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漢詩/도연명陶淵明

기記 전傳 술述 찬贊 4. 독사술讀史述 1章

독사술讀史述 사기를 읽고 9편의 글을 짓다

1章 이제夷齊 백이伯夷 숙제叔齊

 

이자양국二子讓國 두 아들은 나라를 양보하고

상장해우相將海隅 서로 이끌고 바닷가로 달아났네.

천인혁명天人革命 하늘과 백성의 뜻에 따라 혁명을 일으키자

절영궁거絕景窮居 자취를 감추고 외진 곳에서 살았다네.

 

채미고가采薇高歌 고사리 캐며 높이 노래 부르고

개상황우慨想黃虞 개탄하며 황제와 순임금을 생각하였네.

정풍릉속貞風淩俗 곧은 지조는 세속을 초월해

완감나부爰感懦夫 겁 많은 자를 감동시키누나.

 

►이제夷齊 백이伯夷와 叔齊숙제. 고죽국孤竹國 군주君主의 두 아들.

은殷나라가 망한 뒤에도 은나라에 대한 충성을 버릴 수 없으며 고죽국 영주로 받는 녹봉 역시 받을 수 없다며

수양산首陽山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다가 굶어서 죽었다.

수양산首陽山은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영제현永濟縣 남쪽에 있는 산.

/<사기열전史記列傳 권61 백이열전伯夷列傳>

 

►상장相將 서로 부축하다.

►해우海隅 바다의 한 구석.

北海북해의 기슭. 맹자 진심장구에

백이벽주伯夷辟紂 거북해지빈居北海之濱 “백이伯夷는 주왕紂王을 피해서 북쪽 바닷가에서 살았다”

라고 하였다./<孟子 盡心章句 上>

 

►천인혁명天人革命 주周 무왕武王이 은殷나라 주왕紂王을 정벌한 것을 말한다.

►응천순인應天順人 천명에 응하고 민의에 순종함.

►절영絕景=절영絶影. 인간 세상을 벗어나 은거하다. 그림자 ‘영景’

►황우黃虞 황제黄帝와 순舜임금. 우순虞舜은 유우씨有虞氏 순舜임금.

 

►나부懦夫 겁쟁이. 비겁한 사람.

<맹자> 만장萬章에

백이伯夷 당주지시當紂之時 “주紂가 다스리던 당시에는

거북해지빈居北海之濱 북해北海의 기슭으로 피해 살면서

이대천하지청야以待天下之清也 천하가 맑아지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고문백이지풍자故聞伯夷之風者 그러므로 백이伯夷의 기풍을 들은 사람들은

완부렴頑夫廉 아무리 우둔하고 탐욕스러운 자라도 청렴해지고

나부유립지懦夫有立志 겁 많은 자라도 지조를 지켰다”라고 하였다./<孟子 萬章 下>

 

 

독사술구장讀史述九章은 동진東晉이 멸망(420)한 직후 남송南宋 영초永初 원년(420년)에

도연명의 56세 때 지은 시로 도연명陶淵明이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를 읽은 감회를 적은 시이다.

 

여독余讀 <史記> 유소감이술지有所感而述之

이 시의 서문에 “내가 사기를 읽고 느낀 바가 있어 이 시를 지었다.”라고 기록하였다.

 

독사술 9장은

1)이제夷齊 2)기자箕子 3)관포管鮑 4)정저程杵 5)72弟子 6)굴원屈賈 7)한비韓非 8)노이유魯二儒

9)장장공張長公에 대하여 매 장마다 4언절구로 지은 영사시咏史詩로

동진東晉이 멸망한 것에 대한 애통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제1장은 제후국인 고죽국孤竹國 군주君主의 두 아들인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은殷나라가 망한 뒤에도

은나라에 대한 충성을 버릴 수 없으며 고죽국 영주로 받는 녹봉 역시 받을 수 없다며 나라를 양위 받지 않고

수양산首陽山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다가 굶어서 죽은 것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표명한 것이다.

