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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詩經

국풍國風 조풍曹風 150. 부유蜉蝣

국풍國風 조풍曹風

150. 부유蜉蝣 하루살이

 

부유지우蜉蝣之羽 의상초초衣裳楚楚 하루살이의 깃털은 의상 같이 아름다운데

심지우의心之憂矣 어아귀처於我歸處 마음의 근심거리는 나에게 돌아와 살아라.

 

부유지익蜉蝣之翼 채채의복采采衣服 하루살이의 날개는 화려한 의복 같은데

심지우의心之憂矣 어아귀식於我歸息 마음의 근심거리는 나에게 돌아와 쉬거라.

 

부유굴열蜉蝣掘閱 마의여설麻衣如雪 하루살이 껍질은 눈 닮은 삼베옷 같은데

심지우의心之憂矣 어아귀설於我歸說 마음의 근심거리는 내게 돌아와 말하여라.

 

 

하루살이의 깃, 의상도 선명하네.

마음에 근심되니 내게로 와 지내라.

 

​하루살이의 날개, 의복도 화려하네.

마음에 근심되니 내게로 와 쉬거라.

 

​하루살이 탈피하니 마의가 눈같이 희네.

마음에 근심이 되니 내게로 와 머물러 쉬어라.

 

 

●<모시전毛詩傳><모시전毛詩箋><모시정의毛詩正義>

<모전毛傳>은 한漢나라의 모형毛亨(?-?)이 자하子夏에게서 순황荀況을 거쳐 그에게 전해진 <시경詩經>을 대상으로 전傳을 붙여 <모시고훈전毛詩詁訓傳>을 지었는데 後漢에 와서 정현鄭玄이 전箋을 붙였으며 당唐나라 공영달孔穎達 등이 당시까지 전래한 여러 자료를 중심으로 자세한 소疏를 덧붙여 총정리 하여 <모시정의毛詩正義>를 완성하여 오늘날의 <시경>이 되었다.

 

 

【毛詩 序】 부유蜉蝣 자사야刺奢也 <부유>는 사치함을 풍자한 詩이다.

 

소공국소이박昭公國小而迫 무법이자수無法以自守 소공은 나라가 작아서 좁은데도 법을 스스로 지킴이 없고

호사이임소인好奢而任小人 장무소의언將無所依焉 사치함을 좋아하면서 小人을 임용하여 장차 의지할 곳이 없게 되었다.

 

■소공昭公(기원전661?-653?)

춘추시대 조曹나라 15대 군주이며 성姓은 희姬. 씨氏는 조曹이고 이름은 반班이다.

조曹나라는 주周 문왕文王의 6남 숙진탁叔振鐸이 분봉 받은 제후국으로 작위는 백작이다.

춘추시대 때에는 소국으로 제齊나라의 국력에 눌려 세력이 미약하여 다른 나라들과 강성함을 겨루지 못하였고 군주 자리를 두고 내분이 일어나 쇠약해졌다.

 

■ 조曹 1之 14

조曹 국명國名 기지재우공곤주도구지其地在禹貢袞州陶丘之 뢰하하택지야雷夏何澤之野

조는 나라 이름이니 그 땅이 <서경> 우공편에 곤주 도구의 북쪽에 있는 뇌하 하택의 들판이다.

 

주무왕周武王 이봉기제진탁以封其弟振鐸 금지조주今之曹州 즉기지야卽其地也

주나라 무왕이 써 그 아우인 진탁을 봉하니 지금의 조주가 곧 그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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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지우蜉蝣之羽 의상초초衣裳楚楚 하루살이의 깃털은 의상 같이 아름다운데

【毛亨 傳】 흥야興也 흥興이다.

 

부유蜉蝣 거략야渠略也 조생석사朝生夕死 유유우익이자수식猶有羽翼以自修飾

부유는 하루살이[渠略]이며 아침에 나서 저녁에 죽는데 깃털과 날개가 있고 그로써 스스로 닦고 꾸민다.

 

초초楚楚 선명모鮮明貌 초초楚楚는 선명한 모양이다.

 

【鄭玄 箋】

전운箋云 흥자興者 유소공지조喻昭公之朝 기군신개소인야其群臣皆小人也

전箋에 이르기를 흥興이라는 것은 소공昭公의 조정에 그 신하 무리들이 모두 小人이라고 비유하였음이다.

 

도정식기의상徒整飾其衣裳 무리들이 그 저고리와 치마를 가지런히 꾸미는데

부지국지장박협不知國之將迫脅 나라가 장차 세력이 줄어듦을 알지 못하고

 

군신사망무일君臣死亡無日 여거략연如渠略然

군주와 신하가 죽어 없어질 날이 없는데도 하루살이[渠略] 같이 그렇게 함이다.

 

►심지우의心之憂矣 어아귀처於我歸處 마음의 근심거리는 나에게 돌아와 살아라.

【鄭玄 箋】

전운箋云 귀歸 의귀依歸 전箋에 이르기를 (돌아갈 귀)歸는 돌아가 依支함이다.

