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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寒山詩

寒山詩 6

寒山詩 6

형제동오군弟兄同五郡 형제는 같은 다섯 고을

부자본삼주父子本三州 부자는 본시 三州

욕험비부집欲驗飛鳧集 날으는 오리 모아보고 싶다면

수정백면유須征白兔游 백토공의 신선술을 익혀야 하리

 

영과몽리수靈瓜夢裡受 명제는 꿈속에서 영과 얻었고

신귤좌중수神橘座中收 목왕은 연회에서 신귤 먹었네

향국하초체鄕國何迢遞 고향은 어찌 이리 멀기만 할까

동어기수류同魚寄水流 물고기 무리 지어 물 따라 흐르는데

 

►형제동오군弟兄同五郡 형제는 같은 다섯 고을

그때 세존께서는 수천만 무리들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설법하셨다.

"5성음盛陰은 괴로운 것이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인가?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을 이르는 말이다.

 

어떤 것을 색음色陰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4大(지수화풍)로 된 이 몸은 4대로 만들어진 색이니 이것을 색음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수음受陰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괴로운 느낌·즐거운 느낌·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니

이것을 수음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상음想陰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3世가 함께 모인 것이니 이것을 상음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행음行陰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몸의 행과 입의 행과 뜻의 행이니 이것을 행음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식음識陰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눈·코·귀·혀·몸·뜻의 식識이니 이것을 식음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색色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색이란 추위도 색이요, 더위도 색이며, 굶주림도 색이요, 목마름도 색이다.

 

어떤 것을 수受라고 하는가?

이른바 느낌이란 감각[覺]을 말하는 것이니 무엇을 느끼는가?

괴로움을 느끼고 즐거움을 느끼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끼므로 감각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상想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상이란 곧 앎[知]이니 파랑·노랑·하양·검정을 알고 괴로움과 즐거움을 알므로 상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행行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행이란 능히 이루는 것이 있기 때문에 행이라고 한다.

 

무엇을 이루는가?

악행惡行을 이루기도 하고 선행善行을 이루기도 하기 때문에 행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식識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식이란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온갖 맛을 분별하는 것이니

이것을 식이라고 하느니라.

 

천자들이여,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이 5성음盛陰에는 세 갈래 나쁜 길과 천상 길과 인간 길이 있는 줄을 알아야 하고

이 5성음이 사라지면 곧 열반의 길이 있는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세존께서 이렇게 설법하셨을 때 6만의 하늘 신들은 법안이 깨끗해졌다.

/<증일아함경>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색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나가 아니며 나가 아니면 또한 내 것도 아니다.

이렇게 관찰하는 것을 진실한 바른 관찰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상·행·식도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나가 아니며 나가 아니면 또한 내 것도 아니다.

이렇게 관찰하는 것을 진실한 바른 관찰이라 하느니라.

 

거룩한 제자들아,

이렇게 관찰하면 그는 색에서 해탈하고 수·상·행·식에서 해탈하나니

나는 이러한 것을 '태어남·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괴로움·번민에서 해탈하였다'고 말하느니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잡아함경>

 

►부자본삼주父子本三州 부자는 본시 三州

아버지와 아들로 이어지고 세습되는 것은 인간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우린 탐貪·진瞋·치癡를 입고서 모든 만들어진 것에 탐진치를 덧칠하고 있다.

분수처럼 솟는 원함 바램 소망 의욕 욕망을 조절할 수 없으면

좌절 울분 분노 타락 폭력이 용암처럼 끓으며 타오르는데

이것을 알지 못하는 게 어리석음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어리석지 않아야 한다.

 

►욕험비부집欲驗飛鳧集 날으는 오리 모아 보고 싶다면

‘비부飛鳧’ <후한서後漢書 방술전方術傳>에는

후한後漢 현종顯宗 때 하동河東 사람 왕교王喬에 대한 이야기. ]

 

엽령葉令인 왕교가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입궐을 했는데

그가 궁에 들어올 때마다 거마의 자취가 보이지 않았다.

 

이를 이상히 여긴 황제가 태사를 시켜 엿보게 했다.

살피고 온 태사는 그가 두 마리의 들오리(鳧)를 타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날아왔다고 황제에게 아뢰었다.

 

이에 들오리가 이르렀을 때 그물을 펼쳐 잡으려고 했으나

그물 안에는 신발 한 짝만 들어있었다.

 

<동선전洞仙傳>에 실린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한漢나라 법에 기내畿內(천자의 직할지)의 수령들은

명절이나 매월 초하룻날 입궐을 하도록 되어 있는데

자교子喬 선생이 궁에 들어올 때마다 거마의 흔적을 볼 수 없었다.