/<史記列傳 권61 伯夷列傳>

 

 

●율리유곡栗里遺曲 1.

​김광욱金光煜(1580-1656)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회이晦而, 호는 죽소竹所이다.

 

<퇴우당집退憂堂集 卷10 좌참찬금공묘지명左參贊金公墓誌銘>

​삼재三宰는 좌참찬左參贊의 이칭異稱인데

<승정원일기> 효종 6년 5월 11일 기사에 김광욱을 좌참찬에 임명한 기록이 있다.

 

도연명이 죽은 후에 또 연명이 나타났다는 말이

밤마을의 옛 이름과 마침 같구나

돌아와 전원에 살고자 하는 마음 그와 내가 어찌 다르리

 

율리栗里는 원래 진晉나라 도잠陶潛이 은거하였던 곳인데

여기서는 김광욱이 거처하던 고양시 행주幸州 일대를 가리킨다.

김광욱이 율리에서 지은 17수 연시조 〈율리유곡栗里遺曲〉이 전한다.

 

수졸守拙은 자신의 소박한 본성을 지키면서 전원田園에서 살아가는 것을 말하고

수은酬恩은 조정에서 벼슬하며 나라에 보답하는 것을 말한다.

 

도잠陶潛의 시에

개황남야제開荒南野際 “남쪽 들판의 끝 황량한 밭을 일구고서

수졸귀전원守拙歸田園ㅡ졸렬한 본성 지키며 전원에 돌아와 사노매라.”라는 구절이 있다.

/<​陶淵明集 卷2 歸田園居>

 

세상에선 도연명陶淵明을 정절靖節 선생이라 불렀다.

그는 증조부 도간陶侃이 진晉나라 때 재상을 지냈다는 이유로 후대에 몸을 굽히는 것을 수치로 여겨

시문詩文을 지을 때 동진 의희義熙 전에는 전대前代의 연호를 쓰고

영초永初 후에는 연호를 쓰지 않고 갑자甲子만을 적었다 한다.

 

<도연명집陶淵明集>에 실려 있는 〈독사술讀史述 9章〉은 백이숙제伯夷叔齊, 기자箕子, 굴원屈原 등

역사적 인물 아홉 명을 시로 노래한 것이고 〈영형가詠荊軻〉는 진秦 시황始皇을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형가를 시로 노래한 것으로 이러한 시편들에서 도연명은 진晉이 망하고 유송劉宋이 서자

정절靖節을 지켜 율리栗里에 은거하였지만 단순한 피세避世의 은자隱者가 아니라

마음속으로는 고국인 진晉을 잊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장자(잡편) 第28篇 양왕讓王 15. 굶어 죽은 백이와 숙제

석주지흥昔周之興 옛날 주周나라 왕조가 발흥하던 시기에

유사이인처어고죽有士二人處於孤竹 선비 두 사람이 고죽孤竹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었는데

왈백이숙제曰伯夷叔齊 형 백이伯夷와 동생 숙제叔齊였다.

 

이인상위왈二人相謂曰 두 사람이 상의하여 말하기를

오문서방유인吾聞西方有人 “우리가 들으니 ‘서방西方의 어떤 인물(周의 文王)이 있는데

사유도자似有道者 그가 도道를 체득한 사람인 것 같다.’고 하니

시왕관언試往觀焉 어디 한 번 가보자.”라 하고

지어기양至於岐陽 기산岐山의 남쪽 기양岐陽이라는 곳에 이르렀다.

 

무왕문지武王聞之

〈이때 문왕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 아들〉 무왕武王이 이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

 

사숙단왕견지使叔旦往見之 동생 주공周公 단旦으로 하여금 가서 이 두 사람을 만나 보게 하였다.

 

여맹왈與盟曰 주공은 이 두 사람에게 맹세하여 말하기를

가부이등加富二等 “녹봉은 第二等을 주고

취관일렬就官一列 관위官位는 第一列에 나아가게 할 것이다.”라 하고는

혈생이매지血牲而埋之 희생犧牲을 죽여 그 피를 발라 맹세한 뒤 〈맹약의 문서를〉 땅속에 묻었다.

