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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寒山詩

寒山의 詩世界 硏究 Ⅱ. 禪文學의 脈絡

寒山의 詩世界 硏究-禪文學的 입장에서

李日宰(慈明) 東國大學校 大學院 1993 寒山詩 博士 學位論文

Ⅱ. 禪文學의 脈絡

한산의 시세계에 대하여 살펴보기 전에 우선 한산시가

위치한 역사적 맥락을 훑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다음은 佛敎文學의 범주範疇를 살펴보고 禪文學의 意味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偈頌文學과 語錄文學과 頌古文學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1.佛敎文學의 範疇

 

佛敎와 佛敎文學과 文學과의 관계를 살펴보자.

<韓國佛敎文學論>에서 홍기삼 교수는 다음과 같은 도식을 만들어 佛敎文學을 설명하고 있다.

 

  佛敎文學

  c           b

佛敎 a 文學

 

a형과 b형과 c형으로 佛敎와 文學과 佛敎文學의 관계를 나누어 佛敎文學을 생각할 때

文學에서 보는 佛敎文學과 佛敎에서 보는 佛敎文學은 많은 차이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a형은 佛敎와 文學이 평행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佛敎文學이 될 것이고

b형의 佛敎文學은 文學에서 받아들이는 佛敎文學이 될 것이고

c형 佛敎文學은 佛敎的 입장에서 이루어지는 佛敎文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까지 佛敎文學에 대한 논의는 b형 佛敎文學이 훨씬 많이 행해져 왔다고 보여진다.

본 논문에서 취하는 방향은 c형의 佛敎文學이 될 것이다.

佛敎에서 이루어지는 佛敎文學이라고 할 수 있다.

 

홍기삼 교수의 위 논문은 이제까지의 佛敎文學에 대한 논의를

한 단계 끌어 올린 탁월한 논문으로 평가 받을 만 하다.

 

그러한 평가에 값할 수 있으려면 佛敎에 대한 탄탄한 認識과

世界觀 내지 價値觀을 제대로 제시하고 있어야 할 줄 안다.

 

과연 그러한가?

그러나 아직은 佛敎的 가치를 佛敎文學으로 심어주기에는 미흡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佛敎學과 文學내지 佛敎文學을 똑같은 자리에 놓고 등가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佛敎的 인식이 얼마나 열려 있느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佛敎文學이라고 해서 꼭 佛敎的 지식이나 신념을 주장 할 필요는 없으나

佛敎的 인식을 바탕하지 않고 佛敎文學이라고 이름 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근래 佛敎學에서 佛敎文學 硏究의 길을 먼저 열어 놓은 金雲學 교수에 따르면

<佛敎文學의 理論>에서 佛敎文學을 여러 가지 입장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제까지 佛敎文學이 佛敎의 어느 한 부분이거나 혹은 經,律,論 삼장의 전부로

혼용되어 왔다고 지적하면서 <佛敎의 文學> <佛敎와 文學>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佛敎의 文學>에 있어서 佛敎에 의한 文學이 될 수 도 있고 佛敎를 위한 文學일 수 도 있는 것이다

佛敎를 위한 文學은 불타의 생애와 佛敎敎理를 전하기 위해 창작된 文學으로 이해되고

佛敎的 文學은 佛敎的 사상이나 신앙이 스며진 文學에 가깝게 이해된다고 말하고 있다.

 

<佛敎와 文學>에 있어서도 佛敎 전체를 文學으로 생각할 수 있고 佛敎的인 인생을

文學的으로 그릴 수도 있으며 佛敎와 文學과의 관계를 찾을 수도 있는 광범위한 것이다.

그는 佛敎와 文學의 독립된 이미지를 최대한 인정하면서 佛敎文學을 보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佛敎文學을 宗敎文學 즉 佛敎라는 종교와 文學이 원리적 바탕에 있어 심층적으로

합일되는 통일적인 경우를 가장 차원 높은 佛敎文學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하며 佛敎文學은

어디까지나 佛敎文學이지 佛敎의 文學이거나

佛敎的 文學일 수 없다는 비판적 견해를 피력하기도 한다.

 

그러면 佛敎學에서 이루어지는 佛敎文學에 대하여 佛敎文學을 硏究하는

文學분야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홍기삼 교수는 <韓國佛敎文學論>에서 佛敎文學에 있어서 그 개념에 대해 철저한 범주화範疇化와

비판적 검토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佛敎文學의 개념에 대한 비평적 관점이 성숙되지 못한 점으로

말미암아 아직도 개념이 유동적이라고 비판하고 있으며

그 잘못의 원인중 하나로 經․律․論 三藏 十二分敎가 모두 佛敎文學이라는 주장이

개념의 혼란을 야기시키고 이로 인해 佛敎文學에 대한 비평적 성장이 완전히 차단된

폐쇄개념으로 고정 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위의 佛敎文學의 입장은 文學硏究의 본래의 태도와 구분되어야 할 것이며

文學을 위한 과학적 노력과도 구별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는 文學을 위한 과학적 노력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밝혀내고 있지는 않다.

 

그의 佛敎文學에 대한 견해는

① 佛敎의 經典 및 부처님의 가르침에 관계되는 著作物 모두가 佛敎文學이라는 주장.

② 佛敎經典, 佛敎에 관한 문헌 및 佛敎的인 것을 表現한 文學 일체.

③ 佛敎的인 관심을 文學형식으로 創作해 낸 文學 등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으며

 

첫번째 견해로는 불타의 가르침 일체인 經,律,論 三藏 전부와 여러 나라의

모든 언어문자에 의한 佛敎에 관한 저작을 포함시키고 있는 견해를 말한다.

 

두번째의 견해는 佛敎經典과 佛敎에 관한 문헌

또 佛敎的인 것을 표현한 文學 일체라고 말하는 부류이다.

이들 중에 김잉석金芿石과 김운학金雲學을 포함시키고 있다.

