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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도연명陶淵明

도연명과 동시대의 인물 안연지顔延之

도연명과 동시대의 인물 안연지顔延之

 

안연지顔延之(384-456)

6조시대 宋나라의 문인. 자 연년延年. 시호 헌자憲子. 산둥성山東省 낭야琅琊 임기臨沂사람

진晉나라의 광록훈光祿勳 안함顔含의 증손曾孫이다.

 

동진東晉 때 일찍이 예장공豫章公 유유劉裕의 세자중군행참군世子中軍行參軍이 되었다.

송나라에 들어 처음에 태자사인太子舍人에 올랐다.

 

송나라 무제武帝·소제少帝·문제文帝를 섬겨

국자좨주國子祭酒·시안태수始安太守·중서시랑中書侍郞·영가태수永嘉太守 등을 역임하였다.

지방과 중앙에서 비서감秘書監·광록훈을 지내고 물러난 후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가 되어 상동왕사湘東王師를 지휘했다.

 

성질이 과격하고 술을 즐겼으며 흔히 귀족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언행에 조심성이 적어 혹평을 받기도

하였으나 생활은 매우 검소하였고 재물을 가벼이 여겨 도연명陶淵明에게 술과 돈을 준 이야기는 유명하다.

 

스스로를 “광불가급狂不可及 미친 것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고 말했고 사람들도 안표顔彪라 불렀다.

유불儒佛에 통달하여 '삼세인과三世因果'의 설을 주장하였고

자제子弟에게 처세의 길을 가르치는 데 세심하고 성실하였다.

 

그가 자제를 훈계하기 위하여 쓴 글인 <정고庭誥>는 가정교육사家庭敎育史의 좋은 자료이다.

어릴 때 아버지를 잃고 가난하게 살았지만 글 읽기를 좋아해서 읽지 않은 책이 없고 음주를 좋아했다.

 

문학에서는 사영운謝靈運과 함께 '안사顔謝'라 일컬어졌으나 실제로는 사령운에게 미치지 못하였다.

작품은 연어練語와 대구對句를 중시한 형식미가 돋보인다.

 

시를 지을 때 지나치게 아름답게 가다듬고 고전을 즐겨 사용함으로써

자연의 운치를 잃어버려 당시 사람들은 그의 작품에 대하여 진실감이 없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대표적인 <五君詠> 5수는 이러한 결점을 극복하였으며 또한 고매한 격조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문선文選>에 실린 <자백마부赭白馬賦><오군영五君詠><추호시秋湖詩> 등이 대표작이나

그 중에서도 <추호시>는 서사시사상敍事詩史上 주목할 만하다.

 

주요 저서에는 <정고庭誥><안광록집顔光祿集>(30권)이라는 작품집이 있었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한 권의 집본輯本이 <한위육조백삼명가집漢魏六朝百三名家集>에 실려 있다./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