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4권 8-4
8 누각樓閣
4 중등백상루重登百祥樓 다시 백상루에 올라서
중과차지무궁사重過此地無窮思 다시 이 땅을 지나려니 무궁한 생각 있어
일망평원송락휘一望平原送落暉 멀리 보이는 평원平原에 지는 해를 보내네.
살수고성잔애산薩水古城殘靄散 살수薩水 옛 성터에는 남은 아지랭이 흩어지고
청천추수모연귀晴川秋樹暮煙歸 청천강 가을 나무엔 저문 연기 돌아가네.
이 땅을 다시 지나니 생각이 꼬리를 물고
휘 둘러보다 들판너머 떨어지는 해를 전송한다네.
살수 강변의 옛 성터엔 남은 구름이 흩어지고
가을의 맑은 강물과 해질녘 숲속은 안개에 젖네.
공호황초매옹중空濠荒草埋翁仲 빈 못에 거친 풀은 옹중翁仲을 묻었는데
화표응운어령위華表凝雲語令威 화표주華表柱는 구름에 영겨 영위令威를 말하네.
독의화란무여어獨倚畫欄無與語 그림 난간에 홀로 기대어 함께 얘기할 이 없는데
백구의구향인비白鷗依舊向人飛 흰 갈매기만 여전히 사람을 보고 날아드네.
물 빠진 도랑의 황폐한 숲엔 석상이 묻혔는데
무덤 앞 망주석은 안개에 엉켜 고인의 생전 위엄을 말해주네.
말 섞을 사람 없어 홀로 단청난간에 기대있는데
옛날처럼 물새만 사람보고 반기듯 날아든다네.
►백상루百祥樓 평안남도 안주安州 청천강변淸川江邊의 고려시대에 축조된 누정樓亭.
옛 안주성 장대將臺 터에 세워 청천강의 자연경치와 잘 어울리는 건물로서
關西八景 가운데서도 첫째로 꼽혀 ‘관서제일루關西第一樓’라고까지 하였다.
백상루는 언제 지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14세기 고려 충숙왕이 쓴 시에 백상루에 대하여 읊은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당시보다 훨씬 이전부터 있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뒤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를 거듭하였고 1735년(영조 25)에 다시 지었다.
►차지此地 이 땅. 평안도 안주安州
►살수薩水 淸川江의 옛 이름.
평안남도와 평안북도 경계의 江으로 고구려高句麗 을지문덕乙支文德장군이 612년,
중국 수양제隋煬帝(569-618) 휘하 100만의 大軍을 水葬시켜 大捷을 거둔 곳.
►공호空濠 물이 없는 못.
‘호주 호濠’ 해자垓子(성 바깥을 두른 연못) 도랑
►옹중翁仲 진秦의 남해南海 거인巨人 완옹중阮翁仲.
옹중翁仲은 진秦나라 사람 완옹중阮翁仲으로 키가 13尺이나 되고 무용이 뛰어났다.
시황始皇의 명으로 임조臨洮를 지킬 때 그 위엄이 흉노匈奴에 떨쳤고 완옹중이 죽자
진시황은 쇠로 그의 형상 12기를 만들어 함양궁咸陽宮 사마문司馬門 성문 밖에 세워 두었는데
흉노가 침입해 오다 성문 앞 완옹중 상을 보고 그대로 도망갔다고 한다./<尙友錄> 卷15
이후로 진나라 사람들은 완옹중을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라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겨
그의 형상을 구리나 돌로 만들어 궁궐이나 관아 앞에 세우게 되었고
후에는 ‘옹중’이 동상이나 석상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말이 되었다.
조선시대의 여러 기록을 보면 무덤 앞에 세운 석상, 길가에 세운 석장승,
풍수상의 이유로 세운 석상 등을 모두 옹중, 옹중석이라고 부르고 있다.
1754년 목사 김몽규가 성문 밖에 세웠다는 옹중석은 완옹중 이야기에서 보여주듯이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성문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했던 석상 즉 지금의 돌하르방이며
각 문에 4기씩 12기 혹은 8기씩 24기의 수량으로 세워졌던 것
또한 이 이야기에 연원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화표주華表柱 망주석望柱石
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雙의 돌기둥.
돌 받침 위에 여덟모 진 기둥을 세우고 맨 꼭대기에 둥근 대가리를 얹는다.
상석 좌우에 한 쌍을 세운다.
망주석望柱石은 묘에 설치하는 석물 중 가장 기원이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주石柱 또는 망주望柱라고도 하는데 망주석을 세우는 의미는 명확치 않다.
망주석에는 다람쥐 한 쌍을 조각하는데
동쪽 망주석의 다람쥐는 올라가는 형태이고 서쪽은 내려오는 형태이다.
동쪽 다람쥐는 촛불을 켜기 위해 올라가는 것이고
서쪽은 끄고 내려오는 것을 의미한다.
