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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도연명陶淵明

남사南史·은일전隱逸傳·도잠陶潛

남사南史·은일전隱逸傳·도잠陶潛/이연수李延壽(?-?)

 

도잠자연명陶潛字淵明 혹운或云 도잠은 자가 연명인데, 어떤 사람은 이르기를,

자심명字深明 명원량名元亮 “자가 심명이고, 이름이 원량이다.” 하였다.

 

심양시상인尋陽柴桑人 진대사마간지증손야晉大司馬侃之曾孫也

심양 시상 사람으로, 진나라 대사마 도간의 증손이다.

 

소유고취少有高趣 택변유오류수宅邊有五柳樹

젊어서부터 고상한 뜻이 있었는데, 집 가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가 있었다.

 

고상저오류선생전운故常著五柳先生傳云 그래서 일찍이 <오류선생전>을 지어 다음과 같이 읊었다.

 

기자서여차其自序如此 개이자황蓋以自況 그가 직접 저술한 것이 이와 같았는데, 자신을 비유한 것으로

시인위지실록時人謂之實錄 당시 사람들은 그것을 사실의 기록이라고 하였다.

 

친로가빈親老家貧 기위주제주起爲州祭酒 모친은 늙고 집안은 가난하여, 나서서 江州의 좨주가 되었으나

불감리직不堪吏職 소일자해이귀少日自解而歸

관직을 감당하지 못해, 며칠 안 되어 스스로 사직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주소주부州召主簿 불취不就 강주에서 주부로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고

궁경자자躬耕自資 수포리질遂抱羸疾 몸소 농사를 지어 자급하다가, 드디어 쇠약해져 병을 갖게 되었다.

 

강주자사단도제왕후지江州刺史檀道濟往候之 언와척뇌유일의偃臥瘠餒有日矣

강주자사 단도제가 찾아갔는데, 여위고 굶주린 채 누워 있었던 것이 여러 날이 되었다.

 

도제위왈道濟謂曰 단도제가 말하기를,

부현자처세夫賢者處世 천하무도즉은天下無道則隱 “현자가 처세하는 것은, 천하에 도가 없으면 은거하고

유도즉지有道則至 도가 있으면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금자생문명지세今子生文明之世 지금 그대는 교화가 잘 이루어진 세상에 살면서

내하자고여차奈何自苦如此 어찌하여 이처럼 스스로 고생을 하시는지요?” 하자

 

대왈對曰 대답하기를

잠야하감망현潛也何敢望賢 “제가 어찌 감히 현자를 기대하겠습니까.

지불급야志不及也 뜻이 미치지 못합니다.” 하였다.

도제궤이량육道濟饋以梁肉 휘이거지麾而去之 단도제가 곡식과 고기를 선물하였으나, 손을 내저어 물리쳤다.

 

후위진군건위참군後爲鎭軍建威參軍 뒤에 진군참군과 건위참군이 되었다.

 

위친붕왈謂親朋曰 친구들에게 이르기를

 

료욕현가聊欲絃歌 이위삼경지자以爲三徑之資 가호可乎

“그런대로 현령이나 하면서 은거의 비용을 마련하고자 하는데 그럴 수 있을까?”하자

 

집사자문지執事者聞之 이위팽택령以爲彭澤令 담당자가 듣고, 팽택현의 현령으로 삼았다.

 

불이가루자수不以家累自隨 집안 식구들을 직접 데리고 가지 못하자

송일력급기자送一力給其子 일꾼 한 명을 아들에게 보내주며

서왈書曰 편지를 썼는데

 

여단석지비汝旦夕之費 자급위난自給爲難 “네가 아침저녁의 번거로운 일을, 직접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금견차력今遣此力 조여신수지로助汝薪水之勞

지금 이 일꾼을 보내, 너의 나무하고 물 긷는 노고를 돕도록 하겠다.

