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5권 10-37
10 화초花草
37 련방蓮房 연밥 송이
하사렴계독애언何事濂溪獨愛焉 염계는 무슨 일로 어찌 홀로 사랑하였나.
정정정식사군선亭亭淨植似群仙 우뚝 높이 맑게 자라니 신선 무리 같구나.
무단우유화방과無端又有花方果 무단히 다시 넉넉하여 꽃의 열매 패어나
감비금인설묘련堪譬金人說妙蓮 하늘의 불상과 묘한 연꽃 비유해 말하네.
►련방蓮房=연봉각蓮蓬殼, 연각蓮殼. 연꽃의 열매가 들어 있는 송이.
연꽃[蓮; Nelumbo nucifera Gaertn]의 다 익은 꽃받침[花托]
련봉蓮蓬 연밥(연꽃의 열매)이 들어 있는 열매 송이.
<추흥秋興 8首>/두보杜甫
其7
곤명지수한시공昆明池水漢時功 곤명지 호수는 한나라 때의 공업인데
무제정기재안중武帝旌旗在眼中 한 무제 깃발이 눈앞에 펄럭이는 듯
직녀기사허월야織女機絲虛月夜 직녀상의 베틀 실은 달밤이라 허허롭고
석경린갑동추풍石鯨鱗甲動秋風 고래 석상의 비늘은 가을바람에 흔들리네.
파표고미침운흑波漂菰米沈雲黑 물결은 줄풀쌀 위에 떠돌다 가라앉으니 구름처럼 검고
로랭련방추분홍露冷蓮房墜粉紅 이슬은 연밥에 차갑게 떨어져 가루가 되며 붉구나.
관새극천유조도關塞極天唯鳥道 변방의 관문은 하늘에 닿도록 험한 샛길만 있는데
강호만지일어옹江湖滿地一漁翁 강과 호수 가득한 땅에도 늙은 어부 한 사람뿐.
<추일감련쇠秋日感蓮衰> 가을날 연꽃이 시드니 느끼는 바가 있어/서거정徐居正(1420-1488)
작야추풍령로단昨夜秋風零露漙 어젯밤 가을바람에 이슬이 흠뻑 내리는 바람에
홍의요락이향잔紅衣搖落已香殘 붉은 꽃잎 떨여져서 이미 향기香氣도 사라졌네.
방심욕멱멱무처芳心欲覓覓無處 꽃답고 애틋한 마음을 찾으려 해도 찾을 곳이 없으니
류여금방옥자간留與金房玉子看 남은 연방蓮房의 연밥만 바라볼 뿐이로다.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1017-1073)
북송北宋의 儒學者. 자字는 무숙茂叔. 호號는 염계濂溪.
唐代의 經典 주석注釋의 傾向에서 벗어나 佛敎와 道敎의 理致를 응용應用한 儒敎哲學을 創始하였다.
저서著書에 <태극도설太極圖說><통서通書> 따위가 있다.
<애련설愛蓮說> 연꽃을 君子에 비유比喩하였다.
►정정亭亭 늙은 몸이 꾸부정한 모양, 우뚝하게 높이 솟은 모양.
►금인金人 佛像[불상], 금동으로 만든 사람의 상.
●애련설愛蓮說 연꽃을 좋아하는 이유/주돈이周惇頤(무숙茂叔)
<애련설愛蓮說>은 북송北宋의 이학자理學者 주돈이周敦頤가 창작한 산문散文이다.
이 글은 연꽃의 이미지와 품위를 묘사함으로써 연꽃의 굳은 성품을 칭송하고 있으며
또한 결백하고 자애적自愛的인 고결高潔한 인격人格을 표현하고 있다.
청清나라 등현학鄧顯鶴의 <주자전서周子全書 년보年譜>에
“선생先生은 가우嘉祐 8년(1063) 계묘癸卯 47세 5월에
<애련설愛蓮說>을 짓고 심희안沈希顏이 글씨를 써서 액자를 만들었다.”고 하였고
<공주부지贛州府志>에
“애련서원愛蓮書院은 성의 북쪽에 있는데 그 땅은 원래 독학시원督學試院을 위한 것이었고
주무숙周茂叔의 연못(연지蓮池)의 유적이 있다.” 하였고
또 ”염계서원濂溪書院은 옛날에 동북쪽 옥허관玉虛觀 왼편에 있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북송北宋 가우嘉祐 6년(1061)부터 치평治平 원년(1064)까지 주돈이周敦頤가 건주통판虔州通判을 할 때
연지蓮池를 건설하고 동시에 가우嘉祐 8년 5월에 이곳에 <愛蓮說> 글씨를 써서 걸어두었던 것은 확실하다.
