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무명론·구절십연자九折十演者 개종開宗 제1
구절십연자九折十演者
절折은 절변折辯을 말하는데 有名이 수립한 질문이며
연演은 부연한다는 의미인데 無名이 이치를 소통함을 말한다.
즉 유명이 수립한 질문은 아홉 문제가 있고 無名이 부연한 이치는 열 가지가 있음을 말한다.
그 의도가 대체로 涅槃有名으로써 질문하면
涅槃無名으로써 답변하여 이로써 無名을 나타낸 것이다.
개종開宗 제1
열반무명의 정의를 開始하여 다음에서 질문에 답변하는
강종鋼宗을 삼았는데 이는 四論의 宗本義와 같다.
열반무명론의 대지大旨가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우선 열반무명론의 이치를 나타내려고 열반유명을 표시하여 종본이 의지함을 나타냈다.
교설에서는 네 종류의 열반이 있다고 설명하였다.
지금은 그 가운데서 두 명칭만을 지칭하였다.
왜냐하면 사종열반 가운데 자성自性열반으로써 이치를 요약하고 무주처열반으로써
실천을 요약하였는데 이 둘은 그 덕목에 의한 명칭만 있을 뿐 실제는 없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 둘은 논변이 필요치 않다.
지금 무여의열반과 유여의열반인 두 열반은 주관적인 사람의 편에 명칭을 붙였다
즉 무여의열반은 여래께서 증득하신 것이며 유여의열반은 삼승이 증득할 객관의 법이다.
지금 논문에서 지적한 것은 부처님의 응연應緣이 아직은 다하지 않아 명칭도 있고
그에 대한 실제도 있는 (유명유실) 것으로써 종본의 의지를 삼으려 하였다.
그 때문에 이 논문에서는 두 종류의 열반만을 지칭하였던 것이다.
지금 논주가 수립한 의도를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진왕의
'성인이 없다면 누구라서 도와 함께 노닐겠는가?'라고 했던 가르침을 이에 앞서 존경하였다.
그리하여 이로써 빗나간 종파에서 ‘확연하여 성인마저도 없다’고 한
무리들을 타파함으로써 논을 발현할 단서를 삼았다.
지금은 두 종류의 열반 즉 무여의열반과 유여의열반을 표시하여
이로써 논문 종본의 의지할 곳으로 삼았다.
이는 열반의 이치를 주관적으로 증오하는 사람
즉 여래와 삼승인은 실재가 있고 증오할 이치는 무명임을 말한다.
그 때문에 이 두 열반의 덕목을 의지하여 논지를 수립하였던 것이다.
무명왈無名曰 무명은 말한다.
[열반의 이치를 소통하여 유명의 질문에 답변하는 사람을 가설하였다.
이는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허부에 등장하는 자처와 무시공과 같다.
즉 실재하지 않는 것을 의인화시킨 것이다]
경칭유여열반무여열반자經稱有餘涅槃無餘涅槃者
경전에서 유여의열반, 무여의열반이라고 호칭한 것은
진언무위秦言無為 역명멸도亦名滅度
중국말로 번역하면 무위 또는 멸도라고 부른다.
[범어에서는 열반이라는 하나의 명칭일 뿐인데 번역하면 이러한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무위자無為者 취호허무적막取乎虛無寂寞 묘절어유위妙絕於有為
무위는 허무 적막하여[명칭을 떠나고 모습마저 단절되었다]
유위법이 오묘하게 단절한 데서 그 의미를 취하였고
멸도자滅度者 언기대환영멸言其大患永滅 멸도는 대환이 영원히 사라져
[노자에서 말하기를 '나에게 큰 근심거리가 있는 까닭은 나의 육신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지금은 이종생사인 분단생사와 번역생사를 지적하였다.
열반에는 이종생사가 영원히 없어졌기 때문에 대환이 영원히 사라졌다고 말하였다]
초도사류超度四流 사류四流를 초월하여 건넜음을 말한다.
[사류는 욕류欲流 유류有流 견류見流 무명류無明流를 말하는데 이 넷은 이종생사의 근본이다]
사개시경상지소귀斯蓋是鏡像之所歸 이는 거울과 거울 속에 비춰진 모습이 귀결하는 바이며
[鏡像은 능가경에서 말하기를 '비유하면 밝은 거울에 여러 색상이 나타나는 것과도 같다.
現識의 나타남과 은둔함도 이와 같다.'라고 하였다.
이는 일체중생의 신심身과 세계가 모두 유식唯識에서 나타난 것으로써
신심은 팔식의 영상인 상분일 뿐임을 말하였다.
이러한 영상의 상분을 거두어 유식성으로 귀결시키면 원래 진여이다.
