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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도연명陶淵明

5言詩 38. 의고擬古 9首

의고擬古 9고시를 본떠서

其一   

영영창하란榮榮窗下蘭 창 아래에 난초가 무성히 자라고

밀밀당전류密密堂前柳 집 앞엔 버들이 빽빽이 늘어지니

초여군별시初與君別時 처음 그대와 더불어 이별할 때는

불위행당구不謂行當久 오랫동안 다니리라 하지 않았네

 

출문만리객出門萬裏客 집을 나서 만리의 나그네 되어

중도봉가우中道逢嘉友 다니던 중에 좋은 친구를 만났네

미언심선취未言心先醉 말하기 전에 먼저 마음이 취하니

부재접배주不在接杯酒 술잔으로 사귄 탓만이 아니라네

 

난고류역쇠蘭枯柳亦衰 난초가 마르고 버들 또한 시들 때

수령차언부遂令此言負 마침내 약속을 저버리고 말았구나

다사제소년多謝諸少年 여러 젊은이들에게 거듭 이르노니

상지불충후相知不忠厚 서로 안다고 다 충후하지는 않다네

 

의기경인명意氣傾人命 뜻이 맞으면 목숨까지 바친다는데

이격부하유離隔復何有 떨어져 있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영영榮榮 무성함

►밀밀密密 빽빽함. 촘촘함.

►충후忠厚 충직忠直하고 순후淳厚함.

►의기경인명意氣傾人命 친구는 의기투합하면 목숨까지 던진다는 뜻

►復부하유何有 또한 무슨 문제가 있으리오. 이별해 있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양한兩漢(전,후한) 사이에 지어진 作者不明의 시를 고시古詩라 하고 이것을 모방한 시가 의고시擬古詩이다.

도연명의 〈의고擬古〉 시는 모두 9수인데 대략 도연명의 말년인 남조南朝 유송劉宋

초기에(57-58세)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고시에 의거하기 보다는 자신의 감개를 서술한 시이다.

반면 李白은 고시 19수에 의거하여 의고 12수를 지었다.

 

이 시는 멀리 떠나간 친구가 마음이 변하여 소식도 없으니 친구 간에 의기투합하면

목숨까지도 바친다는데 멀리 떠나있는 것이 무슨 변명이 되겠느냐고 반문하는 의도이다.

 

당시 진晋나라(춘추전국시대 사마염이 세운 나라)가

송宋 왕조(남북조시대의 송나라)에 선양을 한 것에 빗대어 풍자한 것으로 보인다.

 

 

其二

사가숙엄가辭家夙嚴駕 아침 일찍 집에 하직 인사를 하고

당왕지무종當往誌無終 떠날 채비 갖춤은 곧 무종無終에 가려는 것이라오.

문군금하행問君今何行 그대에게 묻노니 그대 지금 어디로 가는가?

비상부비융非商復非戎 장삿길도 아니고 또 전쟁터에 가는 것도 아니라네.

 

문유전자태聞有田子泰 듣건대 전자태田子泰라는 사람이 있다는데

절의위사웅節義為士雄 절의節義가 선비 중 으뜸이었다네.

사인구이사斯人久已死 그 사람은 이미 죽은 지 오래되었지만

향리습기풍鄉裏習其風 고향에서는 그의 풍모를 이어받았다네.

 

생유고세명生有高世名 살아서는 세상에 이름을 높이 날렸고

기몰전무궁既沒傳無窮 죽어서도 무궁토록 전해지고 있다네.

불학광치자不學狂馳子 명리를 위해 광분하는 사람들 이를 배우지 아니하고

직재백년중直在百年中 다만 백년도 못되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네.

 

►‘이를 숙夙’ 새벽, 이른 아침.

►엄가嚴駕 마차를 준비하다. 즉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을 말한다.

►당왕當往 곧 가려 하다. ‘마땅 당當’은 ~하려 하다.

►지무종志無終 무종으로 가려하다.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계현蓟縣이며 전자태田子泰의 고향이다.

‘뜻 지, 기치 치志’는 ‘이를 지, 덜렁대는 모양 질至’와 통한다.

 

►절의節義 절개와 의리. 의절儀節.

►사웅士雄 선비 중의 호걸.