이 문장은 분명히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 부분에서는 연꽃의 고결한 이미지를 최대한 살려서 묘사하였고
두 번째 부분에서는 연꽃의 비유적 의미를 밝히고 국화, 모란, 연의 세 꽃을 나누어서 평가하였으며
동시에 연의 자태를 비유하여 저자의 내심의 깊은 개탄을 풀어내었다.
그리고 꽃을 빌려 사람에 비유하면서 도연명陶淵明과 같은 은둔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부귀영화를 추구하는 심리를 매우 잘 묘사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애원哀怨을 금할 수 없지만
염치없는 자들을 무자비하게 채찍질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주돈이周敦頤는 도도하며 세태를 따르지 않고 순수한 마음만 추구하는데
이것은 평범한 티끌 같은 세상에서 매우 기특한 것이다.
그가 한탄하는 것은 세상 풍조가 날로 나빠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점점 세상사에 물들어가기 때문이다.
저자는 연꽃에 대한 사랑과 예찬을 통해 아름다운 이상에 대한 동경,
고상한 정조에 대한 숭앙, 용렬하고 저급한 세태에 대한 증오를 표명하였다.
주돈이周敦頤(1017~1073)는 북송北宋의 유학자儒學者로 본명은 돈실敦實, 자는 무숙茂淑이었으나
宋 英宗의 휘호를 피해 이름이 돈이敦頤로 바뀌었고 호는 염계濂溪로 세칭 염계선생濂溪先生으로도 불렸다.
주자周子라고도 부르는데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朱熹(1130~1200)를 가리키는
주자朱子와 혼동되므로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지는 않는다.
도주道州 영도營道 루전보樓田堡(지금의 호남湖南도현道縣) 사람이다.
소옹邵雍, 장재張載, 정호程顥, 정이程頤와 함께 北宋5子로 불린다.
북송北宋 시대의 관리, 문학가, 이학가理學家. 주돈이周敦頤는
관리 집안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좋은 문화와 교양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외삼촌인 정향鄭向은 용도각龍圖閣 大學士로 주돈이에게 자못 많은 영향을 끼쳤고
가문의 영향으로 벼슬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모친상 기간이 끝난 후 주돈이는 지방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여 침현郴縣 현령縣令,
합주판관合州判官, 영주통판永州通判, 소주지주邵州知州 등을 역임했다.
그는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청렴결백하여 백성들을 복되게 하였으며 자신의 재능으로 인정과 천거를 받았고
마침내 광남동로廣南東路의 형옥刑獄을 관장하는 자리에 올랐다.
학자형 관료인 주돈이周敦頤는 한나라 때부터 이어져 온 官教合一의 전통을 이어가며
정치를 다스리는 것 외에 학업을 강의하고 여러 저서를 전하였다.
그는 문학에도 조예가 높아 “문이재도文以載道의 모범”이라는 영예를 얻었다.
주돈이는 <周易>과 <中庸>을 따라 깨달음을 얻어 <중용>의 “성誠”으로 <주역>의 “乾道變化”를 형용하고
건원乾元, 태극太極, 성도창생적誠道創生的 우주론宇宙論 체계와 “정靜을 주장하여
인극人極을 세우다(주정입인극主靜立人極)”의 수신修身 모델을 창립하였으며 自然觀, 認識論, 思想方法으로
倫理 도덕道德 등을 조직하여 하나의 유기적인 철학 체계를 이루었으며
이는 이전의 유가 학설보다 더욱 정교하고 이론적인 특색이 풍부한 것이다.
학문의 방향과 의리義理의 틀은 송宋 明理學의 여러 파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으며
이를 두고 “道學의 宗主(주희의 평가)”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만년에는 여산廬山 기슭의 염계서당濂溪書堂에서 은거하였다.
희령熙寧 6년(1073), 周敦頤가 죽자 宋 신종神宗이 元이라는 시호를 내려 사람들이 “元公”이라 불렀다.
주돈이는 24세에 벼슬길에 올라 57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30여 년간 관직을 지냈는데
송사에는 그를 평가하기를
“무고한 사람의 불쾌한 상황을 해소하였다(세원택물洗冤澤物).”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태극도설太極圖說><통서通書><애련설愛蓮說> 등이 있다.