 

명제明帝(후한의 제2대 황제)가 비밀리에 천문을 보는 관리를 시켜

살펴보게 했더니 문득 두 마리의 들오리가 동남쪽에서 날아왔다.

그물을 펼쳤으나 신발 한 짝을 얻었을 뿐이었다.

사람들이 이를 괴이하게 여겼다.

 

►수정백토유須征白兔游 백토공의 신선술을 익혀야 하리(征→旌)

‘백토白兎’ 신선의 이름.

신선 팽조彭祖의 제자로 8백 년을 산 스승 팽조에 이어 그도 수백 년을 살았다고 전한다.

 

►영과몽리수靈瓜夢裡受 명제는 꿈속에서 영과 얻었고

‘영과靈瓜’

후한後漢 명제明帝의 음귀인陰貴人이 꿈에 오이를 먹었는데 그 맛이 아주 좋았다.

황제는 사람들을 여러 나라에 보내 그 과일을 구해오도록 했다.

 

그때 돈황敦煌에서는 기이하게 생긴 오이씨를 바쳤고

상산常山에서는 거대한 복숭아씨를 바쳤다.

이름은 '궁륭穹窿'이라 했는데 길이가 3척이고

모양은 활 모양으로 굽어있었으며 그 맛과 냄새는 죽과 같았다.

 

노인들이 말하기를

"옛날에 한 도사가 봉래산에서 이 씨를 얻어 와서 그 이름을 '공동영과空洞靈瓜'라고 했다.

4겁에 한 번 열매를 맺는다.

 

동왕공과 서왕모가 이것을 땅에 뿌렸고 오랜 세월이 지나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복숭아는 서리 아래서 꽃이 피고 한겨울에 익는다.

신선들이 이것을 먹으며 언제나 상림원霜林園에 심는다.

이곳에서는 모두 겨울과일을 심고 얼음이 두꺼워지는 계절에 백과가 무르익는다.

세속에서 이를 '상릉과相陵瓜'라고 부르지만 이는 '霜園'이라는 소리가 와전되어 그리 된 것이다.

'왕모의 복숭아'라고도 하고 '왕공의 오이'라고도 한다.

이를 얻어먹으면 5만 년을 살 수 있다."

 

음귀인이 죽은 후 시봉하던 궁녀가 경대에서 이 과일의 씨가 있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太平廣記태평광기 권제411 초목6>

 

►신귤좌중수神橘座中收 목왕은 연회에서 신귤 먹었네

‘신귤神橘’

서왕모가 주목왕周穆王에게 주었다는 과일.

향기가 몇 리를 풍겼다고 한다.

 

<태평광기太平廣記>에서 전하는 이야기는 이렇다.

"주周나라 목왕穆王이 곤륜산에 올라가서

봉산蜂山의 석수石髓를 마시고 옥수玉樹의 열매를 먹었다.

 

옥석으로 만든 것을 마시고 첨설甜雪과 소련素蓮, 흑조黑棗, 벽우碧藕,

백귤白橘 등을 먹었으니 어떻게 수명을 늘지 않고 장수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향국하초체鄕國何迢遞 고향은 어찌 이리 멀기만 할까

‘초체迢遞’ 구성지다.

'초迢'는 멀고 아득한 것, '체遞'는 아직 이르지 못한 것.

 

고향으로 갈수록 심장이 빨라진다.

화두는 잡히지 않는데 세월은 쏜 살 같다.

이러다 마는지 이러다 끝나는지.

 

►동어기수류同魚寄水流 물고기 무리 지어 물 따라 흐르는데

고향의 물엔 고향의 그림자 하늘 땅 산천이 담겼지.

 

●한산자의 시대적 구분

윗 시는 초기 詩로서 1, 2句는 불교 3~6句는 유교 도교의 속설들

7, 8句는 유불도의 이상향을 향한 열망이 뒤섞여 있다.

 

한산시를 음송하고 연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산자를

6, 7세기 초당에서 성당의 사람으로 보고 있지만 아무것도 확연한 것은 없다.

이 시기는 중국의 대승불교 그것도 禪불교와 중국詩의 화려하게 꽃 피는 시기였다.

 

한산시의 主가 5언시이며 형식의 틀을 많이 깨고 있어 初唐(618-712) 사람으로 생각되며

120세까지 산 것으로 추정하고 그의 詩 내용을 중심으로

나이 별로 초기(40) 중기(80) 말기(120)로 나누고 싶다.

그러나 그의 시 300여 수는 이러한 구분이 모호하여 딱 잘라 여기서 저기까지라

정하기 어려운 고로 기존의 유통분 번호순으로 해설한다.