그 때문에 영상으로 귀결하는 바라고 하였다]
절칭지유댁야絕稱之幽宅也 칭위稱謂가 끊긴 그윽한 집이다.
[열반은 명칭이 끊겼기 때문에 칭위가 끊겼고
모습마저 떠났기 때문에 그윽한 집이라고 말하였다]
이왈유여무여자而曰有餘無餘者 그런데도 유여의열반, 무여의열반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이미 명칭과 모습을 떠났는데도 유여의, 무여의열반이라고 말하는 것은]
량시출처지이호良是出處之異號 응물지가명이應物之假名耳
실로 유여의의 출현과 무여의의 은둔에 따라서 다르게 호칭하였으며
사물에 감응하는 거짓 명칭일 뿐이다.
[열반이라 말하는 것은 일진법계인 법신의 자체일 뿐이다.
이 법신을 증득하면 부처라고 호칭한다.
이러한 부처님은 중생의 상황에 따라 반드시 감응하며 감응하면 몸을 나타내 설법을 한다.
그 때문에 출현한다 하였다.
중생과 인연이 다하면 은둔하여 출현했던 모습을 거두고 법신의 진실한 자체로 되돌아간다.
그 때문에 은둔한다는 의미에서 처處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일체의 모든 부처님은 몸을 출현하는 것으로써
유생有生이라 하고 인연이 사라지는 것으로써 열반이라 한다.
그러나 사라진다 해도 원래 사라지지 않았었음은 사뭇 몰랐다 하리라.
이는 다른 나라에서 부처가 되면 다시 다른 부처님의 이름이 있는 경우인데
이른바 사물의 감응에 따라서 임시로 붙인 이름인 것이다]
여상시언지余嘗試言之 나는 시험 삼아 이 문제를 말해 보리라
[다음에서는 열반무명의 종지를 정면으로 자세하게 논변하였다]
부열반지위도야夫涅槃之為道也 적요허광寂寥虛矌
열반의 도는 적요허광하여[그 자체는 적멸이다]
불가이형명득不可以形名得 형명形名으로서는 얻지 못하며[名字의 모습을 떠났다]
미묘무상微妙無相 불가이유심지不可以有心知 미묘하고 무상하여 유심有心으로서는 알지 못한다
[심의식의 망상으로 반연하는 모습을 떠났다]
초군유이유승超群有以幽升 모든 유위법을 초월하여 그윽하게 오르고
[높이 삼계를 초월하여 二惑을 끊지 않음이 없다]
량태허이영구量太虛而永久 그 한량이 태허처럼 영구하다
[무위법을 영원히 증득하여 진여를 극치까지 증오하지 않음이 없다]
수지불득기종隨之弗得其蹤 따라가도 그 자취를 얻지 못하고 [미래가 다하도록 끝이 없다]
영지망조기수迎之罔眺其首 맞이해도 그 머리를 조망할 수가 없다[과거에도 시작이 없었다]
륙취불능섭기생六趣不能攝其生
육취의 세계로도 그 삶을 포섭하지 못하고[오주의 번뇌가 끝까지 다하였기 때문이다]
력부무이화기체力負無以化其體
야밤에 힘센 사람이 걸머지고 도망한다 해도
즉 조화가 은밀하게 옮겨 간다 해도 그 자체를 변화시킬 수는 없다
[이종생사가 영원히 없어졌기 때문이다]
황망홀황潢漭惚恍
황망하고[물이 끝이 없는 모습이다. 왕양汪洋하여 가이 없음을 말한다]
황홀하여[비유비무이므로 단정적으로 명칭하지 못함을 말한다]
약존약왕若存若往
존재하는 듯[나와도 나온 것이 아니다]
흘러가는 듯하다[사라져도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목부도기용五目不覩其容
오목(육안, 천안, 법안, 혜안, 불안)으로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하며
[꼴도 없고 모습도 없어 색상을 떠났기 때문에 살펴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이청불문기향二聽不聞其響
이청(肉耳와 天耳)으로는 그 메아리를 듣지 못한다[음성을 떠났기 때문에 듣지 못한다]
명명요요冥冥窈窅 수견수효誰見誰曉 명명요요한데 뉘라서 보고 뉘라서 깨닫겠는가.
[명명하여 보지 못하며 요는 심오한 모습. 요요하여 엿보지 못한다]
미륜미소부재彌綸靡所不在 충만하여 존재하지 않은 곳이 없다.
이독예어유무지표而獨曳於有無之表 그러나 절대 홀로 유·무의 밖으로 초탈하였다.
