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명과 동시대의 인물 승조僧肇
승조僧肇(383-414)
晋나라 때의 승려. 구마라습 문하 4哲의 한 사람. 산시성[陝西省] 장안長安(西安) 출생.
빈궁하였기 때문에 소년 시절부터 서적의 서사書寫에 고용되었는데
그로써 유교와 역사의 고전에 통달할 수가 있었고 특히 노장老莊 사상을 즐겼다.
그러나 노자의 <道德經>도 흡족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느꼈는데 뒤에 지겸支謙이 번역한
<유마경維魔經>을 읽고 나서 불교에 귀의하여 20세 무렵에는 벌써 장안長安에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때마침 구자국龜玆國의 구마라습鳩摩羅什이 고장姑臧에 왔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인도 용수계龍樹系의 대승불교를 공부했다.
401년 구마라습이 장안에서 후진 왕의 명을 받고 국가사업으로 불전의 대번역과 강술을 시작하자
그의 가장 훌륭한 제자로서 활약하였기에 승략 ·도항道恒 ·승예僧叡와 함께 구마라습 문하 四哲로 일컬어진다.
그의 저술인 <주유마경註維魔經><백론서百論序> 등은 중국의 노장ㆍ유가의 사상이 어떻게 인도의
공관대승空觀大乗 교의를 받아들이고 중국ㆍ한국ㆍ일본의 대승 불교의 기초가 되었는가를 아는 데에 좋은 자료이다.
/네이버
<물불천론物不遷論><부진공론不眞空論><반야무지론般若無知論><열반무명론涅槃無名論> 등을 담은 그의
논문집 <조론肇論>은 대승의 空사상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준 것으로서 뒤의 중국불교에 큰 영향을 끼쳤다.
많은 저서 중에도 <보장론寶藏論>은 당시 그가 얼마나 높이 평가되고 있었던가를 보여 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보장론寶藏論>은 후대의 사람이 승조의 이름으로 가탁한 것이다)/네이버 지식백과
►침묵 가운데 홀연히 깨닫다, 승조
인도 사상을 중국에 직접 소개한 것이 구마라습의 업적이었다면
그 불교 학문을 빌어 노장 사상을 발휘하게 한 사람은 승조와 도생이었다.
모두 경전을 번역하는 데 몰두하고 있을 무렵 승조는 홀연히 망언忘言을 부르짖었고
모두 열심히 수도에 전념하고 있을 때 갑자기 돈오頓悟를 외쳤다.
승조는 경조(지금의 장안현 서쪽) 사람으로 어렸을 때 집안이 가난하여
책을 사보는 대신 글을 베끼는 것으로 많은 경서를 접할 수 있었다.
이때 열심히 노장을 읽다가 노자의 도가 비록 깊을지라도 그 현묘함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이후 불교 경전을 읽었을 때 크게 감동을 받고 즉시 출가하여 불법을 드높이기로 맘먹었다.
그는 스무 살 무렵에 자신의 이름을 떨쳤다.
많은 학자들이 그를 찾아와 변론하고자 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돌아갔다.
그는 구마라습의 경전 번역을 돕다가 겨우 서른한 살에 장안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쓴 <4論>은 천고의 절창絶唱이 되었고 그가 이천여 단어로 된 <반야무지론般若無知論>을 썼을 때
구마라습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혜원은 감탄하여 “지금까지 내가 본 적이 없는 기문奇文이다.”라고 했다.
<진정한 지혜란 거울과 같다>
승조는 여기에서 반야의 작용을 하나의 거울에 비유했다.
본래 반야般若란 말은 산스크리트어의 음역으로 그 뜻은 ‘지혜’다.
그런데 진정한 지혜는 하나의 거울과 같고 따라서 그것은 무지나 마찬가지다. 왜 그러할까?
이 세상의 여러 가지 모습들이 거울의 앞면에 나타나 우리가 볼 수 있는 반면에
거울 자체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空이다.
그러므로 거울 속에는 고정된 모양이 없고 거울 본연의 모습을 비쳐볼 수도 없다.
聖人의 지혜 역시 이와 같아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기에 도리어 모르는 것이 없게 되는 것인데
그의 마음은 항상 텅 비어 있다.
오직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 虛만이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으니 이러한 이치는 마치 거울과 같다는 뜻이다.
옛것은 옛날에 스스로 있었을 뿐 오늘날의 것을 의존하여 옛날에 이르지 않았다.
또 오늘의 것은 오늘에 있을 뿐 옛것을 의지하여 오늘날에 이른 것은 아니다.
즉 모든 사물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범지梵志라는 사람이 어렸을 때 집을 나갔다가 백발이 되어 돌아왔다.
오랜만에 만난 그를 보고 이웃사람들이 반갑게 말했다.
“옛 모습이 남아 있네요.”
그러자 범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옛 모습과 비슷하게 보일지라도 나는 옛날의 내가 아닙니다.”
이처럼 모든 것은 시시각각 변할 뿐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사물이 유도 무도 아니고 고요함도 움직임도 아니라고 하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에 해당한다.
승조는 또 열반涅槃이란 다만 현묘한 경지일 뿐임을 강조한다.
인간의 수양이 최고 수준에 도달하면 그의 마음은 거울처럼 되어 바로 이러한 경지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최고 경지는 우리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최고의 지식은 지식이 아니다>
승조에 의하면 성인의 지혜에 해당하는 최고의 지식 즉 반야지般若知는 지식이 아니다.
왜냐하면 반야지란 無를 똑바로 바라보는 데서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무는 형상을 초월하여 아무런 모양도 갖추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는 우리 지식의 대상일 수 없다. 정작 무가 무엇인지를 알려면 무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처럼 무와 하나가 되는 상태를 흔히 우리는 열반이라고 부른다.
<침묵 가운데 홀연히 깨닫다>
열반과 반야는 원래 같은 하나며 또한 동일한 상태의 양면이다.
열반이 보통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없는 어떤 경지인 것처럼 반야는 ‘무지의 지’다.
따라서 제3차원의 경지에서는 어떤 것도 말할 수 없는 상태로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다.
바로 이것이 승조가 말한 망언의 의미다.
승조의 무지와 무명에 대한 이론은 노장 사상에서 유래했다고 보인다.
예컨대 노자는 “대지약우大智若愚 지극히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은 마치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인다.”
라고 말한 바 있고 장자는
“지인지용심약경至人之用心若鏡 지인至人의 마음 씀씀이는 거울과 같다.”라고 말한 적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경지는 불학에서 말하는 공의 의미와 서로 통할 수 있기 때문에
승조는 노장 사상을 불교에 받아들였던 것이다.
특히 승조가 주장한 망언은 당시 불교 경전을 번역하는 사람들이 단어를 이리 찢고 저리 갈기어
그 뜻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린 데 대한 통렬한 비판이 아니었나 싶다.
경전에 담긴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함부로 해석하려 드는 자만심을 경고한 셈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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