고
복파교지이정만伏波交趾已征蠻 복파장군 교지交趾에서 이미 오랑캐 정벌했네.
운주장책인여문運籌壯策人如問 계획을 썼던 큰 책략을 사람이 만일 묻는다면
조두수성문불관刁斗收聲門不關 조두刁斗는 소리 없고 관문도 닫지 않았다 하소.
거기 장군은 연연산에 자신의 공적을 처음으로 돌에 새겼고
복파 장군은 교지에서 이미 남쪽 오랑캐를 정벌했네.
계책을 짜는 장정이 있어서 물어본다면
밤중에 도두치는 소리도 없고 관문도 닫지 않았다하네.
►운주루運籌樓 평안북도 영변寧邊 약산藥山에 있는 천연의 대臺.
관서팔경關西八景의 하나로 그 밑으로는 구룡강이 흐른다.
영변남문寧邊南門은 일명 철옹성남문으로 영변읍성인 철옹성을 쌓으면서 처음 세우고
그 뒤 여러 차례 손질하였는데 현재의 건물은 1789년(정조13)에 다시 세운 것이다.
일명 ‘철옹성鐵甕城 남문’ ‘만노문萬努門’ ‘고연주성문’이라고도 하고
누각은 운주루運籌樓·완월루翫月樓라고도 한다.
●차운주루운次運籌樓韻 운주루運籌樓의 시詩에 차운次韻하다
/오음梧陰 윤두수尹斗壽(1533-1601 중종28~선조34)
천심초벽금성부千尋峭壁金城府 까마득하게 높고 가나른 낭떠러지 위 금성부金城府에는
백보천양대장군百步穿楊大將軍 백 걸음 밖 버들잎을 꿰뚫었던 대장군大將軍이 있었네.
감소서생참완화堪笑書生參婉畫 우습기만 하구나, 선비가 계책計策 세우는 일에 참여參與했는데
만장장검불황운漫將長劍拂黃雲 부질없이 긴 칼로 누렇게 익은 벼나 잘라야 하니‧‧‧
►준조樽俎 준조奠俎, 조준俎樽
예절을 갖춰 공식적으로 여는 잔치.
제사祭祀 때에 고기를 괴어 놓는 적대炙臺와 술을 담는 그릇.
준조절충樽俎折衝(樽俎折冲)
술잔과 적대炙臺(고기 담는 그릇) 사이에서 적의 충차衝車를 꺾어 버리다.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술자리에서 외교 협상을 통해 적을 이기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능란한 외교술을 비유하는 말이다.
준조간樽俎間(술자리) ‘술통과 도마 사이’를 나가지 아니하고
1000里 밖에서 절충한다 함은 그것은 안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晏子春秋 內篇>
►웅비熊羆 곰과 말곰. ‘큰곰 비羆’
말곰은 큰 곰으로 힘이 세어 나무를 뿌리 채 뽑는다함
►조궁琱弓 무늬를 새긴 활. 뛰어난 무장武將의 상징
►거기장군車騎將軍 후한의 거기장군車騎將軍 두헌竇憲(?-92)
후한 제3대 황제 장제章帝(肅宗)의 황후인 두씨의 오빠이다.
77년에 여동생이 궁중으로 들어가자 그 연줄로 승진하고
89년에 화제和帝(穆宗)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시중侍中이 되어 여동생 두태후와 정치를 마음대로 하였다.
나중에 죄를 지어 갇히자 스스로 흉노匈奴 토벌에 나서
북선우北單于를 대파하는 공을 세워 거기장군車騎將軍이 되었다.
연연산燕然山에 올라 돌에 공적을 새기고 돌아와 大將軍이 되었다.
동생들과 함께 권력이 조정을 울렸고 교만해져 횡포를 부렸다.
집안사람들이 모두 조정의 요직을 맡았다.
