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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쿳따까 니까야

이띠웃따까 Itivuttaka 如是語經 2.2

2.2 Dutiyavagga 第二品

2.2.1 Vitakkasutta 尋思 38. 사유(자주 일어나는 생각들)의 경

1.

이와 같이 세존께서 말씀하시고 아라한(거룩한 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나는 들었다.

 

“비구들이여,

아라한(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분인 여래에게는 2가지 사유가 자주 일어난다.

 

안온에 입각한 사유와

멀리 여읨에 입각한 사유이다.

 

비구들이여,

여래에게는 해롭지 않은 의지(를 가지는 것)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한다(폭력을 떠난 희열과 폭력을 버린 행복이 있다).

 

비구들이여,

바로 그 폭력을 떠난 희열과 폭력을 버린 행복이 있는 여래에게는

‘어떠한 행동으로든 어떤 누구도 동물이건 식물이건 해치지 않을 것이다.’라는

이러한 사유가 자주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여래에게는 멀리 떠남의 희열과 멀리 버림의 행복이 있다.

 

비구들이여,

바로 그 멀리 떠남의 희열과 멀리 버림의 행복이 있는 여래에게는

‘악하고 불건전한 것은 끊어졌다(좋지 않은 것을 모두 버렸다).’라는

이러한 사유(생각)가 자주 일어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그대들도 폭력을 떠남의 희열과 폭력을 버린 행복 속에서 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바로 그 폭력을 떠난 희열과 폭력을 버린 행복을 지닌 그대들에게는

‘어떠한 행동으로든 어떤 누구도 식물이건 동물이건 해치지 않을 것이다.’라는

이러한 사유가 자주 일어날 것이다.

 

또한 비구들이여,

그대들도 멀리 떠남과 홀로 머무는 것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비구들이여,

바로 그 멀리 여읨의 희열과 멀리 여읨에서의 행복을 지닌 그대들에게는

‘악하고 불건전한 것은 끊어졌다.’라는 이러한 사유가 자주 일어날 것이다.”

 

2.

이것이 세존께서 말씀하신 의미이다.

그래서 이에 관해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아내는

깨달은 분, 여래에게는

이러한 2가지 사유가 일어난다.

 

첫 번째는 안온에 입각한 사유가 나타나고

두 번째는 멀리 여읨에 입각한 사유가 나타난다.

 

어둠을 몰아내고 피안으로 간 위대한 선인

(깨달음의) 성취에 이른 위대한 성인은

갈애를 소멸시킴으로 해서

(번뇌의 흐름을) 온전하게 건너고 해탈하여

때(번뇌)가 하나도 없는 스승이 되네

 

저 성인은 이제 마지막 몸을 지니고 마라를 뒤에 버렸으니

늙고 쇠약해지는 것을 초월했다고 나는 말한다.

 

산꼭대기 위에 서 있는 사람이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둘러 볼 수 있듯이

진리의 법의 궁전에 오른

모든 것을 보는 분, 저 지극히 자유로운 분은

세상의 사람들을 그렇게 보네

 

슬픔을 떠나 슬픔이 없으신 분께서는

아직도 슬픔에 잠겨있고

태어남과 늙음에 사로잡혀 슬픔에 빠진

저 아래의 사람을 살피네.

 

이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의 의미라고 나는 들었다.

 

2. Dutiyavaggo

1. Vitakkasuttaṃ

 

38. Vuttañhetaṃ bhagavatā, vuttamarahatāti me sutaṃ –

“Tathāgataṃ, bhikkhave, arahantaṃ sammāsambuddhaṃ dve vitakkā bahulaṃ samudācaranti – khemo ca vitakko, paviveko ca [viveko ca (syā.)]. Abyāpajjhārāmo [abyāpajjārāmo (ka.), abyābajjhārāmo (?)], bhikkhave, tathāgato abyāpajjharato. Tamenaṃ, bhikkhave, tathāgataṃ abyāpajjhārāmaṃ abyāpajjharataṃ eseva vitakko bahulaṃ samudācarati – ‘imāyāhaṃ iriyāya na kiñci byābādhemi tasaṃ vā thāvaraṃ vā’ti.

 

“Pavivekārāmo, bhikkhave, tathāgato pavivekarato. Tamenaṃ, bhikkhave, tathāgataṃ pavivekārāmaṃ pavivekarataṃ eseva vitakko bahulaṃ samudācarati – ‘yaṃ akusalaṃ taṃ pahīnan’ti.

 

“Tasmātiha, bhikkhave, tumhepi abyāpajjhārāmā viharatha abyāpajjharatā. Tesaṃ vo, bhikkhave, tumhākaṃ abyāpajjhārāmānaṃ viharataṃ abyāpajjharatānaṃ eseva vitakko bahulaṃ samudācarissati – ‘imāya mayaṃ iriyāya na kiñci byābādhema tasaṃ vā thāvaraṃ vā’ti.

 

“Pavivekārāmā, bhikkhave, viharatha pavivekaratā. Tesaṃ vo, bhikkhave, tumhākaṃ pavivekārāmānaṃ viharataṃ pavivekaratānaṃ eseva vitakko bahulaṃ samudācarissati – ‘kiṃ akusalaṃ, kiṃ appahīnaṃ, kiṃ pajahāmā’”ti. Etamatthaṃ bhagavā avoca. Tatthetaṃ iti vuccati –

 

“Tathāgataṃ buddhamasayhasāhinaṃ, duve vitakkā samudācaranti naṃ;

Khemo vitakko paṭhamo udīrito, tato viveko dutiyo pakāsito.

 

“Tamonudaṃ pāragataṃ mahesiṃ, taṃ pattipattaṃ vasimaṃ anāsavaṃ;

Visantaraṃ [vesantaraṃ (sī. ka.), vissantaraṃ (pī.)] taṇhakkhaye vimuttaṃ, taṃ ve muniṃ antimadehadhāriṃ;

Mārañjahaṃ [mārajahaṃ (syā.), mānajahaṃ (sī. ka.), mānaṃ jahaṃ (pī.)] brūmi jarāya pāraguṃ.

 

“Sele yathā pabbatamuddhaniṭṭhito, yathāpi passe janataṃ samantato;

Tathūpamaṃ dhammamayaṃ sumedho, pāsādamāruyha samantacakkhu;

Sokāvatiṇṇaṃ janatamapetasoko, avekkhati jātijarābhibhūtan”ti.

