寒山詩 89
천고고불궁天高高不窮 하늘은 높아 그 높기가 끝이 없고
지후후무극地厚厚無極 땅은 두터워 그 두텁기가 한이 없네.
동물재기중動物在其中 살아 움직이는 것들은 모두 그 안에서
빙자조화력憑玆造化力 이 조화로운 힘에 기대어 사네.
쟁두멱포난爭頭覓飽暖 앞 다투어 배부르게 먹고 따뜻하게 입는 것만 찾고
작계상담식作計相噉食 꾀를 내어 서로 잡아먹네.
인과도미상因果都未詳 인과응보因果應報는 모두 자세히 알지 못하니
맹아문유색盲兒問乳色 눈먼 아이가 젖의 빛깔을 묻는 듯하네.
하늘은 하도 높아 닿을 수 없고
땅은 두터워 그 끝을 알 수 없네
살아 움직이는 것 모두 그 안에서
조화로운 힘에 기대 살아가는데
앞다퉈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하고
꾀를 내고 서로 속여 먹이를 삼네
하지만 인과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어
눈먼 아이가 젖 빛깔을 묻는 꼴이네
하늘 높아 그 높이 다함이 없고
땅 두터워 그 두께 끝이 없네.
그 사이에 사는 동물들
이 조화의 힘 의지하네.
앞 다퉈 배부름 따스함 구해
꾀 부려 서로 잡아먹는다.
도무지 인과를 모르니
눈 먼 아이 젖빛을 묻는 격이로다.
►자茲 이. 이곳.
►담噉=‘담啖’과 동자同字. 먹다. ‘噉’ 먹을 담, 소리칠 함
►쟁두爭頭 일을 먼저 하기를 서로 다툼.
►도都 모두. 다.
►맹아문유색盲兒問乳色
눈먼 아이가 젖의 빛깔을 물어본다는 이 구절은 <열반경涅槃經>에 나온다.
여생맹인如生盲人 불식유색不識乳色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 젖의 빛깔을 몰라
편문타언便問他言 유색하사乳色何似 젖의 빛깔이 무엇과 닮았냐고 물었다.
타인답언他人答言 색백여패色白如貝 답해 말하기를 그 색깔이 조개처럼 하얗다고 했다.
맹인복문盲人复問 시유색자是乳色者 여패성야如貝聲耶
맹인이 다시 젖의 빛깔이 조개의 소리 같은 것이냐고 물었다.
답언불야答言不也 복문패색위하사야復問貝色爲何似也
아니라고 그랬더니 맹인이 다시 조개 색깔이 무엇을 닮았냐고 물었다.
답언유도미말答言猶稻米粖 답하기를 쌀가루와 같다고 했다.
맹인복문盲人復問 유색유연여도미말야乳色柔軟如稻米粖耶 도미말자稻米粖者 복하소사復何所似
맹인이 다시 젖의 빛깔이 부드러운 쌀가루 같으냐고 하면서 그것이 무엇과 닮았느냐고 또 물었다.
답언유여우설答言猶如雨雪 비나 눈 같다고 대답했다.
맹인복언피도미말랭여설야盲人復言彼稻米粖冷如雪耶 설복하사雪復何似
맹인이 다시 쌀가루가 차갑기가 눈 같으냐고 하면서 눈이 무엇을 닮았느냐고 물었다.
답언유여백곡答言猶如白鵠 답하기를 하얀 고니와 같다고 했다.
시생맹인是生盲人 수문여시사종비유雖聞如是四種譬喻 종불능득식유진색終不能得識乳眞色
이 사람은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까닭에 이렇듯 4가지 비유를 듣고도 끝내 젖의 빛깔을 알 수 없었다.
시제외도是諸外道 역부여시亦復如是 종불능득상락아정終不能得常樂我淨
모든 외도의 가르침도 이와 같아서 끝내 상락아정常樂我淨 열반의 경지에 들 수 없다.
‘상락아정常樂我淨’은 열반의 사덕四德으로
‘열반은 영원하며[常], 열반은 안락함으로 가득 차고[樂],
열반은 절대 진아眞我이며[我] 열반은 청정[淨]하다’는 뜻이다.
이 시는 살생의 인과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산은 이 시에서 인과를 모르고 서로 살생을 일삼는 하늘과 땅 사이에 사는 중생들은
마치 맹인이 젖의 색깔을 묻는 데 아무리 대답해 주어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음을 노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