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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 제23권 제31 증상품增上品 ⓵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 제23권 제31 증상품增上品 ⓵

 

一. ​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셨다.

 

그때에 생루生漏 바라문은 세존께 나아가 서로 문안하고 한쪽에 앉아 세존께 사뢰었다.

"굴 속에 한가히 사는 것은 매우 괴로울 것이요 혼자 있고 외로이 다니면서 마음 쓰기는 매우 어렵겠습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렇다, 범지여.

네 말과 같다. 굴속에서 한가히 사는 것은 매우 괴롭고 혼자 있고 외로이 다니면서 마음 쓰기는 매우 어렵다.

왜 그러냐 하면 내가 옛날 아직 부처되기 전에 보살행을 닦을 때에는 늘 이렇게 생각하였다.

'굴속에서 한가히 사는 것은 매우 괴롭고 혼자 있고 외로이 다니면서 마음 쓰기는 매우 어렵다'고."

 

바라문은 사뢰었다.

"선남자로서 견고한 믿음으로 집을 나와 도를 배우는 사문 고오타마께서

가장 우두머리가 되어 중생들을 위해 많은 이익을 끼치고 그들의 길잡이가 되나이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렇다, 바라문이여. 네 말과 같다.

모든 선남자로서 견고한 믿음으로 집을 나와 도를 배우는 이로는

내가 우두머리가 되어 중생들을 위해 많은 이익을 끼치고 그들의 길잡이가 된다.

 

만일 그들이 나를 보고 부끄러워하여 산이나 늪이나 고요한 굴속으로 가면 그 때에 나는 생각한다.

'저 사문이나 바라문은 몸의 행이 깨끗하지 못하다.

몸의 행이 깨끗하지 못하면서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을 친하더라도 그것은 한갓 수고만 더할 뿐이다.

그들은 진실한 행을 가지지 못해서 그 좋지 않은 법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고.

 

그러나 나는 지금 몸의 행이 깨끗하면서 한적한 곳을 친한다.

몸의 행이 깨끗하지 못하면서 한적한 곳을 친하는 것은 내게는 관계없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지금 몸의 행이 깨끗하여 모든 아라한으로서 몸의 행이 깨끗한 이가

굴속에서 한가히 살기를 즐기는 이들 중에서 내가 가장 우두머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바라문이여,

나는 스스로 내 몸을 관찰하여 그 행이 깨끗하기 때문에 한적한 곳을 즐겨 그 기쁨은 곱절이나 더하느니라.

 

그때에 나는 다시 생각하였다.

'저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뜻의 행과 命의 행이 깨끗하지 못하면서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을 친한다.

그들이 아무리 그것을 친하더라도 그것은 진정한 것이 아니어서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모두 두루 갖추었다'고.

 

그러나 그것은 내게는 관계없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지금 몸, 입, 뜻, 명의 행이 깨끗하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몸, 입, 뜻, 명이 깨끗하면서

한적하고 청정한 곳에 있기를 즐긴다면 그것은 내게 관계가 있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지금 몸, 입, 뜻, 명이 깨끗하니 몸, 입, 뜻, 명이 깨끗한 모든 아라한으로서

한적한 곳에 있기를 즐기는 이들 중에서 내가 가장 우두머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바라문이여,

나는 몸, 입, 뜻, 명이 깨끗하기 때문에 한적한 곳에 있을 때에도 그 기쁨이 곱절이나 더 하느니라.

 

그때에 나는 또 생각하였다.

'이른바 저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두려움이 많으면서 한적한 곳에 있다.

그때에 그들은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두려워 한다'고.

 

그러나 나는 지금 두려움이 전연 없으면서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에 산다.

저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한적한 곳에 사는 것은 내게는 관계없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지금 두려움이 전혀 없이 한적한 곳에 살면서 스스로 즐거이 놀기 때문이다.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한적한 곳에 사는 것은 내게는 관계없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지금 괴로움과 근심을 떠나 그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바라문이여,

나는 이런 이치를 관찰하고는 두려움이 없어 그 기쁨은 더욱 더 하느니라.

 

저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남을 헐고 자기를 칭찬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한적한 곳에 있더라도 그 생각이 깨끗하지 못하다.

 

그러나 범지여, 나는 남을 헐지도 않고 스스로 칭찬하지도 않는다.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허는 사람은 내게는 관계가 없다.

나는 지금 교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만이 없는 여러 성현 중에서 내가 가장 우두머리가 된다.

나는 이 이치를 관찰하고는 그 기쁨이 배나 더 하느니라.

 

저 사문들은 이익을 구해 쉴 줄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익을 구하는 일이 없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지금 남에게 구하는 것이 없고 스스로 만족할 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만족할 줄 아는 이 중에서 가장 우두머리가 된다.

나는 이 이치를 관찰하고는 그 기쁨이 곱절이나 더 하느니라.

 

저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게으른 생각을 가져 부지런히 노력하지 아니하면서 한적한 곳을 친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관계없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지금 용맹스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게으르지 않다.

그러므로 용맹스런 마음을 가진 성현들 중에서 내가 가장 우두머리가 된다.