애련설愛蓮說 연꽃을 좋아하는 이유
수륙초목지화水陸草木之花 물이나 땅에 자라는 초목의 꽃은
가애자심번可愛者甚蕃 사랑스러운 것이 매우 많은데
진도연명晉陶淵明 독애국獨愛菊 진나라 도연명은 홀로 국화를 사랑하였고
자이당래自李唐來 세인世人 이씨의 당나라 때부터는 세상 사람들이
심애모란甚愛牡丹 모란꽃을 매우 좋아하였으나
여독애련지출어어니이불염予獨愛蓮之出於淤泥而不染
나는 유독, 연꽃이 진흙에서 나왔으면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탁청련이불요濯淸漣而不妖 맑고 잔잔한 물에 씻기면서도 요염하지 않으며
중통외직中通外直 줄기의 속은 비고 겉은 곧으며불만부지不蔓不枝 넝쿨도 뻗지 않고 가지도 치지 않으며
향원익청香遠益淸 정정청식亭亭淸植 향기는 멀리 갈수록 더욱 맑아져서, 꼿꼿이 깨끗하게 서 있어
가원관이불가설완언可遠觀而不可褻翫焉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어도 가까이서 함부로 가지고 놀(만만하게 다룰) 수 없음을 사랑하노라
여위국予謂菊 화지은일자야花之隱逸者也 내가 평하건대, 국화는 꽃 중에서 은자隱者이고
모란牡丹 화지부귀자야花之富貴者也 모란은 꽃 중에서 부귀한 자이며
연화지군자자야蓮花之君子者也 연꽃은 꽃 중에서 군자君子라고 생각된다.
희噫 아아!
국지애菊之愛 도후선유문陶後鮮有聞 국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도연명 이후로 들어본 적이 드물고
연지애蓮之愛 동여자하인同予者何人 연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나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란지애牡丹之愛 의호중의宜乎衆矣 모란을 사랑하는 사람이 당연히 많으리라.
<연꽃을 좋아하는 이유>
물이나 땅에 자라는 초목의 꽃은 사랑스러운 것이 매우 많은데
진나라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사랑하였고
이씨의 당나라 때부터는 세상 사람들이 모란꽃을 매우 좋아하였으나
나는 유독, 연꽃이 진흙에서 나왔으면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고 잔잔한 물에 씻기면서도 요염하지 않으며, 줄기의 속은 비고 겉은 곧으며,
넝쿨도 뻗지 않고 가지도 치지 않으며, 향기는 멀리 갈수록 더욱 맑아져서,
꼿꼿이 깨끗하게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어도
가까이서 함부로 가지고 놀(만만하게 다룰) 수 없음을 사랑하노라
내가 평하건대,
국화는 꽃 중에서 은자隱者이고,
모란은 꽃 중에서 부귀한 자이며,
연꽃은 꽃 중에서 군자君子라고 생각된다.
아아! 국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도연명 이후로 (또 있다는 말을)들어본 적이 드물고
연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나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란을 사랑하는 사람이 당연히 많으리라.
►진도연명독애국晉陶淵明獨愛菊 진晉나라의 도연명陶淵明은 국화菊花를 매우 사랑하였다.
도연명陶淵明(365~427) 도잠陶潛. 자字 원량元亮 자칭自稱 오류선생五柳先生. 세칭世稱 정절선생靖節先生.
동진東晉 심양潯陽 자상인柴桑人(지금의 강서성江西省 구강현九江縣).
동진東晉의 저명한 시인詩人이자 은사隱士. 그는 홀로 국화를 사랑하여 그의 시에는 국화가 많이 보인다.
<飲酒> 詩에
채국동리하采菊東籬下 “동쪽 울타리에 피어난 국화꽃을 딸 때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무심코 저 멀리 남산이 보인다.”라는 명 구절이 있다.
►자이당래自李唐來 세인심애모란世人甚愛牡丹
이당李唐은 당나라를 말한다.
당唐 고조高祖 이연李淵이 당唐을 세워 당나라 왕실의 성이 이씨이므로 이당李唐이라 칭한다.
당唐나라 이래로 사람들이 모란牡丹을 매우 좋아하였다.
당인唐人의 모란牡丹 사랑은 옛 글에 적지 않게 보인다.
고조의 황후가 모란을 사랑하여 궁중 곳곳에 모란을 심은 뒤로부터
상하를 막론하고 모란을 사랑하는 것이 그 시대에 유행이 되었다고 한다.
이조李肇의 <당국사보唐國史補>에
경성귀유상모란京城貴游尚牡丹 삼십여년의三十餘年矣
매춘모每春暮 거마약광車馬若狂 이불탐완위치以不耽玩為恥
“경성의 귀족들의 별장에 모란을 꾸며놓은 지 30여년이 되어
매년 늦은 봄이면 수레와 말을 미친 듯이 달려 가지고 놀지 않으면 수치로 여겼다.