 

►고죽孤竹 나라 이름. 성현영成玄英은

고죽孤竹 국명國名 재료서在遼西 “고죽孤竹은 나라 이름이니 요서遼西 지역에 있다.”라고 풀이했다.

 

►백이숙제伯夷叔齊

사마표司馬彪는

“고죽군지이자孤竹君之二子 고죽국孤竹國 군주君主의 두 아들”로 풀이했고

 

성현영成玄英은

백이숙제伯夷叔齊 료서고죽군지이자遼西孤竹君之二子 “백이와 숙제는 료서遼西 고죽군의 두 아들이며

신농지예神農之裔 성강씨姓姜氏 신농씨神農氏의 후손으로 성은 강씨姜氏이다”라고 풀이했다.

 

두 사람에 대한 기록은 <史記 伯夷列傳(백이열전>에도 자세한 내용이 전한다.

 

►기양岐陽 기산岐山의 남쪽. 산의 남쪽과 물의 북쪽을 양陽이라 한다.

►숙단叔旦 주공周公 희단姬旦을 지칭하는 말.

주공周公은 무왕武王의 동생이자 성왕成王의 숙부였기 때문에

숙단叔旦이라 호칭한 것이다. 주공周公의 성은 희姬, 단旦은 이름.

 

►가부이등加富二等 녹봉은 第二等을 줌.

성현영成玄英은 “가록이급加祿二級 이등급二等級의 녹봉을 줌이다.”라고 풀이했는데 이 견해를 따라 번역하였다.

림희일林希逸은 “배기록倍其祿 녹봉祿俸을 두 배로 올려줌이다.”라고 풀이했는데

은거한 두 사람에게 본래 녹봉이 있었을리 없기 때문에 녹봉을 두 배로 올려준다는 풀이는 설득력이 약하다.

 

►취관일렬就官一列 관위官位는 第一列에 나아가게 함.

‘취就’를 ‘수授’의 뜻으로 보고 ‘일등의 관작官爵을 수여한다.’는 뜻으로 풀이한 견해(成玄英, 池田知久)가 있으나

여기의 취就는 <論語 季氏>편의 ‘진력취렬陳力就列’의 就와 같이 벼슬자리에

‘나아가다’, ‘나아가게 하다’의 뜻으로 보는 것이 옳다.

 

►혈생이매지血牲而埋之 희생을 죽여 그 피를 발라 맹세한 뒤 땅속에 묻음.

희생犧牲은 제사에 쓰이는 짐승을 말한다.

혈생血牲 매지埋之는 맹약의 내용을 기록한 문서를 땅에 파묻었다는 뜻이다.

 

成玄英은

잉생혈흔기맹서仍牲血釁其盟書 매지단하야埋之壇下也

“이어서 희생의 피를 맹세한 문서에 바르고 단 아래에 파묻음이다.”라고 풀이했다.

 

혈생血牲이 살혈생생殺牲으로 표기된 판본도 있다(륙덕명陸德明).

 

이인상시이소왈二人相視而笑曰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희嘻 이재異哉 “아아! 기이한 행동이로다!

차비오소위도야此非吾所謂道也 이것은 우리가 말하는 道가 아니다.

 

석자신농지유천하야昔者神農之有天下也 옛날에 신농씨神農氏가 천하를 다스릴 때에는

시사진경이불기희時祀盡敬而不祈喜 4時의 제사에는 공경을 다할 뿐 행복을 기원하는 일은 없었으며

 

기어인야其於人也 충신진치이무구언忠信盡治而無求焉

백성들을 대함에는 忠信으로 다스림의 도리를 다하였을 뿐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일은 없었으며

 

낙여정위정樂與政為政 낙여치위치樂與治為治

더불어 정치하는 것을 즐거워하면서 정치를 했고 더불어 다스리는 것을 즐거워하면서

 

불이인지괴자성야不以人之壞自成也 다스려서 타인의 실패를 자기의 성공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불이인지비자고야不以人之卑自高也 타인의 신분이 낮다고 해서 자기의 신분을 높게 여기지 아니하고

불이조시자리야不以遭時自利也 좋은 때를 만났다고 해서 그것을 자기의 이익으로 삼지 아니하였다.

