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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詩/매월당집梅月堂集

매월당 시집 제4권 10-3

매월당 시집 제4권 10-3

10 원림園林 동산과 숲

 

3

세만歲晩 거성동폭포지정居城東瀑布之頂 해 늦게 성 동쪽 폭포의 정상에 살았는데

청송백석靑松白石 심협여의甚愜余意 푸른 솔과 흰 돌이 매우 내 마음에 만족한지라

화정절和靖節 귀전원시歸田園詩 정절靖節의 귀전원歸田園의 시에 화운하다 5首

 

한해 느지막이 성동의 폭포 꼭대기에 살았다.

푸른 솔과 흰 돌이 매우 내 뜻에 흡족하여

정절(도연명)의 시 ‘귀원전시’에 화답하여 짓는다.

 

 

1

만거성동수晚居城東陲 늦게서야 성 동쪽 모퉁이에 사는데

수석승려산水石勝廬山 물과 돌이 여산廬山보다 훨씬 낫네.

복축의한암卜築依寒巖 터 잡아 지은 집 찬 바위에 의지하고

궁거유수년窮居逾數年 궁하게 살아온 지 수년이 넘었네.

 

나이 들어 성 동쪽 변두리에 거처하니

물과 돌이 여산보다 아름답구나.

차가운 바위 의지하여 집을 짓고

궁벽한 거처에서 몇 해를 지냈도다.

 

현표은남산玄豹隱南山 검은 표범 남산에 숨어 살고

신룡습구연神龍襲九淵 신룡은 아홉 길 못 속에 잠겼네.

수아현빈문修我玄牝門 이 내가 현빈문玄牝門을 훌륭히 닦고

서아강궁전鋤我絳宮田 내가 강궁絳宮 밭을 김매어 가니

 

검은 표범은 남산에 숨어 살고

아홉 연못엔 신룡이 숨어 사는구나.

나를 수양하여 入靜(三昧)에 들려하니

나의 마음(絳宮) 밭에서 김을 매겠구나.

 

족이보잔생足以保殘生 이 걸로 넉넉히 남은 생애 보전할 것을

기련부침간豈戀浮沈間 떴다 잠겼다 하는 속을 어이 생각하리!

야록순계제野鹿馴階除 들 사슴은 섬들에서 길들여졌고

산조명첨전山鳥鳴簷前 산새는 처마 앞에서 울어대누나.

 

남은 생을 만족하게 보전하려는데

어찌 부침하는 세상을 연연하리오.

들 사슴은 섬돌에서 놀고

산새는 처마 앞에서 노래하누나.

 

독파예주경讀罷蘂珠經 예주경蘂珠經 읽다가 그치고 나니

고전소향연古篆消香煙 옛 전자篆字같은 향 연기 사라져 가네.

심방동간애尋芳東澗涯 방초芳草 찾아 동쪽 시냇가로 가고

채약남산전採藥南山巓 약 캐느라 남산 꼭대기도 갔었네.

 

도교의 경전인 예주경을 독파하려는데

옛 전서체 글씨 속으로 향기와 연기 사라지누나.

아름다운 동녘 시냇가를 찾기도 하고

남산 고갯마루에선 약초를 캐기도 한다.

 

일포리명장一拋利名場 명리의 세상을 한번 버리고 나니

만사다한한萬事多閑閑 만사가 거의 다 한가롭기만 하네.

소오북창하笑傲北窓下 북창 아래 웃고서 거드름 빼니

자희도도연自喜陶陶然 스스로 기쁨이 도도연陶陶然하네.

 

명리의 세상을 한 번에 박차버리니

만사가 모두 한가로울 뿐.

북창 아래에서 의젓이 웃으며

스스로 기꺼워 즐겨하도다.

 

►정절淸節 <진서晉書 도연명전陶淵明傳>에 諡曰淸節徵士라 하였으니

士人들이 모여서 사시私諡한 것이다.

 

►현빈문玄牝門 만물을 생성하는 도道.

‘현玄’은 그 작용이 미묘하고 심오함이고

‘빈牝’은 암컷이 새끼를 낳듯이 道가 만물을 만들어냄을 말한다.

 

곡신불사谷神不死 골짜기의 신령은 죽지 않으니

시위현빈是謂玄牝 이를 신비한 암컷[玄牝]이라 일컫는다.