해인사 및 직지사 대웅전 앞 석등의 간주석에는 올라가는 다람쥐가 새겨 있다.
불교에서 흰 쥐와 검은 쥐는 각각 낮과 밤을 상징하며 동과 서는 양과 음을 상징한다.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불교적 상징이 무덤에 영향을 준 요소라고 볼 수 있다.
한漢의 정영위丁令威가 죽은 뒤 학鶴으로 화하여
고향인 요동에 돌아오는데 성문 화표주에서 멈추었다는 故事.
<수신후기搜神後記>에 “丁令威本是遼東人 化鶴歸遼東 集城門華表柱”라 하였다.
►화란畫欄 단청丹靑그림이 그려진 난간
●중등백상루重登百祥樓에 차운하다
만정방초록천면滿汀芳草綠芊綿 물가 가득 꽃다운 풀은 파랗게 우거졌는데
납납강호만리천納納江湖萬里天 넓게 포용한 건 강호 만리의 하늘이로다
렴염파광정침벽瀲灩波光靜沈璧 넘실대는 물결 빛은 구슬이 갈앉은 듯하고
공몽산기명생연涳濛山氣冥生煙 자욱한 산기운은 어둑한 연기를 피우네
창애두절장승사蒼崖斗絶藏僧寺 푸른 절벽 끊어진 곳엔 승사가 숨어 있고
백조경비송조선白鳥輕飛送釣船 백조는 가벼이 날아 낚싯배를 보내는구나
시신인간유선경始信人間有仙境 인간에 선경이 있음을 비로소 믿겠으니
홍진신세부감련紅塵身世復堪憐 홍진 속의 신세가 다시 가련할 뿐이로다
한의란간좌대환閒倚闌干坐大還 한가히 난간 기대 대환까지 앉았노라니
일루고삽두우간一樓高揷斗牛間 한 누각이 두우 사이에 우뚝 솟아 있구나
조생수국시관도潮生水國是官渡 강물에 조수 일어라 이곳은 관청 나루요
일락해문지원산日落海門知遠山 바다 어귀에 해 져라 저곳은 먼 서산일세
신재강호사위궐身在江湖思魏闕 몸은 강호에 있지만 생각은 대궐뿐이라
몽수원로향조환夢隨鵷鷺響朝環 꿈마다 조정 반열에 끼어 패옥을 울리네
인생회합무다지人生會合無多地 인생은 서로 만나는 일이 흔하지 않거니
준주풍류가해안樽酒風流可解顔 술자리 풍류로 담소나 한껏 즐겨야 겠네
만리관산정묘면萬里關山正渺綿 만리 밖 관산이 정히 아득하기만 하여라
제도서거로여천帝都西去路如天 서쪽으로 황성 가는 길이 하늘 오르기 같네
로구효접료동월盧溝曉接遼東月 노구의 새벽 기운은 요동 달과 서로 만나고
갈석청련계북연碣石晴連薊北煙 갈석의 갠 햇빛은 계북 연기와 서로 연했네
설진경회고령마雪盡更回高嶺馬 눈 다 녹아서 다시 고령의 말은 돌아가고
춘심온범로하선春深穩泛潞河船 봄이 깊으니 노하의 배는 순풍에 띄우누나
성초욕만사난득星軺欲挽思難得 사신을 만류하고자 생각해 봐도 될 수 없어
맥맥상망지자련脈脈相望只自憐 물끄러미 바라보며 스스로 가련할 뿐일세
사파행행득의환使罷行行得意還 사명을 마치고 의기양양히 돌아갈 제
봉래교수오운간蓬萊矯首五雲間 머리 들어 오운 속의 봉래궁을 향하누나
건곤자요쌍룡궐乾坤自繞雙龍闕 하늘땅은 절로 쌍룡궐을 둘러싸려니와
일월상저만수산日月常低萬壽山 해와 달은 항상 만수산에 나직이 비추리
상원개화금찬란上苑開花金燦爛 상림원에 꽃 피거든 금빛이 찬란할 게고
어구류수옥회환御溝流水玉回環 어구에 흐르는 물은 옥이 구르는 듯 하겠지
군귀전석응부주君歸前席應敷奏 그대 돌아가면 전석 아래서 아뢸 터이니
지척중동식성안咫尺重瞳識聖顔 지척의 중동이 천자이심을 알게 될 걸세
►황화집皇華集/사가시집보유 제2권 3번 시류詩類/서거정(1420-1488)
조선시대 명나라의 사신과 조선의 원접사遠接使가 서로 주고받은 시를 모은 책.
명나라 사신이 처음으로 조선에 나온 세종世宗 말년으로부터 인조仁祖 때에 이르기까지
무려 180여 년간 24차례에 걸쳐 양측 사신이 서로 창수한 시를 모아서 편집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서거정이 당시 명사明使 기순祁順 등의 원접사가 되어 창수했던 시 중에
자신의 시만을 따로 모아서 이를 ‘황화집’이라 이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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