 

Ayampi attho vutto bhagavatā, iti me sutanti. Paṭhamaṃ.

 

二集 第二品

三八

我聞應供已說 世尊說此 諸比丘 如來應供 正自覺者多修行二尋思 為安穩尋思與孤獨尋思

諸比丘 如來無害之欣喜且無害之悅樂

諸比丘 如來多修行此無害之欣喜與無害悅樂處之尋思

我依此威儀 對任何有情與非情 無有害事

 

諸比丘 如來有孤獨之欣喜與孤獨之悅樂

諸比丘 如來多修行此孤獨之欣喜與孤獨悅樂處之尋思 捨離不善者

是故諸比丘亦應住於無害之欣喜與無害之悅樂

 

諸比丘 汝等之中住於無害之欣喜與無害之悅樂 則將多修行尋思

我等依此之威儀 對任何有情非情 無有害事

 

諸比丘 應住於孤獨之欣喜與孤獨之悅樂

諸比丘 汝等之中住於孤獨之欣喜與孤獨之悅樂者則將多修行尋思

我等捨離所有不善 所有未捨離者

 

世尊說此義 此處如是說

耐無可耐如來佛 修行彼之二尋思 一思安穩二孤獨 消暗大仙行彼岸

得利得力無有漏 竭盡渴愛解脫者 惟牟尼得最後身 斷慢老達彼岸者

立於山顛之巖者 下見每人於四方 彼之每有一切眼 賢者登上法之殿

彼無憂者沉於憂 下見生者惱人人

我聞世尊說此義

 

2.2.2 Desanāsutta 說示 39. 설법(진리 법을 가르침)의 경

1.

이와 같이 세존께서 말씀하시고 아라한(거룩한 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나는 들었다.

 

“비구들이여,

아라한,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분인 여래에게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설법(연이어 가르치는)이 존재한다.

 

2가지란 무엇인가?

‘그대들은 악을 악으로 보아야 한다.’라는 이것이 첫 번째 설법이다.

‘악을 악으로 보고 나서 그대들은 그것을 싫어하여 떠나서 벗어나야 한다.’

라는 이것이 두 번째 설법이다.

 

비구들이여,

아라한,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분인 여래에게는

이러한 서로 다른 두 가지 설법이 존재한다.”

 

2.

이것이 세존께서 말씀하신 의미이다.

그래서 이에 관해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일체의 존재를 불쌍히 여기는 이렇게 오신 님,

깨달은 님의 법문 가운데 말씀을 보라.

 

2가지 원리가 설해진 것이다.

그대들은 악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때 그것을 떠나야 한다.

 

거기서 마음을 떠나면

괴로움의 종식을 이루리.

 

이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의 의미라고 나는 들었다.

 

2. Desanāsuttaṃ

39. Vuttañhetaṃ bhagavatā, vuttamarahatāti me sutaṃ –

“Tathāgatassa, bhikkhave, arahato sammāsambuddhassa dve dhammadesanā pariyāyena bhavanti. Katamā dve? ‘Pāpaṃ pāpakato passathā’ti – ayaṃ paṭhamā dhammadesanā; ‘pāpaṃ pāpakato disvā tattha nibbindatha virajjatha vimuccathā’ti – ayaṃ dutiyā dhammadesanā. Tathāgatassa, bhikkhave, arahato sammāsambuddhassa imā dve dhammadesanā pariyāyena bhavantī”ti. Etamatthaṃ bhagavā avoca. Tatthetaṃ iti vuccati –

 

“Tathāgatassa buddhassa, sabbabhūtānukampino;

Pariyāyavacanaṃ passa, dve ca dhammā pakāsitā.

 

“Pāpakaṃ passatha cetaṃ [cekaṃ (sī. pī.), chekā (syā.)], tattha cāpi virajjatha;

Tato virattacittāse, dukkhassantaṃ karissathā”ti.

 

Ayampi attho vutto bhagavatā, iti me sutanti. Dutiyaṃ.

 

三九

我聞應供已說 世尊說此 諸比丘 如來應供 正自覺者有二種之說法差別

何之為二 言見惡知惡

此為第一之說法 言由見惡知惡而嫌厭離 解脫 此為第二之說法

 

世尊說此義 此處如是說

愍諸眾生如來佛 見差別教說二法

見惡能知故離心 是為苦之將有終

我聞世尊說此義

 

2.2.3 Vijjāsutta 明 40. 명지(지혜)의 경

1.

이와 같이 세존께서 말씀하시고 아라한(거룩한 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나는 들었다.

 

“비구들이여,

무명(어리석음)은 불건전한 상태에 앞서고

그것으로 이끌어 가며 그 뒤를 따라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고

불건전한 행위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일이 생겨난다.

 

비구들이여,

명지는 좋은 상태에 앞서고 그것으로 인도하며

그 뒤를 따라 부끄러움과 불건전한 행위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난다.”

 

2.

이것이 세존께서 말씀하신 의미이다.

그래서 이에 관해 또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이 세상이나 저 세상에서

어떠한 나쁜 곳에서든

일체의 욕망과 탐욕에 이루어진 것은

무명을 뿌리로 한다.

 

삿된 욕망을 가진 사람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남을) 존경하지 않으므로

그 때문에 악을 낳고 (죄악이 생겨나고)

그것으로 괴로운 곳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욕망과 탐욕과

무명을 사라지게 하여

명지를 일으키는 수행승은

일체의 나쁜 곳을 끊어버린다.”

 

이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신 의미라고 나는 들었다.

 

3. Vijjāsuttaṃ

40. Vuttañhetaṃ bhagavatā, vuttamarahatāti me sutaṃ –

“Avijjā, bhikkhave, pubbaṅgamā akusalānaṃ dhammānaṃ samāpattiyā anvadeva ahirikaṃ anottappaṃ; vijjā ca kho, bhikkhave, pubbaṅgamā kusalānaṃ dhammānaṃ samāpattiyā anvadeva hirottappan”ti. Etamatthaṃ bhagavā avoca. Tatthetaṃ iti vuccati –

 

“Yā kācimā duggatiyo, asmiṃ loke paramhi ca;

Avijjāmūlikā sabbā, icchālobhasamussayā.

 

“Yato ca hoti pāpiccho, ahirīko anādaro;

Tato pāpaṃ pasavati, apāyaṃ tena gacchati.