 

세번째 견해로는 佛敎的인 관심을 표현한 文學으로 산변습학山邊習學의 경우와 같이

佛敎의 사상 또는 신념을 文學的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대표적인 것이 될 것이다.

 

넓은 의미로서의 佛敎文學과 좁은 의미로서의 佛敎文學으로 나누어 살펴본다면

전자의 경우는 일체 경전을 다 포함하여 개인적인 창작 文學까지를 일컬을 수 있고

후자의 경우는 佛敎가 일정한 文學的 樣式으로 담겨 질 경우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佛敎文學의 전반적인 면을 갈래지어 밝히면서

각 견해에 대하여 비판적인 입장을 내 보이고 있다.

 

그가 佛敎經典이 文學이라는 견해를 비판하면서 佛敎와 文學의 한계가

증발하는데 대한 대응논리가 성립되지 못하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佛敎文學이라는 것은 佛敎硏究의 한 분야가 아니라

文學硏究의 한 갈래에 속하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佛敎文學을 文學에 예속시키려는 태도는

자칫 佛敎文學의 성격을 변화 시킬 수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佛敎的 認識의 바탕 없이 佛敎文學의 이름만 빌린다면

佛敎와는 상관없는 文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佛敎文學인 한 佛敎와의 관련은 어떤 형태로든 끊을 수 없으며

佛敎學으로서 佛敎文學의 成立은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佛敎文學은 佛敎的 뿌리와 文學的 형식이 함께 공유하는 것이며

文學의 영역에만 묶여질 때 오는 한계성 또한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관습적이고 당연히 명명된 佛敎文學이라는 개념이 文學圈 내의 요구에 따라

확정된 개념이 아니라 文學圈 이외의 아마츄어적인 지적 한담의 결과로부터 유래하고 있다는

사정이다고 佛敎文學의 文學 외적인 관심에서 출발했던 점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 文學의 영역을 확장하는

발전적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홍교수는 다시 文學 →韓國文學 →宗敎文學 →佛敎文學이라는 범주의 논리적 순서와

세분화를 거쳐 가면서 이루어진 佛敎文學의 논의와 달리 참으로 우리에게 무익한 논리로 당혹감을

안겨주는 것이 佛敎經典=佛敎文學이라는 등식이고 이런 법칙성과 결정론적 태도야말로

체계적 지식구조를 세우는데 도움이 못되는 文學에 관한 논의라 할 수 있다

라고 신앙과 학문의 미분화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불경의 신성함을 주장한다고 해서 학문이나 文學이 성숙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十二分敎가 곧 文學이라는 비논리적 명제를 극복할 수 있을 때

佛敎文學에 대한 발전적 논의는 더욱 촉진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위와 같은 그의 견해는 일견 바른 지적이라고 생각 된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한편 생각하면 根本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지말에만 매달릴 때 오는 폐단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佛敎文學에서 경전에 바탕한 바른 佛敎思想을 소홀히 하는 태도를

경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어떤 경우든 根本主義는 존중되어야 마땅하다고 본다.

 

그러나 앞에서의 지적처럼 근본주의가 자기 편애적인

속성을 드러낸다면 이는 극복되어야 옳다고 할 것이다.

 

위의 도식에서 韓國文學 속에 宗敎文學을 포함 시키고 있는데

이 점에서 논자는 홍교수와 견해를 달리 하고 있다.

 

韓國文學은 文學속에 포함될 수 있으나

宗敎文學은 韓國文學 범주 안에 완전히 포함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韓國文學속에는 얼마든지 비한국적 宗敎文學이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佛敎文學의 발생적 입장에서 볼 때 佛敎가 主가 되고 文學이 補助的인

입장이었다고 굳이 잘못 되었다거나 非文學的이라고 지적 받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이상 살펴본바와 같이 佛敎學에서 받아들이는 佛敎文學과

文學에서 받아들이는 佛敎文學과의 차이는 현격하게 시야를 달리 하여 있다.

일단은 시각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견해를 달리하는 점을 지적하여 두고저 한다.

 

경전을 文學이라고 보는 태도에 대한 비판적 견해에 대하여 시각을 달리하여 생각하면

바로 그것은 文學쪽에서 이해하려는 佛敎文學의 한계라고 생각된다.

 

그는 佛敎文學이라는 용어가 학술적 論理를 전제로 한다면

당연히 佛敎를 硏究하기 위한 분류의 방식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文學의 한 특수 분야로서 佛敎文學이거나 또는 그 나라 文學史를 온전하게 파악하고

기술하기 위해 탐구되는 精神史적 思想史적인 硏究태도의 하나라고 보는 것이 옳다.

 

만약 佛敎를 硏究하기 위해 굳이 편의적 용법으로 佛敎文學이라는 분야를 설정하고 논의한다면

그것은 佛敎學의 硏究문제이지 이미 文學분야의 硏究과제는 아니다.

라고 佛敎文學과 文學의 關係와 限界를 못 박고 있다.

 

이점은 佛敎文學인 한 어디까지나 佛敎思想을 포기할 수는 없음을 인정하여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예 佛敎를 포기하든지 文學을 포기하든지 해야 할 것이라는

佛敎的 시각과 극명하게 구분되는 견해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가 내리는 文學이란 본질적으로 世俗적인 것이라던가, 혹은 타락된 사회에서 타락된 형태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 탐구의 한 방식이라는 규정에 대하여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文學을 꼭 세속적이어야만 한다는

울타리로 묶어두는 것 또한 대단히 독단적인 태도라고 본다.

文學의 다양한 방식 중에는 얼마든지 깨달음의 세계도 담길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佛敎는 어디까지나 모든 인간의 영역에서 중생과 부처를

함께 아우르며 이룩하는 세계이지 붓다의 언어가

혹은 어느 禪師의 悟道頌이 결코 복에 겨운 소리만은 아닌 것이다.

 

이런 점에서 佛敎의 가치관에 대한 결여에서 오는

佛敎文學의 태도에 대한 한계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佛敎文學이 서야 할 입장은 진정한 佛敎로 돌아가는 것이

 

佛敎文學을 위해 바람직한 것이라고 본다.