연즉언지자실기진然則言之者失其真
이와 같다면 이를 말하는 사람은 그 진실을 잃게 되고[말이 나오면 그 이치를 잃는다]
지지자반기우知之者反其愚
그것을 아는 사람은 반대로 어리석어진다[인식의 지혜로 알 바가 아니다]
유지자괴기성有之者乖其性 이를 소유하는 자는 그 자성을 어기게 되고
[열반이 있다고 집착한다면 적멸한 자체를 어기게 된다]
무지자상기구無之者傷其軀 없다고 무시하는 자는 그 몸을 상하게 된다.
[법신이 五道에 유전하는 것을 중생이라 부른다.
만일 이러한 법신이 없다고 집착한다면 단멸의 공에 떨어지게 된다]
소이석가엄실어마갈所以釋迦掩室於摩竭 그 때문에 석가는 마갈타국에서 방문을 걸어 잠궜었고
[부처님이 처음 성도하여 21일을 사유에 잠기시어 설법을 하지 않았다]
정명두구어비야淨名杜口於毘耶 정명은 비야리에서 입을 다물었으며
[문수보살이 유마거사에게 불이법문을 묻자 유마거사는 말이 없었다]
수보제창무설이현도須菩提唱無說以顯道 수보리는 설법 없음을 창도唱導하여 도를 나타내자
석범약청이우화釋梵約聽而雨華 석범은 설법 듣는 것이 단절된 것으로써 꽃비를 내렸다.
[수보리가 바위 속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제석천은 꽃을 흩고 뿌리면서 반야를 훌륭하게 설법하시는군요라고 말하였다.
이는 수보리존자는 설법이 없는 것으로써 설법을 하였고 제석천은 들은 것 없이 설법을 들었다]
사개리위신어斯皆理為神御 이들 모두는 이치를 정신으로 거느렸던 것이다
[말하지 않는 도는 증득해야만 알 수 있다]
고구이지이묵故口以之而默 그러므로 입이 이 때문에 말이 없었던 것이다.
기왈무변豈曰無辯 어찌 논변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변소불능언야辯所不能言也 논변으로는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四辯으로도 그 꼴을 담론하지 못한다]
경운經云 경에서 말하였다.
진해탈자真解脫者 리어언수離於言數 적멸영안寂滅永安
진실한 해탈은 언어와 象數를 떠나서 적멸하게 영원히 편안하다[생멸이 이미 사라졌기 때문]
무시무종無始無終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며[생멸이 아니기 때문에 시작도 끝도 없다]
불회불명不晦不明 어둡지도 않고 밝지도 않다
[적광寂光이 항상 관조하여 상대적인 어둠과 밝음에 소속되지 않는다]
불한불서不寒不暑 춥지도 덥지도 않은 것이
[생멸로 천류하는 법이 아니므로 시분時分에 소속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것이다]
담약허공湛若虛空 마치 허공과도 같아
[법신은 청정하여 담연하게 항상 고요하기가 마치 허공과도 같다]
무명무설無名無說 명칭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다
[모습을 떠났기 때문에 명칭이 없으며 언어를 떠났기 때문에 설법할 수가 없다.
이는 열반경과 유마경 등등에서 의미만을 인용하였다]
론왈論曰 중론에서 말하였다.
열반비유涅槃非有 역부비무亦復非無 열반은 실유하지 않으나 역시 실무도 아니다.
언어도단言語道斷 심행처멸心行處滅
언어의 길이 끊기고 심의식의 망상이 진행하는 곳이 사라졌다.
[입으로는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언어의 길이 끊겼고
심의식으로는 사량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심의식의 진행하는 곳이 사라졌다]
심부경론지작尋夫經論之作 경전과 논서에서 수립했던 근본 의도를 연구해보자.
기허구재豈虛搆哉 이는 어찌 허구이겠는가[허구의 가공적인 담론이 아님을 말하였다]
과유기소이불유果有其所以不有 정말로 실유가 아닌 까닭이 있었다.
고불가득이유故不可得而有 유기소이불무有其所以不無
그 때문에 실재로 있게 하지 못하며 실무가 아닌 까닭이 있었다.
고불가득이무이故不可得而無耳 그 때문에 정말로 없게 하지도 못한다.
하자何者 열반은 무엇 때문에 실유도 아니고 실무도 아니겠는가?
본지유경本之有境 즉오음영멸則五陰永滅
유위법의 세계에 근본하여 연구해 본다면 오음이 영원히 사라졌고
[열반은 생사에 소속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생멸의 오음이 영원히 사라져 정말로 있게 하지 못하며 사라지면
생사의 괴로움을 떠나는데 이는 열반사덕 가운데 열반의 낙덕樂德이다]
추지무향推之無鄉 이유령불갈而幽靈不竭
무위법의 세계에서 추측해 보았더니 그윽하고 신령함이 다하지 않았다.