 

“Tasmā chandañca lobhañca, avijjañca virājayaṃ;

Vijjaṃ uppādayaṃ bhikkhu, sabbā duggatiyo jahe”ti.

 

Ayampi attho vutto bhagavatā, iti me sutanti. Tatiyaṃ.

 

四○

我聞應供已說 世尊說此 諸比丘 無明為到達不善法之先驅 於後有無慚與無愧

然則 諸比丘 明是到達善法之先驅 於後有慚愧

 

世尊說此義 此處如是說

此世彼世諸惡趣 無明為根望欲累

無慚不敬有惡欲 由彼生惡墮地獄

是故離貪欲無明 生明比丘斷惡趣

我聞世尊說此義

第一誦品

 

2.2.4 Paññāparihīnasutta 劣慧 41. 지혜의 궁핍의 경

1.

이와 같이 세존께서 설하셨고 거룩한 님께서 설하셨다고 나는 들었다.

 

“비구들이여,

아주 궁핍한 존재(중생)들이란 고귀한 지혜가 궁핍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현세에서 고통, 근심, 고뇌를 겪으며 괴롭게 지내고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나쁜 곳이 그들을 기다린다.

 

비구들이여,

궁핍하지 않은 존재(중생)들이란 고귀한 지혜가 궁핍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현세에서 고통, 근심, 고뇌를 겪지 않으며 즐겁게 지내고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좋은 곳이 그들을 기다린다.”

 

2.

이것이 세존께서 말씀하신 의미이다.

그래서 이에 관해 또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지혜의 궁핍으로 인해 명색(이름과 형상)으로 세워져 있는

신들을 포함한 세상을 보고 ‘이것이 진리이다.’고 생각한다.

 

통찰력(꿰뚫음)으로 이끄는 지혜는 세상에서 최상(으뜸가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태어남과 존재의 부숨을 올바로 분명히 안다.

 

그들 신들과 인간들은 올바로 깨달은 님, 새김을 확립한 님,

환희에 찬 지혜를 지닌 님, 최후의 몸을 지닌 님을 부러워한다.

 

이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신 의미라고 나는 들었다.

 

4. Paññāparihīnasuttaṃ

41. Vuttañhetaṃ bhagavatā, vuttamarahatāti me sutaṃ –

“Te, bhikkhave, sattā suparihīnā ye ariyāya paññāya parihīnā. Te diṭṭheva dhamme dukkhaṃ viharanti savighātaṃ saupāyāsaṃ sapariḷāhaṃ;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duggati pāṭikaṅkhā. Te [te ca kho (?)], bhikkhave, sattā aparihīnā ye ariyāya paññāya aparihīnā. Te diṭṭheva dhamme sukhaṃ viharanti avighātaṃ anupāyāsaṃ apariḷāhaṃ;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 pāṭikaṅkhā”ti. Etamatthaṃ bhagavā avoca. Tatthetaṃ iti vuccati –

 

“Paññāya parihānena, passa lokaṃ sadevakaṃ;

Niviṭṭhaṃ nāmarūpasmiṃ, idaṃ saccanti maññati.

 

“Paññā hi seṭṭhā lokasmiṃ, yāyaṃ nibbedhagāminī;

Yāya sammā pajānāti, jātibhavaparikkhayaṃ.

 

“Tesaṃ devā manussā ca, sambuddhānaṃ satīmataṃ;

Pihayanti hāsapaññānaṃ [hāsupaññānaṃ (sī. aṭṭha.)], sarīrantimadhārinan”ti.

 

Ayampi attho vutto bhagavatā, iti me sutanti. Catutthaṃ.

 

四一

我聞應供已說 世尊說此 諸比丘

甚不足者 乃聖慧不足之眾生 彼等於現法住於苦 有患有惱 有焦慮 身壞死後 惡趣當可期待

 

諸比丘 其非不足者

非聖慧不足之眾生 彼等於現法住於樂 無患無惱 無焦慮 身壞死後 善趣當可期待

 

世尊說此義 此處如是說

以慧不足執名色 見世同天思為真

良慧洞察世未來 生存之亡為正知

有思念者自覺者 羨有慧者最後身

我聞世尊說此義

 

2.2.5 Sukkadhammasutta 白法 42. 밝은 원리(눈부신 보호자)의 경

1.

이와 같이 세존께서 말씀하시고 아라한(거룩한 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나는 들었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은 두 가지 밝은 원리(원칙)가 세상을 보호한다.

 

2가지란 무엇인가?

부끄러움을 아는 것과 불건전한 행위에 대한 두려움을 아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은 2가지 밝은 원리가 세상을 보호할 수 없다면 어머니나 이모나 외숙모나 스승의 부인

또는 존경받아야 할 다른 사람들의 아내들을 식별하여 존경하는 일이 없을 것이며

세상은 염소, 양, 닭, 돼지, 개, 승냥이들이 하듯이 저열한 상태에 빠질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은 두 가지 밝은 원리가 세상을 보호하므로 어머니나 이모나 외숙모나 스승의 부인

또는 존경받아야 할 다른 사람들의 아내들을 식별하여 존경하는 것이다.”

 

2.

이것이 세존께서 말씀하신 의미이다.

그래서 이에 관해 또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을(부끄러움과 잘못에 대한 두려움을)

결코 알지 못한다면(자기 내부에서 찾지 못한다면)

그들은 밝음의 근원에서 벗어나 다시 태어남과 죽음에 들어선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언제나 올바로 안다면

그들은 청정한 삶을 성장시켜 적멸에 들어 다시 태어남을 부순다.”

 

이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신 의미라고 나는 들었다.

 

5. Sukkadhammasuttaṃ

42. Vuttañhetaṃ bhagavatā, vuttamarahatāti me sutaṃ –

“Dveme, bhikkhave, sukkā dhammā lokaṃ pālenti. Katame dve? Hirī [hiri (sī. syā. kaṃ. pī.)] ca, ottappañca. Ime ce, bhikkhave, dve sukkā dhammā lokaṃ na pāleyyuṃ, nayidha paññāyetha mātāti vā mātucchāti vā mātulānīti vā ācariyabhariyāti vā garūnaṃ dārāti vā. Sambhedaṃ loko agamissa yathā ajeḷakā kukkuṭasūkarā soṇasiṅgālā [soṇasigālā (sī. syā. kaṃ. pī.)]. Yasmā ca kho, bhikkhave, ime dve sukkā dhammā lokaṃ pālenti tasmā paññāyati mātāti vā mātucchāti vā mātulānīti vā ācariyabhariyāti vā garūnaṃ dārāti vā”ti. Etamatthaṃ bhagavā avoca. Tatthetaṃ iti vuccati –

 

“Yesaṃ ce hiriottappaṃ, sabbadā ca na vijjati;

Vokkantā sukkamūlā te, jātimaraṇagāmino.