►‘병장기 융/오랑캐 융戎’ 전쟁. 종군從軍

►전자태田子泰 이름은 전주田疇. 자字는 자태子泰, 동한東漢 무종현無終縣사람이다.

유우劉虞의 신하. 전주田疇는 절의節義를 중히 여겨 이름을 얻었다.

공손찬公孫瓚이 유우劉虞를 죽이자 절의를 지켜 서무산徐无山에 은거하였으며 백성들이 따라와 함께 하였다.

/<三国志·魏志·田畴傳>

 

►광치자狂馳子 명리만을 쫓아 미친 듯이 질주하는 사람.

►‘곧을 직, 값 치直’=‘다만 지, 외짝 척只’

 

 

이 시는 자문자답하며 절의節義의 선비 전자태田子泰의 고향을 방문하는 것에 기탁하여 절의지사에 대한

깊은 존경심과 세상에 절의를 돌아보지 않고 명리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혐오감을 표현하였다.

 

 

其三

중춘구시우仲春遘時雨 중춘仲春에 때맞추어 비 내리니

시뢰발동우始雷發東隅 첫 우레가 동쪽 끝에서 울린다.

중칩각잠해衆蟄各潛駭 겨울잠을 자던 무리들 저마다 놀라 깨고

초목종횡서草木縱橫舒 초목은 자유자재로 싹을 틔워 뻗는다.

 

편편신래연翩翩新來燕 훨훨 날아 갓 돌아온 제비는

쌍쌍입아려雙雙入我廬 쌍쌍이 내 집으로 날아드누나.

선소고상재先巢故尚在 전의 둥지가 아직 그대로 있어

상장환구거相將還舊居 짝지어 옛 살던 곳으로 돌아온다.

 

자종분별래自從分別來 너희들과 헤어진 뒤 돌아와 보니

문정일황무門庭日荒蕪 대문과 뜰이 날로 황폐해졌다네.

아심고비석我心固匪石 내 마음은 본래 돌이 아니라서 옮겨가지 않겠지만(石↔兇)

군정정하여君情定何如 너희들의 심정은 정녕 어떠한가?

 

►중춘仲春 음력 2월. ‘

3春’은 맹춘孟春 중춘仲春 계춘季春으로 봄의 3개월을 지칭하며 중춘은 음력 2월을 가리킨다.

 

►시우時雨 때를 맞추어 오는 비.

►중칩衆蟄 겨울잠을 자던 무리들.

►잠해潛駭 숨었다가 놀라다.

 

►종횡서縱橫舒 자유자재로 싹을 틔워 퍼지다. ‘펼 서舒’는 퍼지다. 흩어지다는 뜻.

►편편翩翩 (새가)훨훨 나는 모양.

►아심고비석我心固匪石 내 마음은 본래 돌이 아니라서 굴릴 수가 없다.

<詩經 폐풍邶風> 백주柏舟(잣나무 배) 시에서

아심비석我心匪石 불가전야不可轉也 내 마음은 돌이 아니라서 굴리지도 못한다네.

라고 하였으며 이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부인의 심정을 그린 것으로

자기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을 나타낸 것이다.

 

 

其四

초초백척루迢迢百尺樓 높고 높은 백 척의 누각

분명망사황分明望四荒 사방 끝까지 분명하게 보인다.

모작귀운택暮作歸雲宅 저녁에는 구름이 돌아와 쉬는 집이 되고

조위비조당朝為飛鳥堂 아침에는 나는 새의 집이 되네.

 

산하만목중山河滿目中 산천은 눈 안에 가득 차고

평원독망망平原獨茫茫 들판은 홀로 넓고 아득하구나.

고시공명사古時功名士 옛날 공명功名을 쫓던 사람들

강개쟁차장慷慨爭此場 강개에 차 이곳에서 다투었다네.

 

일단백세후一旦百歲後 하루아침에 평생을 마친 후

상여환북망相與還北邙 모두 같이 북망산으로 돌아간다네.

송백위인벌松柏為人伐 송백은 사람들이 베어버리고

고분호저앙高墳互低昂 높고 낮은 무덤들이 나란히 있네.