나는 이 이치를 관찰하고는 그 기쁨이 배나 더 하느니라.

 

그때에 나는 다시 생각한다.

'저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잊어버리기를 잘하면서 한적한 곳에 산다.

비록 거기 살더라도 아직도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있다'고.

 

그러나 나는 지금 잊어버리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범지여, 저 잊어버리는 일은 내게는 관계없다.

그러므로 잊어버리지 않는 여러 성현들 중에서 내가 가장 우두머리가 된다.

나는 이 이치를 관찰하고는 한적한 곳에 사는 기쁨이 곱절이나 더 하느니라.

 

나는 그때에 다시 생각한다.

'저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마음이 어지러워 고요하지 못하다.

그들은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있어 악행을 행한다'고.

 

그러나 나는 지금 뜻이 전연 어지럽지 않고 마음이 늘 한결같다.

그러므로 저 뜻이 어지럽고 마음이 고요하지 않는 것은 내게는 관계가 없다.

나는 늘 마음이 한결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성현들로서 마음이 일정한 이가 있다면 내가 가장 우두머리가 될 것이다.

나는 이 이치를 관찰하고는 한적한 곳에 살지마는 그 기쁨이 곱절이나 더 하느니라.

 

​나는 그때에 또 이렇게 생각한다.

'저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어리석고 어둡기 양 떼와 같아서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있다'고.

 

그러나 그것은 내게는 관계가 없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지금 항상 지혜로워 어리석지 않으면서 한적한 곳에 산다.

 

만일 이런 행이 있는 이라면 그는 내게 관계있다.

나는 지금 지혜를 성취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를 성취한 사람 중에서 내가 가장 우두머리가 된다.

나는 이 이치를 관찰하고는 한가한 곳에 살지마는 그 기쁨은 곱절이나 더 하느니라.

 

​내가 항상 한적하게 사는 동안에 때로는 나무가 부러지고 짐승들이 내달리는 일이 있다.

그때에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대외림大畏林이다'고.

나는 다시 생각한다. '만일 두려움이 생기면 방편을 구해 두려움이 생기지 않게 하리라'고.

 

내가 거닐 때에 두려움이 생기면 나는 앉지도 않고 눕지도 않고 기어코 그 두려운 생각을 없앤 뒤에야 앉는다.

내가 섰을 때에 두려움이 생기면 나는 거닐지도 않고 앉지도 않고 기어코 두려움을 없앤 뒤에야 앉는다.

내가 앉았을 때에 두려움이 생기면 나는 거닐지도 않고 기어코 그 두려움을 없앤 뒤에야 앉는다.

내가 누웠을 때에 두려움이 생기면 나는 거닐지도 않고 앉지도 않고 기어코 그 두려움을 없앤 뒤에야 앉는다.

 

범지여, 알라. 저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밤이고 낮이고 도법을 모른다.

나는 지금 저들을 어리석다고 말한다.

 

그러나 범지여, 나는 밤이나 낮이나 도법을 안다.

그래서 더욱 용기를 내어 허망하지 않고 뜻이 어지럽지 않으며 마음은 늘 한결같다.

탐욕은 없지마는 머트러운 관찰과 세밀한 관찰이 있어 기쁨과 즐거움을 생각하면서 첫째 선정에서 스스로 논다.

범지여, 이것이 이른바 '내가 첫째 마음으로 현세에서 스스로 즐긴다'는 것이니라.

 

나는 스스로 마음속에 생각이 없는 것을 관찰해 알고

몸의 즐거움을 깨달아 성현들의 바라는 보호하는 생각이 즐거운 셋째 선정에서 논다.

범지여, 이것이 이른바 셋째 마음이라 하느니라.

 

다시 괴로움과 즐거움이 없어지고 근심과 기쁨도 없으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보호하는 생각이 청정한 넷째 선정에서 논다.

범지여, 이것이 이른바 '넷째의 보다 더 훌륭한 마음으로서 스스로 깨달아 마음에서 논다'는 것이니라.

 

나는 한적한 곳에 있을 때에는 이 네 가지 보다 더 훌륭한 마음이 있다.

나는 이 삼매에 드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또한 번뇌가 없으며 두려움이 없어 과거 무수한 겁의 전생 일을 스스로 안다.

 

그때에 나는 一생, 二생, 三생, 四생, 五생, 十생, 二十생, 三十생, 四十생, 五十생, 백생,

천생과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겁 일을 모두 다 아느니라.

 

즉 나는 어디서 나서 사는 무엇이며 이름이 무엇이었던가,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았던가,

저기서 죽어 여기서 나고 여기서 죽어 저기서 난 인연의 본말을 모두 밝게 나느니라.

 

범지여, 알라.

나는 혹 초저녁에 첫 지혜를 얻으면 무명을 없애어 다시는 어두움이 없고 마음은 한적한 곳을 즐기어 스스로 깨달아 안다.

 

그래서 삼매에 드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티나 더러움이 없고

또 번뇌도 없으며 두려움이 없게 되고 다시 중생의 나는 이와 죽는 이를 알게 된다.