4년(92) 황제가 대장군 인수印綬를 거두고 관군후冠軍侯로 고쳐 봉하면서
친정親政을 하려고 하자 황제를 죽이려고 꾀하다가 발각되어 자살했다.
/<後漢書>53
►연연산燕然山 지금의 내몽고內蒙古 서방 오원五原 북쪽의 산 이름.
한漢의 두헌竇憲이 영평永平 원년元年에 흉노[북선우北單于]를 쳐 공을 이루고는
반고班固에게 글을 짓게 하고 이 산의 돌에 새겼다.
욕학치이자欲學鴟夷子 월越 나라 범려范蠡의 일을 배우고자 하면
대륵연산명待勒燕山銘 연연산의 비명 새김을 기다려야 하리.
/<두보杜甫 봉수설12장판관견증奉酬薛十二丈判官見贈>
연연수륵송燕然須勒頌 연연산에 모름지기 공을 기록해
유취후래전留取後來傳 후세에 전하게 하리라.
/<김수녕金壽寧 차문천판상시송次文川板上詩頌>
청서새북음산석請書塞北陰山石 글을 청하니 요새북쪽 음산의 돌에 바라노니
원비연연거기공愿比燕然車騎功 연연거기대장군의 공적을 새겨주오
/이익李益(唐) <새하곡塞下曲>
►늑석勒石=륵비勒碑 돌에 글자를 새기다.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BC14-AD49) 字 문연文淵. 산시성[陝西省]
싱핑현[興平縣] 북동지방의 유푸펑[右扶風] 마오링[茂陵] 출생.
전한前漢 이래 名門 출신으로 처음에는 북방으로 피하여 목축에 종사하였고
그 후 빈객賓客 수백가數百家를 포섭하여 세력을 얻었다.
왕망王莽의 부름을 받고 한중랑태수漢中郞太守가 되었고
이어서 외효隗浴 밑에서 벼슬하다가 다시 光武帝의 신하로서 太中大夫가 되었다.
이어서 陇西太守가 되어 甘肅省 방면의 강羌 ·저免 등의 외민족을 토벌하였다.
41년 이후에는 복파장군伏波將軍에 임명되어 교지交趾(북베트남) 지방에서 봉기한
징칙徵側과 징이徵貳 자매의 반란을 토벌하고
하노이 부근의 낭박浪泊까지 진출하여 그곳을 평정하였다.
그 공로로 43년 신식후新息侯가 되었다.
45년 이후는 북방의 흉노匈奴와 오환烏丸의 토벌에 활약하였다.
이어서 노령에도 불구하고 남방의 무릉만武陵蠻을 토벌하러 출정하였으나
열병환자가 속출하여 고전苦戰하다가 진중에서 병들어 죽었다.
►운주運籌 녕변寧邊의 누대樓臺 이름
계략을 꾸밈. 대사를 위해 여러모로 방책을 짜냄.
운주유악運籌帷幄
장막 안에서 전술이나 계책을 세운다는 뜻으로 계획을 세우거나 입안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기 고조본기高祖本紀〉에 나오는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의 말에서 유래했다.
►조두刁斗=도두刀斗. 군대에서 야경夜警에 치는 징.
동銅으로 만든 징을 겸한 군용장구軍用裝具로
낮에는 밥솥으로 쓰고 밤에는 두드리며 야경을 돎.
조두성잔무몽매刁斗聲殘無夢寐 조두 소리 그쳤지만 잠 못 이루어
호등원필사신시呼燈援筆寫新詩 불 켜고 붓을 들어 새 시를 짓네.
/<정사도鄭思道 진수서강작鎭守西江作>
옥백제항래만리玉帛梯航來萬里 옥과 비단은 산 넘고 물 건너 만리에서 조공해 오고
풍진조두정삼방風塵刁斗靜三方 전쟁판에 쓰는 조두는 세 방면에서 조용하네.
/<김흔金訢 동교관렵30운응제東郊觀獵三十韻應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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