 

퇴기무유주頹基無遺主 무너진 무덤에는 주인이 없으니

유혼재하방遊魂在何方 떠도는 혼은 어느 곳에 있는가?

영화성족귀榮華誠足貴 영화는 정녕 귀하게 여길 만 하나

역부가련상亦復可憐傷 또한 가련하고 덧없는 것이라네!

 

►초초迢迢 높고 높은.

고시古詩 19수 중 제10수에는

초초견우성迢迢牽牛星 멀고 아득한 견우성

교교하한녀皎皎河漢女 밝고 밝은 직녀성. 이라는 표현이 있다.

 

►사황四荒 사방의 끝.

►고시古時 옛날

►일단一旦 하루아침.

►북망北邙 북망산北邙山.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에 있는 작은 산으로 낙양의 귀족들의 무덤이 많이 남아있다.

사람이 죽어서 묻히는 곳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고분高墳 무덤

►저앙低昂 낮아졌다 높아졌다 함.

►퇴기頹基 무너진 터. 여기서는 허물어진 묘지를 말함.

 

 

고시古詩 19수 중 제10수의 초반부의 초초迢迢를 사용하였고 제13수의 내용과 유사한 면이 있다.

구거상동문驅車上東門 성의 동문으로 수레를 몰아

요망곽북묘遙望郭北墓 멀리 성곽 북쪽의 묘지를 본다./고시 제13수

 

높은 누각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다 버려진 무덤을 보고 한 순간에 가버리는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인간의 영화는 귀하지만 보잘 것 없다며 한탄하는 모습이다.

 

 

其五

동방유일사東方有一士 동방에 한 선비 있으니

피복상불완被服常不完 입는 옷이 항상 온전치 못하네.

삼순구우식三旬九遇食 삼십일에 아홉 번 밥을 먹고

십년착일관十年著一冠 십년에 관冠 하나를 쓴다오.

 

신고무차비辛苦無此比 그 고생 비길 때 없지만

상유호용안常有好容顔 항상 좋은 얼굴 간직하고 있네.

아욕관기인我欲觀其人 내가 그 분 보고자 하여

신거월하관晨去越河關 새벽에 떠나 하관河關을 넘어갔네.

 

청송협로생靑松夾路生 푸른 소나무 길 옆에 울창하고

백운숙첨단白雲宿簷端 흰 구름 처마 끝에 머무누나.

지아고래의知我故來意 내 일부러 찾아온 뜻 알고는

취금위아탄取琴爲我彈 거문고 집어 들고 나를 위해 타주시네.

 

상현경별학上絃驚別鶴 높은 줄에는 <별학곡別鶴曲>으로 놀라게 하고

하현조고란下絃操孤鸞 낮은 줄에는 <고란곡孤鸞曲>을 타시네.

원류취군주願留就君住 원컨대 여기에 남아 그대와 함께 살며

종금지세한從今至歲寒 지금부터 노년까지 있고 싶다네.

 

►삼순구우식三旬九遇食=삼순구식三旬九食.

세 열흘 곧 한 달에 9번 식사함. 끼니가 없어 가난하게 살아감.

 

►십년착일관十年著一冠 10년 동안에 같은 관을 쓰고 있는 가난한 모양

►하관河關 강 나루터에 있는 관소.

임진관臨津關(关) 당나라 때에 북도北都인 태원太原의 안전을 위해

山西省 흥현興縣 서북 70리 지점의 건너기 어려운 黃河 변 요충지에 설치했다.

 

►상현上絃 높은 곡조의 곡

►경별학驚別鶴 ‘경驚’은 소리를 높이 탄다. <혜강금부>에 <천리별학>이라는 명곡이 있다.

►조고란操孤鸞 고란의 곡을 연주한다.

►종금지세한從今至歲寒 ‘세한歲寒’ 만년. 계절의 끝.

도연명陶淵明의 뜻과 부합하니 그가 사는 곳에 나아가 벗하여 세한歲寒의 맹세를 정하기를 바란 것이다.

 

 

<도정절집陶靖節集> 4권에 실려 있다.