 

초기의 시를 40세까지 잡은 것은 천태산에 입산한 후

돌 나무에 새긴 글을 채록했기에 오늘까지 전해진 것이다.

 

입산은 30세 전후로 보고 입산한 후 10여년 간을 산 생활의 적응기로 보고 싶다.

초기 시는 세속에서 쓴 시를 다시 기록한 것,

유불도의 혼용, 현실과 수행의 갈등, 산 속 생활의 적응 등이 나타난다.

 

한산자는 유교의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들이 그랬듯이

과거 공부도 하고 20대에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동서고금 시대를 떠나 금수저 은수저를 물고

나오지 않는 다음에는 먹고 살기 위한 몸부림을 쳐야한다.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다양한 선택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한산자는 관리직을 택한 것 같다.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대가리 피 마르도록 과거시험에 매달리지만

거긴들 사람 부대끼는 곳인데 부작용이 없었을까?

 

한산자는 지식이 교만에 이른 자존심 센 불의와 타협할 줄 모르는

성깔 더러운 천방지축 날뛰는 젊은이였음을 詩의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내부는 돌아서면 언제나 성질머리 못 죽인 자신을 채찍질 하는

소심하지만 따스한 심장이 뛰는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인맥의 유무, 실력의 유무, 관운의 유무, 과거시험의 뒷거래 유무를 떠나

한산자는 입산 전후인 30세까지 가장으로써의 생활을 책임지지 못한 것 같다.

어쩌면 도잠이나 두보처럼 쬐금의 인연으로 최하위 말단직이었을 수도 있다.

한산자 보다 한창 년대가 앞선 당나라 이전 동진의 시인 도잠(365~427)이나

좀 늦는 성당 사람인 두보(712-770)도 말단직으로는 가족을 부양할 수 없었다.

 

 

●음주飮酒 19/도연명陶淵明

 

주석고장기疇昔苦長饑 이전에 오랜 굶주림에 시달린 끝에 

투뢰거학사投耒去學仕 쟁기 내던지고 벼슬살이 나섰다. 

장양부득절將養不得節 그래도 가족들 부양할 수 없었고

동뇌고전기凍餒固纏己 노상 춥고 배고팠다.

 

시시향입년是時向立年 그때가 내 나이 삼십을 바라보니

지의다소치志意多所恥 뜻과 마음속에는 부끄러움 뿐

수진개연분遂盡介然分 마침내 내 본분 지키고자 

불의귀전리拂衣歸田里 옷 털고 전원으로 돌아왔다.

 

염염성기류冉冉星氣流 어느덧 별 따라 세월 흘러 

정정부일기亭亭復一紀 그새 12년이 지났구나. 

세로곽유유世路廓悠悠 세상 사는 길 넓고 아득하니 

양주소이지楊朱所以止 이 때문에 楊朱는 갈림길에서 울었지.

 

수무휘금사雖無揮金事 마구 뿌리고 쓸 돈 없지만

탁주요가시濁酒聊可恃 잠시나마 탁배기 한잔 쭈우욱 조오치

 

예나 지금이나 가장으로써의 참담함은 남자의 존심을

여지없이 짓밟고 짓이겨 빨랫줄에 널려 바람에 펄럭거리는 것이다.

 

두 패로 갈린 중들이 <깃발이 움직인거다> 아니다

<바람이 움직인거다>로 옥신각신 할 때 6조 혜능禪師가 말했다.

"바람도 아니고 깃발도 아니고 마음이 움직였다."

 

헐~~ 마음이라니~

가장의 몸과 마음이 펄럭거릴 때는 무엇이 움직이는가.

 

1994년 가수 박우철씨는 <남자라는 이유로>를 불렀지만 히트시키지 못했다.

그러다 1997년 대한민국의 IMF(1997년 12월 3일 ~ 2001년 8월 23일)가 터지고

가수 조항조씨가 <남자라는 이유로(1997)>를 부르자 전 국민이 따라 불렀다.

이게 운이고 복이라면 우리 인생이 되옹박임이 확실하다.

 

예전의 사람들은 도교와 무속의 생활에 유교적 학문을 배우고

종교적 신앙으로 불교가 자연히 스며드는 삶이었다.

중국인들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학문은 유교, 생활은 도교, 종교는 불교로 정착 되고

宋代에 이르면 유불도는 학문적으로 거의 통합이 된다.

 

한산자 역시 초기 입산 후의 갈등을 지나 나이 들수록 출가 도인에서

출가 거사로 바뀌어 80세쯤 되면 성숙한 불교인이 되고 후기엔 완숙한 禪의 경지에 든다.

(어디까지나 한산이 120세까지 살았다고 할 때의 가정으로 이것도 헛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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