 

나는 다시 하늘 눈으로 중생들의 나는 이와 죽는 이, 좋은 몸과 나쁜 몸, 좋은 길과 나쁜 길,

혹은 좋고 추한 것은 다 그 행의 선, 악을 다 따른 다는 것을 모두 분별한다.

 

즉 어떤 중생은 몸으로 악을 행하고 입과 뜻으로 악을 행하여

성현을 비방하고 항상 삿된 소견을 가져 삿된 소견과 서로 어울리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옥에 났느니라.

 

또 어떤 중생은 몸으로 선을 행하고 입과 뜻으로 선을 닦아 성현을 비방하지 않고 항상 바른 소견을 닦아

바른 소견과 서로 맞으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천상의 좋은 곳에 났느니라.

 

나는 다시 깨끗하여 더러움이 없는 하늘 눈으로 중생들의 나는 이와 죽는 이,

좋은 몸과 나쁜 몸, 좋은 길과 나쁜 길, 혹은 좋고 추한 것은 그 본래의 행을 따른다는 것을 다 아느니라.

 

범지여, 알라.

혹은 밤중에 둘째 지혜를 얻으면 다시는 어두움이 없어 스스로 깨달아 한적한 곳을 즐기느니라.

 

나는 다시 삼매에 드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청정하여 티나 더러움이 없고 또 번뇌도 없으며

생각은 고요하여 두려움이 없고 번뇌가 없어진 마음을 얻어

'이것은 괴로움이다.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다'고 안다.

 

내가 이 마음을 얻을 때에는 탐욕의 번뇌와 생존의 번뇌와

무명의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해탈함으로써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긴다.

그래서 나고 죽음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생 몸[胎]을 받지 않을 줄을 여실히 안다.

 

범지여,

이것이 이른바 '내가 새벽에 셋째 지혜를 얻어 다시는 어두움이 없다'는 것이니라.

 

어떠냐, 범지여. 범지는 혹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는 탐하는 마음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이 다하지 못했으면서 한적한 곳에 산다'고.

 

범지여, 그렇게 보지 말라.

왜 그러냐 하면 여래는 지금 모든 번뇌가 아주 없어지고 항상 한적한 곳을 즐겨 사람들 속에 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이 이치를 보았기 때문에 한적한 곳을 즐기는 것이다.

거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스스로 한적한 곳을 즐겨 노는 것과 중생을 한량없이 제도하는 것이니라."

 

생루 바라문은 사뢰었다.

"중생을 위하고 일체를 가엾이 여기기 때문이옵니다."

 

범지는 다시 사뢰었다.

"이제 그만 두소서, 세존이시여. 충분히 들었나이다.

나는 마치 곱추가 등이 펴지고 헤매는 이가 길을 얻고 장님이 눈을 얻고 어두운 데서 등불을 본 것 같나이다.

그처럼 사문 고오타마께서는 무수한 방편으로 나를 위해 설법하셨나이다.

나는 지금 부처님과 법과 중에게 귀의하나이다.

지금부터 다섯 가지 계율을 받들어 가져 다시는 살생하지 않고 우바새가 되겠나이다."

 

그때에 생루 바라문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二.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코오삼비이국 코오시타라 동산의 과거의 네 부처님이 계시던 곳을 지내셨다.

 

그때에 우전왕優塡王과 五백 여자와 사미 부인들은 동산 놀이를 나갔다.

마침 그때에 슈라아바스티이 성안의 어떤 비구는 생각하였다.

'나는 세존님과 헤어진 지 오래다. 지금 가서 예배하고 문안드리리라'고.

 

그 비구는 때가 되어 가사를 입고 바루를 가지고 슈라아바스티이에 들어가 걸식한 뒤에

가사와 바루와 좌구를 두고 신통으로 허공을 날아 코오삼비이의 동산으로 갔다.

그는 신통을 거두고 어떤 숲으로 들어가 한적한 곳에서 가부하고 앉아 몸과 마음을 바루고 생각을 매어 앞에 두고 있었다.

 

그때에 사미 부인은 五백 여자를 데리고 그 숲으로 왔다.

그는 멀리서 어떤 비구가 신통으로 나무 밑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그 앞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한 뒤에 합장하고 서 있었다.

五백 부인들도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한 뒤에 합장하고 물러 서 있었다.

 

때에 우전 왕은 멀리서 五백 여자들이 합장하고 그 비구를 둘러싸고 서 있는 것을 보고 곧 생각하였다.

'저기는 반드시 사슴 떼나 다른 짐승이 있을 것이다. 의심할 것 없다'고.

 

왕은 곧 말을 타고 급히 달려 그 여자들 모인 속으로 갔다.

사미 부인은 왕이 오는 것을 보고 생각하였다.

'저 우전 왕은 흉악한 성질을 가졌다. 반드시 이 비구를 해칠 것이다'고.

 

때에 부인은 손을 들고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은 알으소서. 이 사람은 비구입니다. 놀라지 말으소서."

 

왕은 곧 말에서 내려 활을 버리고 비구에게로 가서 말하였다.

"비구여, 나를 위해 설법하라."

 

비구는 눈을 들어 왕을 우러러보고는 잠자코 말하지 않았다.

왕은 다시 말하였다.

"빨리 나를 위해 설법하라."