소식蘇軾은 이 시에 나오는 〈東方有一士〉가 도연명 자신을 가리킨 것이라고 보았는데

세속을 초탈하여 고고하게 살고픈 시인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其六

창창곡중수蒼蒼谷中樹 푸르고 무성한 골짜기 안의 나무들

동하상여자冬夏常如茲 겨울 여름 없이 늘 무성하구나.

년년견상설年年見霜雪 해마다 서리와 눈 맞으리니

수위부지시誰謂不知時 누가 계절을 모른다 말하겠는가?

 

염문세상어厭聞世上語 세상에 나도는 말들 싫도록 들었으니

결우도임치結友到臨淄 친구를 사귀러 임치臨淄로 가련다.

직하다담사稷下多談士 직하稷下에는 논객들이 많으리니

지피결오의指彼決吾疑 그곳에 가서 내 의문을 풀어보리라.

 

장속기유일裝束既有日 여장을 차린 지 벌써 여러 날

이여가인사已與家人辭 이미 가족들과도 작별을 고했다네.

행행정출문行行停出門 가고 가다가 문에서 머뭇거리고

환좌갱자사還坐更自思 돌아와 앉아서 다시 혼자 생각한다.

 

불원도리장不怨道裏長 갈 길이 먼 것은 두렵지 않지만

단외인아기但畏人我欺 다만 남이 나를 속일까 두려워한다.

만일불합의萬一不合意 만일 그들과 뜻이 맞지 않으면

영위세소지永為世笑之 영영 세상의 웃음거리 될 것이다.

 

이회난구도伊懷難具道 이 마음을 모두 말하기 어려워

위군작차시為君作此詩 그대에게 이 시를 지어 알린다.

 

►蒼蒼(창창) : (초목이)푸르고 우거져있다. 짙은 푸른색이나 색이 바랜 회백색을 뜻하는데, 주로 하늘 또는 무성하거나 무량무변(無量無邊)한 모습을 형용하는 데 쓴다.

 

►세상어世上語 속세의 떠도는 말.

►임치臨淄 산동성山東省 광요현廣饒縣 남부에 있던 고대 도시.

제齊나라의 도읍으로 전국시대에 상인과 학자들이 모여들었다.

 

►직하稷下 제齊나라의 도성 임치성의 西門을 직문稷門이라 하였다.

제나라를 찾아온 학사들을 서문 밖에 모여 살게 하였기 때문에 이곳의 학사들을 직하학사라 하였다.

/<史記 田敬仲完世家>

 

►담사談士 이론이나 의견을 좋아하는 학자들. 논객論客

►장속裝束 행장行裝을 꾸리다.

►정출문停出門 대문을 나서려다 멈추다.

►도리道裏노정路程. 갈 길. 여정.

►인아사人我欺 담사談士들이 나를 속인다는 뜻.

 

►불합의不合意 견해가 같지 않다.

►‘저 이伊’ 이. 차此와 같다.

►난구도難具道 상세히 말하기 어렵다.

 

 

고시古詩에 의거하기 보다는 자신의 감개感慨를 서술한 시이다.

소나무들은 항상 푸르나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다.

은거 중 임치臨淄에 가서 논객들을 만나 심중을 말하고자 하나 그들을 믿을 수 없기에 망설이는 모습이다.

 

 

其七

일모천무운​​日暮天無雲 날 저무는데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춘풍선미화​春風扇微和 봄바람은 온화한 바람 부채질하누나.

가인미청야​​佳人美淸夜 아름다운 사람 맑은 밤 사랑하여

달서감차가達曙酣且歌 새벽에 이르도록 술 마시며 노래하네.

 

가경장탄식​​歌竟長歎息 노래가 끝나자 길게 탄식하니

지차감인다持此感人多 이 모양 사람을 크게 감동시키누나.

교교운간월​​皎皎雲間月 밝고 밝은 구름 사이의 달이요

작작엽중화灼灼葉中華 곱고 고운 잎 속의 꽃이라오.

 

​​기무일시호豈無一時好 어찌 한때의 좋음이 없으리오마는

불구당여하不久當如何 오래가지 못하니 마땅히 어찌할까?

 

 

권근權近의 <양촌집陽村>2권에 〈의고화도擬古和陶〉 詩가 보인다.

 

아생성나졸我生性懶拙 내 타고난 성품이 게으르고 재주 없어

상염진속훤常厭塵俗喧 항상 세속의 시끄러움 싫어했지.