참다운 佛敎的 바탕 없이 佛敎文學은 성립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힌다.

 

이상에서 우리는 佛敎文學에 대한 포괄적인 範疇 문제를 생각해 보았다.

여기서 佛敎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佛敎文學과

文學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佛敎文學의 차이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 마디로 佛敎文學을 정의한다면 佛敎思想을 바탕으로 佛敎的 認識을 통하여

佛敎的 價値를 추구하는 文學이라고 할 수 있겠다.

 

佛敎文學은 佛敎의 가치관과 인식체계를 갖고 佛敎와 文學이 고도의 융합적 관계 속에서

통합을 이룰 때 진정한 佛敎文學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 禪文學의 意味

 

禪文學이라는 말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갖는 입장이 있다.

선은 不立文字이기에 禪에 文學이라는 말로 수식하는 것이 語不成說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인간에게 있어 언어는 부정되고 배제 될 수 있는가?

선가의 그 많은 語錄과 文集과 法語集들은 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우리는 여기서 不立文字의 진의를 표피적으로만 알고

그 말의 자취만을 쫓아 오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정 不立文字의 정신은 不離文字를 통하여 의미가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不立文字와 不離文字는 존재의 양면성이다.

 

김운학은 <佛敎文學의 理論>에서 禪文學을 悟道文學으로 규정하고 있다.

直觀的인 悟道文學이야말로 禪文學의 본령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말이 될 것이다.

 

그러면 우선 禪의 淵源부터 살펴보자.

禪이란 원래 산스크리트어 dhyana, 팔리어 jhana 의 語源을 갖고 있으며

한역으로는 음사하여 禪那라고 하고 약하여 禪이라고 한다.

 

서북 인도에서 실크로드까지의 속어로 jhan이라고 발음하는 것에 연관 지어 말하기도 한다.

원래 禪이란 한자는 天子가 하늘과 땅의 신에 제사 지내고 封禪하는 의미가 있으며

佛敎에서 뒤에 음사하여 사용하게 된 것이다.

 

현재 중국에서는 Ch'an 이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Zen이라고 한다.

국제적으로는 일본식의 발음이 더 많이 알려져 있다.

 

禪이 한자로는 靜慮, 思悠修 등으로 번역 되며

三昧(samadhi)와도 함께 쓰이고 禪定, 또는 禪觀이라 하기도 한다.

 

먼저 붓다의 시대부터 禪定의 실천을 어떻게 했는지 알아보자.

붓다의 선정의 근본사상은 초기에 鹿野園에서 설법한 初轉法輪에 이미 들어있다.

 

4諦 8正道의 道諦속에 正定은 바로 붓다의 초기의 선정에 대한 가르침이며

이것이 바탕이 되어 선정에 대한 가르침은 부처님의 말씀 중 초기부터 나온다.

 

초기 경전인 <수타니파다> 919 나 69 혹은

<法句經> 372에서도 智慧와 禪定을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禪定에는 止(Samadhi)와 觀(Vipassana)이 아울러 갖춰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禪定思想은 부처님의 교설 중 가장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이 3學으로 요약될 수 있다.

 

부처님의 말씀이 3學으로 귀결되는 것은

마치 모든 강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여 말하고 있다.

 

모든 붓다의 교설이 3學으로 모아지게 됨은

3학이 일체 불법의 총체적인 귀결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래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불법이 3學으로 모아지는 것을

일체 강물이 흘러 바다에 들어가 모아지는 비유는 경에 무수히 반복되어 나온다.

 

禪修行의 바탕은 戒, 定, 慧, 3學을 근본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3學과 8正道를 고루 갖춰 수행함으로서 깨달음의 언어가 나올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말씀은 여러 경전을 통하여 볼 수 있고

普照에 의해서도 거듭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定과 慧를 함께 갖춰야 함은 普照도 강조하여 말하기를 모든 과거의 부처님의 가르침이

戒 定 慧 三學을 벗어난 것이 없다고 <定慧結社文>에서 밝히고 있다.

 

바른 수행을 통하여 바른 知見이 나오고 바른

智慧에 의하여 바른 언어가 나올 때

바른 禪文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의 禪宗의 형성과 아울러 당의 詩가 성황을 이루고

그에 따라 선가에서는 무수히 많은 작품이 나왔다.

 

唐代의 선종의 성립의 사상적 근거는 선종에서 표방하는

敎外別傳, 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 이라고 할 수 있다.

이 四句偈야말로 선종의 사상을 대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 詩는 盛唐의 시대에 극성하였지만

禪은 中唐 내지 晩唐에 접어들면서 크게 성함을 보이고 있다.

 

唐代의 훌륭한 禪僧들이 보여준 많은 선의 偈頌을 보면

비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한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禪文學의 공로는 당연히 중국의 선가의 많은 선사들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禪文學의 가장 중요한 분야는 禪詩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偈頌으로 이루어진 시를 그 정수로 볼 수 있는 것이다.

 

偈頌은 독자적으로 중국에서 발현되었다고 볼 수 도 있으나

그 뿌리는 역시 불타의 경전과 맥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禪文學은 바로 중국적인 文化와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여

일어난 매우 뛰어난 불교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禪文學이 어떻게 이해되고 문헌을 어떻게 분류하는지 그 방식을 알아보자.

<禪學大辭典>의 禪籍 분류방식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다.

 

<禪學大辭典>에서는 佛敎문헌을 크게 總記, 經律論, 禪籍과 같이 3부로 나누고 있으며

선적을 다시 8 분야로 나누고 있으니

1.宗義, 2.宗論, 3.史傳, 4.語綠, 5.銘․箴․歌頌, 6.頌古文學, 7.禪文學, 8.淸規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처럼 <禪學大辭典>에서의 禪文學의 영역을 매우 좁혀서

다루고 있음을 볼 수 있으니 이는 협의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영역을 넓혀서 4. 語綠, 5. 銘․箴․歌頌,

6. 頌古文學, 7. 禪文學까지로 확장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 된다.