 

비구는 또 눈을 들어 왕을 우러러보고는 잠자코 말하지 않았다.

왕은 생각하였다.

'나는 이제 선정의 중간 일에 대해서 물어 보리라.

만일 나를 위해 설법하면 그를 공양하고 또 목숨이 다할 때까지 의복, 음식, 평상, 침구, 의약을 줄 것이요,

만일 나를 위해 설법하지 못하면 곧 잡아죽이리라'고.

 

왕은 다시 말하였다.

"비구여, 나를 위해 설법하라."

 

비구는 여전히 잠자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에 나무 신은 왕의 마음을 알고 멀리서 사슴 떼를 변화해 만들어 왕의 이목을 어지럽혀 딴 생각을 일으키려 하였다.

 

왕은 멀리서 그 사슴들을 보고 생각하였다.

'우선 이 사문을 버려두자. 제가 어디로 가 숨겠는가'고.

 

곧 말을 타고 가서 사슴 떼를 쏘았다.

그때에 부인은 비구에게 말하였다.

"비구님, 어디로 가시고 싶습니까."

 

비구는 대답하였다.

"네, 부처님이 계시던 곳으로 가서 세존님을 뵈오려 하오."

 

​"비구여,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빨리 그리로 가시오, 여기 머무르지 마시오,

왕의 해침을 받으면 왕의 죄는 매우 중할 것입니다."

 

비구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와 바루를 챙겨 가지고 허공을 날아 머리 떠났다.

부인은 비구가 허공을 날아 멀리 떠나는 것을 보고 곧 왕에게 소리쳤다.

 

"대왕은 저 비구를 보소서. 저렇게 큰 신통이 있나이다.

지금 허공에서 자유로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나이다.

저 비구도 저런 신통이 있는데 하물며 석가모니 부처님이겠나이까."

 

때에 그 비구는 코오시타라 동산으로 가서 신통을 버리고 보통 법으로 돌아와 세존께 나아갔다.

그는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앉았다.

 

그때에 세존께서는 그 비구에게 물으셨다.

"어떤가, 비구야. 슈라아바스티이에서 여름 안거를 지냈는가. 때를 따라 걸식하기는 괴롭지 않던가."

 

비구는 사뢰었다.

"저는 슈라아바스티이에 있으면서 아무 괴로움도 없었나이다."

 

"그러면 왜 여기 왔는가."

"세존께 문안드리러 일부러 왔나이다."

 

"너는 지금 나와 이 네 부처님의 사시던 곳을 보는가. 너는 지금 그 왕의 손을 벗어났는가. 그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너는 왜 왕을 위해 설법하지 않았는가. 우전 왕은 말하지 않았던가.

즉 '비구여, 지금 나를 위해 설법하라. 너는 왜 나를 위해 설법하지 않는가'고.

 

만일 네가 왕을 위해 설법하였더라면 왕은 매우 기뻐하였을 것이요,

기뻐하고는 목숨을 마칠 때까지 의복, 음식, 평상, 침구, 의약 등을 이바지하였을 것이다."

 

"그때에 그 왕은 선정의 중간 일에 대해서 물으려 하였나이다. 그래서 그 이치를 대답하지 않았나이다."

"비구야, 너는 왜 왕을 위해 선정의 중간 일을 설명하지 않았는가."

 

"우전 왕은 선정을 근본으로 삼고 흉악한 마음을 품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 헤아릴 수 없이 중생을 죽였나이다.

그는 탐욕과 서로 어울리고 세 가지 독이 왕성하여 깊은 구렁에 빠져 바른 법을 보지 못하며

의혹하고 무지하여 온갖 악이 두루 모이고 교만을 부리나이다.

 

그는 왕이라는 세력을 기대어 재보를 탐하고 집착하며 세상 사람을 업신여기고 눈이 없는 장님이옵니다.

그런 사람이 선정해서 무엇 하겠나이까.

 

대개 선정이란 모든 법 중에서도 가장 묘하여 깨달아 알기 어렵고 형상이 없으며

마음으로 헤아릴 수 없어서 그것은 보통 사람의 미칠 바가 아니요 지혜로운 사람만이 알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왕을 위해 설법하지 않았나이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헌 옷은 반드시 씻어야 깨끗해지고 왕성한 욕심은 더럽다는 생각을 닦아야 없어지며

성내는 마음이 왕성하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없애고 어리석은 어두움은 12가지 인연법을 서야 없앨 수 있다.

 

그런데 비구야, 너는 왜 그 우전 왕을 위해 설법하지 않았느냐.

만일 그를 위해 설법하였더라면 그는 못내 기뻐하였을 것이다.

아무리 성한 불도 끌 수 있겠거늘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비구는 잠자코 말하지 않았다.

세존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여래가 세상을 살아가는 법은 참으로 기이하고 특별하다.

설사 하늘, 용, 귀신, 건달바가 와서 여래에게 이치를 묻더라도 나는 그들을 위해 설명할 것이다.