형문절래왕衡門絶來往 작은 집에 내왕이 끊기니

적아심기편適我心氣偏 나의 치우친 마음에 들어맞네.

 

시승고구망時乘高丘望 이따금 높은 언덕에 올라 바라보니

한운생원산閑雲生遠山 한가로운 구름 먼 산에서 일어나네.

산중유은사山中有隱士 산중의 은사

장왕하시환長往何時還 길이 떠나갔으니 언제나 돌아올까.

 

상사무금탄相思撫琴歎 그리운 생각에 거문고를 어루만지며 탄식하니

유유경수언悠悠竟誰言 아득한 이 마음 끝내 누구에게 말할까.

 

►권근權近(1352 공민왕1-1409 태종9)

조선 전기에 중추원사, 정당문학,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임수간任守幹의 <둔와유고遯窩遺稿>1권에도 도연명의 〈의고〉시에 차운한 시 9首가 실려 있다.

►임수간任守幹(1665 현종6-1721 경종1) 조선 후기에 이조좌랑, 교리, 수찬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용여用汝, 호는 돈와遯窩. 임선백任善伯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임중任重이고

아버지는 우참찬 임상원任相元이며 어머니는 정식鄭植의 딸이다.

 

1690년(숙종 16)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694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 곧 설서가 되었고 정언을 거쳐

1699년 이만성李晩成 등 8인과 함께 홍문록弘文錄(홍문관의 제학이나 敎理를 선발하기 위한 제1차 인사기록)에 올랐다.

 

그 뒤 수찬·교리·정언·부수찬 등을 번갈아 역임하다가 1703년 당쟁의 폐단과 시정時政의 득실을 논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일시 향리에 은거하였다.

곧 재기용되어 지평이 되었고 1707년 사직으로 문신중시文臣重試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이조좌랑 겸 문학·교리·수찬 등을 역임하다가 1709년

사가독서賜暇讀書(문흥을 일으키기 위하여 유능한 젊은 관료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만 전념케 하던 제도)를 하였다.

다음해에 통신부사가 되어 일본에 파견되었으나 대마도주의 간계에 속아 투옥, 파직되었다.

 

1720년에 재기용되어 승지에 올랐다.

그는 경사經史에 밝았으며 음률音律·상수象數·병법兵法·지리 등에도 해박하였다.

저서로 <돈와유집>이 있다.

 

 

其八

소시장차려少時壯且厲 젊었을 때는 씩씩하고 굳세어

무검독행유撫劍獨行遊 검을 쥐고 혼자 돌아다녔다.

수언행유근誰言行遊近 누가 가까운 곳에 갔다하느냐?

장액지유주張掖至幽州 멀리 장액萇掖에서 유주幽州까지 갔었다네.

 

기식수양미饑食首陽薇 배고프면 수양산의 고사리를 먹고

갈음역수류渴飲易水流 목마르면 역수易水의 물을 마셨네.

불견상지인不見相知人 알아주는 사람 만나지 못하고

유견고시구惟見古時丘 오직 옛날의 무덤만 보았을 뿐이다.

 

로변양고분路邊兩高墳 길가 양편에 높다란 무덤은

백아여장주伯牙與莊周 백아伯牙와 장주莊周의 것이라네.

차사난재득此士難再得 이런 훌륭한 사람들 다시 만나기 어려우니

오행욕하구吾行欲何求 내가 나가서 무엇을 찾으려는가!

 

►장차려壯且厲 씩씩하고 또 성정이 강렬함.

►무검撫劍 검을 손에 쥐다.

►장액張掖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유주幽州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북동부에 있다.

►수양미首陽薇 수양산의 고사리.

고죽국孤竹國의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지조를 지키기 위해 수양산에 고사리를 캐어 먹다가

굶어서 죽었다는 고사를 인용하였다.(음주 제2수에서도 인용)

 

►갈음역수류渴飲易水流 목마르면 역수의 물을 마셨네.