현빈지문玄牝之門 이 신비한 암컷의 문을

시위천지근是謂天地根 하늘과 땅의 뿌리라 일컬으니

면면약존綿綿若存 마치 있는 듯 없는 듯 무명실처럼 이어지니

용지불근用之不勤 그 쓰임새가 다함이 없다/<老子>

 

현빈은 <노자>에서 말하는 만물을 생성하는 근원 문이다.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며 이곳에 이르러야만 도(깨달음)를 얻을 수 있다.

어느 종교의 어떠한 수행방식을 택하든 또는 현빈을 어떠한 용어로 표현하든

이 문을 통하지 않고서는 깨달음(진리)을 얻을 수 없다.

 

"入靜(入定)에 든다" "참선參禪에 든다" "삼매三昧(三昧境)에 든다"고 말하는 것들이

바로 현빈을 두고 하는 말이며 조식수행의 근본적인 목적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강궁絳宮 마음.

단전丹田은 동양의학 용어로서 뇌腦는 수해髓海로서 上丹田, 심心은 강궁絳宮으로서 中丹田,

제하臍下(배꼽 밑) 3치(9cm쯤)의 부위를 下丹田이라고 한다.

 

하단전은 장정藏精(정을 저장함)의 府이며 중단전은 장기藏氣의 부이고

상단전은 장신藏神의 부라고 일컫는다.

 

방대한 동양의학 중에서도 동의보감을 편찬한 허준은 사람의 몸은 정精, 기氣, 신神이 주가 되는데

신은 기에서 생기며 기는 정에서 생기므로 정기신精氣神 삼자는 항상 수련해야 한다고 집약하고 정의를 내려놓은 것이다.

 

심위강궁心爲絳宮 폐위옥당궁肺爲玉堂宮

간위청랭궁肝爲淸冷宮 첨위자극궁瞻爲紫極宮

비위황궁脾爲黃宮 신위목궁腎爲牧宮/<황정경黃庭經>

 

►예주경蘂珠經 도가道家의 경문經文.

 

●산중우음山中偶吟/설암雪巖 추붕秋鵬(1651-1706 조선 효종2~숙종32)

 

제일명허실霽日明虛室 날이 개니 텅 빈 방이 더욱 밝고

한화락반정閑花落半庭 뜰에는 한가로이 꽃이 지네.

로승다몽권老僧茶夢倦 노승은 차 꿈(茶夢)에 잠기고

풍권예주경風卷蘂珠經 바람이 예주경蘂珠經을 말아버리네.

 

►한한閑閑 조용하고 한가閑暇로움.

►도도陶陶 매우 和樂한 模樣. 말을 달리게 하는 모양模樣.

역역개왕사役役皆王事 몸과 마음 다해 애씀은 임금 위한 일이요

도도역성은陶陶亦聖恩 도도하게 즐김도 또한 성은이어라.

/<이규보李奎報 부령마상기소견扶寧馬上記所見>

 

 

2

백운하봉봉白雲何逢逢 흰 구름은 어떻게 만나고 또 만나나?

홍진상앙앙紅塵常鞅鞅 붉은 티끌 언제나 즐겁질 않네.

면회저닉경緬懷沮溺耕 멀리 저닉沮溺의 밭 갈던 일 생각나고

시부주하상時復注遐想 때로는 먼 생각에 다시 잠겨 버리네.

 

흰 구름은 어찌하여 유유히 어울리는데

세상의 티끌은 늘 몸을 싸고도는가.

옅은 생각은 전원생활에 빠지지 않으려는데

또 다시 부질없는 생각에 빠지는구나.

 

소연세만물翛然細萬物 소연翛然하게 만물은 잘기도 한데

림천료독왕林泉聊獨徃 숲과 샘에 그런대로 홀로 가리라.

일경화목심一徑花木深 길 하나엔 꽃과 나무 우거져 깊고(花↔苑)

일경송죽장一徑松竹長 길 하나엔 송죽松竹이 길게 자랐네.

 

세상만사 후다닥 부질없이 흘러가니

자연에서 애오라지 홀로 살리라.

한 길엔 동산의 나무가 빼곡하고

또 한 길엔 송죽이 길게 자라누나.

 

일경예사행一徑曳屣行 또 한 길로 신을 끌고 들어가면서

상가아거광商歌我居廣 상조商調 노래 부르니 내 사는 곳 너르네.