 

왜냐하면 禪文學에서 語錄이나 頌古文學이나

歌頌의 역할과 의미는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세부로 들어가서 <禪學大辭典>에서 禪文學을 어떻게 나누고 있는지 살펴보자.

세분해서 中國과 日本과 詩文評으로 나누고

다시 각각 別集, 總集, 척독尺牘으로 나누고 있음을 볼 수 있다.

 

別集은 각 개인의 시집과 문집을 말하고

總集은 여러 사람의 작품을 하나로 묶어 낸 것이고 尺牘은 서간문을 말한다.

詩文評에는 偈頌과 그 밖의 시에 관한 평을 묶고 있다.

 

禪文學중에서 중국의 別集을 보면 王梵志 시집을 처음 들고 있으며

이어서 寒山詩를 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또 유의해 볼 것은 寒山詩의 주석서가 많이 나열되어 있고

의한산시집擬寒山詩集이 和寒山詩集과 아울러 많은 양이 열거되고 있음을 볼 때

寒山詩가 禪文學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가히 짐작할 수 있게 한다.

 

3. 偈 頌 文 學

 

禪文學을 悟道文學이라고 할 때 이러한 悟道文學의 형식으로

偈頌文學이 가장 적합하다고 김운학은 <佛敎文學의 理論>에서 밝히고 있다.

禪文學의 형식 중에서 禪詩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김운학은 이에 대하여 禪에서는 直觀을 중시하고

언어를 초월하기 때문에 그 초월된 언어가 상징적으로 나타날 경우

이것이 곧 文學이 되고 이런 경우 선승의 偈는 곧 詩文學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文學에서 가장 중요한 象徵이 직절하고 차원 있게 나타나는 것은

이같이 언어가 초월한 데서 오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불경의 文學的 形式의 3대 장르로 比喩, 說話, 詠頌을 꼽고 있으며

불경을 나누는 형식으로 3藏으로 나누고 있으며 9分敎 혹은 12分敎를 들고 있다.

 

가타는 고기송孤起頌이라고도 하며 韻文의 형식을 띤 단독의 싯귀를 말 한다.

최초의 경전이라 할 수 있는 <담마파다 Dhammapada>와 <수타니파타 Suttanipada>의 일부

<長老偈><長老尼偈><우다나> 등의 초기 경전들의 모두가 이같은 가타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偈頌은 유명한 無常偈나 七佛通偈처럼 경전에서 유래된 것이다.

<法句經>은 붓다의 偈頌이며 테라가타는 비구들의 노래이고 테리가타는 비구니의 노래이다.

偈頌의 연원은 바로 불경의 가타文學에서 비롯된 것이다.

 

言語는 文學에서뿐 아니라 佛敎에서도 文字 般若로

衆生救濟의 方便으로서 훌륭한 도구임을 이미 인정하고 있다.

 

경전의 성립은 불타 在世時와 入滅後 얼마까지는 합송合誦으로 구전되어 오다가 경전이

언제쯤 이루어졌는가는 확연히 말 할 수는 없지만 대략 아쇼카왕 전후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불타는 청중들이 기억하기 쉽게 韻文의 형식을 갖춘 偈頌으로 설법을 하셨다.

 

3藏 12分敎라고 하면 經․律․論 3장과 계경契經, 응송應頌, 기별記別, 풍송諷頌,

무문자설無問自說, 인연因緣, 本事, 本生, 方廣, 未曾有法, 論議의 12분류를 말한다.

종래에 9分敎였던 것을 뒤에 12分敎로 나눈 것이다.

 

이러한 형식을 띄고 있는 것을 볼 때

佛敎의 경전이 대단히 文學性을 함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중에서 禪文學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韻文의 형식을 하고 있는 應頌과 諷頌을 들 수 있다.

뒤에 중국에 와서 禪宗이 일어나면서 많은 語錄이 만들어지고

偈頌이 생겨나는 뿌리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比喩와 說話와 詠頌중에서 韻文 文學과 禪文學은 가장 인연이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偈頌文學의 초기 형태를 알아보기 위해 초기의 경전을 살펴보면 가장 초기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 경전으로 수타니파타Stta-nipatha, 담마파다Dhammapada, 테라가타Theragatha,

테리가타Therigatha 등 경전이 모두 가타의 형식을 띄고 있음은 偈頌의 연원을 잘 알 수 있게 한다

 

<법구경>은 남방과 북방에 모두 전승되고 있는 경전으로

가장 초기의 경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모두 423편의 偈頌으로 되어 있으며 그때 때 불타께서 설하신 말씀을 담고 있는 것이다.

 

팔리어의 경명으로 담마란 진리를, 빠다는 길을 의미한다.

5세기 경 붓다고사(Buddhaghosa)가 주석을 붙였다.

 

<수타니파타>는 북방에는 전하지 않고 오직 일부가 <義足品>으로 漢譯되어 전해지고 있는데

이것이 偈頌으로 되어 있어 <詩品>이라고도 한다.

 

모두 蛇品, 小品, 大品, 義品, 彼岸度品의 5장으로 되어 있으며

佛陀의 가장 初期의 言語들을 담고 있다.

특히 제 4장 義品과 5장 彼岸度品이 더욱 오래 된 것으로 전해진다.

 

<長老偈>와 <長老尼偈>는

불타 당시부터의 제자인 많은 비구 비구니들의 偈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중에는 불타의 偈頌도 들어 있다.

 

불타의 말씀을 담고 있는 경전 중에 특히 가타伽陀의 형식을 하고 있는 것이나

重頌의 경우 운문의 시적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이러한 운문적인 형식이 뒤에 선가에 내려와 偈頌으로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처음 偈頌이라는 말이 보이는 것은 왕유王維의 육조능선사비명병서六祖能禪師碑酩幷序에서이다.

여기에서 시를 偈頌으로 말하고 있다.