진秦나라 왕 정政(후일 진시황제)을 살해하러 진으로 떠나는 날 고점리高漸離는 축을 타고 형가荊軻는

풍소소혜역수한風蕭蕭兮易水寒 바람은 쓸쓸하고 역수 물은 차구나

장사일거혜불부환壮士一去兮不復還 장사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리

하고 노래를 불렀다./<사마천 사기, 자객열전 중 형가>

 

►백아伯牙 춘추시대 거문고[琴]의 명인/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 지음知音/백아절현伯牙絶絃

►장주莊周 장자莊子. 제자백가 중 도가道家의 대표적인 인물이며 노자老子 사상을 계승, 발전시켰다.

►차사此士 백이伯夷, 숙제叔齊, 형가荊軻, 백아伯牙, 장주莊周 등을 말한다.

 

 

도연명이 고시古詩에 의거하기 보다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고사를 인용하여 서술한 시이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자객 형가荊軻,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 도가의 장주莊周 등 고사를 인용하여

절의지사節義志士와 자신을 비유했으며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는 모습이다.

 

 

其九

종상장강변種桑長江邊 장강長江 가에 뽕나무 심어

삼년망당채三年望當采 3년 만에 뽕잎을 따기를 바랐다.

지조시욕무枝條始欲茂 가지가 비로소 무성해지려는데

홀치산하개忽值山河改 홀연히 산하가 뒤바뀌는 경우를 당했다.

 

가엽자최절柯葉自摧折 가지와 잎은 꺾어지고 부러져

근주부창해根株浮滄海 뿌리와 밑둥은 바다로 떠내려갔다네.

춘잠기무식春蠶既無食 봄누에 이미 먹을 것 없으니

한의욕수대寒衣欲誰待 겨울옷은 누가 가져다주리오?

 

본불식고원本不植高原 본래 높은 곳에 심지 않았으니

금일부하회今日復何悔 오늘 다시 후회한들 어찌하겠나!

 

►종상種桑 뽕나무를 심다. 뽕나무는 서진西晋의 상징이기도 하다.

►장강長江 중국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강. 양자강이라고도 한다.

►지조枝條 가지, 줄기.

►가엽柯葉 가지와 잎. 지엽枝葉

►최절摧折 꺾어지고 부러지다.

 

 

이 시는 9수 중 마지막 시로 도연명이 그 당시의 세태를 풍자한 시로 보이며 동진은 유유劉裕가

농민의 반란을 탄압하기 위해 환현桓玄이 집권하자 환현을 진압하고 이에 대한 명분과 북벌 성공으로

새로이 집권에 성공한 뒤 새로운 남조南朝 유송劉宋을 세워 제위에 오르면서 동진은 멸망하게 된다.

3년이란 의희義熙 14년(418)에서 원희元熙 2년(420)을 말한다고 한다.

 

 

한漢나라 때 지어진 작자불명의 시를 <고시古詩>라 하고 이것을 모방한 시가 <의고시擬古詩>이다.

도연명의 〈의고擬古〉 시는 모두 9수로 <도연명집>에 실려 있으며 대략 도연명의 말년인

남조南朝 유송劉宋 초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고시에 의거하기 보다는 자신의 감개를 서술한 시이다.

 

고시는 당나라 때부터 성립한 근체시近體詩와 구분하기 위하여 그 이전의 시체를 통칭하는 말로 쓰였다.

고시는 근체시에서와 같이 字數나 句數의 제한이 자유롭고

평측법平仄法도 없으며 각운脚韻을 다는 데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의고시擬古詩에는 단순히 고시古詩의 형태를 본 떠서 자신의 감회를 표현하기도 하고

고사를 인용하여 은근히 당시의 폐풍을 풍자하거나 자신만의 의미를 붙이기도 하였다.

 

도연명陶淵明은 한漢나라 때 지어진 고시古詩에 바탕을 둔 의고시擬古詩 9수를 지었는데

그 내용은 고시古詩를 모방하였다고 하기보다는 안빈낙도安貧樂道를 강조한 자신의 감개를 서술하였다.

 

이백李白도 의고시擬古詩 19수를 지었고

소식蘇軾은 아예 도연명의 의고擬古에 화운하여 <화도연명의고和陶淵明擬古>를 짓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상촌象村 신흠申欽이 도연명陶淵明의 의고시擬古詩 9수를 모두 화운하여 지은 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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