 

만일 국왕이나 대신이나 백성들이 와서 여래에게 이치를 묻더라도 나는 그들을 위해 설명할 것이요,

크샤트리야 등 네 가지 성 받이가 와서 여래에게 이치를 묻더라도 나는 그들을 위해 설명할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지금 여래는 네 가지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설법하기에 겁내거나 약하지 않고

네 가지 선정을 얻었기 때문에 거기서 자재를 얻었으며

또 네 가지 신통을 얻어 헤아릴 수 없고 다시 네 가지 평등한 마음을 쓰기 때문에 여래는 설법하기에 겁내거나 약하지 않다.

 

그것은 아라한이나 벽지불의 미칠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설법하기에 어려움이 없느니라.

 

너희 비구들도 방편을 구해

사랑하는 마음, 가엾이 여기는 마음, 기뻐하는 마음, 보호하는 마음 등의 네 가지 평등한 마음을 닦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왜 그러냐 하면 만일 비구로서 중생이나 선지식을 위하거나 부모나 친척을 만나면

네 가지 일로써 법을 알게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네 가지인가.

첫째는 부처님을 공경하는 것이다.

이때의 여래란 아라한, 다 옳게 깨달은 이, 지혜와 행을 갖춘 이, 잘 간 이, 세상 아는 이, 위없는 선비,

도법으로 어거하는 이, 천상과 인간의 스승, 부처, 중우로서 사람을 한량없이 제도하신 분이니라.

 

다음에는 법을 구하는 것이다.

바르고 진실한 법을 닦아 행해 더럽고 나쁜 행을 버리는 것이니 이것은 지혜로운 사람의 닦아 행할 바이니라.

 

다음에는 방편을 구해 중을 공양하는 것이다.

여래 무리란 항상 서로 화합하여 다툼이 없고 법을 성취하고

계율과 삼매와 지혜와 해탈과 해탈 지견을 성취한 사람으로서 이른바 네 쌍과 여덟 가지 무리의 12선비이다.

이 여래의 거룩한 무리는 존경할 만하고 높일 만하여 세상의 위없는 복 밭이니라.

 

다음에는 물들거나 더러움이 없고 지극히 고요하고 함이 없는 성현의 법을 권하고 도와 행하게 하는 것이니라.

만일 비구로서 도를 행하고자 하면 이 네 가지 법을 두루 함께 행하도록 하라.

 

왜 그러냐 하면 거룩한 세 분에게 법으로 공경하는 것은 가장 거룩하고

가장 높아 아무 것도 거기에 미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三.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셨다.

 

"네 가지 행적行跡이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첫째는 즐거운 행적이니 그 행하는 것이 미련하다. 이것을 첫째 행적이라 한다.

다음에도 즐거운 행적이니 그 행하는 것이 날카롭다.

다음에는 괴로운 행적이니 그 행하는 것이 미련하고

다음에도 괴로운 행적이니 그 행하는 것이 날카로우니라.

 

어떤 것이 즐거운 행적으로서 그 행하는 것이 미련한가.

어떤 사람은 탐욕이 왕성하고 성냄과 어리석음이 왕성하여 그 행하는 것이 매우 괴로워 행의 근본과 서로 맞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다섯 가지 뿌리가 어리석고 어두워 날카롭지 못하다.

 

다섯 가지 뿌리란 이른바 믿음 뿌리, 정진 뿌리, 생각 뿌리, 지혜 뿌리, 선정 뿌리다.

그러나 이 미련한 마음으로도 삼매를 구해 번뇌를 없애면 이것을 일러

'즐거운 행적의 둔한 근기로서 도를 얻은 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즐거운 근기로서 그 행적이 날카로운가.

어떤 사람은 욕심과 음욕이 없고 또 탐욕도 치우쳐 적어 간절히 구하지 않으며, 성냄과 어리석음이 자꾸 줄어든다.

 

또 다섯 가지 뿌리는 날카로워 게으르지 않다.

다섯 가지 뿌리란 이른바 믿음 뿌리, 정진 뿌리, 생각 뿌리, 선정 뿌리, 지혜 뿌리니 이것이 다섯 가지 뿌리다.

그는 다섯 가지 뿌리를 얻어 삼매를 성취하고 번뇌를 없애어 번뇌가 없게 된다.

이것을 일러 '날카로운 근기의 도둑을 행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괴로운 행적으로서 그 행이 미련한가.

어떤 사람은 음욕이 치우쳐 많고 성냄과 어리석음이 왕성하다.

그는 이 법으로 스스로 즐기면서도 번뇌를 없애고 번뇌가 없게 된다.

이것을 일러 '괴로운 행적의 미련한 근기'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괴로운 행적으로서 그 행이 날카로운가.

어떤 사람은 욕심도 적고 음욕도 적으며 성냄이 없고 또 생각을 일으켜 이 세 가지 법을 행하지도 않는다.

 

그때에 그는 다섯 가지 뿌리를 가져 조금도 이지러짐이 없다.

다섯 가지 뿌리란 이른바 믿음 뿌리, 정진 뿌리, 생각 뿌리, 선정 뿌리, 지혜 뿌리니 이것이 다섯 가지 뿌리다.

그는 이 법으로 삼매를 얻고 번뇌를 없애어 번뇌가 없게 된다.

이것을 일러 '괴로운 행적의 날카로운 근기'라 하느니라.

