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금경찬尙長禽慶贊 상장과 금경에 대한 찬양
상자석박환尙子昔薄宦 상장은 옛날에 벼슬살이를 친히 여기고
처노공조만妻孥共早晩 처자와 함께 나날을 지냈다.
빈천여부귀貧賤與富貴 빈천과 부귀에 대해
독이오익손讀易悟益損 <주역>을 읽고 익괘益卦와 손괘損卦를 깨달았다.
금생선주유禽生善周遊 금경은 두루 유람하기를 좋아했는데
주유일이원周遊日已遠 두루 유람하는 것이 나날이 더욱 멀리까지 갔다.
거의심명산去矣尋名山 떠나서 명산을 찾아다녔는데
상반기지반上反豈知反 (명산에)올랐으니 도리어 어찌 돌아갈 줄을 알겠는가.
►상장尙長
방덕공龐德公(?-?)동한東漢(後漢)시대 은사隱士
字는 자어子魚, 상장尙長이고, 양양襄陽(지금의 湖北성 샹양시) 출신이다.
<정치와 벼슬을 거부한 은둔지사>
일찍이 양양 일대에 은거하던 사마휘, 제갈량, 방통, 서서 등의 인재들과 친밀하게 지내며 세상사를 토론했다.
사마휘는 방덕공보다 10살 아래였는데 방덕공을 늘 방공龐公이라고 불렀는데 ‘방공’이란 호칭이 여기서 나왔다.
방덕공은 제갈량을 와룡臥龍, 방통을 봉추鳳雛, 사마휘를 수경水鏡이라고 불렀다.
제갈량은 그를 매우 존경하여 스승으로 예우했고 자주 인사하러 왔고 방문할 때면 침상 아래에서 절을 했다.
이후 방덕공은 점차 제갈량을 주목하고 그를 중시하기 시작했다.
방통은 원래 방덕공의 시종이었다.
그는 나이가 어렸지만 순박하고 정성스러웠다.
당시 사람들은 그의 재능을 몰랐지만 방덕공은 방통을 중시했고 나중에는 사마휘에게 그를 추천했다.
사마휘는 방통과 대화를 나눈 후 크게 탄복한 적이 많았다.
형주荊州(지금의 후베이성 징저우) 자사로 있던 유표(142-208)가 여러 차례 방덕공을 초청했으나
응하지 않자 유표가 직접 그를 찾아와
“당신은 자기 몸 하나는 보전하면서 어째서 천하는 보전하지 않는 것이오?”라고 물었다.
이에 방덕공은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큰 기러기는 높은 나무에 집을 짓고 살지만 저녁이면 그곳이 쉴 곳이 되고,
큰 거북은 깊은 연못 아래에 구멍을 내지만 역시 저녁이면 그곳에서 쉽니다.
사람의 취사선택과 행동거지도 그 사람의 둥지에 한정될 뿐이며 만물도 각자 쉴 곳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천하는 내가 보전하고 말 것이 아닙니다.”
이후 그는 녹문산에 은거하며 약초를 캐면서 생을 마감했다.
혹은
건무建武 연간에 자식들을 출가시킨 뒤 북해北海 사람 금경禽慶과 오악五嶽의 名山을 유람했는데
어디에서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後漢書 일민逸民 향장전向長傳>에 기재되어 있다.
<방덕공의 자는 정말 상장尙長인가?>/삼국지 갤러리 2013.02.08
방덕공의 자를 <사고전서>에서는 ‘상장尙長’이라고 표기했다.
그 전거로 宋書를 들먹였는데 그냥 '송서에 적혀있다'라고만 써놓고 정확히는 안 적어 놓았다.
직접 송서를 뒤져보니 ··· 송서 권 68 말미에 사관이 논평한 부분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신왈史臣曰 사신史臣이 말한다.
양양방공위류표왈襄陽龐公謂劉表曰 양양襄陽 사람 방공龐公이 유표劉表에게 말하였다.
약사주공여관若使周公與管 채처모옥지하蔡處茅屋之下
식려곽지갱食藜藿之羹 기유약사지난豈有若斯之難
"만약 주공周公이 관管(관숙)·채蔡(채숙)와 함께 초가집에 살며
거친 음식을 먹었더라면, 어찌 이런 어려움이 있었겠습니까?"