 

차역인자야此亦人子也 가선우지可善遇之

이 사람 또한 남의 집 자식이니, 잘 대우해 주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공전公田 실령리종출도悉令吏種秫稻 관청의 전답에, 아전들에게 명하여 모두 차조를 심게 하자

처자고청종갱妻子固請種粳 아내가 메벼를 심을 것을 간청하였다.

 

내사이경오십무종출乃使二頃五十畝種秫 오십무종갱五十畝種粳

이에 2경 50무에는 차조를 심고, 50무에 메벼를 심게 하였다.

 

군견독우지郡遣督郵至 현리백응속대견지縣吏白應束帶見之

군청에서 독우를 파견하여 이르자, 현의 아전이 관디를 매고 그를 뵈어야 한다고 아뢰었다.

 

잠탄왈潛嘆曰 도잠이 탄식하면서 말하기를,

아불능위오두미我不能爲五斗米 절요향향리소인折腰向鄕里小人

“나는 다섯 말의 녹봉을 위하여, 허리를 굽히고 시골의 소인배를 맞이할 수 없다.”하고는

 

즉일해인수거직即日解印綬去職 부귀거래賦歸去來 그날로 인끈을 풀고 관직에서 떠나 <귀거래혜사>를 지어

이수기지왈以遂其志曰 다음과 같이 자신의 뜻을 드러내었다.

 

의희말징위저작좌랑義熙末徵爲著作佐郞 불취不就 의희 말기에 저작좌랑으로 초빙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강주자사왕홍욕식지江州刺史王弘欲識之 불능치야不能致也

강주자사 왕홍이 그와 알고 지내고자 하였으나, 불러올 수 없었다.

 

잠상왕여산潛嘗往廬山 도잠이 한번은 여산을 가는데

홍령잠고인방통지弘令潛故人龐通之 왕홍이 도잠의 친구인 방통지를 시켜

재주구어반도율리齎酒具於半道栗里 요지要之

길의 중간쯤 지점인 율리에 술 마실 채비를 가지고 가서, 그를 기다리게 하였다.

 

잠유각질潛有脚疾 사일문생이아거람여使一門生二兒擧籃轝

도잠은 다리에 병이 있어, 같은 문하생인 두 아이에게 남녀를 메게 하였는데

 

급지及至 흔연변공음작 欣然便共飮酌

(방통지가 먼저 와서 기다리던 곳에 도연명이)이르자, 기뻐하면서 곧바로 함께 술잔을 주고받았다.

 

아경홍지俄頃弘至 역무오야亦無忤也 잠시 후에 왕홍이 도착하였고, 역시 거슬리는 것이 없었다.

 

선시先是 안연지위류류후군공조顔延之爲劉柳後軍功曹 이보다 앞서, 안연지가 유유의 후군공조가 되어

재심양在尋陽 여잠정관與潛情款 심양에 있으면서, 도잠과 사이가 좋았다.

 

후위시안군後爲始安郡 경과잠經過潛 뒤에 시안군을 다스리게 되어, 지나는 길에 도잠을 방문하였고

매왕필감음치취每往必酣飮致醉 찾아갈 때마다 반드시 거나하게 마셔 취하곤 하였다.

 

홍욕요연지일좌弘欲要延之一坐 미일부득彌日不得

왕홍은 안연지를 초대하여 자리를 함께하고 싶었지만, 종일토록 만나지 못하였다.

 

연지임거延之臨去 류이만전여잠留二萬錢與潛 안연지가 떠나면서, 2만전을 도잠에게 주고 가자

잠실송주가潛悉送酒家 초취취주稍就取酒 도잠은 모두 술집에 보내고, 이따금씩 가서 술을 받아 왔다.

 

상구월구일무주嘗九月九日無酒 한번은 9월 9일[重陽節]에 술이 없어

출택변국총중좌구지出宅邊菊叢中坐久之 집 가에 있는 국화꽃 가운데에 나가서 한참 동안 앉아 있었는데,

봉홍송주지逢弘送酒至 즉변취작即便就酌 마침 왕홍이 술을 보내어 이르자, 곧바로 가져다 마셨고

취이후귀醉而後歸 취한 뒤에 귀가하였다.