 

비구들이여, 이것을 네 가지 행적이라 한다.

마땅히 방편을 구해 앞의 세 가지 행적은 버리고 뒤의 한 가지 행적을 다 받들어 행하라.

 

왜냐 하면 괴로운 행적의 삼매는 얻기는 어렵지마는

이미 얻고 나면 곧 도를 이루어 이 세상에 오랫동안 머무르기 때문이다.

그 까닭은 즐거움으로는 즐거움을 구할 수 없고 괴로움으로 말미암아 도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은 항상 방편을 구해 이 행적을 성취하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四.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의 카란다 대나무 동산에서 큰 비구들 五백인과 함께 계셨다.

 

그때에 네 범지는 모두 다섯 가지 신통을 얻었고 착한 법을 수행하면서 한 곳에 모여 의논하였다.

'죽음의 사자使者가 올 때에는 그 억센 힘을 피하려 하지 말고 제각기 숨어 그 사자로 하여금 어디로 올지 모르게 하자'고.

 

그래서 한 범지는 허공에 올라가 죽음을 면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 죽음을 못 면하고 공중에서 목숨을 마쳤다.

 

둘째 범지는 큰 바다 밑에 들어가 죽음을 면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목숨을 마쳤다.

셋째 범지는 죽음을 면하려고 수미산 중턱에 들어갔으나 거기서 죽었다.

넷째 범지는 땅 속에 들어가 금강제金剛際에 이르러 죽음을 면하려 하였으나 그도 거기서 목숨을 마쳤다.

 

그때에 세존께서는 한 눈으로 그 네 범지들이 제각기 죽음을 피하려 하였으나

모두 한꺼번에 목숨을 마친 것을 보시고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하늘도 아니요 바다 속도 아니요 험한 산의 바위 속에 들어갈 것 아니다

어디 가서 숨을 그 곳 없나니 이것을 벗어나면 죽음 받지 않으리.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범지 네 사람이 한 곳에 모여 죽음을 면하려고 제각기 갈 곳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죽음을 면하지 못하였다.

한 사람은 허공에 있었고 한 사람은 바다 속으로 들어갔으며

한 사람은 산 중턱에 들어갔고 한 사람은 땅 속에 들어갔다가 모두 한꺼번에 죽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죽음을 면하고자 하거든 마땅히 네 가지 법의 근본을 생각하라.

어떤 네 가지인가.

'일체의 행은 덧없다.' 이것은 첫째의 법의 근본이니 잘 생각해 수행하라.

'일체의 행은 괴롭다.' 이것은 둘째의 법의 근본이니 다 함께 생각하라.

'일체의 법은 <나>가 없다.' 이것은 셋째의 법의 근본이니 다 함께 생각하라.

'아주 사라진 것은 열반이다.' 이것은 넷째의 법의 근본이니 다 함께 생각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이 네 가지 법의 근본을 다 함께 생각하라.

왜 그러냐 하면 그로써 곧 남, 늙음, 병, 죽음, 근심, 걱정, 괴로움, 번민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괴로움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방편을 구해 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셨다.

 

"33천에 네 개의 동산이 있다.

여러 하늘은 거기서 다섯 가지 향락을 누리면서 스스로 즐긴다.

 

어떤 넷인가.

난단반나 동산, 추삽 동산, 주야書夜 동산, 잡종雜種 동산이다.

 

그리고 그 네 개의 동산 안에는 네 개의 목욕 못이 있다.

그것들은 지극히 차고 향기로우며 가볍고 편리하고 몹시 맑은 못들이다.

 

어떤 넷인가,

첫째는 이름이 난타難陀요, 둘째는 이름이 난타정難陀頂이요, 셋째는 이름이 소마蘇摩요, 넷째는 이름이 환열歡悅이다.

 

비구들이여, 알라.

그 네 개의 동산 안에는 네 개의 목욕 못이 있어 사람의 몸을 향기롭고 조촐하여 때가 없게 하느니라.

 

왜 난단반나 동산이라 하는가.

만일 33천이 그 난단반나 동산에 들어가면 마음이 기뻐 어쩔 줄을 모르면서 그 안에서 스스로 즐긴다.

그러므로 난단반나 동산이라 한다. 또 왜 추삽 동산이라 하는가.

 

만일 33천이 그 동산에 들어가면 몸이 매우 거칠어진다.

마치 겨울에 향을 바르면 몸이 매우 거칠어지는 것처럼

33천이 그 동산에 들어가면 몸이 매우 거칠어져 보통 때와 달라진다.

그러므로 추삽 동산이라 한다.

 

또 왜 주야 동산이라 하는가.

만일 33천이 그 동산에 들어가면 그 하늘들의 얼굴빛은 각각 달라져 여러 가지 형체가 된다.

마치 여자들이 여러 가지 옷을 입으면 본래 형상과 달라지는 것처럼

33천이 그 동산에 들어가면 여러 가지 모양이 되어 본래와 같지 않다.

그러므로 주야 동산이라 한다.

 

또 왜 잡종 동산이라 하는가.