 

►시사진경이불기희時祀盡敬而不祈喜 4時의 제사에는 공경을 다할 뿐 행복을 기원하지 않음.

‘시사時祀’는 사계절에 맞춰 지내는 제사. ‘희喜’는 복. 희禧와 같다.

 

유월兪樾은 희당작희喜當作禧 “희喜자는 마땅히 희禧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굳이 고칠 것까지는 없다.

 

►충신진치이무구언忠信盡治而無求焉 충신忠信으로 다스림의 도리를 다하였을 뿐 백성들에게 요구하지 않음.

위의 ‘시사진경이불기희時祀盡敬而不祈喜’와 대구가 되는 부분으로

극진히 다스릴 뿐 대가를 요구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금주견은지란이거위정今周見殷之亂而遽為政

그런데 지금 주周나라는 은殷나라의 어지러움을 보고서 갑자기 선정善政을 행하여

 

상모이하행화上謀而下行貨 조병이보위阻兵而保威

모략을 숭상하고 뇌물을 바치고, 군대를 믿고 무력으로 지키며

 

할생이맹이위신割牲而盟以為信 희생犧牲을 갈라 그 피로 맹세하여 사람들이 신의를 지키도록 하며

양행이열중揚行以說衆 자기의 행동을 선전하여 민중을 기쁘게 하며

살벌이요리殺伐以要利 전쟁으로 사람을 죽이고 나라를 정벌하여 이익을 요구하니

시추란이역포야是推亂以易暴也 이것은 난정亂政을 미루어 폭정과 바꾸는 것일 뿐이다.

 

오문고지사조치세불피기임吾聞古之士遭治世不避其任

우리는 일찍이 들으니 ‘옛날 사람들은 치세를 만나서는 자기가 해야 할 임무를 피하지 않았고

 

우란세불위구존遇亂世不為苟存 난세를 만나서는 구차하게 살려 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금천하암今天下闇 주덕쇠周德衰 지금 천하는 암흑의 시대가 되었는데 주나라의 덕은 쇠약하니

 

기병호주이도오신야其並乎周以塗吾身也 이 주 왕조 아래 나란히 살아서 우리 몸을 더럽히기보다는

불여피지이결오행不如避之以絜吾行 차라리 이 주나라 세상에서 도망쳐 우리의 행동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낫겠다.”

라고 했다.

 

►상모이하행화上謀而下行貨 모략을 숭상하고 뇌물을 바침. 上은 숭상한다는 뜻. 尙과 같다(왕념손王念孫).

하행화下行貨의 ‘下’는 王念孫의 견해를 따라 잘못 끼어든 글자로 본다.

王念孫은

상모이하행화上謀而下行貨 하자후인소가야下字後人所加也

“상모이하행화上謀而下行貨의 下字는 후세 사람이 덧붙인 것이다.”라고 풀이했다.

 

일본 고산사고초高山寺古鈔본에는 下字가 없기도 하다.

 

►조병이보위阻兵而保威 군대를 믿고 무력으로 지킴. 조阻는 믿고 의지한다는 뜻.

고유高誘는 ‘의依’로, 畢沅은 ‘시恃’로 풀이했다.

 

►추란이역포야推亂以易暴也 난정亂政을 미루어 폭정과 바꾸는 것일 뿐임.

은나라가 폭정을 저지른 것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주나라 또한 정당한 방식으로 통치하지는 못하고 있음을 비꼰 표현이다.

 

성현영成玄英은 가위추주지란이역은지폭야可謂推周之亂以易殷之暴也

“주나라의 난정을 미루어 은나라의 폭정을 바꾼 것이라고 말할 만하다.”라고 풀이했다.