 

잠불해음성潛不解音聲 이축소금일장而畜素琴一張

도잠은 음률을 잘 알지 못했지만, 소박한 거문고 한 틀을 가지고 있었다.

 

매유주적每有酒適 첩무롱이기기의輒撫弄以寄其意

매번 술이 거나해지면, 번번이 그것을 어루만지며 자신의 뜻을 기탁하였다.

 

귀천조지자貴賤造之者 유주첩설有酒輒設

귀한이나 천한 이를 막론하고 그를 찾아가면, 술을 마련하여 번번이 차려냈는데

 

잠약선취潛若先醉 변어객便語客 도잠은 만약 먼저 취하면, 바로 손님에게 말하기를,

아취욕면경가거我醉欲眠卿可去 “내가 취해서 자고 싶으니 그대는 가는 것이 좋겠소.”하였으니

기진솔여차其眞率如此 그의 진솔함이 이와 같았다.

 

군장후잠郡將候潛 봉기주숙逢其酒熟

군청에서 사람을 보내 도잠에게 안부하게 하였는데, 마침 술이 익었을 때가 되자

 

취두상갈건록주取頭上葛巾漉酒 필畢 환복착지還復著之

머리 위의 갈건을 벗어 술을 걸렀고, 끝나자, 다시 그것을 썼다.

 

잠약년박환潛弱年薄宦 불결거취지적不潔去就之迹

도잠은 젊은 시절에 낮은 관직에 있었지만, 벼슬길에 나서는 발걸음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자이증조진세재보自以曾祖晉世宰輔 스스로 생각하기를, 증조부가 진대(진대)의, 재상이었기 때문에

치복굴신후대恥復屈身後代 후대에 다시 몸을 굽히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자송무제왕업점융自宋武帝王業漸隆 남조 송 고조[유유劉裕]의, 왕위에 오르는 대업이 점차 무르익자

불복긍임不復肯任 더 이상 벼슬하려 하지 않았다.

 

소저문장所著文章 개제기년월皆題其年月 지은 글들은, 모두 그때의 연도와 달을 썼는데

의희이전義熙以前 명서진씨년호明書晉氏年號 의희 이전은, 진대의 연호를 밝혀서 썼고,

자영초이래自永初以來 유운갑자이이唯云甲子而已 영초 이후로는, 오직 갑자를 썼을 뿐이었다.

 

여자서이언기지與子書以言其志 병위훈계왈幷爲訓戒曰

아들들에게 글을 써서 자신의 뜻을 말하고, 아울러 훈계하였으니, 내용이 다음과 같다.

 

우위명자시이이지又爲命子詩以貽之 또 <명자>라는 시를 지어서 그들에게 주었다.

 

원가사년元嘉四年 장복징명將復徵命 회졸會卒

원가 4년(427)에, 장차 다시 조정에서 초빙하려고 하였는데, 마침 죽었다.

 

세호정절선생世號靖節先生 세간에서 ‘정절선생’이라고 시호를 지었다.

 

기처척씨其妻隻氏 지취역동志趣亦同 그의 아내 적씨도, 뜻과 취향이 또한 같아서

능안고절能安苦節 부지런히 애쓰는 것을 편안히 여길 수 있어서

부경어전夫耕於前 처서어후운妻鋤於後云 남편이 앞에서 밭을 갈면, 아내는 뒤에서 호미질을 하였다.

 

 

당 이연수가 편찬한 <남사南史>에 실려 있는 도연명의 전기이다.

심약이 편찬한 <송서 도잠전> 소통이 기술한 <도연명전> 당 방현령이 편찬한 <진서 도잠전>과

내용이 대동소이하지만 간간이 새로운 내용이나 일화가 추가되어 있다.

/도연명 산문집 김창환 역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