갱제기하의更製芰荷衣 다시금 연잎 따다 옷 지어 입고

단욕로림망端欲老林莽 분명히 숲에서 늙으려 하네.

 

한 길에서 신발 끌고 길을 걸으며

비통한 가락의 노래를 불러도 내 거처는 넓도다.

마름 풀 연꽃으로 다시 옷을 지어

우거진 숲 속에서 올곧게 늙고자 한다.

 

►봉봉逢逢 기세氣勢가 극성極盛한 모습을 형용한 말임.

북 치는 소리.

계인일창고봉봉鷄人一唱鼓逢逢

닭 너울 쓴 사람이 한 번 닭 울음소리 내어 새벽임을 알리니 북소리 둥둥 울리네.

/<유우석劉禹錫>

 

누고봉봉보오경漏鼓逢逢報五更 통행금지 해제하는 파루 북소리 둥둥 새벽 4시를 알리니

장정출곽부전정張旍出郭赴前程 깃발 펼치고 성문을 나와 가야 할 앞길을 향하네.

/<김극기金克己 인주조발麟州早發>

 

►앙앙鞅鞅 앙앙怏怏. 불만스러운 모양.

마음에 섭섭하거나 시뻐서 앙심怏心을 품은 模樣.

 

언능심앙앙焉能心怏怏 어찌 마음 썩이며 앙앙하리오 마는

지시주준준祗是走踆踆 다만 그냥 물러날 수야 있으리까.

/<두보杜甫 봉증위좌승장22운奉贈韋左丞丈二十二韻>

 

►면회緬懷 지난 일을 생각함. 회상하다. 추억하다.

면회탁옹고풍緬懷濯翁高風 탁계 전치원 선생의 고매한 인품을 회고해 보니

독서악위고도讀書樂爲古道 옛 도의를 익히기 위하여 즐거이 독서삼매에 드시었다.

 

►저닉沮溺 장저長沮와 걸닉桀溺. 공자孔子와 같은 시대의 은자隱者.

장저걸닉우이경長沮桀溺耦而耕 장저와 걸닉이 나란히 짝지어 밭갈이를 하는데

공자과지孔子過之 공자가 지나다가

사자로문진언使子路問津焉 자로를 시켜 나루터를 물었다/<논어 미자편微子篇>

 

►하상遐想 멀리 내다보는 생각. 높고 먼 이상理想.

멀리 있는 사람을 그리워하다. 생각이 멀리멀리 달리다. 사색하다. 회상하다.

 

►소연翛然 유유자적하다. 자유롭다. 자유자재다. 아무런 구속이 없다. 마음대로 이다.

 

►상가商歌 상조 노래. 비통한 곡조의 노래. 비량悲凉한 가락의 노래.

상성商聲은 가을을 상징하는 소리로 슬프고 쓸쓸한 느낌을 자아낸다.

 

진晉 나라의 영척寗戚이 제齊 환공桓公에게서 벼슬을 하고자 하였으나

너무 곤궁하여 환공을 만날 길이 없으므로 상려商旅가 되어 제나라에 들어가

남의 소를 먹이면서 환공의 행차를 바라보고 소의 뿔을 두드리며 상가를 슬피 부르니

환공이 그 소리를 듣고 이상히 여겨 그를 데려오게 해서 등용하였다는 고사.

 

상가비오사商歌非吾事 상가는 나와 상관없는 일,

의의재우경依依在耦耕 오늘도 여전히 짝지어 밭 간다오.

/<淮南子 道應訓> 陶潛의 詩<陶淵明集 卷3 辛丑歲七月赴假還江陵 夜行塗中>

 

►림망林莽 초목이 우거진 곳. 초목이 깊고 평평하며 넓은 영역.

 

 

3

자아원성시自我遠城市 내가 성城과 저자 멀리 한 뒤로는

시문래왕희柴門來徃稀 사립문에 오가는 이가 아주 드무네.

릉신척남악凌晨陟南岳 새벽에 일어나서 남산에 올라

일만착령귀日晚斲苓歸 해 늦게야 복령伏茶 캐어 돌아온다네.

 

나로부터 시가지가 멀기만 하니

사립문엔 오가는 사람 드물구나.

이른 새벽에 남녘 산에 올랐다가

해 저물면 복령을 캐서 돌아오리니.