군당어하의귀호君當於何依歸乎 군주가 어디로 돌아가 依支함이 마땅하겠는가?

 

언유위망지난言有危亡之難 장무소취왕將無所就往

위험하여 망하는 어려움이 있으니 장차 나아가 갈 곳이 없음을 말함이다.

 

►부유지익蜉蝣之翼 채채의복采采衣服 하루살이의 날개는 화려한 의복 같은데

【毛亨 傳】 채채采采 중다야眾多也 채채는 무리가 많음이다.

 

►심지우의心之憂矣 어아귀식於我歸息 마음의 근심거리는 나에게 돌아와 쉬거라.

【毛亨 傳】 식息 지야止也 (쉴 식)息은 그침이다.

 

►부유굴열蜉蝣掘閱 마의여설麻衣如雪 하루살이 껍질은 눈 닮은 삼베옷 같은데

【毛亨 傳】

굴열掘閱 용열야容閱也 굴열은 얼굴을 살핌이다.

여설如雪 언선혈言鮮絜 눈[雪]과 같음은 몸통이 곱고 깨끗함을 말함이다.

 

【鄭玄 箋】

전운箋云 굴열掘閱 굴지해掘地解 위기시생시야謂其始生時也

전箋에 이르기를 굴열掘閱은 땅을 파서 벗어남인데 그가 처음 생겨난 때를 말함이다.

 

이해열유군신조석변역의복야以解閱喻君臣朝夕變易衣服也

그로써 벗어나 봄은 군주와 신하가 아침저녁으로 옷과 복장을 바꾸어 변함을 비유함이다.

 

마의麻衣 심의深衣 제후지조조복諸侯之朝朝服 조석즉심의야朝夕則深衣也

마의麻衣는 심의深衣이며 제후가 朝廷에서 입는 의복衣服인데 아침저녁으로 심의를 입는다.

 

►심지우의心之憂矣 어아귀설於我歸說 마음의 근심거리는 내게 돌아와 말하여라.

【鄭玄 箋】 전운箋云 설유사식야說猶舍息也 전箋에 이르기를 (벗을 탈)說은 집에서 휴식함과 같음이다.

 

 

●시경집전詩經集傳

부유지우蜉蝣之羽 의상초초衣裳楚楚 하루살이의 깃이여, 의상이 선명하도다.

심지우의心之憂矣 어아귀처於我歸處 마음의 근심이 되노니 나에게 돌아와 거처할지어다.

 

비야比也 비유한 시이다.

 

부유蜉蝣 거약야渠略也 사길강似蛣蜣 신협이장각신狹而長角 황흑색黃黑色 조생모사朝生暮死

부유는 거략이니 쇠똥구리와 비슷하여 몸뚱이는 좁고 뿔이 길고 황흑색이며 아침에 나왔다가 저녁에 죽는다.

 

초초楚楚 선명모鮮明貌 초초는 선명한 모양.

 

차시此詩 개이시인蓋以時人 유완세오有玩細娛 이망원려자而忘遠慮者

이 시는 대개 써 당시 사람들이 하찮은 즐거움만 좋아하고 멀리 생각함을 잊음을 읊었다.

 

고故 이부유위비이자지以蜉蝣爲比而刺之 그러므로 하루살이로써 비교하여 비난했다.

 

언부유지우익言蜉蝣之羽翼 유의상지초초가애야猶衣裳之楚楚可愛也

말하건대 하루살이의 날개여, 의상이 선명하여 가히 사랑스러움과 같으니라.

 

연기조생모사然其朝生暮死 불능구존不能久存 그러나 그 아침에 나왔다가 저녁에 죽어 능히 오래 존하지 못하다.

 

고故 아심우지我心憂之 이욕기어아귀처이而欲其於我歸處耳

그러므로 내 마음이 근심이 되어 그 나에게 돌아와 거처하게 하고자 함이라.

 

서序 이위자기군以爲刺其君 혹연이미유고야或然而未有考也

차례에 써 하되 그 인군을 나무란 것이라 하니 혹 그러한 듯한데 상고함이 있지 않다.

 

부유지익蜉蝣之翼 채채의복采采衣服 하루살이의 날개여, 화려한 의복이로다.

심지우의心之憂矣 어아귀식於我歸息 마음의 근심이 되노니 나에게 돌아와 쉴지어다.

 

비야比也 비이다.

채채采采 화식야華飾也 채채는 화려하게 꾸밈.

식息 지야止也 식은 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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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굴열蜉蝣掘閱 마의여설麻衣如雪 하루살이가 탈피하여 나오니 삼베옷이 눈과 같도다.

심지우의心之憂矣 어아귀설於我歸說 마음의 근심이 되노니 나에게 돌아와 쉴지어다.

 

비야比也 비이다.

굴열掘閱 미상未詳 굴열은 자세하지 못하다.

세說 사식야舍息也 세는 그쳐서 쉼이다.

운문사 은행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