 

이자북지어수양지산二子北至於首陽之山 수아이사언遂餓而死焉

백이․숙제 두 사람은 북쪽으로 수양산首陽山에 이르러 드디어 산속에서 굶어 죽었다.

 

약백이숙제자若伯夷叔齊者 기어부귀야其於富貴也 그러니 백이, 숙제와 같은 사람은 재산과 지위에 대해

구가득이苟可得已 즉필불뢰則必不賴 만약 그만둘 수 있는 경우라면 반드시 그것에 의지하지 않는다.

 

고절려행高節戾行 그러니 절의節義를 고상하게 행하고 덕행을 높이 닦으며

독락기지獨樂其志 다만 홀로 스스로의 높은 뜻을 즐기면서

불사어세不事於世 세속 일을 일삼지 아니하는 것,

차이사지절야此二士之節也 이것이 이 두 사람의 절의이다.

 

►이자북지어수양지산二子北至於首陽之山 수아이사언遂餓而死焉

두 사람은 북쪽으로 수양산에 이르러 드디어 산 속에서 굶어 죽었다.

 

수양지산首陽之山은 수양산首陽山.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영제현永濟縣 남쪽에 있다.

곽상郭象은

논어왈論語曰 백이숙제아우수양지하伯夷叔齊餓于首陽之下 불언기사야不言其死也

“<論語>에는 ‘伯夷와 叔齊가 首陽山 아래에서 굶주렸다.’고 하여 죽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는데

 

이차운사언而此云死焉 여기서 죽었다고 말한 것은

역욕명기수아이종亦欲明其守餓以終 그들이 굶주리는 처지를 끝까지 지키다 죽었음을 밝히고자 한 것일 뿐

미필아사야未必餓死也 반드시 굶어 죽었다는 것은 아니다.”고 하였다.

 

►구가득이苟可得已 즉필불뢰則必不賴 만약 그만둘 수 있는 경우라면 반드시 그것에 의지하지 않음.

‘구苟’는 만약. 가득이可得已의 ’이已‘는 그만둔다는 뜻으로 可得已는 그만둘 수 있음, 곧 不得已의 반대를 뜻한다.

’뢰賴‘를 취取의 뜻으로 풀이하는 견해(림희일林希逸)가 있는데 참고할 만하다.

 

►고절려행高節戾行 절의를 고상하게 행하고 덕행을 높이 닦음.

‘려戾’는 항亢, 곧 높게 한다는 뜻으로(림희일林希逸) 고고孤高하게 행동한다는 뜻이다.

 

옛날 주周나라 왕조가 발흥하던 시기에 선비 두 사람이 고죽孤竹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었는데

형 백이伯夷와 동생 숙제叔齊였다.

 

두 사람이 상의하여 말하기를

“우리가 들으니 ‘서방西方의 어떤 인물(周의 文王)이 있는데

그가 도道를 체득한 사람인 것 같다.’고 하니 어디 한 번 가보자.” 라 하고

기산岐山의 남쪽 기양岐陽이라는 곳에 이르렀다.

 

〈이때 문왕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 아들〉 무왕武王이 이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

동생 주공周公 단旦으로 하여금 가서 이 두 사람을 만나 보게 하였다.

 

주공은 이 두 사람에게 맹세하여 말하기를

“녹봉은 第二等을 주고 관위官位는 第一列에 나아가게 할 것이다.”라 하고는

희생犧牲을 죽여 그 피를 발라 맹세한 뒤 〈맹약의 문서를〉 땅속에 묻었다.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아아! 기이한 행동이로다!

이것은 우리가 말하는 도道가 아니다.