 

귀래도계수歸來渡溪水 돌아올 제 시냇물 건너노라면

계수점상의溪水漸裳衣 냇물이 의상에 젖어드누나.

아기혐속분我豈嫌俗氛 내 어찌 세속 분위기 싫어함이랴!

세아도상위世我徒相違 세상과 나 서로가 틀릴 뿐일세.

 

시냇물을 건너 돌아오자니

시냇물이 내 옷을 적시는구나.

내 어찌 속세를 미워할 것인가

세상이 이미 나와 뜻이 다르거늘.

 

►릉신凌晨 이른 새벽. 새벽녘. 동틀 무렵.

 

 

4

소조일와려蕭條一蝸廬 쓸쓸한 하나의 달팽이 같은 집이

료족이자오聊足以自娛 그런대로 나 스스로 즐기기엔 넉넉하네.

불견거거옥不見渠渠屋 보지는 못했는가? 화려한 큰 집이

순목성진허瞬目成榛墟 눈 깜짝할 새 폐허가 되는 것을

 

쑥대 가지에 달팽이 한 마리 붙어살며

애오라지 만족하며 스스로 즐거워하는구나.

커다란 도랑만한 집은 보지 못했지만

잠깐 사이 빼곡한 집터를 이루었구나.

 

석년가무지昔年歌舞地 예전에 노래하고 춤추던 곳이

금위호토거今爲狐兎居 지금엔 여우·토끼들 살림터 됐네.

애아옥일간愛我屋一間 나의 집 한 칸 방을 사랑하여서

위좌여고주危坐如枯株 마른 등걸인 양 우두커니 앉았다가

 

옛날에는 노래하고 춤추던 영화롭던 땅이

지금은 여우와 토끼의 거처가 되었구나.

나를 위해 한간 집을 마련하여

마른 나무 그루처럼 정좌하여 앉았노라.

 

시부와계석時復卧溪石 때로는 시냇가 돌에 또 누우니

월음량예여樾陰涼翳如 두[樾]나무 그늘이 시원하게 가려 주네.

불우생사졸不憂生事拙 사는 일 무딘 건 근심하지 않거니

조군석무여朝窘夕無餘 아침에 군색하고 저녁에 남는 것 없어도

 

때때로 계곡에 있는 돌 위에 누우니

나무 그늘처럼 서늘하여 일산을 쓴 듯

근심 없이 사노라니 일도 없고

아침도 곤궁하고 저녁도 여유 없어라.

 

단애암두심但愛巖竇深 다만 바위굴 깊은 걸 사랑하거니

송창라월허松窓蘿月虛 소나무 창에 청미래 속 달이 허虛하네.

광호문고인狂呼問古人 미친 듯 소리쳐 옛사람에게 묻기를

고인여차무古人如此無 옛사람도 이랬던가 아니 그러했던가?

 

부질없이 바위 굴 깊은 곳을 사랑하니

소나무 창에 담쟁이 사이 뜬 달이 허허롭구나.

미친 듯이 옛 사람을 불러보지만

그것 봐, 옛 사람은 여기 없잖아.

 

아억하지장我憶賀知章 내 멀리 하지장賀을 생각하노니

귀로경호곡歸老鏡湖曲 경호鏡湖 가에 돌아가 늙어 버렸네.

수무인수영雖無印綬榮 관인官印을 차는 영광은 비록 없어도

심한만사족心閑萬事足 마음이 한가하니 만사가 넉넉하네.

각차세상인却嗟世上人 도리어 세상 사람을 불쌍히 여기느니

흡사의환국恰似蟻環局 쳇바퀴 돌 듯 하는 개미와도 같네.

 

내가 당나라 시인 하지장을 생각함은

경호곡처럼 맑게 늙어가고 싶어서라네.

비록 인수를 차는 영화는 누리지 못하나

마음은 한가로우니 만사가 흡족하구나.

도리어 세상 사람을 탄식하노니

흡사 개미집 같은 세상이구려.

 

아좌벽산병我坐碧山屏 푸른 산 병풍 안에 이내가 앉았으니

월위청야촉月爲清夜燭 저 달이 맑은 밤 촛불이 되어 주네.

탄금화도시彈琴和陶詩 거문고 타면서 도 연명 시에 화운하다가

불각동방욱不覺東方旭 동방에 해 돋는 줄을 전혀 몰랐네.

 

내가 앉으니 푸른 산은 병풍 되고

달은 맑은 밤의 촛불이 되누나.