 

“Yesañca hiriottappaṃ, sadā sammā upaṭṭhitā;

Virūḷhabrahmacariyā te, santo khīṇapunabbhavā”ti.

 

Ayampi attho vutto bhagavatā, iti me sutanti. Pañcamaṃ.

 

四二

我聞應供已說 世尊說此 諸比丘 此等二種白法為護世間

何之為二 為慚及愧

諸比丘 若此等二種白法不護世間 在此世母或叔母或外叔母或阿闍梨之妻或師之妻

將無被識[差別] 恰如山羊 羊雄雞 野豬犬豺 世間將陷於混亂

是故 諸比丘 此等二種之白法護世間 故有母或叔母或外叔母或阿闍梨之妻或師之妻被識[別]

 

世尊說此義 此處如是說

若人常知慚與愧 白法為根免生死

若人常近慚與愧 增長梵行盡後有

我聞世尊說此義

 

2.2.6 Ajātasutta 無生 43. 태어나지 않는 것의 경

1.

이와 같이 세존께서 말씀하시고 아라한(거룩한 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나는 들었다.

 

“비구들이여,

태어나지 않고, 생겨나지 않고, 만들어지지 않고,

형성되지 않는 것(조건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있다.

 

비구들이여,

태어나지 않고, 생겨나지 않고, 만들어지지 않고,

형성되지 않는 것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 태어나고, 생겨나고, 만들어지고,

형성되는 것으로부터의 벗어남이 시설되지 않는다.

(벗어남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 수가 낼 수 없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태어나지 않고, 생겨나지 않고, 만들어지지 않고,

형성되지 않는 것이 있으므로,

 

이 세상에서 태어나고 생겨나고, 만들어지고,

형성되는 것으로부터의 벗어남이 시설된다.”

 

2.

이것이 세존께서 말씀하신 의미이다.

그래서 이에 관해 또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태어난 것, 생겨난 것, 함께 일어난 것,

만들어지는 것, 형성되는 것, 불안정한 것(덧없이 변하는 것),

 

늙음과 죽음에 맞닥뜨리는 것,

질병의 덩어리, 자양분의 안내로 생겨나는 것은

쉽게 파괴되는 것이니 그것을 즐겁다고 할 수는 없다.

 

그것에서 벗어남이 적멸이니 추론의 범위를 벗어난 것, 견고한 것,

태어나지 않은 것, 함께 생겨나지 않은 것

티끌이 없어 슬픔이 없는 경지, 괴로움에 연결된 상태의 소멸

형성(조건으로 이루어진 것)의 잔잔해진 것이야 말로 행복이다.

 

이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신 의미라고 나는 들었다.

 

6. Ajātasuttaṃ

43. Vuttañhetaṃ bhagavatā, vuttamarahatāti me sutaṃ –

“Atthi, bhikkhave, ajātaṃ abhūtaṃ akataṃ asaṅkhataṃ. No cetaṃ, bhikkhave, abhavissa ajātaṃ abhūtaṃ akataṃ asaṅkhataṃ, nayidha jātassa bhūtassa katassa saṅkhatassa nissaraṇaṃ paññāyetha. Yasmā ca kho, bhikkhave, atthi ajātaṃ abhūtaṃ akataṃ asaṅkhataṃ, tasmā jātassa bhūtassa katassa saṅkhatassa nissaraṇaṃ paññāyatī”ti. Etamatthaṃ bhagavā avoca. Tatthetaṃ iti vuccati –

 

“Jātaṃ bhūtaṃ samuppannaṃ, kataṃ saṅkhatamaddhuvaṃ;

Jarāmaraṇasaṅghāṭaṃ, roganīḷaṃ [roganiḍḍhaṃ (sī.)] pabhaṅguraṃ [pabhaṅgunaṃ (ka. sī. ka.), pabhaṅguṇaṃ (syā.)].

 

“Āhāranettippabhavaṃ, nālaṃ tadabhinandituṃ;

Tassa nissaraṇaṃ santaṃ, atakkāvacaraṃ dhuvaṃ.

 

“Ajātaṃ asamuppannaṃ, asokaṃ virajaṃ padaṃ;

Nirodho dukkhadhammānaṃ, saṅkhārūpasamo sukho”ti.

 

Ayampi attho vutto bhagavatā, iti me sutanti. Chaṭṭhaṃ.

 

四三

我聞應供已說 世尊說此 諸比丘 有無生無有 無作無為

諸比丘 若無無生無有 無作無為 於此處應不能知生有作 為之出離

是故 諸比丘 有無生無有 無作無為 故應能知生有作 為之出離

 

世尊說此義 此處如是說

生有起作為不定 老死所襲病巢脆

渴愛導因不得悅 安越靜疑出離彼

無生無起無憂染 諸行靜安苦法無

我聞世尊說此義

 

2.2.7 Nibbānadhātusutta 涅槃 44. 열반의 세계의 경

1.

이와 같이 세존께서 설하셨고 아라한(거룩한 님)께서 설하셨다고 나는 들었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은 2가지 열반의 세계가 있다.

2가지 열반이 무엇인가?

 

남은 찌꺼기가 있는 열반의 세계(유여의 열반)와

남은 찌꺼기가 없는 열반의 세계(무여의 열반)가 있다.

 

비구들이여, 남은 찌꺼기가 있는 열반의 세계는 어떠한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한 비구가 번뇌를 소멸하고, 청정한 삶을 이루었고,

해야 할 일을 해 마쳤고, 짐을 내려놓았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였고,

존재의 결박을 끊었고, 올바른 궁극의 지혜를 통해 해탈한 아라한이다.

 

그렇지만 그에게 5가지 감관(안이비설신. 오근)이 아직 존재하고 사라지지 않았으므로

그것으로 해서 그는 유쾌(마음에 드는 것)와 불쾌(마음에 들지 않는 것)를 경험하고,

즐거움과 괴로움을 느낀다.