종이구리種以求利 이익을 남기기 위하여
집금오포관위외執金吾鋪官圍外 종자를 심는데 집금오는 관사 밖에 밭을 만들고
사관종이구리寺觀種以求利 절에서도 이익을 보기 위하여 모란을 심었다.
일본유치수만자一本有直數萬者 당시 모란 한 뿌리의 값이 수 만전이었다.”라 하였다.
►여독애련지출어니이불염予獨愛蓮之出於淤泥而不染
더러운 진흙 물 속에서 깨끗한 한 송이의 꽃을 피우는 연꽃을 도덕 수양이 높은 군자가
세속에 몸담고 있으면서 거기에 물들지 않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염染’은 때가 묻다.
►탁청련이불요濯淸漣而不妖 안으로 티 없이 맑고 깨끗하면서 겉을 꾸미지 않는 군자의 덕에 비유한 말이다.
‘탁濯’은 씻다. 세척하다. ‘청련淸漣’은 맑은 물결. ‘련漣’은 잔잔한 물결. ‘요妖’는 요염하다.
►중통외직中通外直 (연꽃의 줄기가) 안은 비고 밖은 곧다.
‘중통中通’은 연꽃의 대 속이 비어 위아래가 통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욕심 없이 맑게 트인 군자의 마음이 사물의 이치에 통달함을 비유한 것.
►향원익청香遠益清 향기가 멀리 갈수록 더욱 맑다.
라는 뜻으로 군자의 아름다운 덕의 이름이 갈수록 멀리 들림에 비유한 것.
‘원遠’은 형용사의 동사용법. ‘익益’은 …할수록 더, 더욱. ‘청淸’은 맑다. 청아하다.
►정정청식亭亭淸植 정정亭亭은 우뚝 곧게 서 있는 모양. ‘청식淸植’은 맑게 심어져 있는 것.
군자가 평생 동안 결백하게 홀로 서서 한 길만을 걸어가는 것에 비유한 말.
►불가설완언不可褻翫焉 설완褻翫은 가까이에서 함부로 다루다. 만만하게 다루는 것.
도덕이 높은 군자는 그 위엄에 눌려 감히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비유함.
►은일자隱逸者 은사隱士, 은거隱居하는 사람.
封建社會에는 혼탁한 정치를 피해 산이나 전원에 은거하면서 자신의 고결함을 지키는 사람이 많았다.
국화는 많은 꽃들이 다 피고 진 뒤 홀로 찬 서리를 맞으며
그윽한 향기를 내뿜고 있어 속세를 떠나 사는 은자와 같다고 한 것이다.
►부귀자富貴者
모란은 꽃 중에서도 사치스러운 꽃이므로 부귀의 꽃이라 하고 또 부귀한 사람에 비유한 것이다.
►군자君子 품덕品德이 고상한 사람.
연꽃은 많은 꽃들 중에서도 도덕 수양이 높은 군자를 닮았다고 하였다.
►동여자하인同予者何人나와 같이 연꽃을 좋아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의호중의宜乎眾 모란을 좋아하는 사람은 당연히 매우 많을 것이다.
주자명돈이周子名惇頤 자무숙字茂叔 도주인道州人 주자는 이름이 ‘돈이’이고 자가 무숙이니 도주 사람이다.
만가려산지록晩家廬山之麓 말년에 여산 기슭에 집을 짓고
명기수왈렴계名其水曰濂溪 그 물을 이름 하여 염계라 하니
세인호렴계선생世因號濂溪先生 세상에서 이로 인하여 염계선생이라 불렀다.
졸시원공卒諡元公 별세하니 시호를 원공이라 하였다.
렴계비극의어문장자濂溪非剋意於文章者 염계는 문장에 뜻을 둔자가 아니었으나
학식리취지고學識理趣之高 학식과 이상 의취意趣가 높았기 때문에
고문장불기이조극언故文章不期而造極言 문장을 잘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지극한 경지에 나아간 것이다.
여차설자如此說者 명의적命意的 이 글과 같이 뜻을 나타냄이 정확하고
탁흥심託興深 조사간措辭簡 흥을 표현함이 깊으며, 글을 씀이 간결하니
수고금이문명가자雖古今以文名家者 비록 고금의 문장가로 이름난 자인들
하능가제何能加諸 어찌 이보다 낫겠는가?
이은일군자부귀以隱逸君子富貴 명삼화名三花 불가역야不可易也
은일隱逸과 군자君子와 부귀富貴로서 세 꽃을 불렀으니 바꿀 수 없다.
렴계비도애련濂溪非徒愛蓮 애군자이愛君子耳
염계는 단지 연꽃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군자를 사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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