寒山詩 110
서판전비약書判全非弱 문필文筆과 판단력은 전혀 모자라지 않았는데
혐신부득관嫌身不得官 용모容貌가 변변치 않아 벼슬을 얻지 못했네.
전조피요절銓曹被拗折 꼼꼼한 시험관試驗官을 만나 뜻이 꺾이고 말았으니
세구멱창반洗垢覓瘡瘢 때를 씻어 내듯 흉터를 찾아냈네.
필야관천명必也關天命 틀림없이 꼭 하늘의 뜻이었겠지만
금년갱시간今年更試看 금년에도 다시 시험을 치러 보게나.
맹아사작목盲兒射雀目 눈먼 아이가 참새의 눈에 화살을 쏘아서
우중역비난偶中亦非難 우연히 맞히는 일 또한 어려운 것만은 아니네.
글과 글씨는 모자라지 않았는데
생긴 것 변변찮아 벼슬 얻지 못했구려
꼼꼼한 관리 만나 뜻 꺾이고 말았는데
묵은 때 씻어내듯 흉터를 찾아냈다네
이는 필시 하늘의 뜻이었을 테지만
올 겨울(今冬)에 시험 다시 치러보게나
눈 먼 아이 참새 눈에 활을 쏘아서
우연히 맞는 수가 없지는 않을 테니
글씨와 글 모두 약하지 않았건만
몸을 싫어해 벼슬자리 지 못했네.
시험관들 비틀고 꺾었으니
때를 씻어 흉터를 찾은 격이지.
반드시 운명과 관계있음이려니
올겨울 다시 시험을 보리라.
눈 먼 아이 참새 눈 쏘아
우연히 맞춤 또한 어려운 일 아니리.
►서판書判 당唐나라 때 관리를 뽑는 네 가지 표준 가운데 두 가지.
‘서書’ 서법書法. ‘판判’ 판사判詞.
당唐나라 때 형성된 일종의 전문적 문체.
<신당서新唐書 선거지選擧志 下>에 당나라 때 관리를 선발하는 제도상 규정이 나와 있다.
무릇 사람을 뽑는 방법으로 네 가지가 있다.
첫째 몸[身]으로, 신체의 풍위豊偉(풍만하고 위엄 있음).
둘째 말[言]로, 말의 변정辯正(말이 조리가 있고 올바름).
셋째 글씨[書]로, 해법楷法(해서楷書 쓰는 법)의 정미精美(정교하고 아름다움)함.
넷째 판判으로, 문리文理(글이 이치에 맞고 체계가 있음)의 우장優長(우수하고 뛰어남)함.
이 네 가지를 모두 취해보면 먼저 덕德을 알 수 있고
덕이 고르면 재주가 있으며 재주가 고르면 노고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조銓曹 관리의 선발을 담당하는 관직 기구. 구체적으로는 이부吏部를 가리킴
‘전銓’ 뽑다. 선발하다. ‘조曹’ 관청. 관아.
►피被 씌우다. 덮다.
►요절拗折 꺾임. 즉 시험에 떨어짐.
‘요拗’ 우길 요, 누를 욱. 꺾다. 비꼬이다. 비틀다. 어긋나다.
‘절折’ 꺾다. 꺾이다. 부러지다.
►세구멱창반洗垢覓瘡瘢 새나 짐승의 털을 불어 흠을 찾는 격.
‘창반瘡瘢’ 흉터, 상처, 부스럼 자국. 칼의 흉터. 백성들의 고통스러운 삶
‘창瘡’ 부스럼. 종기. 헌데. 상처.
‘반瘢’ 흉터. 자국. 흔적.
예전에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흔히들 쓰던 말로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바로 당대唐代에 관리를 채용할 때 응시자들에게 적용하던 기준을 뜻한다.
곧 신체의 풍모, 언변, 글씨, 글 등 네 가지를 말한다.
그런데 이 시의 화자는 이 넷 중 두 가지에 해당하는 서書(글씨)와 판判(글)에서는
합격점에 이르는 데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신身(외모)에서 걸린 것이다.
당시에는 신체가 풍만하고 위엄이 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불합격의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공무원 시험에서는 별 상관없는 일이지만
회사에서 사람을 뽑을 때는 외모를 꽤 중요시하는 것 같다.
특히 여성 사원으로서는 ‘외모도 실력이다’라는 말이 떠돈다.
이 시에서도 외모 때문에 시험에 낙방했으니
그것은 마치 ‘때를 씻어 흉터 찾아낸 격이’라
필시 하늘의 명命 때문일 것이라 하여 운명 탓으로 돌린다.
전반부 4구에서는 과거시험에 떨어진 일에 관해 언급했다.
그러나 후반부 4구에서는 운명을 헤치고 거듭 도전하는 불굴의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눈이 먼 아이가 새총이나 활로 참새의 눈알을
쏘아 적중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렇지만 운명에 대한 도전적인 의지력으로 끈질기게
거듭거듭 쏘다보면 우연히 맞는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이 시는 불요불굴不撓不屈(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음)의 의지를 노래함으로써
사람이 어떤 난관에 봉착해도 그것을 꿋꿋이 견디고 이겨 나갈 것을 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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