부천륜유자夫天倫由子 대저 천륜을 잇는 자는(天倫由子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모르겠음)
공기분형共氣分形 그 기氣는 같으나 모습은 달리 하니
총애지분수동寵愛之分雖同 총애하는 바가 같더라도
부귀지정즉이야富貴之情則異也 부귀함은 서로 다르다.
추미상장지언追味尙長之言 이위태식以爲太息
상장尙長의 말을 곱씹어 보니, 한숨이 나오는구나(以爲太息 이렇게 해석하는 것 맞나-_-;;)
/송서宋書 권68
일단 방덕공이 아니라 '방공'이라고 적혀있고 이게 과연 방덕공이 맞는지는 좀 알아봐야 할 듯
저 尙長 부분은 정말 고유명사 말고는 달리 해석할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네.
정말 尙長之言은 '尙長의 말'이라고 해석하고
이 '상장'이 방공을 뜻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방공이 곧 방덕공이라면 ···
대체 송서를 쓴 심약은 어디서 뭘 보고 저렇게 적었을까
<추신> 짱깨위키도 그렇고 섬나라도 그렇고 ···
다들 <사고전서> 내용 갖다 쓰기에만 바빠서인지 송서의 어느 부분에 있는지는 알아보지도 않고
그저 '송서에 상장이라 한다더라' 라고만 적어놨네.
근성 업ㅂ는 녀석들 ···
더구나 짱깨놈들은 향장向長이라고 잘못 적어놓음(그리고 우리나라 위키는 그걸 복붙).
어휴! 한심한 것들ㅋ
“가난은 나에게는 일상이니 어찌 싫어하겠는가.
게다가 나는 이에 대해 느끼는 점이 있다네.
이른바 부富와 귀貴는 남들이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귀신도 매우 시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옛날부터 지금까지 부유하면서 잘 보전하고 귀하면서 거꾸러지지 않는 사람은 있지 않았으니
이것이 상자평尙子平이 <주역>의 손괘巽卦와 익괘益卦를 보다가 탄식을 내뱉은 이유라네.
[후한後漢 때의 고사高士 상장尙長(尙子平)은 <주역> 읽기를 좋아하였는데 손괘損卦와 익괘益卦를 보다가
오이지부불여빈吾已知富不如貧 귀불여천貴不如賤 단미지사하여생이但未知死何如生耳
“나는 부유함이 가난한 것만 못하고, 귀함이 천한 것만 못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단지 죽음과 삶이 어떠한 관계인지 모를 뿐이다.”라고 하였다./<後漢書 卷113 逸民列傳 向長>]
아, 부귀富貴는 이미 그러하거니와 또한 보지 않았는가.
세상에서 아등바등 온갖 일을 하면서 생각을 고달프게 하는 자가 아주 대단한 부귀를 바라는 것이 아닌데도,
조금이나마 만족스런 생각이 있고 자만하는 뜻이 있으면 재앙이 뒤따라 이르는 것이 마치 계약문서를 가지고
빚 독촉을 하듯이 얻으면 문득 잃음이 있게 되니 이것이 무슨 까닭인가.
가득 찬 것을 싫어하고 겸손謙巽한 것을 좋아하며 이룬 것을 싫어하고
무너진 것을 좋아하는 것은 또한 天道가 그렇다네”
/<한포재 이건명 선생 “답빈문答賓問 빈객賓客의 질문에 답하다”에서>.
[〈겸괘謙卦 단彖〉에
천도天道 휴영이익겸虧盈而益謙 “天道는 가득 찬 것을 이지러지게 하고 겸손한 것을 더해 주며,
지도地道 변영이류겸變盈而流謙 땅의 도는 가득 찬 것을 변하게 하고 겸손한 데로 흐르며,
귀신鬼神 해영이복겸害盈而福謙 귀신은 가득 찬 것을 해치고 겸손한 것에 복을 주고,
인도人道 악영이호겸惡盈而好謙] 사람의 도는 가득 찬 것을 싫어하고 겸손한 것을 좋아한다.”라고 하였다]
►금경禽慶
사적불상事跡不詳
상장尙長과 금경禽慶도 <선상화찬扇上畵贊>에서 칭송했던 인물들처럼 안빈낙도하면서 은거했던 이들이다.
이들에 대한 찬양과 흠모 역시 도연명의 이상에 부합하는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본집에 없던 것을 명明나라 하맹춘何孟春이 <예문유취藝文類聚>에서 뽑아
<선상화찬扇上畵贊>의 뒤에 붙임으로써 본집에 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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