가장 높은 하늘과 중간 하늘과 밑의 하늘이 그 동산에 들어가면 모두 동일한 종류가 되지마는

만일 가장 밑의 하늘이면 다른 세 개의 동산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마치 전륜성왕이 들어갔던 동산에는 다른 왕은 거기 들어가 목욕하지 못하고 백성들은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처럼

가장 높은 하늘이 들어가 목욕한 동산에는 다른 작은 하늘들은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잡종 목욕 못이라 하느니라.

 

다시 왜 난타 목욕 못이라 하는가.

만일 33천이 그 못에 들어가면 매우 기쁜 마음이 생긴다.

그러므로 난타 목욕 못이라 한다.

 

또 왜 난타정 목욕 못이라 하는가.

만일 33천이 그 동산에 들어가면 서로 두 손 맞잡고 그 정수리를 문질러 씻는다.

하늘 아씨도 그와 같이 한다. 그러므로 난타정 목욕 못이라 하느니라.

 

​또 왜 소마 목욕 못이라 하는가.

33천이 그 못에 들어가면 그 하늘들의 얼굴은 모두 사람 모양 같아서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소마 목욕 못이라 하느니라.

 

또 왜 환열 목욕 못이라 하는가.

만일 33천이 그 못에 들어가면 모두 높다 낮다는 교만한 생각이 없고

음탕한 생각이 아주 적어져 꼭 같은 마음으로 목욕한다.

그러므로 환열 목욕 못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인연으로 그런 이름이 있게 되었느니라.

 

그와 같이 여래의 바른 법안에도 네 개 동산의 이름이 있다. 어떤 것인가.

첫째는 사랑하는 동산이요, 둘째는 가엾이 여기는 동산이요, 셋째는 기뻐하는 동산이요, 넷째는 보호하는 동산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래의 바른 법안의 네 가지 동산이니라.

 

왜 사랑하는 동산이라 하는가. 비구들이여, 알라.

이 사랑하는 동산으로부터 범천에 나고 범천으로부터는 마침내 귀족의 집안에 태어나

재물과 보배가 많고 항상 다섯 가지 즐거움이 있어 스스로 즐겨 하면서 잠깐도 눈을 떼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동산이라 하느니라.

 

또 왜 가엾이 여기는 동산이라 하는가. 비구들이여, 알라.

만일 가엾이 여김으로 해탈하는 마음을 친하면 梵光音天에 나고

인간에 와서 나면 귀족 집안에 태어나 성냄이 없고 재물과 보배가 많다.

그러므로 가엾이 여기는 동산이라 하느니라.

 

또 왜 기뻐하는 동산이라 하는가.

만일 기뻐하는 동산을 친하면 광음천에 나고 인간에 와서 나면 국왕의 집에 태어나 언제나 기쁨을 가진다.

그러므로 기뻐하는 동산이라 하느니라.

 

또 왜 보호하는 동산이라 하는가.

만일 어떤 사람이 보호하기를 친하면 無想天에 나서 八만 四천 겁을 살고 인간에 와서 나면

중국사람 집에 태어나 성냄이 없고 언제나 법답지 않은 모든 행에서 남을 보호한다.

그러므로 보호하는 동산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이여, 알라.

여래의 바른 법안에는 이 네 개의 동산이 있어 모든 성문들로 하여금 그 안에서 즐거이 놀게 하느니라.

 

또 여래의 이 네 개 동산 안에는 네 개의 목욕 못이 있어 우리 성문들로 하여금 거기서 목욕하면서 즐거이 놀게 한다.

어떤 넷인가.

첫째는 각覺과 관觀이 있는 못이요, 둘째는 각도 관도 없는 못이며, 셋

째는 보호해 생각하는 못이요, 넷째는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는 못이니라.

 

왜 각과 관이 있는 못이라 하는가.

만일 어떤 중생이 첫째 선정을 얻으면

모든 법안에서 언제나 각과 관이 있어 온갖 법을 생각하여 결박을 아주 없애어 남음이 없다.

그러므로 각과 관이 있는 못이라 하느니라.

 

​또 왜 각도 관도 없는 못이라 하는가.

만일 어떤 비구가 둘째 선정을 얻으면 각과 관을 없애고 선정을 먹고산다.

그러므로 각도 관도 없는 못이라 하느니라.

 

또 왜 보호해 생각하는 못이라 하는가.

만일 어떤 비구가 셋째 선정을 얻으면 각과 관을 없애고 각도 없고 관도 없게 되어 항상 셋째 선정을 보호해 생각한다.

그러므로 보호해 생각하는 못이라 하느니라.

 

또 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못이라 하는가.

만일 어떤 비구가 넷째 선정을 얻으면, 즐거움도 생각하지 않고 괴로움도 생각하지 않으며

또 과거와 미래의 법도 생각하지 않고 다만 현재의 법에만 마음을 쓴다.

그러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못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여래의 바른 법안에는 이 네 개의 목욕 못이 있어 우리 성문들로 하여금

거기서 목욕하여 21가지 번뇌를 없애고 나고 죽는 바다를 건너 열반성에 들어가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만일 이 나고 죽는 바다를 건너려고 하거든 마땅히 방편을 구해 21가지 결박을 없애고 열반성에 들어가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셨다.