 

비구들이여,

남은 찌꺼기가 있는 열반이 세계라고 부르는 것은

그에게 집착. 증오. 무명이 멸진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남은 찌꺼기가 없는 열반의 세계란 어떠한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한 비구가 번뇌를 소멸하고, 청정한 삶을 이루었고, 해야 할 일을 해 마쳤고,

짐을 내려놓았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였고, 존재의 결박을 끊었고,

올바른 궁극의 지혜를 통해 해탈한 아라한이다.

 

그에게 이번 생에서 경험한(느껴진) 모든 것에 대해서 기뻐하지 않으며 모두 멸진 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찌꺼기 없는 열반의 세계라고 한다.”

 

2.

이것이 세존께서 말씀하신 의미이다.

그래서 이에 관해 또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흔들리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모든 것을 보시는 분께서 2가지 열반의 세계를 가르쳐주셨다

하나는 찌꺼기가 있지만 존재의 끈이 모두 소멸된 지금 여기에서 보이는 경지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에 대한 찌꺼기가 하나도 없이 온갖 존재의 형태가 완전히 그친 경지이다

 

조건 지어 지지 않은 경지(열반)을 이해하고 존재의 끈을 멸하여

마음으로 해탈하였으니 그들은 진리 법의 핵심을 성취하였다

저 안온한 이들은 갈애의 소멸을 기뻐하면서 일체의 존재를 버린다.”

 

이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신 의미라고 나는 들었다.

 

7. Nibbānadhātusuttaṃ

44. Vuttañhetaṃ bhagavatā, vuttamarahatāti me sutaṃ –

“Dvemā, bhikkhave, nibbānadhātuyo. Katame dve? Saupādisesā ca nibbānadhātu, anupādisesā ca nibbānadhātu.

 

“Katamā ca, bhikkhave, saupādisesā nibbānadhātu? Idha, bhikkhave, bhikkhu arahaṃ hoti khīṇāsavo vusitavā katakaraṇīyo ohitabhāro anuppattasadattho parikkhīṇabhavasaṃyojano sammadaññā vimutto. Tassa tiṭṭhanteva pañcindriyāni yesaṃ avighātattā [avigatattā (sī. aṭṭha.)] manāpāmanāpaṃ paccanubhoti,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eti. Tassa yo rāgakkhayo, dosakkhayo, mohakkhayo – ayaṃ vuccati, bhikkhave, saupādisesā nibbānadhātu.

 

“Katamā ca, bhikkhave, anupādisesā nibbānadhātu? Idha, bhikkhave, bhikkhu arahaṃ hoti khīṇāsavo vusitavā katakaraṇīyo ohitabhāro anuppattasadattho parikkhīṇabhavasaṃyojano sammadaññā vimutto. Tassa idheva, bhikkhave, sabbavedayitāni anabhinanditāni sīti bhavissanti [sītībhavissanti (?)]. Ayaṃ vuccati, bhikkhave, anupādisesā nibbānadhātu. Imā kho, bhikkhave, dve nibbānadhātuyo”ti. Etamatthaṃ bhagavā avoca. Tatthetaṃ iti vuccati –

 

“Duve imā cakkhumatā pakāsitā, nibbānadhātū anissitena tādinā;

Ekā hi dhātu idha diṭṭhadhammikā, saupādisesā bhavanettisaṅkhayā;

Anupādisesā pana samparāyikā, yamhi nirujjhanti bhavāni sabbaso.

 

“Ye etadaññāya padaṃ asaṅkhataṃ, vimuttacittā bhavanettisaṅkhayā;

Te dhammasārādhigamā khaye ratā, pahaṃsu te sabbabhavāni tādino”ti.

 

Ayampi attho vutto bhagavatā, iti me sutanti. Sattamaṃ.

 

四四

我聞應供已說 世尊說此 諸比丘 此等有二涅槃

何之為二 為有餘依涅槃界及無餘依涅槃界

諸比丘 有餘依涅槃界為何

諸比丘 於此應供之比丘已盡漏 住於[梵行] 辦應作之事

捨負重擔 證得自義 以盡有結 依正智而解脫

 

彼五根安立 無傷彼事 故經驗喜與不喜 能感樂與苦 彼為滅貪 滅瞋滅痴者

諸比丘 說彼為有餘依涅槃界

然 諸比丘 無餘依涅槃界為何

諸比丘 於此應供之比丘已盡漏 住於[梵行] 應作已辦 捨負重擔 證得自義 以盡有結 依正智而解脫

諸比丘 然於此生所覺知者已為無喜悅而清涼

諸比丘 說彼為無餘依涅槃

諸比丘 此為二涅槃界

 

世尊說此義 此處如是說

此等二種涅槃界 具眼者依無依明 初界導者現法有 滅盡[愛等]有餘依

他滅未來一切有 成為臨終無餘依 知此無為之道者 盡導有者心解脫

逮達法味悅滅者 彼已捨此一切見

我聞世尊說此義

 

2.2.8 Paṭisallānasutta 隱居 45. 홀로 삼매의 경

1.

이와 같이 세존께서 말씀하시고 아라한(거룩한 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나는 들었다.

 

“비구들이여,

홀로 삼매에 드는 것을 즐기고, 홀로 삼매에 드는 것을 기뻐하고,

비어 있는 장소를 자주 찾아 안으로 마음의 멈춤(마음의 평정)을 닦으며

삼매를 떠나지 말고 꿰뚫어 통찰하는 지혜를 성취하라.

 

비구들이여,

홀로 삼매에 드는 것을 즐기고, 홀로 삼매에 드는 것을 기뻐하고,

비어 있는 장소를 자주 찾아 안으로 마음의 멈춤을 닦으며

삼매를 떠나지 말고 꿰뚫어 통찰하는 지혜를 성취한 사람에게는

 

‘현세에서의 궁극적 지혜를 성취(아라한과)하든가,

취착의 일부가 남아 있다면 돌아오지 않는 경지(불환과)’ 의

2가지 과보 가운데 하나가 기대된다.”

 

2.

이것이 세존께서 말씀하신 의미이다.

그래서 이에 관해 또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마음이 고요하고, 사려가 깊고(분별력이 있으며) 새김을 갖추고, 삼매에 드는 사람들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떠나 (세상) 일을 바르고 분명하게(통찰) 본다.