 

중국에서 흔히 偈頌의 가장 오래된 모습으로 傅大士와 寶誌公 和尙의 작품을 꼽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唐의 어느 때에 兩者에 가탁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여 진다.

 

僧璨의 <信心銘>도 僧璨의 전기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진위를 알 수가 없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분명히 僧璨의 친작으로 주장하는 입장도 있다.

 

<信心銘>이 僧璨의 작으로 처음 보이는 것은 <百丈廣錄>에 이르러서이고

<歷代法寶記>나 <寶林傳>에는 보이지 않고 있으며

<宗鏡錄>에 牛頭法融의 신심명으로 되어 있으나 실은 心銘이라고 하는 것이며

<信心銘>과 <心銘>은 유사성이 있어 <信心銘>은 <心銘>의 別行本인 정치본이었다고 논한다.

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禪의 偈頌文學이 왕성하게 일어난 것은 石頭 문하에서이다.

그리고 동시에 馬祖문하에서도 일어나기 시작하여 南泉, 潙山 아래에도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이러한 모습을 온전히 잘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는 <傳燈錄>과 <祖堂集>을 빼놓을 수가 없다.

 

偈頌이라고 하는 것은 원래 偈와 頌이 달리 쓰여지고 있는 것으로

偈는 가타에서 유래되었으며 頌은 중국의 전통적인 시 형식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詩經>에는 6義가 있으니 흥興, 부賦, 비比, 풍風, 아雅, 송頌으로

頌은 聖王의 聖德을 송양하는 시문체라 하며 宗廟祭를 위한 가사체의 시문이라고도 한다.

 

頌은 형식상으로는 漢詩의 律格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내용면으로 보면 頌은 문자를 빌려 문자 밖의 소식을 읊어

敎外別傳 不立文字의 宗旨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그 격조와 기운과 함축이 독특하다.

 

<傳燈錄>과 <祖堂集>에 수록된 偈頌의 작자들 중에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禪師로

馬祖문하에 장사경잠長沙景岑, 구산정원龜山正原, 향엄지한香嚴智閑을 들 수 있으며

 

石頭문하에 石頭希遷, 丹霞天然, 三平義忠, 夾山善會, 洞山良价, 樂普元安, 龍牙居遁,

曹山本寂, 同安常察, 雪峰義存, 雲門文偃, 남악유경南嶽惟勁, 취암영참翠巖令參, 玄沙師備,

鏡淸, 임계용탈臨谿龍脫, 청량문익淸凉文益등을 꼽고 있다.

 

중국에 있어서 본격적인 禪詩의 창작은 五祖 弘忍에서 六祖 慧能과 神秀의 南北宗으로 갈릴 당시

선가에서 悟境의 표현이나 傳法時에 詩偈를 사용하면서 비롯되었고 그 후 南宗이 五派로 나뉘고

다시 臨濟와 曹洞의 二宗으로 통일 되면서 더욱 확고한 禪詩文學의 토대를 굳혀 갔다.

 

특히 唐의 近體詩가 성행될 때 불전적인 偈頌이

近體詩의 押韻과 格調를 따르게 되면서 일반 詩文學의 중심을 이루게 되었다.

 

이때의 禪詩人들로는 唐의 寒山, 拾得, 豊干, 교연皎然 등과

宋의 雪竇重顯, 天童正覺, 園悟克勤 등의 대가들이 있다.

 

다음은 선가에서 偈頌을 통하여 法을 전함에 중요하게 쓰였던 양식으로 傳法偈를 살펴보자.

선가의 전통 중에서 법을 전하는 전통은 생명이기에 법을 단절됨이 없도록

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는 새삼 강조를 요하지 않는다.

 

법을 전한다는 것은 선가의 가장 중요한 일이기에 傳法偈는 일찍부터

선가에서 偈頌의 형식을 빌려 자리 잡아 내려오게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偈頌文學의 비중은 매우 크다.

 

傳法偈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六祖壇經>에서이다.

그 후 傳燈史書에서 법맥을 이어가고 법등을 밝히는 과정에서 필요에 의하여

傳法偈를 창작하게 되니 <寶林傳>에서 그 원형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六祖壇經에는 達磨로부터 慧能까지 東土 6代의 傳衣付法頌을 전하고 있으니

다음과 같이 傳衣付法頌을 誦出하고 있다. 가사는 이제 전하지 않는다.

 

자 들어라

나는 그대를 위하여 전의부법송을 송출하리라.

 

노래로 말씀하였다.

달마대사의 송에 말씀하기를

내가 본시 당국에 와서 가르침을 전하고 미정을 구하노니

꽃 한 송이에 다섯 잎이 열리어 그 결과가 자연히 이루어지리라. 라고 하고

 

이어서 6조에 이르기까지 조사들의 傳法偈를 송출하고 있으며

별도로 慧能의 偈頌을 읊고 있다.

 

慧能이 전법의 신표로 가사를 받았다는 것은 神會의 창출임은 이미 밝혀진 바와 같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傳法偈를 처음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燉煌本 <六祖壇經>의 특징의 하나가 그러한 傳衣說 대신에

傳法偈의 創始를 보여주고 있는 점이라 할 수 있다.

 

燉煌本 이외의 유통되는 단경에는 達磨에서 五祖까지의 傳法偈를 생략하고 慧能의 傳法偈만

싣고 있음을 볼 때 敦煌本 壇經은 가장 오래 된 원형을 간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慧能의 傳法偈를 보자.

 

심지함정종心地含情種 심지는 정종을 머금어

법우즉화생法雨卽花生 법우에 곧 꽃을 피운다.

자오화정종自悟花情種 스스로 법의 정종을 깨달으니

보리엽자성菩提葉自成 보리의 결과는 저절로 이루어지도다.

 

이러한 傳衣付法頌은 達磨의 예언처럼 慧能의 출현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달마의 傳法偈는 慧能의 전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창안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傳法偈의 출현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慧能과 神秀와의 心偈는 傳法偈와 더불어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면 神秀와 慧能의 心偈를 대비시켜 비교하여 보자.