 

옛날에 신농씨神農氏가 천하를 다스릴 때에는

사시四時의 제사에는 공경을 다할 뿐 행복을 기원하는 일은 없었으며

백성들을 대함에는 충신忠信으로 다스림의 도리를 다하였을 뿐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일은 없었으며

 

더불어 정치하는 것을 즐거워하면서 정치를 했고

더불어 다스리는 것을 즐거워하면서

다스려서 타인의 실패를 자기의 성공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타인의 신분이 낮다고 해서 자기의 신분을 높게 여기지 아니하고

좋은 때를 만났다고 해서 그것을 자기의 이익으로 삼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지금 주周나라는 은殷나라의 어지러움을 보고서

갑자기 선정善政을 행하여 모략을 숭상하고 뇌물을 바치고

군대를 믿고 무력으로 지키며

희생犧牲을 갈라 그 피로 맹세하여 사람들이 신의를 지키도록 하며

 

자기의 행동을 선전하여 민중을 기쁘게 하며

전쟁으로 사람을 죽이고 나라를 정벌하여 이익을 요구하니

이것은 난정亂政을 미루어 폭정과 바꾸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일찍이 들으니

‘옛날 사람들은 치세를 만나서는 자기가 해야 할 임무를 피하지 않았고

난세를 만나서는 구차하게 살려 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지금 천하는 암흑의 시대가 되었는데 주나라의 덕은 쇠약하니

이 주 왕조 아래 나란히 살아서 우리 몸을 더럽히기보다는

차라리 이 주나라 세상에서 도망쳐 우리의 행동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낫겠다.”라고 했다.

 

백이․숙제 두 사람은 북쪽으로 수양산首陽山에 이르러 드디어 산속에서 굶어 죽었다.

그러니 백이, 숙제와 같은 사람은

재산과 지위에 대해 만약 그만둘 수 있는 경우라면 반드시 그것에 의지하지 않는다.

 

그러니 절의節義를 고상하게 행하고 덕행을 높이 닦으며

다만 홀로 스스로의 높은 뜻을 즐기면서 세속 일을 일삼지 아니하는 것

이것이 이 두 사람의 절의이다.

 

 

●백이송伯夷頌/한유韓愈

 

사지특립독행士之特立獨行 선비로서 빼어난 뜻을 지니고 탁월한 행동을 하여

적어의이이適於義而已 오직 의로움에 맞게 할 따름이오.

 

불고인지시비不顧人之是非 사람들의 시비는 돌아보지도 않는 다면

개호걸지사皆豪傑之士 모두 위대하고 뛰어난 선비로서

신도독이자지명자야信道篤而自知明者也 도를 믿음이 독실하여 스스로 지혜가 밝은 사람인 것이다

 

일가비지一家非之 온 집안이 그를 비난하더라도

력행이불혹자과의力行而不惑者寡矣 힘써 할 일을 행하며 미혹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지어일국일주비지至於一國一州非之 심지어 온 나라와 온 고을이 그를 비난한데도

력행이불혹자力行而不惑者 힘써 할 일을 행하며 미혹되지 않을 사람이라면

개천하일인이이의盖天下一人而已矣 아마도 온 천하에 한 사람 있을 정도일 것이다

 

약지어거세비지若至於擧世非之 만약 온 세상이 그를 비난하더라도

력행이불혹자力行而不惑者 힘써 할 일을 행하며 미혹되지 않을 사람이라면

즉천백년내일인이이이則千百年乃一人而已耳 곧 백년이나 천년에 한 사람 나올 수 있을 따름일 것이다

 

약백이자若伯夷者 백이 같은 사람은

궁천지긍만세이불고자야窮天地亘萬世而不顧者也

하늘과 땅의 끝에 이르기까지 또는 만고에 걸쳐서 아무것도 돌보지 않았던 사람이다

 

소호일월昭乎日月 환한 해와 달도

부족위명不足爲明 밝다고 할 수가 없었고

 

줄호진산崒乎秦山 우뚝 솟은 태산도

부족위고不足爲高 높다고 할 수 없었으며

 

외호천지巍乎天地 웅장한 하늘과 땅도

부족위용야不足爲容也 넓다고 할 수가 없었다.