거문고 퉁기며 도잠 시에 화답하노니

동방이 밝아 옴도 깨닫지 못했네.

 

►소조蕭條 쓸쓸한 모양/<반고班固 서도부西都賦>

천도범람윤제절川塗汎濫輪蹄絶 개천 길에 물이 넘쳐 수레와 말이 못 다녀 끊어지고

이항소조정조공里巷蕭條井竈空 마을은 소조하여 우물과 부엌이 텅 비었네.

/<김돈시金敦時 고우苦雨>

 

►와려蝸廬 와사蝸舍, 와실蝸室, 와옥蝸屋

‘달팽이의 집’이라는 뜻으로 작고 초라한 집을 比喩的으로 이르는 말.

자기自己 집을 겸손謙遜하게 이르는 말.

 

►거거渠渠 부지런히 힘씀. 성한 모양. 깊고 넓은 모양. 너그럽지 못한 모양

►고주枯株 고주후목枯株朽木

‘마른 나무와 썩은 등걸’이라는 뜻으로 쓰이지 못하는 사람이나 物件을 比喩.

/추양鄒陽 <옥중상양왕서獄中上梁王書>

 

►‘나무 그늘 월樾’ 나무 그늘. 가로수街路樹

►암두巖竇 바위에 난 구멍.

►송창나월松窓蘿月 운치 있는 자연 경치.

►하지장賀知章(659-744?)

현종玄宗에게 道士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청하자 玄宗皇帝는 특별히

그에게 경호鏡湖(절강성 있다) 한 굽이를 하사하여 그곳에서 지내게 하였다.

/<新唐書>卷196 하지장전賀知章傳

 

 

5

석아탐춘시昔我探春時 예전에 내가 봄을 탐승할 때엔

탐화치자맥探花馳紫陌 꽃을 찾아 붉은 언덕[紫陌]을 잘 달려갔었더니

금아탐춘시今我探春時 오늘날 이내가 봄을 찾아 나설 때엔

책장수소적策杖隨所適 지팡일 짚고서 가는 대로 따라가네.

 

옛적에 내가 봄 경치를 찾을 때는

꽃 따고자 붉은 언덕 달려 오르기도 했지만.

오늘의 내가 봄 경치를 찾을 때는

지팡이 짚고 자적하며 발걸음대로 따르네.

 

연계수락화緣溪數落花 시내를 따라가며 낙화落花를 헤아리다

부지일서석不知日西夕 서산에 해 떨어져 저녁인 줄도 몰랐네.

유조어림만幽鳥語林巒 그윽한 산새들 숲속에서 속삭이고 있는데

창서찬암극蒼鼠竄巖隙 푸른 쥐는 바위틈으로 몰래 숨어 버리네.

 

푸른 시냇물에 몇 송이 진 꽃 보고

해 지고 저녁이 된 줄도 미처 몰랐어라.

깊은 산 숲 속에서 새는 노래하고

명주 쥐는 바위틈에 구멍을 뚫는다.

 

기탈적불미旣脫赤紱糜 붉은 띠 맨 것 벌써 벗어났고

우면현관역又免縣官役 고을의 부역마저 다시 면하였네.

황정공조석黃精供朝夕 국대 뿌리[黃精]로 아침저녁 공궤하고

록하대방적綠荷代紡績 푸른 연잎은 길쌈을 대신하였네.

 

이미 인끈 줄은 벗어 버렸으니

벼슬살이 노역에서도 벗어났어라.

죽대의 뿌리로 조석끼니를 때우고

푸른 연잎으로 길쌈을 대신하노라.

 

평생반산운平生伴山雲 한평생 산구름과 벗하여 살며

원효상야익願效商也益 원하긴 의 유익함을 본받는 걸세.

 

평생 산 구름의 자유를 따르다 보니

원컨대 상인 노릇을 본받음이 유익하겠네.

 

►‘인끈 불紱’ 인끈(사슴 가죽으로 만든 끈) 제복制) 입다

►죽 미/문드러질 미糜 죽粥. 싸라기. 기장

►황정黃精 죽대의 뿌리. 강장제強壯劑로 쓰임.

►공궤供饋 음식을 줌.

►방적紡績 동식물動植物의 섬유纖維를 加工하여 실을 만듦.

►상商 공자孔子의 제자. 자하子夏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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