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득시拾得詩 15
한산주한산寒山自寒山 한산은 한산에 살고(자自↔住)
습득자습득拾得自拾得 습득은 스스로 얻어 알았네.
범우기견지凡愚豈見知 우매한 사람이 어찌 보고 알까마는
풍간각상식豊干卻相識 풍간은 오히려 우리 둘을 알아보았네.
견시불가견見時不可見 만나보려고 해도 볼 수 없고
멱시하처멱覓時何處覓 찾으려 해도 찾을 곳 알 수 없는데
차문유하연借問有何緣 무슨 인연 있어서 그러는지 물어보면
향도무위력向道無爲力 오히려 무위의 힘이라고 하네(向↔각卻)
한산은 제 한산이요
습득은 제 습득이다.
어리석은 이들 어찌 보아 알거냐?
풍간이 있어 서로 알아주리라.
보는 때에도 볼 수 없거니
찾을 때에는 어디 가 찾으려는고?
묻나니 이 무슨 인연인가?
내 말하노라, “無爲의 힘이라”고.
►범우凡愚 평범하고 어리석은 사람
►차문借問 묻다.
►무위無爲 인연에 의하여 조작되지 않는 것.
生住異滅하는 四相의 轉變이 없는 것. 佛法者의 생활.
‘무위無爲’
조작이 없음의 뜻이니 유위의 대칭이다.
곧 인연으로 말미암아 조작된 바가 아닌 生滅變化를 여읜 絶對常住의 법.
또 무위법으로 지으며 원래 이것은 열반의 다른 이름이다.
후세에 다시 열반의 밖에 갖가지 무위를 세워
이에 3무위ㆍ6무위ㆍ9무위 등의 여러 설을 산생産生했다.
<道德經 觀妙章>1
시이성인처무위지사是以聖人處無爲之事 행불언지교行不言之敎
이런 까닭으로 성인은 無爲之事에 처하면서 不言의 교를 행한다.
<道德經 無爲章>37
도상무위道常無爲 이무불위而無不爲
도는 늘 무위이면서 하지 않음이 없다.
<道德經 日損章>48
위학일익爲學日益 학學을 하면 날로 더하고(益)
위도일손爲道日損 도道를 하면 날로 더나니(損)
손지우손損之又損 이지어무위以至於無爲 덜고 또 덜어 무위에 이르면
무위이무불위의無爲而無不爲矣 무위이면서 하지 못함이 없다.
<易 繫辭>上
역무사야易無思也 무위야無爲也 역易은 무사無思며 무위無爲니
적연부동寂然不動 적연寂然하여 부동不動하면서
감이수통천하지고感而遂通天下之故 감응하여 드디어 천하의 故(事. 萬事)에 통한다.
비천하지지신非天下之至神 천하의 지신(至神)이 아니라면
기숙능여어차其孰能與於此 그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하겠는가.
<조정사원祖庭事苑>6 무위無爲
화엄소주운華嚴疏主云 화엄소주華嚴疏主(澄觀)가 이르되
위爲 작야作也 작즉생멸作卽生滅 위爲는 作이며 作은 곧 생멸이다.
적막충허寂寞沖虛 적막寂寞하고 沖虛(빌 충沖)하여
담연상주湛然常住 담연湛然히 常住하며
무피조작無彼造作 저 조작造作이 없으므로
고명무위故名無爲 고로 이름이 무위다.
우유가운又瑜伽云 또 유가瑜伽에 이르되
무생멸불계속인연無生滅不繫屬因緣 생멸이 없고 인연에 계속繫屬하지 않나니
시명무위是名無爲 이 이름이 무위다.
우지론운又智論云 또 <지론智論>에 이르되
무득고명왈무위無得故名曰無爲 얻음이 없는 고로 이름 해 가로되 무위다.
우정명운又淨名云 또 정명淨名(維摩詰經)에 이르되
불타수고不墮數故 수數에 떨어지지 않는 연고라 하였다
(상문병출上文竝出 화엄경소華嚴經疏24
위의 글은 모두 <華嚴經疏>24에 나온다)
<임제어록臨濟語錄>
불여조사시무사인佛與祖師是無事人 부처와 조사는 이 일 없는 사람이다.
소이유루유위所以有漏有爲 소이로 유루유위有漏有爲)와
무루무위無漏無爲 위청정업爲淸淨業 무루무위無漏無爲가 청청한 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