 

 

당은지망주지흥當殷之亡周之興 은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일어날 때에

미자현야徵子賢也 미자는 현명한 사람이라

포제기이거지抱祭器而去之 제기들을 안고 나라를 떠났고

 

무왕주공성야武王周公聖也 무왕과 주공은 성인이라

솔천하지현사率天下之賢士 천하의 현명한 사람들을 이끌고

여천하지제후이공지與天下之諸侯而攻之 천하의 제후들과 함께 가서 은나라를 공격하였는데

미상문유비지자야未嘗聞有非之者也 그들을 비난한 사람이 있었다는 말은 들어보지를 못했다

 

피백이숙제자彼伯夷叔齊者 저 백이와 숙제는

내독이위불가乃獨以爲不可 옳지 않은 일이라 여기었다

 

은기멸의殷旣滅矣 은나라가 멸망하여

천하종주天下宗周 천하가 주나라를 떠받들었지만

피이자내독치식기속彼二者乃獨恥食其粟 저들 두 사람만은 주나라의 녹속을 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아사이불고餓死而不顧 굶어 죽게 되는 일까지도 거들떠보지 않았으니

 

요시이언繇是而言 이로써 말할 것 같으면

부기유구이위재夫豈有求而爲哉 어찌 추구하는 것이 있어서 그렇게 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신도독이자지명야信道篤而自知明也 오직 도를 독실히 믿었고 자신의 지혜가 밝았기 때문이니라.

 

금세지소위사자今世之所謂士者 지금 세상의 이른바 선비라는 사람들은

일범인예지즉자이위유여一凡人禮志則自以爲有餘

보통사람 하나가 그를 칭찬하기만 해도 곧 스스로 여유 있다고 여기고

 

일범인저지즉자이위부족一凡人沮之則自以爲不足

보통 사람 하나가 그를 비판하기만 해도 곧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기고 있다

 

피독비성인이자시여차彼獨非聖人而自是如此

백이와 숙제만이 성인들을 비난하며 곧 스스로 이와 같았던 것이다

 

부성인내만세지표준야夫聖人乃萬世之標準也

성인이란 바로 만세의 표준이 되는 분인 것이다

 

여고余故 나는 그래서

왈약백이자曰若伯夷者 말하기를 “백이같은 사람은

특립독행特立獨行 빼어난 뜻을 지니고 탁월한 행동을 하여

 

궁천지긍고만세지표준야窮天地亘古萬世之標準也

하늘과 땅의 끝에 이르기까지 또는 만고에 걸쳐서 아무것도 돌보지 않았던 사람이다”고 한 것이다

 

수연雖然 비록 그러하나

미이자微二子 백이숙제가 없었다면

란신적자亂臣賊子 나라를 어지럽히는 신하와 집안을 망치는 자식들이

접적어후세의接跡於後世矣 후세에 연이어 나왔을 것이니라.

 

►특립독행特立獨行 자기의 소신을 관철하여 일세一世에 홀로 우뚝 나아감.

자신의 주관主觀과 소신所信을 확고부동하게 세우고 관철시켜서 남의 도움이 없이 떳떳하게 세상에 나가는 것.

/예기禮記 유행편儒行篇

 

►미자微子(?-?)는 중국 상나라의 왕족이자 서주의 제후국인 송나라의 초대 공작(재위 BC1038?-BC 1025?)이다.

성은 子, 이름은 계啓이다. 미微나라에 봉해졌고 자작의 작위를 받았으므로 '미자微子'라고 한다.

처음에 미微나라에 봉해졌는데 정치를 현능하게 하니 백성들에게 인정받고 받들어졌다.

 

상나라가 혼란하여 장차 망하게 되니

미자는 여러 번 직접 제신에게 가서 간언하였으나 제신은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태사太師 기자와 소사少師 비간과 모의하였는데 기자가 깨우쳐 말하기를

"정성을 다해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게 된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으나

죽어도 끝내 그렇게 될 수 없으니 떠나감만 못합니다."

라고 하니 이에 제신에게서 멀리 떠나 미나라로 돌아갔다.