 

방일에서 두려움을 보고 정진하는 데에서 기뻐하는 저 평화로운 사람들은

(더 이상 미혹한 삶에) 빠질 수 없고 열반이 가까이 있다.”

 

이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신 의미라고 나는 들었다.

 

8. Paṭisallānasuttaṃ

45. Vuttañhetaṃ bhagavatā, vuttamarahatāti me sutaṃ –

“Paṭisallānārāmā [paṭisallānārāmā (ka.)], bhikkhave, viharatha paṭisallānaratā, ajjhattaṃ cetosamathamanuyuttā, anirākatajjhānā, vipassanāya samannāgatā, brūhetā suññāgārānaṃ. Paṭisallānārāmānaṃ, bhikkhave, viharataṃ paṭisallānaratānaṃ ajjhattaṃ cetosamathamanuyuttānaṃ anirākatamajjhānānaṃ vipassanāya samannāgatānaṃ brūhetānaṃ suññāgārānaṃ dvinnaṃ phalānaṃ aññataraṃ phalaṃ pāṭikaṅkhaṃ – diṭṭheva dhamme aññā, sati vā upādisese anāgāmitā”ti. Etamatthaṃ bhagavā avoca. Tatthetaṃ iti vuccati –

 

“Ye santacittā nipakā, satimanto ca [satimantova (sī. ka.)] jhāyino;

Sammā dhammaṃ vipassanti, kāmesu anapekkhino.

 

“Appamādaratā santā, pamāde bhayadassino;

Abhabbā parihānāya, nibbānasseva santike”ti.

 

Ayampi attho vutto bhagavatā, iti me sutanti. Aṭṭhamaṃ.

 

四五

我聞應供已說 世尊說此 諸比丘

心喜獨居 悅樂獨居 內住於心寂靜與隨順 不離靜慮 成就勝觀 增長空處

諸比丘 心喜獨居 悅樂獨居 內心寂靜與隨順 不離靜慮 成就勝觀 增長空處而住者

可期待二果中之一果 於現法智[阿羅漢果]或有煩惱之餘依成不還果

 

世尊說此義 此處如是說

心靜慎思專念者 勝觀正法離諸欲

悅不放逸安穩者 因得減損近涅槃

我聞世尊說此義

 

2.2.9 Sikkhānisaṃsasutta 利益 46. 배움의 공덕(수행의 이익)의 경

1.

이와 같이 세존께서 말씀하시고 아라한(거룩한 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나는 들었다.

 

“비구들이여,

배움(수행)을 공덕으로 삼고, 지혜를 최상으로 삼고,

해탈을 핵심으로 삼고, 새김을 주인으로 삼아라.

 

비구들이여,

배움을 공덕으로 삼고, 지혜를 최상으로 삼고,

해탈을 핵심으로 삼고, 새김을 주인으로 삼는 사람에게는

 

‘현세에서의 궁극적 지혜(아라한과)를 성취하든가, 아니면

일부 오염(찌꺼기)이 남아 있다면 돌아오지 않는 경지(불환과)’의

2가지 과보 가운데 하나가 기대된다.”

 

2.

이것이 세존께서 말씀하신 의미이다.

그래서 이에 관해 또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배움(수행)이 원만하고 결코 동요하지 않고

최상의 지혜를 갖추고 태어남의 부서짐을 보고

자만을 끊고 늙음의 뛰어넘어 피안에 도달한 사람

그 성자를 두고 최후의 몸을 지닌 님이라 나는 부른다.

 

그래서 항상 선정을 즐기고 정신을 집중하여

열심히 정진하는 자는 태어남의 부서짐을 본다.

 

수행승들이여,

군대를 거느린 악마를 정복하고 태어남과 죽음을 뛰어넘는 님들이 되어라.”

 

이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신 의미라고 나는 들었다.

 

9. Sikkhānisaṃsasuttaṃ

46. Vuttañhetaṃ bhagavatā, vuttamarahatāti me sutaṃ –

“Sikkhānisaṃsā, bhikkhave, viharatha paññuttarā vimuttisārā satādhipateyyā. Sikkhānisaṃsānaṃ, bhikkhave, viharataṃ paññuttarānaṃ vimuttisārānaṃ satādhipateyyānaṃ dvinnaṃ phalānaṃ aññataraṃ phalaṃ pāṭikaṅkhaṃ – diṭṭheva dhamme aññā, sati vā upādisese anāgāmitā”ti. Etamatthaṃ bhagavā avoca. Tatthetaṃ iti vuccati –

 

“Paripuṇṇasikkhaṃ [paripuṇṇasekhaṃ (sī.), paripuṇṇasekkhaṃ (syā.)] apahānadhammaṃ, paññuttaraṃ jātikhayantadassiṃ;

Taṃ ve muniṃ antimadehadhāriṃ, mārañjahaṃ brūmi jarāya pāraguṃ.

 

“Tasmā sadā jhānaratā samāhitā, ātāpino jātikhayantadassino;

Māraṃ sasenaṃ abhibhuyya bhikkhavo, bhavatha jātimaraṇassa pāragā”ti.

 

Ayampi attho vutto bhagavatā, iti me sutanti. Navamaṃ.

 

四六

我聞應供已說 世尊說此 諸比丘 有應學者之利益 有最上之慧 有解脫味 應住於四念住觀

諸比丘 有應學者之利益 有最上之慧 有解脫味 住於至上四念住觀者

可期待二果中之一果 於現法智[阿羅漢果]或如有[煩惱之]餘依成不還果

 

世尊說此義 此處如是說

圓滿有學不斷法 生之滅盡最上慧 彼牟尼持最後身 捨慢老之達彼岸

是故靜慮悅等持 熱心者見生滅盡 擁兵制魔比丘眾 超越為踰生死者

我聞世尊說此義

 

2.2.10 Jāgariyasutta 警寤 47. 깨어있음의 경

1.

이와 같이 세존께서 말씀하시고 아라한(거룩한 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나는 들었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깨어 있어야 한다.

새김을 확립하고, (모든 것을) 올바로 알아차리고,

마음을 집중하고, 행복하고 고요하게 살며,

청정한 믿음을 지니고, 착하고 건전한 것(이익이 되는)과

관련하여 올바른 때(적절한 때를 알아)에 통찰을 닦아라.