[경험적인 지식이 단절되긴 했으나 그윽하고 심오하여
신령한 앎이 홀로 관조하면서 지극한 진상이 존재한다.
이는 사덕 가운데 진실한 아덕我德이다]
유령불갈幽靈不竭 즉포일담연則抱一湛然
그윽하고 신령함이 다하지 않았다면 一眞을 안고 담연하며
[일진의 경지가 담연하여 항상 고요하다. 이는 열반의 진실한 상덕常德이다]
오음영멸五陰永滅 즉만루도연則萬累都捐
오음이 영원히 사라졌다면 모든 누(萬累)를 다 버리기 때문이다.
[생사를 영원히 떠났다면 모든 미혹이 함께 소멸한다. 이는 열반의 진실한 정덕淨德이다]
만루도연萬累都捐 고여도통동故與道通洞 모든 누를 다 버렸기 때문에 도와 함께 환하게 통하고
[미혹이 청정하기 때문에 내적으로 그윽한 이치와 그윽히 합치한다]
포일담연抱一湛然 고신이무공故神而無功
일진을 안고 담연하기 때문에 신령하게 작용하나 공로는 없다.
[열반의 자체는 항상 고요하지만 오묘한 작용이 일정한 방향에 제한 없이 일어난다.
그 때문에 신령하게 작용하여 일정한 공로가 없다]
신이무공神而無功 고지공상존故至功常存
신령하게 작용하면서 공로가 없기 때문에 지극한 공로는 항상 존재하고
[무심하게 감응하기 때문에 공업功業은 썩지 않고 영원히 유전한다]
여도통동與道通洞 고충이불개故沖而不改
도와 함께 환하게 통하기 때문에 충막沖寞하여 자체가 변개하지 않는다.
[미혹이 다하고 진여를 끝까지 추궁했기 때문에 충막하고 심오하여 자체가 변칠 않는다]
충이불개沖而不改 고불가위유故不可為有
충막하여 자체가 변치 않기 때문에 실재로 있다 하지 못하며
[자체가 텅 비어 변치 않기 때문에 있다 하지 못한다]
지공상존至功常存 고불가위무故不可為無
지극한 공업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정말로 없다 하지 못한다.
[인연을 따라 감응하여 나타나면서 끝없이 중생을 이롭고 즐겁게 하기 때문에 없다 하지 못한다]
연즉유무절어내然則有無絕於內
이와 같다면[명상을 떠났음을 총체적으로 결론지었다] 유·무가 마음속에 단절하였고
[자체는 지극한 진실이고
고요함과 작용이 하나의 근원이기 때문에 마음속에서 유·무가 단절하였다]
칭위륜어외稱謂淪於外 칭위稱謂가 외부에서 끊겼다
[名字를 덧붙이지 못한다. 그 때문에 칭위가 끊겼다]
시청지소불기視聽之所不暨 보고 듣는 것으론 도달하지 못한다
[색성이 아니기 때문에 시청이 미치지 못한다]
사공지소혼매四空之所昏昧 사공천인의 경지론 이를 이해하지 못하여 깜깜하게 어둡다.
[사공천인은 미혹하여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둡다 하였다]
념언이이恬焉而夷 염담하여 평이하고[평등일여하다]
파언이태怕焉而泰 고요하고 태연하다
[고요하면서도 항상 관조하여 그윽한 곳까지 조감하지 않음이 없다]
구류어시호교귀九流於是乎交歸 구류가 여기에로 교대로 지의하고
[구류는 세속의 구류학파가 아니며 구계중생을 지적한 것이다.
열반은 일체중생의 본원이기 때문에 교대로 귀의한다 하였다]
중성어시호명회眾聖於是乎冥會 모든 성인들이 여기에서 그윽하게 회합한다.
[시방제불 구경의 처소이다. 그 때문에 그윽히 회합한다고 말하였다]
사내희이지경斯乃希夷之境 이는 희이希夷한 세계이며[경험적인 견문의 세계가 아니다]
태현지향太玄之鄉 태현太玄의 처소이다[현묘하고 또 현묘하기 때문에 태현이라고 말하였다]
이욕이유무제방而欲以有無題榜 표기방역標其方域
그런데도 유의 세계로 나오고 무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으로써
명제를 삼고 그 처소를 지적하여
[열반을 모든 성인이 出生入死하는 명칭으로 삼고
유·무의 명제로 표시하여 그 처소를 지적함을 말하였다]
이어기신도자而語其神道者 불역막재不亦邈哉
이로써 신령한 열반의 도를 얻었다고 말하는 자는 열반의 경지와는 아득히 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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