 

"매우 사나운 네 마리 큰 독사를 함 속에 넣어 두었다 하자.

그때에 사방에서 사람들이 왔다. 그들은 살기를 좋아해 죽기를 꺼렸고 즐거움을 구해 괴로움을 피하였다.

또 그들은 어리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으며 마음이 어지럽지도 않고 매인 데도 없었다.

 

​그런데 왕이나 혹은 대신이 그 사람을 불러 말하였다.

'여기 매우 사나운 네 마리 큰 독사가 있다.

너는 때때로 목욕시켜 깨끗이 기르되 때때로 먹이를 주어 모자람이 없게 하라. 지금 곧 실행하라.'

 

그 사람은 매우 두려운 생각이 들어 감히 그 앞으로 가지 못하고 곧 그것을 버리고 내달려 어디로 갈지 몰라 해 하였다.

왕은 다시 그 사람에게 말하였다.

 

'지금 다섯 사람을 시켜 칼을 들고 네 뒤를 따르게 하리라.

만일 그가 너를 잡으면 곧 죽일 것이니 너는 어물어물 하지 말라.'

 

그 사람은 네 마리 큰 독사와 또 칼을 든 다섯 사람이 두려워서 이리 저리 달리면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왕은 다시 그에게 말하였다.

 

'다시 너의 원수 여섯 사람을 시켜 네 뒤를 따르게 하여 만일 너를 잡으면 곧 죽일 것이다.

무슨 방법이 있거든 곧 마련하라.'

 

그 사람은 네 마리 독사와 칼을 든 다섯 사람과 여섯 사람 원수가 두려워 사방으로 내달렸다.

그는 혹 빈 마을을 보고 숨으려고 거기 들어갔으나 담이 무너져 든든한 곳이 없었고 또 빈 그릇에는 남은 음식이 없었다.

 

그때에 나와 친한 어떤 사람은 그를 구원하려고 그에게 말하였다.

'이 쓸쓸한 빈 마을에는 온갖 도적이 많다. 무슨 방법이 있으면 마음대로 하라.'

 

그 사람은 네 마리 독사와 칼을 든 다섯 사람과 여섯 사람 원수와 또 빈 마을이 두려워 곧 내달려 사방으로 헤매었다.

그는 앞으로 나아가다가 큰 강물을 만났다.

그 물은 매우 깊고 또 넓으며 사람도 없고 다리도 없어 저쪽 언덕으로 건너갈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서 있는 곳에는 온갖 나쁜 도둑이 많았다.

 

그때에 그는 생각하였다.

'이 강은 매우 깊고 넓은데 또 온갖 도둑이 많다. 나는 어떻게 저쪽 언덕으로 건너갈까.

나는 나무와 풀을 모아 뗏목을 만들고 그 뗏목을 타고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건너가자'고.

 

그는 곧 나무와 풀을 모아 떼배를 만들어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에 이르러 마음이 편안하였느니라.

 

비구들이여, 알라. 나는 이제 비유를 들었으니 생각해 풀어 보자.

이 말에는 어떤 뜻이 있는가. 네 마리 독사란 곧 네 가지 원소를 가리킨 것이다.

어떤 네 가지 원소인가. 이른바 땅의 원소, 물의 원소, 불의 원소, 바람의 원소이니 이것을 네 가지 원소라 한다.

 

칼을 든 다섯 사람이란 곧 다섯 가지 쌓임을 가리킨 것이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이른바 몸뚱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이니라.

 

​여섯 사람의 원수란 애욕을 가리킨 것이다.

빈 마음이란 여섯 가지 감관을 가리킨 것이다.

어떤 여섯인가. 이른바 여섯 가지 감관이란, 눈, 귀, 코, 혀, 몸, 뜻의 감관이니라.

 

만일 지혜 있는 이로서 이 눈을 관찰할 때에는 그것은 모두 空해 아무 것도 없으며 또한 든든한 것도 아니다.

또 귀, 코, 혀, 몸, 뜻을 관찰할 때에도 그것은 모두 공해 아무 것도 없고 허하고 고요하며 또 든든한 것이 아니다.

강물이란 네 갈래 흐름을 가리킨 것이다. 어떤 넷인가. 이른바 욕망의 흐름, 생존의 흐름, 무명의 흐름, 소견의 흐름이니라.

 

뗏목이란 성현의 여덟 가지 거룩한 길을 가리킨 것이다. 어떤 여덟인가.

바른 소견, 바른 다스림, 바른 말, 바른 방편, 바른 업, 바른 생활, 바른 생각, 바른 선정이다.

이것을 성현의 여덟 가지 길이라 하느니라.

 

물에서 건너기를 구하는 것은 좋은 권도로서의 방편을 쓰는 정진하는 힘이다.

이쪽 언덕이란 몸에 대한 삿된 소견이요, 저쪽 언덕이란 그 삿된 소견이 없어진 것이다.

또 이쪽 언덕이란 아자아타사트루의 나라요, 저쪽 언덕이란 빔비사아라 왕의 나라니라.

또 이쪽 언덕이란 파아피이야스의 나라요, 저쪽 언덕이란 여래의 경계니라."

 

그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