 

비구들이여,

항상 깨어있고,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리고, 마음을 집중에 들고,

행복하고 고요하게 살며, 청정한 믿음을 지니고,

착하고 건전한 것과 관련하여 올바른 때에 통찰을 닦는 님에게

 

‘현세에서의 궁극적 지혜(아라한과)를 성취하든가,

아니면 취착(오염)이 남아 있다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경지(불환과)’의

2가지 과보 가운데 하나가 기대된다.”

 

2.

이것이 세존께서 말씀하신 의미이다.

그래서 이에 관해 또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깨어있는 자들은 이것을 들어라.

잠자는 자들은 깨어나라.

잠자는 것보다 깨어있음이 수승하다.

깨어있는 님에게 두려움은 없다.

 

깨어서,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리고,

집중에 들고, 기쁨을 발견하고, 청정한 믿음을 지닌 자,

그는 올바른 때에 올바로 원리를 성찰하며,

전일성을 확립하여 어둠을 제거한다.

 

그러므로 깨어있음을 확립하라.

열심히 애쓰고, 사려 깊은, 선정에 든 수행승은

태어남과 늙음의 결박을 끊고

이 세상에서 위없는 올바른 깨달음을 증득해야 하리.

 

이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신 의미라고 나는 들었다.

 

10. Jāgariyasuttaṃ

47. Vuttañhetaṃ bhagavatā, vuttamarahatāti me sutaṃ –

“Jāgaro cassa, bhikkhave, bhikkhu vihareyya sato sampajāno samāhito pamudito vippasanno ca tattha kālavipassī ca kusalesu dhammesu. Jāgarassa, bhikkhave, bhikkhuno viharato satassa sampajānassa samāhitassa pamuditassa vippasannassa tattha kālavipassino kusalesu dhammesu dvinnaṃ phalānaṃ aññataraṃ phalaṃ pāṭikaṅkhaṃ – diṭṭheva dhamme aññā, sati vā upādisese anāgāmitā”ti. Etamatthaṃ bhagavā avoca. Tatthetaṃ iti vuccati –

 

“Jāgarantā suṇāthetaṃ, ye suttā te pabujjhatha;

Suttā jāgaritaṃ seyyo, natthi jāgarato bhayaṃ.

 

“Yo jāgaro ca satimā sampajāno, samāhito mudito vippasanno ca;

Kālena so sammā dhammaṃ parivīmaṃsamāno, ekodibhūto vihane tamaṃ so.

 

“Tasmā have jāgariyaṃ bhajetha, ātāpī bhikkhu nipako jhānalābhī;

Saṃyojanaṃ jātijarāya chetvā, idheva sambodhimanuttaraṃ phuse”ti.

 

Ayampi attho vutto bhagavatā, iti me sutanti. Dasamaṃ.

 

四七

我聞應供已說 世尊說此 諸比丘

應住於警寤 正念正知 等持悅豫 勝觀此等 於諸善法勝觀時宜而住

諸比丘 警寤正念正知 等持悅豫 勝觀此等 於諸善法勝觀時宜之比丘

二果中被可期待一果 於現法智[阿羅漢果]或有煩惱之餘依成不還果

 

世尊說此義 此處如是說

醒者聞此眠者覺 醒而勝寢醒無畏 醒為正念為正知 使勝觀者悅等持

彼於時宜修正法 集中於心可消暗 是故實而得覺醒 熱心成為有靜慮

生死斷絆賢比丘 無上菩提此將證

我聞世尊說此義

 

2.2.11 Āpāyikasutta 惡趣 48. 괴로운 곳(비참한 상태)의 경

1.

이와 같이 세존께서 설하셨고 아라한(거룩한 님)께서 설하셨다고 나는 들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두 사람은 이것과 같은 잘못된 행동을 버리지 못해 괴로운 곳, 지옥으로 갈 것이다.

 

두 사람은 누구인가?

청정하지 못한(성스러운 삶) 자가 청정하다고 사칭하거나,

아주 깨끗한 청정한 삶을 사는 사람을 근거 없이 부정한 삶을 사는 자라고 비방하는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두 사람은 이것과 같은 잘못된 행동을 버리지 못해 괴로운 곳,

지옥에 떨어지는 자이다.”

 

2.

이것이 세존께서 말씀하신 의미이다.

그래서 이에 관해 또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일어나지 않은 것을 말하거나 자기가 했으면서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자는 지옥으로 간다.

그 두 사람은 또한 죽어서 동일하게 저 세계에서도 비천한 업을 짓는다.

 

몸에 가사를 걸치고도 성품이 악하고 자제하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

그들이 저지른 악행으로 저 사악한 사람들은 지옥에 다시 태어난다.

 

계행을 지키지 않고 자제가 없는 자는 나라의 음식을 축내는 것보다,

이글거리며 뜨겁게 달아오른 철환(쇠로 만든 공)을 삼키는 것이 낫다.

 

이것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신 의미라고 나는 들었다.

 

11. Āpāyikasuttaṃ

48. Vuttañhetaṃ bhagavatā, vuttamarahatāti me sutaṃ –

“Dveme, bhikkhave, āpāyikā nerayikā idamappahāya. Katame dve? Yo ca abrahmacārī brahmacāripaṭiñño, yo ca paripuṇṇaṃ parisuddhaṃ brahmacariyaṃ carantaṃ amūlakena abrahmacariyena anuddhaṃseti. Ime kho, bhikkhave, dve āpāyikā nerayikā idamappahāyā”ti. Etamatthaṃ bhagavā avoca. Tatthetaṃ iti vuccati –

 

“Abhūtavādī nirayaṃ upeti, yo vāpi katvā na karomi cāha;

Ubhopi te pecca samā bhavanti, nihīnakammā manujā parattha.

 

“Kāsāvakaṇṭhā bahavo, pāpadhammā asaññatā;

Pāpā pāpehi kammehi, nirayaṃ te upapajjare.

 

“Seyyo ayoguḷo bhutto, tatto aggisikhūpamo;

Yañce bhuñjeyya dussīlo, raṭṭhapiṇḍamasaññato”ti.

 

Ayampi attho vutto bhagavatā, iti me sutanti. Ekādasamaṃ.

 

四八

我聞應供已說 世尊說此 諸比丘 彼等二人以不捨彼 為墮無幸處奈落者

二人者誰 凡非梵行者稱為梵行者 又凡以無根非梵行誹謗修圓滿清淨之梵行者

諸比丘 此等二人以不斷彼 為墮無幸處奈落者

 

世尊說此義 此處如是說

將言為而不為人 偽言墮落奈落人 此之二人身逝後 他世等為惡業者

頸披袈裟守惡法 惡人惡業生奈落 破戒無慚食團飯 如火灼熱之鐵丸

我聞世尊說此義

 

2.2.12 Diṭṭhigatasutta 見 49. 惡見(견해에 사로잡힘)의 경

1.