이는 깨달음의 경지를 나타내는 悟道頌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神秀의 偈頌을 보자.

 

신시보리수身是菩提樹 몸은 보리의 나무요

심여명경대心如明鏡臺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나니

시시근불식時時勤拂拭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막사유진애莫使有塵埃 티끌과 먼지 묻지 않게 하라.

 

이와 같이 神秀가 偈頌을 지어 벽에 붙이자

慧能은 자신의 心偈를 쓰게 하여 그 옆에 붙여놓은 것이다.

 

보리본무수菩提本無樹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명경역비대明鏡亦非臺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 없네.

불성상청정佛性常淸淨 부처의 성품은 항상 깨끗하거니

하처유진애何處有塵埃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 있으리오.

 

심시보리수心是菩提樹 마음은 보리의 나무요

신위명경대身爲明鏡臺 몸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라

명경본청정明鏡本淸淨 밝은 거울은 본래 깨끗하거니

하처염진애何處染塵埃 어느 곳이 티끌과 먼지에 물들리오.

 

앞의 偈頌은 神秀의 偈頌이고 뒤의 두 偈頌은 慧能의 偈頌이다.

<壇經>은 여러 本이 있는데 현재 가장 오래 된 본으로 원형을 잘 보여주고 있는 敦煌本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유통본에 실려 있는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라는 귀절은 敦煌本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위 偈頌에서 문제가 된 것은 바로 우리의 心性을 점차로 닦아야 하는가

아니면 몰록 깨달아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神秀는 점점 닦아야 한다고 말하고 慧能은 몰록 깨달아야 한다로 말하고 있어

이것이 南頓北漸으로 갈라지게 된 근본 입장의 차이인 것이다.

 

이러한 차이를 나타내는 귀절은 神秀의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과 먼지 묻지 않게 하라.> 라는 데 대하여

慧能은 <부처의 성품은 항상 깨끗하거니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 있으리오>

<밝은 거울은 본래 깨끗하거니 어느 곳이 티끌과 먼지에 물들리오>라고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神秀는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고 하는 반면 慧能은 본래 청정하여 닦을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같이 언제든지 慧能의 心偈는 神秀의 게와 대비되어 그 진의를 더욱 잘 알 수 있게 된다.

 

이러한 傳法偈의 역할은 뒤에 傳燈史書가 이루어질 때 중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寶林傳>과 傳燈錄>에서 과거 7佛부터 이어지는 傳法偈가 실리게 되었다.

 

이후로는 선가에서 필수적으로 법을 인가함에 傳法偈로 그 신표를 삼기에 이르렀다.

다음은 禪家의 語錄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4. 語 錄

 

語錄은 구어체의 문장으로

스승이나 禪師의 行蹟, 言行, 가르침, 法聞 등을 담고 있는 것을 말한다.

 

語錄에는 반드시 작자가 따로 있는 것이다.

語錄이 출현하게 되는 역사적 배경은 선종의 발전과 더불어 이루어졌다.

 

祖師禪의 시대에 선승들의 일상생활의 대화나 행적을 기록한 語錄이라는 독특한 문헌이

출현하게 된 것은 佛敎가 인간의 평범한 생활종교로서 정착된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語錄의 출현은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語錄은 주로 馬祖系의 祖師禪에서 나왔으며

선가의 독특한 인간에 대한 觀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선종語錄의 특징 중의 하나가 師資間의 문답과 평상시의 대화를 회화체 그대로 기록한 것으로

소위 口語(俗語, 蜚語)의 佛敎인 것이다.

이는 구어文學인 白話文學의 성립과도 깊은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선의 語錄의 대부분은 일상생활의 대화를 기록한 것이지만 단순히 그것으로 끝나는

의미 없는 대화가 아니라 위대한 종교적 체험을 갖는 살아 있는 생활의 종교인 것이다.

바로 현실 그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삶의 지혜이며 깨달음의 생활체험을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깨달음을 향해 무한히 도전하는

인간의 끊임없는 의지의 소산이며 인간승리의 노래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인간관을 초래케 하였으며

인간의 말을 기록한 語錄의 출현은 새로운 인간의 종교의 시대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語錄의 역할 또한 祖師禪의 출현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禪文學의 가장 중요한 형식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바로 語錄은 인간적인 佛敎의 출현을 예고하였으며

인간 신뢰의 시대로서 인간성의 자각과 회복을 이루어 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선문답이라는 특수한 정형적 문답형식이 이러한 語錄의 출현을 가능케 하였던 것이다.

 

선문답은 제자와 스승 간에 살아 있는 언어로 법을 묻고 답하는

대화로서 선종이 성립되면서 독특하게 생겨난 家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 속에서 평상시에 이야기한 직설을 시자나 제자가

수시로 필록한 것으로 語錄은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어

저술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며 반드시 제3자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당대 주지의 上堂說法과 示衆의 말을 기록한 것이며

일종의 聖典으로서의 의미를 가짐과 동시에 평상시 일상생활의 대화나 행적을 수식하지 않고

충실히 그대로 꾸밈없이 들은 대로 기록한 것이기에 저속한 말이 많다.

 

語錄은 필연적으로 제3자에 의하여 쓰여 지게 마련이다.

평상시의 선사의 언행과 행위를 제자들이 모아서 내는 것이며

그 속에는 禪問答과 上堂說法, 訓示등도 함께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語錄은 특별한 요건 속에서 태어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선사들의 語錄이 쏟아져 나옴에 따라 이러한 語錄은

佛敎文學의 성립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으니 白話文學과도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또한 俗文學과의 관계도 많이 있다.

 

語錄은 당시 어디서 그 어떤 사람과의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간과의 육성의 대화이며 현실생활에 밀착된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또한 단순한 일상생활의 무의미한 대화가 아니라 위대한 개성을 발휘한

어느 宗敎家의 전체적인 생활체험에서 발현된 말이며

지혜로서 관철된 불법의 정신을 일상생활에서 전개한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당대의 祖師禪에서 인간의 대화집인 語錄이 출현하자

隋, 唐代에까지 많이 만들어졌던 위의경僞疑經의 생산이 갑자기 중단되었다.