 

►무왕武王과 주공周公 주공 단은 주나라의 정치가로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동생이다.

성은 희, 이름은 단, 시호는 문공이다. 아들이 노나라의 제후로 봉해진 이래 노의 시조로서 받들어졌다.

통칭은 주공이라고 불린다.

형인 무왕을 보좌하였고 무왕 사후엔 그의 어린 아들인 성왕을 보좌하고

주나라 건국 이후의 불안한 정국을 안정시켰다.

강태공과 소공 석과 함께 주의 창업 공신의 한 사람이다.

 

►일범인예지즉자이위유여一凡人禮志則自以爲有餘

보통사람 하나가 그를 칭찬하기만 해도 곧 스스로 여유있다고 여기고

 

일범인저지즉자이위부족一凡人沮之則自以爲不足

보통사람 하나가 그를 비판하기만 해도 곧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기고 있다

 

<莊子 소요유逍遙遊>에

차거세이예지이불가권且擧世而譽之而不加勸 그는 온 세상 사람들이 칭찬해도 더 애쓰는 일이 없고

거세이비지이불가저擧世而非之而不加沮 모두가 헐뜯어도 실망하지 않는다.”를 인용한 것이다.

 

►난신적자亂臣賊子 나라를 어지럽히는 신하와 어버이를 해치는 자식을 일컫는 말.

선비가 소신을 관철하여 홀로 우뚝 나아감은 의로움에 맞게 행동할 뿐이다.

사람들의 시비是非를 돌아보지 않는 것은 모두가 위대하고 뛰어난 선비로서

도道를 믿음이 독실하고 스스로의 지혜가 밝기 때문이다.

 

온 집안이 그를 비난하더라도 힘써 할 일을 행하며 미혹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심지어 온 나라와 온 고을이 그를 비난함에 이르러서도 힘써 할 일을 행하며

미혹되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천하에 한 사람뿐일 것이다.

 

만일 온 세상이 그를 비난하더라도 힘써 할 일을 행하며

미혹되지 않는 사람은 백 년이나 천 년에 한 사람뿐일 것이다.

백이伯夷 같은 사람은 하늘과 땅의 끝에 이르고 만대에 걸쳐서도 돌아보지 않았던 사람이다.

 

밝은 해와 달도 밝은 것이 될 수 없고

우뚝 솟은 태산泰山도 높은 것이 될 수 없으며

드넓은 천지도 넓다고 할 수가 없다!

 

은殷나라가 망하고 주周나라가 일어날 때에 미자微子는 현인賢人이었지만 제기祭器를 안고 나라를 떠나갔다,

무왕武王과 주공周公은 성인聖人이었지만

천하의 현자들을 이끌고 천하의 제후들과 더불어 은나라를 공격하였는데

일찍이 그것을 비난한 사람이 있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저 백이伯夷 숙제叔齊라는 이들은 홀로 옳지 않다고 여겼다.

은殷나라가 망한 뒤 온 천하가 주周나라를 받들었지만

저들 두 사람은 유독 주나라의 곡식 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굶어죽으면서도 돌아보지 않았으니

이로써 말한다면 어찌 구하는 것이 있어서 한 것이겠는가?

도道를 믿은 것이 독실하고 자신의 지혜가 밝았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의 이른바 선비라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 하나가 그를 칭찬하면 스스로 뛰어나다고 여기고

보통 사람 하나가 그를 비난하면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긴다.

 

그들만은 유독 성인聖人을 그르다고 하고 스스로를 옳다고 여긴 것이 이와 같았으니

성인聖人은 바로 만세萬世의 표준인데도 말이다.

 

나는 그래서 말하기를

“백이 같은 사람은 소신을 관철하여 홀로 우뚝 나아감이

하늘과 땅의 끝에 이르고 만대에 걸쳐서도 시비를 돌아보지 않았던 사람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비록 그러하나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나라를 어지럽히는 신하와 부모를 해치는 자식이 후세에 발자취를 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