이와 같이 세존께서 말씀하시고 아라한(거룩한 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나는 들었다.

 

“비구들이여,

어떤 신들과 인간들은 두 가지 견해에 사로 잡혀서 (너무)망설이고 있고

어떤 이들은 도를 지나쳐서 실패한다.

그러나 눈(통찰력) 있는 사람들은 제대로 본다.

 

비구들이여, 어떤 자들은 어떻게 움츠리는가?

비구들이여,

존재를 즐기고 존재를 기뻐하고

존재에 환희하는 신들과 인간들이 있다.

 

그들에게 존재의 소멸에 대한 가르침을 설하면 마음이 그 속으로 들어가지 않거나

그것에 믿음을 품지도 않으며 또는 그것에 안주하지도 않고 청정해지지 않고

그것대로 살겠다고 결심하지도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처럼 어떤 자들은 움츠러든다.

비구들이여, 어떤 자들은 어떻게 도를 지나쳐 실패하는가?

 

어떤 자들은 존재에 곤혹스러워하며, 부끄러워하며, 싫어하여 떠나서

‘이 자아는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소멸되고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것이 적멸이고, 이것이 최상이고, 이것이 진실이다.’라고 주장 하면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즐긴다.

 

비구들이여, 어떤 이들은 그런 식으로 도를 지나쳐 실패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눈 있는 자들은 어떻게 보는가?

 

통찰력을 갖춘 비구는 존재하는 것을 존재한다고 본다.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는 것이라고 보고나서

존재를 싫어하여 떠나고 소멸을 위해서 수행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눈 있는 자들은 본다.”

 

2.

이것이 세존께서 말씀하신 의미이다.

그래서 이에 관해 또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존재하는 것을 존재한다고 보고

존재를 뛰어넘는 자들은

존재에 대한 갈애를 부수어

진리에 합당하게 해탈한다.

 

만약 존재하는 것을 완전히 알고 비구가 원만하게 이해하면

존재하는 것의 소멸로 인해 다시 태어남을 받지 않는다.”

 

이것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신 의미라고 나는 들었다.

 

12. Diṭṭhigatasuttaṃ

49. Vuttañhetaṃ bhagavatā, vuttamarahatāti me sutaṃ –

“Dvīhi, bhikkhave, diṭṭhigatehi pariyuṭṭhitā devamanussā olīyanti eke, atidhāvanti eke; cakkhumanto ca passanti.

 

“Kathañca, bhikkhave, olīyanti eke? Bhavārāmā, bhikkhave, devamanussā bhavaratā bhavasammuditā tesaṃ bhavanirodhāya dhamme desiyamāne cittaṃ na pakkhandati na pasīdati na santiṭṭhati nādhimuccati. Evaṃ kho, bhikkhave, olīyanti eke.

 

“Kathañca, bhikkhave, atidhāvanti eke? Bhaveneva kho paneke aṭṭīyamānā harāyamānā jigucchamānā vibhavaṃ abhinandanti – yato kira, bho, ayaṃ attā [satto (sī. ka.)]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ucchijjati vinassati na hoti paraṃ maraṇā; etaṃ santaṃ etaṃ paṇītaṃ etaṃ yāthāvanti. Evaṃ kho, bhikkhave, atidhāvanti eke.

 

“Kathañca, bhikkhave, cakkhumanto passanti? Idha bhikkhu bhūtaṃ bhūtato passati; bhūtaṃ bhūtato disvā bhūtassa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paṭipanno hoti. Evaṃ kho, bhikkhave, cakkhumanto passantī”ti. Etamatthaṃ bhagavā avoca. Tatthetaṃ iti vuccati –

 

“Ye [yo (syā. ka.)] bhūtaṃ bhūtato disvā, bhūtassa ca atikkamaṃ;

Yathābhūte vimuccanti, bhavataṇhā parikkhayā.

 

“Sa ve [sace (ka. sī. syā. pī.)] bhūtapariñño, so vītataṇho bhavābhave;

Bhūtassa vibhavā bhikkhu, nāgacchati punabbhavan”ti.

 

Ayampi attho vutto bhagavatā, iti me sutanti. Dvādasamaṃ.

Dutiyo vaggo niṭṭhito.

 

Tassuddānaṃ –

Dve indriyā dve tapanīyā, sīlena apare duve;

Anottāpī kuhanā dve ca, saṃvejanīyena te dasa.

Vitakkā desanā vijjā, paññā dhammena pañcamaṃ;

Ajātaṃ dhātusallānaṃ, sikkhā jāgariyena ca;

Apāyadiṭṭhiyā ceva [yeva (sī. syā.)], bāvīsati pakāsitāti.

Dukanipāto niṭṭhito.

 

四九

我聞應供已說 世尊說此 諸比丘 依二見所障礙之人與天或執著 或超越 而具眼者得見

然則 諸比丘 執著者為何

諸比丘 喜有 受天與人[之身] 享樂有 說彼滅有法時 心不踴躍 不晃耀 不成安穩 不成愛著

如是 諸比丘 或為執著者

然則 諸比丘 超越者為何 為有所惱 慚恥於[有] 續為嫌厭 歡喜有滅

此見真實 身壞死後 被切斷而失 無再度死事 可謂安穩 此最勝 此為真實

 

諸比丘 如是或者成為超越

諸比丘 具眼者見為何

諸比丘 於此 見存在者為存在 見使存在者為使存在 成為入於存在之嫌惡 離貪滅盡

諸比丘 具眼者如是見

 

世尊說此義 此處如是說

若見存在超存在 如實解脫盡有愛

知離有非有之愛 比丘滅於無後有

我聞世尊說此義

二集終了

攝頌曰

二根(28, 29) 二焦惱(30, 31) 依戒他世二(32, 33) 無愧(34) 二詭詐(35, 36) 可憂此等十(37)

尋思(38) 教說(39) 明(40) 慧(41) 依法(42) 第五

無生(43) 界(44) 獨居(45) 學(46) 及依覺悟(47) 無幸處(48) 及見(49) 被明共十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