 

僞疑는 사람이 만든 경인데 이는 어떤 사람이 자기의 佛敎觀이나 宗敎觀을 주장하고 싶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권위주의와 인간불신의 시대이기에

붓다의 입을 빌려 佛說의 권위에 의지하여 인간이 만든 경전을 말한다.

 

이러한 語錄의 의미는 진정한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고

主體的인 삶을 살아가도록 일깨웠던 것이다.

 

口語體 文學은 기존의 인간의 형식적 틀을 깨고

자유롭고 활달하게 열어준 면에서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고 보여 진다.

 

이런 점에서 佛敎의 역할은 지대하였고 특히 佛敎文學으로서 매우 괄목할만한 것이다.

이런 구어文學의 맥락에서 變文 또한 중요한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語錄과 같은 口語文學에 속하며 佛敎의 譯經의 과정에서 태어난 變文에 대하여 알아보자.

사실 語錄의 성립 근저에는 이러한 變文과 口語로 된

白話文學의 뿌리를 제대로 알아야만 理解가 가능한 것이다.

 

變文이란 變相이란 말과 대칭되는 말로 문체의 명칭으로 합당하다고 본다.

變文은 佛敎의 중국화 과정에서 대중에 접근하기 위하여 쉬운 문체로 바꾸어 주는

과정에서 태어났으며 인도문체의 영향으로 운문과 산문의 혼합체로 이루어져 있다.

 

變文과 白話詩의 관계는 중국고전 소설에서 볼 수 있으며

한편 白話詩의 연원은 變文에서 찾아 볼 수 있다고 보여 진다.

오히려 白話詩文學과 變文과의 관계는 매우 깊게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中國文學의 역사상 흐름에 결정적인 변화를 준 사건은 佛經의 飜譯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불경번역은 이제까지의 중국 언어에 엄청난 변화를 주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變文과 白話文學과 俗文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中國文學的 맥락은 특히 禪語錄의 발생에 많은 관련을 맺고 있다.

 

인도의 언어와 중국의 언어는 체계와 어순과 문자까지 현격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인도佛敎를

10세기 이상 줄기차게 받아들이며 번역 사업을 꾸준히 해왔다.

 

불경의 번역은 中國文學史上 단순한 번역文學의 성립에서 그치지 않고

중국문체와 어법의 변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音韻學의 성립에도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佛敎弘法을 위하여 민중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강술한 律師의 법문이나

講師의 禪談과 禪師들의 일상語錄들은 불경번역을 통하여 이루어진 중요한 변화이다.

 

불경번역과 아울러 俗文學의 일종으로 變文의 탄생은

語錄文學과 매우 밀접한 관계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깊다고 보여 진다.

 

다음은 變文의 발현과 俗文學과의 관계를 알아보자.

중국 서북방 敦煌의 千佛洞에서 많은 고문서가 1907년에 발견 되었다.

그 중에 變文이 출현하였던 것이니 中國文學史에 큰 변화를 끼친 사건이었다.

 

中國文學에서 중요한 變文은 바로 佛敎의 문체이고

佛敎를 전파시키기 위한 스님들의 노력으로 시작 되었다.

 

당의 吳道子는 地獄變(變相을 약칭하여 變이라 함)을 잘 그리는 화가였다.

이는 부처님의 이야기를 벽화로 바꾸었다는 의미로 변상이라 하였다.

 

변상과 같이 불경의 내용을 이야기체로 바꾸어 쓴 문장을 變文이라 했다고 본다.

또한 산문과 운문이 혼합된 강창문학講唱文學을 變文이라고 하였다.

이런 變文의 시작은 당대 스님들의 俗講이 처음 효시였다고 본다.

 

그 유행의 시기에 대하여 吳代 王定保의 무언撫言에 一則의 장고張枯와 白居易(772-846)의

대화를 기록한 것이 있는데 거기에 目蓮變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봐

變文은 늦어도 中唐시대 이전에 유행하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變文과 變相은 동시에 유행한 것으로 보이며

늦어도 7세기 말엔 變文을 俗講하는 행사가 있었으리라고 추측된다.

 

變文의 내용은 물론 스님들이 佛敎홍법을 위해 講唱을 하였던 만큼

佛敎의 경전을 이야기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차차 청중들의 흥미에 맞추어 더 많은 청중을 끌기 위하여

민간의 이야기를 내용으로 變文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變文 중 佛敎的 내용은 주로 다음과 같다.

 

태자성도경太子成道經 태자성도변문太子成道變文 팔상록八相錄 항마변문降魔變文

금강반야바라밀경변문金剛般若波羅密經變文 불설아미타경강경문佛說阿彌陀經講經文

묘법련화경강경문妙法蓮花經講經文 유마힐경강경문維摩詰經講經文

목련연기目蓮緣起 등이 있었다.

 

중국 俗文學과 禪과 깊은 인연이 맺어지게 된 것은 白話文學에 의해서이다.

白話文學은 白話詩로 대표되는데 오늘날의 백화문인 구어체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俗文學의 연원에 대하여 唐代 이래 선승이 자기의 깨달은 바를 偈頌에 나타내고

俗講에 쓰인 俗文學의 종류는 俗文學의 한 연원이 되었다는 견해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살펴봄으로 해서 俗文學과 佛敎文學과의 관계 내지 白話文學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俗文學은 그 발생적인 입장에서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여야 올바르게 알 수 있을 것이다.

 

禪文學의 형식으로서 선가의 가풍을 가장 폭 넓게 담고 있는 것은 역시 語錄이며

이러한 語錄은 선가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던 문헌 편집의 방법으로

語錄文學이 갖는 의미 또한 매우 큰 것이다.

 

일반文學과 구별되는 두드러진 특징을 語錄文學은 잘 보여주고 있다.

語錄 중에 가장 뛰어난 것으로 <臨濟錄><趙州錄><雲門錄> 등 이 모든 語錄들이

금자탑을 이루고 있음을 볼 때 語錄文學이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語錄文學은 그 뿌리는 白話詩와 관련을 갖고 있으며 이런 점에서 王梵志를 계승하여

白話詩를 많이 남겼던 寒山詩와의 관계는 매우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5. 頌古文學

 

禪文學의 여러 양식 중에서

그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주고 있는 것으로 또한 頌古文學을 들 수 있다.

頌古의 시작은 臨濟宗의 분양선소汾陽善昭(947-1024)에서 비롯되었다.

 

<傳燈錄>100則의 기연을 뽑아내어 여기에 頌과 념拈을 첨가하여

先賢一百則과 大別一百則과 스스로 만든 公案 一百則을 모아 頌古大別三百則을 편집하였다.

이것이 百則頌古의 최초이다.

 

雲門宗의 4세인 雪竇重顯(980-1052)은 天成年間(1023-1031)에

明州雪竇山을 중심으로 교화를 펼치면서 <頌古百則>을 만들었는데 이를 雪竇頌古라고 부른다.

 

특히 雪竇의 <頌古百則>은 汾陽의 頌古보다

훨씬 뛰어난 것으로 시적으로도 아름다운 文學性이 넘치고 있다.

 

雪竇의 <頌古百則>은 뒤에 臨濟宗의 園悟克勤(1063-1135)이

호남의 예주 夾山 靈泉寺 등지에서 提唱하여 <碧巖錄>10권으로 재편하였다.

雪竇頌古는 園悟의 <碧巖錄>의 출현으로 평가가 바뀌게 되었다.

 

碧巖錄이 宗門의 第一書로 높이 평가되면서 왕성하게 유행하고 있는데 반하여

雪竇頌古는 <碧巖錄>에 가리어 그다지 주목되지 못했다.

 

碧巖이라는 말이 유래된 것은 園悟가 처음 雪竇의 <頌古百則>을 提唱한 곳이

호남성 예주의 夾山 靈泉院인데 이 절의 법당에 碧巖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當代에 이 절에 살던 夾山善會(805-881)선사는 어느 날 어떤 스님으로부터

夾山의 경계가 어떤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偈頌을 지어 대답한데서 유래한다.

 

원숭이는 새끼를 안고 푸른 봉우리 뒤로 돌아가고

새들은 꽃을 물고 푸른 절벽 앞으로 떨어진다.

 

頌古란 당대의 祖師禪의 선승들이 언행과 禪問答의 취지나 어귀에 대하여

偈頌이나 송으로서 간결하게 독자적인 해석을 하여 宗義를 선양하는 것이며

拈古란 古則公案을 염롱한 것으로 직절간명하게 고칙공안을 비평한 것이다.

 

고칙공안에 偈頌을 붙이는 것은 <祖堂集>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듯이

中唐시대부터 비롯되었으며 晩唐에 이르러 갑자기 많이 유행하였다.

雪峰, 玄沙, 雲門, 法眼 등의 선승은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다.

 

宋代의 頌古文學은 唐末 5代의 雲門文偃과 法眼門益에서 비롯된

古則의 代語 別語 着語 下語의 풍조를 새롭게 집대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송대의 文學的인 선은 강남의 풍토와 시의 정신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으며

선을 통한 체험과 깨달음의 세계를 文學的인 훈련 없이는 표현할 수 없게 되었다.

 

당대의 祖師禪이 일상생활의 종교로 전개되는데 반하여 송대의 선은 선의 실천을 통한 마음의

수양과 더불어 의식적으로 文學的인 공부를 하지 않고선 선풍을 전개할 수 없는 선을 펼쳤다.

 

汾陽과 雪竇의 頌古百則은

이러한 文學的인 宋代禪의 방향을 제시한 획기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看話禪 또한 頌古文學과 연관이 깊이 맺어져 있다.

 

다음은 頌古文學의 여러 모습들을 살펴보자.

臨濟宗의 백운수단白雲守端(1025-1072)이 110칙 頌古를 지었으며

大慧도 뒤에 東林과 상대하여 110칙 頌古를 지었다.

또 曹洞宗의 投子義靑, 丹霞子淳, 宏智正覺등이 <頌古百則>을 지어 일세를 드날렸다.

 

뒤에 園悟의 <碧巖錄>을 모방하여 그것을 제창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

元代의 임천종윤林泉從倫이 <空谷集><虛堂集>을 萬松行秀가 <從容錄>을 각각 편집하였다.

굉지宏智와 진헐청료眞歇淸了의 <신심명념고信心銘拈古>도 있다.

 

大慧의 <正法眼藏>과 이를 이은 <연등회요聯燈會要>는

가장 잘 집대성한 송고집으로서 文學的인 영향이 심대하였다.

그리고 無門慧開의 <無門關>은 48칙을 만들었다.

 

대체로 선가의 頌古文學은 후대로 내려와 禪文學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던 것이다.

禪家의 문학 양식 중에서 가장 세련된 형식이 頌古文學이라 할 수 있다.

 

頌古文學의 가장 방대한 집대성은

高麗 진각혜심眞覺慧諶에 의해 이루어진 <禪門拈頌>이라 할 것이다.

 

<禪門拈頌>에서는 석가모니부로부터 시작하여 西天 28祖와 東土 6祖를 비롯하여

중국의 5家 7宗의 선사들을 총망라 하여 싣고 있다.

이 점에서 가장 완벽한 편집을 이루었다.

 

이상과 같이 禪文學의 脈絡을 살펴보았다.

그런 과정에서 佛敎文學의 범주에 대하여 그 문제점을 짚어보게 되었으며

그 의미와 범위 등이 어느 정도 윤곽은 드러났다고 보여 진다.

아울러 偈頌文學과 語錄, 頌古文學등 선문학의 형식에 대하여도 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